“남북정상회담”은 정쟁의 도구일 수 없다
김 낙 중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오는 10월초로 예정되어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한에서는 오는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대선용’이 아니냐? 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금년 연말의 대통령 선거 이후로 미루어야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룰 수 있고, 또 다루어야 할 문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을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이런 말은 불필요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쟁의 반세기를 살면서도 아무런 자각도 없이, 현상의 변경을 두려워하는 수구 냉전적 사고의 소산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되었던 냉전 체제가 해체된 지도 벌서 16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한 냉전의 불행한 고도(孤島)로 남아 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지금 개최되는 남북정상회담이란 누가 대통령으로 있더라도 반세기가 넘은 냉전체제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그 냉전체제를 완화하는 일 밖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소속한 정당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임기가 많이 남았든 몇 달 남지 않았든, 남한의 대통령이 과연 지금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 내 정당들의 동의를 받을 수 없는 어떤 일을 결정할 수가 있겠는가? 또 그런 결정을 한들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를 들면 경제협력의 이름으로 남한 정부가 소위 ‘퍼주기’라고 불리는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치자.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정상회담에서 이룩한 이런 합의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휴지 쪽이고, 따라서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게 된 것은 결코 남측 내부의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미국 부시대통령의 정책방향이 바뀌고, 북·미관계가 변화의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서 9.19합의가 있었고,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 진전되어 반세기 이상 지속된 ‘정전협정체제’가 바뀌지 않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남과 북은 싫으나 좋으나 만나서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바꾸는데서 제기되는 민족문제들을 함께 협의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의 대통령이 여·야 그 누구이든, 상호 타도를 추구하던 냉전적 대결상태로는 더 이상 세계사의 진전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남한의 대통령이 누구냐? 또는 임기가 얼마나 남았느냐?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하루라도 속히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나서 현재 주어진 국제정치적 기회를 어떻게 잘 살려내느냐? 하는데 대해 합의를 도출해내야만 할 중대한 시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대한 시기에 남과 북의 정상들이 만나서 “한반도의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그리고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기 위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다는데, 자신이 스스로를 지난 반세기간의 불행했던 동족상쟁의 시대를 고집하는 ‘냉전수구’를 자처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딴죽 거는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당이든 야당이든, 마땅히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아무쪼록 빨리 개최되고 또 보다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촉구하고 기원해야 마땅한 일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제대로 되어가는 국가에서는 안보 외교 정책은 초당적 입장에서 수립되고, 또 그 실천이 추구되는 법이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안보 외교 정책을 자기 정당의 일시적 이해관계에 의하여 지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1세기를 맞은 지도 7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서 “한반도의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 그리고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기 위하여” 남과 북의 정상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따라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하루라도 빠르면 빠를수록 좋고, 또 결코 정쟁의 도구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이번에 개최되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보다 성과적인 회담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남북정상들에게 다음의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을 뿐이다.

첫째, 남북 정상 간에 일단 이루어진 합의 사항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또 어떤 일이 있어도, 꼭 이행 실천된다는 것을 전 국민과 세계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조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남북 지도자들이 국제사회와 전체 민족 구성원들에게 신뢰를 얻게 되는 것이 앞으로 민족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데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지난날과 같이 남북 정상들이 이룩한 합의와 결정들이 유야무야 되는 것으로 보일 경우 남북간의 신뢰는 이루어질 수 없으며, 세계 속에서 우리 민족은 불행한 비극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북 당국간에 지금까지 이루어진 합의서들을 충실하게 이행 실천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그 동안 남북 당국간의 합의서들을 이행 실천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 피차간에 진지한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남과 북 쌍방은 서로 불신하는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길 생각을 하지 말고, 냉정한 제3자의 입장에 서서, 그 동안 이루어졌던 남북 당국간의 합의서가 이행 준수되지 못한 이유를 진지하게 규명해야만 한다. 남북 당국간의 합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처음부터 이행 준수할 의지가 없으면서도 합의서를 공포하여 상대방과 국민들과 세계를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남북 정상간의 합의란 어떤 경우에도 남과 북의 평화적 공존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로는 평화적 공존을 말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타도를 계속 추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보아야만 한다.

