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본문을 읽고 나누고자 하는 묵상과 생각을 댓글로 달아 주십시요. 댓글은 로그인을 해야 작성할 수 있습니다.

마음과 몸으로 성서 읽기(거룩한 독서, Lectio divina). [▶ 자세히보기]

○ 소리 내어 읽음 말씀을 세 번, 큰 소리로, 소리와 마음을 맞추어 읽는다. 읽은 후 잠시 침묵한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외우기 말씀을 외운다. 안 보고 써본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낭송 조용하게 말씀을 낭송한다. 낭송 후 잠시 침묵한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옮김 본문을 깨끗하게 옮겨 쓴다. 그 위에 세 번 더 똑같이 덧쓴다. 마음에도 똑같이 쓴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묵상 5분 정도 말씀을 묵상한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탐구 말씀을 자세히 따져 읽으며 푼다. 이성을 충분히 사용할 수 있고, 여러 비평학을 활용할 수 있다. 깨침이 왔으면 적는다.
○ 말씀 품고 나를 보기 묵상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한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적는다.
○ 말씀 담고 나가기 침묵기도로 깨달은 말씀에 집중한다. 말씀을 온 몸에 새긴다. 주기도 영창으로 말씀묵상과 침묵기도를 마친다.


요나 3:10-4:11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야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아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화를 내느냐?" 하고 야훼께서 타이르셨지만, 요나는 시내를 빠져 나가 동쪽으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 초막을 치고 그 그늘에 앉아 이 도시가 장차 어찌 되는가 볼 심산이었다. 그 때 하느님 야훼께서는 요나의 머리 위로 아주까리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주셨다. 요나는 그 아주까리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서는 그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 죽게 하셨다.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게 하셨다. 더욱이 해마저 내리쬐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요나는 죽고만 싶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투덜거렸다.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셨다.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될 말이냐?" 요나가 대답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시편 145:1-8
나의 하느님, 나의 임금님, 내가 당신을 높이 받들며 언제까지나 당신 이름 찬양하오리이다. 날이면 날마다 당신을 기리며 언제까지나 당신 이름 찬양하오리이다. "높으시어라, 야훼, 끝없이 찬미받으실 분, 그 높으심, 측량할 길 없음이여." 당신의 업적 세세에 전해지고 찬란한 그 공적 대대손손 알려지리이다. 당신의 명성, 그 찬란함, 이룩하신 놀라운 일 전하고 또 전하리이다. 당신의 무서운 힘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나는 당신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리이다. 끝없이 어지신 일들 기억하며 사람들은 당신의 정의를 기뻐 외칠 것입니다. 야훼는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지극하시다.
빌립보서 1:21-30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그러나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서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둘 사이에 끼여 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또 그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이 세상에 더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는 살아 남아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여러분의 믿음을 발전시켜 주고 기쁨을 더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다시 찾아가게 되면 여러분은 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찾아가서 만나게 되든지 이렇게 떨어져 있든지 간에 나는 여러분이 복음의 교리를 위하여 한마음 한 뜻으로 굳게 서서 분투 노력하며 반대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한 용기가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가 되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가 될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전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았고 또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 여러분도 같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1-16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돈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당신들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니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세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에 다시 나가보니 할 일 없이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어서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서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그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 '당신들도 내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 '일꾼들을 불러 맨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맨 먼저 온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오후 다섯 시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런데 맨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더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밖에 받지 못하였다. 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막판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보고 '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한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이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준 만큼의 삯을 주기로 한 것이오. 내 것을 내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내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