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헌 목사님의 하늘 뜻 펴기를 듣고/

어제 김희헌 목사님께서 하늘 뜻 펴기를 통해 기독교인의 소명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아감벤을 인용하면서 "소명을 특권화할 때 타락은 시작된다. 소명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하는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서 윤교찬의 <바울의 지금의 시간, 벤야민의 지금시간, 그리고 아감벤의 ‘철학적 고고학’>을 읽었다. 그리고 떠오른 단상들.



1.
“메시아적 소명은 모든 소명에 대한 철회”를 의미한다고 아감벤이 말했을 때, 그가 말하는 소명은 어떤 지위, 계급, 특권을 지칭하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 극단주의자들의 선명성/진정성 논쟁은 '나의 소명이 너의 소명보다 더 낫다'는 일종의 '소명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다 집어치우라고 아감벤이 점잖게 말한 거다. 소명은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유함이 없이 사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잠재력(potentiality)”을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2.
Professor를 우리나라에서는 교수(敎授)라고 번역한다. 교수의 어원이 "지방 유생을 가르치는 종육품 벼슬"임을 생각하면 대단히 잘못된 번역이다.  '고백자'라는 뜻을 가진 Professor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리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대학은 Professor의 소명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는다. '벼슬아치'로서의 교수는 많지만 고백자로서의 Professor는 찾기가 쉽지 않다. 안타까운 일이다.

3.
얼마 전 부정부패로 면직된 검찰청의 前검사가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눈물로 세례를 받는 영상을 보았다. 기이한 것은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세례식을 하고도 8년 전 자신에게 성폭력을 당한 現검사에게 사죄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례교인'이라는 '자격'만 남고 그 '소명'은 사라졌다. 과연 그가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고 싶다. 어쩌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소명이 아니라 자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4.
소명이 더 이상 소명으로서 작동하지 않을 때, 소명은 철회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소명의 탄생이 아니다. 소명의 철회는 삶의 총체적인 변화에 대한 선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소명은 다시 부활할/복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