1972년의 “7.4공동성명”, 1992년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 그리고 2000년의 “6.15공동선언” 이 모두 남북 최고당국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서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족의 내일을 위해 얼마나 소중한 남북 당국간의 합의서들이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중한 합의서들은 거의 모두 실현성이 없는 공문서 같이 되고 말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이들 남북 당국간의 “4대합의서”들 중에서도 나는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현재까지도 우리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합의였다고 생각하며, 이는 이제라도 동시 이행되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15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반도의 불안정이란 기본적으로 남북간 적대관계의 존속과 군비경쟁관계 때문인데, 1992년에 이루어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에는 그 해답의 길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장에서 “남북화해”에 관한 중요한 규정들을 담고 있다.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 존중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 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소중한 “남북화해”의 합의를 남한 측에서는 그것이 “남과 북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을 필요가 없는 ‘신사협정’이라며, 법적 기속력 부여를 거부하여 이를 사실상 허구화했다. 그 결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여전히 “국가를 참칭하며,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반국가단체라”는 법적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거부하며, 또 “남북기본합의서”의 비준동의를 거부한 대한민국 국회는 “남북간의 경제관계 4대합의서”들에 대해서는 엄연히 비준동의를 했다. 남북관계는 국가와 국가 사이가 아니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는 국회의 비준동의를 할 수 없다던 국회가 어떻게 “남북간의 경제관계 4대합의서”는 비준동의를 했다는 것인가? 남북기본합의서 비준 동의를 거부했던 한국 국회는 구차스러운 구실을 대려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들의 이중적 논리를 재고해야만 할 것이다..

그와 반면에 북조선 측에서는 1992년 같은 해, 남북기본합의서의 비준서를 교환한 같은 날 국가 최고 당국자들의 비준서를 교환한바 있는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1항에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하지 아니 한다”고 공동선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측은 그 후 핵무기의 폭발 시험을 감행했고, 핵보유국임을 공언하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남측의 한·미 연합군 측에서 진행하는 적대적 군비경쟁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라고는 하지만,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준 서명했던 김일성 전 주석의 공약들을 허구화한 일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2000년의 제1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루어진 “6.15공동선언”은 남북정상들이 처음으로 직접 만나서 이룩한 합의였기 때문에 그 회담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이루어진 두개의 남북합의서가 공허해진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남북간의 진정한 “남북화해”가 없는 교류협력, 즉 적대적 군비경쟁을 지속하면서 진행하는 교류협력이란 곧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2000년 6.15공동선언 7주년이 지난 이제 개최될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부닥쳤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민족화해”에 관한 규정들을 되살리는 조치를 강구하기로 약속해야만 할 것으로 확신한다. 그래야만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진정으로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회담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 제2차 정상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동시이행을 확약하는 공동선언을 채택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동선언을 채택하더라도 노무현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을 이끌고 있던 노태우대통령 시절에 이룩한 것이며, 또 아직까지는 한나라당도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표시한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동시이행을 이번 제2차 정상회담에서 확약 선언한다고 해서 노무현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동시이행을 확약하는 것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두개 합의서는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의미가 있고, 또 장차 남북통일에도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정상들이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이행 실천의 의지를 분명히 선언한다면, 미국을 비롯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6자회담의 당사국들도 이를 전적으로 환영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과 아울러 “남북기본합의서”의 동시적 이행실천을 동시에 확약할 경우 주변국들이 이를 분리해서 반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규정된 바에 따라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임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국가간의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 관계”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야만 앞으로 남북간에 진행될 경제협력에도 지장을 받지 않을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도 국제적으로 영구분단의 구실을 없애게 되어 민족통일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즉 남한은 “남북기본합의서”를 국내법적으로 기속력 있는 합의가 될 수 있게 할 것을 약속하고, 북조선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의 실행 의지를 분명히 재천명한 다음, 6자회담에서 주변 국가들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 대한 지지와 동의를 받아서 이를 동시에 이행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은 6자회담의 틀을 슬기롭게 이용하면서, 그 이행 실천의 길을 찾아 나가고, 또 “남북기본합의서”는 국제연합 헌장 제102조의 규정에 따라 국제연합사무국에 등록하는 절차를 밟아 국제법적 기속력을 부여토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는 비핵화의 길에서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남북관계는 국제법적으로도 확실하게 우리 민족이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잠정적 특수 관계”로 공인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반세기가 넘은 남북간의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면서 점차적으로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