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5() 성탄절

기쁜 소식이 되세요!

(이사야서 52:7~10, 시편 98:1~4, 히브리서 1:1~4, 요한복음 1:1~5)

                                                                                                     고상균 목사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그러나.......]

매주 한 개 씩 더해지던 초는 이제 모두 밝혀졌습니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한해의 마지막 주일로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상업적으로 흥청망청하는 성탄절기가 기분 좋지는 않지만, 올해 거리는 유달리 조용하게 느껴집니다. 연말기분을 내기에는 경기도 좋지 않고, 무엇보다 내려와야 할 사람이 계속 자리욕심을 내는 통에 모두의 속도 편치 않아서인듯합니다. 아무리 평생 배워야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자리욕심쟁이한 사람 때문에 무슨 방어권”, “무죄추정의 원칙같은 법률용어를 전 국민이 알아야 하는 것은 속상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물며 사무실 구석에만 있는 줄 알았던 캐비닛이 청와대에는 주방에도 있는지....... ‘키친 캐비닛말입니다. 자신에게 있어 최순실은 비선실세가 아니라 키친 캐비닛이라 했다는데, 이 생경한 영어단어의 가장 정확한 번역이 사적권력혹은 비선실세라는 것은 알고나 있는 것인지....... 오늘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의 최대 축제인 성탄절입니다만, 우리들이 마냥 즐겁지 못한 것은 또한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여러 신앙의 선배님들을 포함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쪼록 몸과 마음의 건강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한 어둠에서 강렬하게 피어나는 희망]

 

반가와라. 기쁜 소식을 안고 산등성이를 달려오는 저 발길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이사야 52;7a)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성탄절 예배에서 읽혀지는 성서는 모두 큰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는 성탄절의 의미에서도 기인하겠으나, 이 날은, 적어도 이날만큼은 희망가득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더 큰 이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함께 모신 성서 본문 역시 강렬한 환희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특히 1성서는 임박한 구원과 회복의 소식, 그리고 파괴되었던 예루살렘이 재건된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쯤에서 여러분께 한 가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아십니까? 알고 계시듯 이는 일정 기간 동안 소비되는 재화의 수량이 증가할수록, 그 재화의 추가분에서 얻는 한계 효용 즉 주관적 가치는 점점 줄어든다는 경제학 용어입니다. 쉽게 말해 삼일을 굶고 난 뒤 얻게 된 빵 한 개의 만족감은 그 뒤부터 개수더해질 때마다 점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한편, 인간의 가장 강렬한 열망은 극도의 결핍에서 기인한다는 말로도 바꿔볼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심훈의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와 같이 강렬하게 나타나는 희망은 독립에 대한 시인의 열망과 함께 그가 느꼈던 고통, 즉 나라 잃은 아픔이 어느 정도였겠는지를 십분 헤아리게 해 줍니다. 이제 주보를 펼쳐서 오늘의 1성서 이사야 본문을 다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저자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으시겠습니까? ‘기쁜 소식을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지, 전하는 이가 평지도 아닌 산길을 달려온다말하고 있고, 혹여 듣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늦게 전달받기라도 할까봐 소리쳐 말 한다 표현하고 있음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스러진 공동체의 회복과 포로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에 대한 그 간절함이 격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로 표현된 것입니다. 이사야서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는 기쁜 소식은 지극한 어둠에서 강렬하게 피어나는 희망입니다.

 

[인간이 된 신, 그와 더불어 신이 되는 우리]

 

