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남북공동선언”과 국군포로 및 북방한계선

김 낙 중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0월4일 평양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을 때, 남과 북의 대다수 국민들은 드디어 기나긴 냉전시대가 한반도에서도 종식을 고하게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지면서, 모두 이를 환영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지난날의 냉전대결시대에 재미를 보고 머리가 굳어진 일부 사람들은 남북 정상회담 자체에 대해 불만을 말하며, 무엇인가 시비겨리를 찾아야 했는데, 적당한 시빗거리가 보이지 않아 꽤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렵게 찾아낸 시빗거리가 첫째, 북핵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남북관계의 발전을 약속했으니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과 둘째,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의 해결을 위한 약속이 없다는 것, 그리고 셋째,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북측에 팔아먹은 것이 아니냐? 는 주장 따위를 내세웠다. 그러면 이 시빗거리 세 가지의 내용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잠깐 생각해 보자.

첫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실제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기피한 채 남북관계의 발전을 추구했는가?
“10.4남북공동선언” 제4항에는 분명히 “남과 북은 한반도 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9.19공동성명’ 제1항에는 “1992년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남.북 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 고 규정하고 있으며, ‘9.19공동성명’의 각항에는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9.19공동성명’이 제대로 이행 실천되기만 한다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이루어지고, 북핵문제란 잘 해결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남북정상은 이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합의하였는데 그것이 과연 어째서 잘못됐단 말인가?

둘째, “10.4남북공동선언”에서는 국군 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전쟁 종결선언을 하자니, 평화협정을 하자니 하면서도 포로문제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은 좀 이상한 게 사실이다. 왜냐하면 국가간에 있었던 전쟁에서는 대개 전쟁이 종결되자면 전쟁 중에 발생한 쌍방 국가의 포로를 상호 교환하는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북 쌍방당국의 수뇌들이 지난날의 전쟁을 종결처리하고,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서 평화협정을 하자면서도, 쌍방의 포로문제에 관해서 한마디의 말도 없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한국전쟁이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한 국가 내부의 “내전적 성격”을 가졌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전쟁은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간의 전쟁이었다고 보면 내전이 아니라 침략전쟁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는 이미 천년 전부터 ‘고려’와 ‘조선’이라는 통일된 단일국가가 존재했으며, 남과 북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문화민족이 살아왔다. 그런데 이 나라가 일제의 침략으로 식민지로 되었고, 1945년 다시 미·소의 분할 점령으로 남과 북이 분단되었으며, 또 1948년 거기에 두개의 분단정권이 세워졌다. 그러나 38선은 남과 북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이것을 국경선으로 인정한 사람이 없었다. 따라서 1950년 6월 25일 무장력이 38선을 넘은 것은 침략이 아니라 “6.25동란”이라거나 “민족해방투쟁”이라 불리는 내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 기간에 쌍방간에 포로가 됐던 사람들은 임의로 국군이 인민군으로 변신하기도 했고, 인민군이 국군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거나, 또 그것을 변경할 수는 있어도, 서로 국적의 차이를 인정하지는 안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쟁을 종식시키는 문제에서도 국적을 달리하는 두개 국가간의 전쟁의 경우와 같이 포로문제가 제기될 수는 없다. 실제로 많은 국군 포로들이 ‘해방전사’로 변신했으며, 또 인민군 포로가 국방군으로 변신하여 싸우다 1953년 7월 휴전으로 전쟁이 멈추었다. ‘해방전사’로 변신한 국군 포로, 또는 국방군으로 또는 ‘반공포로’로 변신한 인민군 포로는 더 이상 포로가 아닌 것이다. 전쟁 중에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 전쟁에서의 포로문제란 1953년 휴전협정 당시의 포로교환으로 종료된 사안인 것이다.
그리고 납북자 문제라는 것도 어떤 사람이 휴전선을 넘어서 남으로 또는 북으로 갔을 경우 그것이 자의에 의한 월경인지? 실수에 의한 월경인지? 어떤 임무 수행을 위해 권력에 의해 투입된 것인지? 또는 강제로 납치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개선되어 사람들이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남과 북을 왕래할 수 있게만 된다면, 납북자 문제란 이산가족 상봉 속에서 자연히 해결될 문제라고 할 것이다.

셋째, 서해의 북방한계선 문제다. 흘러가는 바닷물 위에 구불구불 금을 긋고 이것이 내 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부터 바다에는 영토의 개념이 적용되지 않았다. 따라서 영토가 인정되지 않는 곳에 국경선이 있을 수는 없다. 북방한계선이 국경선이니 아니니 하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다. 그래서 바다에는 영토가 아닌 ‘영해’라는 개념이 도입됐는데, 이 ‘영해’란 영토를 지키는데 필요한 적당한 거리 안의 바다를 의미했다. 따라서 바다인 서해에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의 영해냐 아니냐를 따질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영해의 범위는 국제 해양법 상의 규정들에 의하여 정해지는 것이고, 두 국가의 영해가 중복되는 경우에는 양국의 협정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리고 영해 밖의 바다에 대해서는 어로자원의 보호를 위해 별도의 조약으로 규정해서 어로활동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해의 북방한계선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남과 북 사이에 영해에 관해 또는 어로활동의 범위에 대해 남북간에 아무런 규정이 없고, 휴전 이후 남한의 어선들이 북측으로 넘어가 말썽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이 1953년 8월30일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선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간에 다시 논의하기로 약속했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 부근에 ‘평화수역’을 정하기로 합의한 것을 놓고 “북방한계선을 팔아먹은 것이냐? 아니냐? 를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일 뿐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흠집 잡으려는 사람들이 시비를 거는 것은 결코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아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 반세기 이상 타도의 대상으로 삼은 북측을 왜 좀 더 세게 몰아붙이지 않고, 그들이 살 수 있는 숨통을 터주냐는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헌법상의 규정도 있고, 정치적 고려도 해야 하니까 솔직한 표현을 안 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전쟁 때, 수백만의 인명이 희생되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타도를 이루지 못하고 휴전선에서 전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문제를 놓고, 그리고 반세기 이상 서로 보다 좋은 성능의 살상무기를 축적하기 위해 모든 희생을 강요하면서 오늘에 이른 현실에서, 과연 아직도 상대방에 대한 타도 추구를 역사가 허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 일 수 있을까? 21세기를 시작한 현재의 한반도에서, 남북간 상대방에 대한 타도를 추구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시대를 끝내고, 화해상생의 시대를 창조하라”는 역사의 요구를 외면한 자살 행위 이외의 그 무엇일 수 없다. 문명사적 전환기에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는 남과 북이 함께 더불어 살길을 찾을 것이냐? 아니면 남과 북이 함께 죽음의 길로 갈 것이냐? 하는 선택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