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선미(眞善美)는 이화여대의 교훈입니다.  풍부한 지혜(眞)와 덕성(善), 그리고 조화(美)를 뜻한다고 하죠.  또 아시다시피 이 단어는 미스코리아 순위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진이 1등 선이 2등 미가 3등이죠.  그런데 어느 날 술자리에서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이 진선미라는 단어가 사람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고민해야 할 지점의 선후와 경중을 알려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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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건 일단 ‘보기에 아름답도록’ 만드는 일입 겁니다. 오늘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교회에 가지 못했습니다만, 정돈되기 전과 정돈된 후의 집의 풍경은 그야말로 하늘과 지하철의 차이가 있더군요.  이삿짐 뿐 아니라 인간 관계나 조직 내 문제에 있어서도 그렇겠지요.  기안 하나 올려도 그 내용 이전에 깔끔한 정리가 필수적이며 조직원 하나를 부서 이전을 시킬 때에도 가급적 불만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또 어떤 복잡한 사고가 터졌을 때 가급적 상처받는 사람이 적도록 ‘모양새 좋게’ 매만져 주는 일은 실로 요긴한 일이겠습니다.  그것이 미(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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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다음으로 고려돼야 할 것은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이들에게 좋은 일로 만들 것인가의 문제일 겁니다.  최선(最善)의 결과를 향한 노력이죠.  단순히 보기에 아름답고 깔끔한 데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실질적으로 조직 구성원이나 관계자들에게 실질적으로 유익함이 돌아가고 보다 더 만족하게 만들까를 추구하는 노력, 그것이 선(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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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제기되는 것이 진(眞)의 문제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왜 진실과 허위인가, 그리고 어떻게 정당한가 부당한가를 가려내는 문제가 바로 진(眞)입니다. 친구의 어투를 빌려 진(眞)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진(眞)은 가장 핵심이 되는 개념이지.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유익하다고 기뻐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게 허위에 근거하거나 정당하지 못하다면 말짱 도루묵 아니냐.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마지막에, 꽤 조심스레 드러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해.  진(眞)은 일종의 베이스거든.  그 베이스가 있다는 신뢰 위에서 보기에 아름답고(美), 누이 좋고 매부 좋은(善) 일을 추구할 수 있는 거니까.  진(眞)의 문제를 제기하는 건 결국 앞의 선(善)과 미(美)의 체계를 흔드는 결과를 낳기도 해.  하지만 그걸 두려워하면 다 망할 수도 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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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교회가 많이 ‘시끄럽습니다.’ 하지만 시끄러움 자체는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시끄러운 것이고 침묵이 금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입이 막히는 것보다는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여’ 침묵을 내던지는 편이 낫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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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보기에 아름다운, 즉 모양새 좋게 교회 내 이견이 조율되고 수용되는 쪽이 좋았겠으나 이미 그 단계, 즉 미(美)의 단계는 많이 넘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선(善)의 단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금전적 문제 제기는 교회 내에서 전면적으로 불거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문제가 불거지면 “좋은 게 좋은” , 즉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지점을 찾는 일은 낙동강 건너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고, 금전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일종의 영화 <라쇼몽>처럼 서로의 입장과 기억에 근거한 무한 루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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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판에서 ‘목숨을 내놓으라"는 얘기가 나오고 지속적으로 ’진실‘을 찾는 목소리가 나온 이상 이 문제는 ’진‘(眞)의 영역에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진(眞)을 기준으로 문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보기에 아름답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수도 있으나 가릴 건 가리고 밝힐 것을 밝혀야, 교회에 ’사랑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의가 부족한‘ 것이 문제의 고갱이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사랑이 부족하다는 탄식이 옳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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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몇 가지를 제안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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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언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만 전반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입장 표명과 그에 대한 반론이 연속되는 상황은 아름답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유익하지도 않으며 결정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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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웅 집사님을 비롯한 관계자분들은 일단 모든 자료와 입장을 당회에 제출해 주십시오.   백서(白書)가 있으시다면 제출해 주십시오. 공문이나 기타 증거가 있다면 모두 내놓아 주십시오.  그 뒤에 논점을 잡아 얘기해야지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최영웅 집사님의 경우 억울하다고 생각하시는 마음은 충분히 알겠으나 하고픈 말씀이 있으시면 다소 돌출적인 게시판 글이나 감정의 발산 아닌  건조하고 투명한 증거로 대변하시는 것이 진(眞)의 영역에서는 더욱 효과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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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문제가 진(眞)의 영역에 들어왔다 해도 우리 교회가 쌓아왔던 선(善)과 미(美)의 가치와 무게는 존중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내에서 교우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그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폭언이 거룩한 회당 내에서 쏟아지거나 언로(言路)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구성원들의 동의와 이해 과정을 무시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겠습니다.  향린교회는 기존 한국 교회의 비민주성과 독단, 그리고 대개 교회마다 존재하고 움직였던 이너 서클의 준동에 넌더리를 내고 참다운 교회를 찾았던 이들의 든든한 터전이요 아늑한 둥지요 살뜰한 피난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가치만큼은 함께 보전해 나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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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셋째. 지지부진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당회 이하 유관 위원회, 기타 관계된 분들은 책임감을 발동해서 각자 지니신 모든 자료와 증거를 제출, 논의하고 그 결과를 신속하게 공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교회 내부의 역량이 미흡하다면 외부에 맡겨서라도 사태의 전말을 빨리 밝히고 교우들의 동의와 이해를 구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시끄러울’ 수도 있고 난감한 상황도 닥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로 교우들을 인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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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장 10절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