이어서 펼쳐진 2성서 본문은 모두 신적 존재의 성육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지중해 일대를 지배했던 사상은 그리스-로마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신의 세계는 완전한 반면, 인간 세상은 허술하거나 신의 영역을 닮은 모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세계관 속에서 신이 인간과 더불어 행한다는 것은 절대 가능할 수 일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적인 은혜를 입었다 할지라도 신의 능력 중 극히 일부를 전수받거나 그마저도 인간 세계에는 적응할 수 없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최고신 제우스를 아버지로 영웅이지만, 불우한 삶을 살아야했던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운명이라 불리워지는 신의 계획을 따라 살아간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심지어 신의 장난일지라도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선포된 신의 인간화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과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 존재가 아예 인간이 되다니요? 앞서 나누었던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떠올려 볼 때 격한 발상은 당시의 그들이 매우 절박했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셀류커스, 그리고 로마로 끝없이 이어지는 식민통치 속에서 지배국가와 그 하수인들로부터 이중삼중의 폭력을 당했던 이들....... 그들에게 있어, 완전한 세계에서 인간사를 주관한다는 신은 없거나, 죽었거나, 혹은 죽여야 할 존재에 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용산과 세월호 참사 앞에서 전지전능한데다가 공의롭기까지 한 신이 설 자리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겠지요. 이 극단적 신 부재의 상황은 마침내 삶의 한 중간으로 들어온 신, 수많은 폭력을 생생하게 느끼는 인간 메시아를 고백하게 했습니다. ‘인간이 된 신그와 같은 존재가 아니고는 아무 의미가 없겠다는 이들을 통해 시작된 간절한 신앙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절박함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적어도 복음서를 통해 볼 때, 그들은 오신 메시아에게 세상을 맡겨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자하지 않았고, ‘그를 따라 살자말했습니다. ‘앞서 갈릴래아에 계시다!’는 그들의 예수신앙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구원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따라 우리도 초월적 삶을 살아가라는 권고입니다.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신 분과 더불어 우리도 삶의 자리에서 신이 되어야 한다는 성화의 촉구입니다. 성탄절, 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은 이처럼 그를 따르는 이들 모두에게 확장되는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는 오늘 오시는 분을 단순히 믿기만 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의 삶을 능동적으로 따라야 할 사람들인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 되세요!]

 

존경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앞서 언급했듯 오늘은 마냥 즐겁진 않은 성탄절입니다. 세계를 감동시킬 만큼 품위 있는 시민들의 촛불이 연인원 천만에 육박하고, 추악한 권력이 그간 저질렀던 비리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이 사회의 총 권력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치부를 언제까지나 감출 수 있다 확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는 시종 모르쇠로 일관하는 국정조사 청문회 증인들의 오만한 얼굴표정에서 그 자신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또 우리들의 무관심과 방역당국의 늑장대처로 이 나라는 이제 삼천만마리 가금류의 살 처분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그 수많은 생명들의 절규가 하늘을 울렸는지, 지난 주 중 기록적인 겨울비가 내리기도 했었지요. 공동체 앞에 놓인 여러 기도제목들도 우리들의 마음 한 켠을 묵직하게 합니다. 일 년을 열심히 살아왔는데, 내 삶의 자리는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듯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오늘은 우울한 사회 이곳저곳으로, 수많은 생명이 스러지는 곳으로, 더욱 살피고 기도해야 할 공동체로, 수고한 것만으로도 이미 결과에 상관없이 박수를 받아야 할 개개인의 삶의 자리로 기쁜 소식이 달려오고 있는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소식을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분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오늘 오시는 이와 더불어 이 세상을 뒤엎어버려야 할 존재들입니다. 빛이 임했다는 것은 따르는 이들이 빛이 되어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을 분연히 밝혀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두움이 결코 이길 수 없는 빛을 열망하는 여러분 스스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삶의 자리를 능히 비출 수 있는 빛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무게와 여러 가지 걱정으로 잠시 잊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분은 모두 그렇듯 귀한 존재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오시어 빛과 기쁜 소식의 삶을 보여주신 예수를 따라 우리, 삶의 자리와 세상의 한구석을 밝히는 기쁜 소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빛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한 자루의 초가 끝까지 밝혀져 있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누군가의 빛입니다.

 

희망을 염원하고 계십니까?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이미 자신이 노동으로 지으신 세상이 더욱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하느님의 희망입니다.

참 인간이 되신 참 신을 따라

우리도 여기저기에 희망을 선사하는 이가 됩시다.

어둠을 몰아내는 기쁜 소식이 됩시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는 새날을 당겨 맞이합시다!

불의한 권력의 끝을 이끌어 냅시다!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오늘만큼은, 적어도 오늘만큼은 함께 웃어봅시다!

그렇게 서로의 힘이 되어줍시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