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간혹 디스토피아(dystopia)적 세계관을 가졌거나 지구의 주인은 지구(자연) 자체라는 내용으로 인류 문명을 비판하는 영화나 소설을 보며 인간의 행위 자체에 환멸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중 인류의 가장 큰 범죄중 하나인 ‘전쟁’을 보며, 도무지 이 끝나지 않는 범죄에 대해 고민하고, 가슴 아파하지만, 이 전쟁이라는 것은 국가와 국가 간의 ‘이익’ 때문에 발생하기에 - 물론 그 이익의 대부분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갑니다. - 개인이 아무리 고민하고, 길거리에 나가 ‘전쟁 반대’를 외친다 하더라도 전쟁 그 자체를 종식(終熄) 시키기란, 참으로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이라는 것은 인류의 ‘발전’과 함께해 왔습니다.


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당대의 과학기술을 총합하여 만든 무기와 장비와 군수물자들이, 전쟁 이후 민간인들의 일상으로 파고들어와 각종 첨단 장비로 변신하였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국의 포로와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저질렀던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와 일본의 731부대와 같은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던 자들이, 전쟁 이후 생체실험을 했던 데이터를 근거로 의학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내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쟁을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 생각해야 할까요?


저는 이런 비도덕적인 행위에 의한 발전은 - 과연 발전이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결코 있어서는 안되고, 아무리 결과가 좋다 하더라도 과정 자체가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라면 그 결과를 인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떤 명분을 갖고 있는 전쟁이라 할지라도 결코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 동네 형들 중에 조금 이상한 형이 있었습니다.


피부색이 평범한 아이들에 비해 조금 까무잡잡했고, 전체적인 얼굴 윤곽이 뭔가 달랐던, 저보다 5~6살 정도 많았던 그 형은 남들에게 ‘튀기’라 불리며 놀림을 당했습니다.


그 형의 아버지는 중동에서 일하느라 한국에는 없었고, 평범한 어머니들과 많이 다르게 생긴 그 형의 어머니는 말도 잘 못했으며, 이웃들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도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형의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이었고, 아버지는 베트남 참전 군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철이 들고,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되면서, 최소 5천명에서 1만명 이상, 그리고 최대 3만명까지 있을 거라 예측하고 있는, 베트남에 버려진 수많은 ‘라이 따이한’에 비하면 그 형은 그래도 행운아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에 의해 태어나고, 무참하게 버려진 수많은 ‘라이 따이한’과 마찬가지로 미국인에 의해 태어나 버림받은 ‘부이도이’를 - Bui Doi : 먼지 같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미국인과 베트남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 - 바라보며, 그래도 ‘베트남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하물며 베트남 전쟁을 유발시킨 ‘통킹 만 사건’이 미국의 자작극이었다는 게 만 천하에 드러난 지금, 베트남 전쟁의 당위성과 그 정당성에 대해 주장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기본적인 모티브를 빌려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여인의 불행한 일생을 보여주며 전쟁의 폐해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1975년 4월 사이공(지금의 호치민시).


엔지니어가 운영하는 인기 클럽 [드림랜드]에서 미군 크리스는 이날 새로 클럽에 온 아가씨 킴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크리스의 친구 존이 화끈한 하룻밤을 보내라며 엔지니어와 흥정, 크리스가 킴을 안을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이지만, 순수하고 순박한 킴에게 끌린 크리스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두 사람은 베트남 방식으로 결혼식까지 하게 되니 말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들을 헤어지게 만들었고, 홀로 남은 킴은 크리스의 아들 탬을 키우며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과거 고향에서 그녀와 약혼을 했던 투이가 나타나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녀에게 다시 시작하자며 다그치고, 크리스를 잊지 못하는 킴은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투이를 죽이게 되고, 언제나 도망칠 기회만 엿보고 있던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아 그와 함께 방콕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한편 미국에서 엘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던 크리스는 ‘부이도이’를 위한 재단에서 일하고 있던 존에게서 그와 킴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방콕으로 향하게 됩니다.


오매불망(寤寐不忘) 크리스를 잊지 못하던 킴은 기적적으로 찾아온 크리스에게 그녀의 사랑을 이야기 하지만, 크리스는 이미 다른 여인과 결혼을 한 상황입니다.


탬이라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열망에, 그녀는 탬을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크리스에게 간절히 요청하지만, 그는 아내가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방콕에서 그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으며 남아 있으라 말하며 거절합니다.


결국 좌절한 킴은 자신이 죽는다면 크리스가 탬을 데리고 가리라 생각하여 사랑하는 아들 탬을 위해 자살하게 되고, 그 한(恨) 많은 생을 마치게 됩니다.


 

사실 이 작품은 비판하려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비판할 거리가 많고, 논란의 여지도 많은 그런 작품입니다.


우선 이 비극을 만든 주체가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았습니다.


앞서 ‘통킹 만 사건’을 잠시 언급했지만, 이 전쟁은 미국과 미국의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시작된 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에 등장하는 미군은 전쟁 때문에 방황하고 고뇌하는 청춘이며, 이들 또한 전쟁의 피해자로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전쟁에 억지로 끌려온 미군 병사들을 죄인 취급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쟁의 주체였던 미군을 마치 피해자인양 그린 점은 이 작품의 오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킴을 통해 베트남 여자들을 - 베트남 여자들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 있는 여자들에 대한 편협한 시각으로 확대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만 - 전쟁터에서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구시대적인 사랑에 연연하며, 생에 대한 의지력과 자존심 따위는 없는 그런 여자들로 묘사가 되어 다소 불쾌한 생각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엔지니어란 인물을 통해 마치 아시아인들이 맹목적으로 미국을 찬양하고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점 또한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대해 비판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이런 상투적인 남녀 간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은 그리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비극의 주체가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많은 관객들은 이미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 알고 있으며, 사실 전쟁 이라는 ‘악마의 놀이’에 끌려 들어온 병사들 또한 피해자이기 때문에 크리스와 존에 대한 묘사는 그리 정치적으로 공정치 못한 묘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1975년이라는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당시의 수많은 여인들이 킴처럼 수동적이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엔지니어의 모습 또한 역설적으로 미국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이 작품을 조금 긍정적으로 바라봐줬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을 원작인 오페라 [나비부인]과 비교했을 때, 그 인물의 성향이 사뭇 다르다는 점입니다.


[나비부인]에서 주인공 초초상(나비부인)은 완벽하게 수동적인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나비부인은 미 해군 중위 핑커튼에게 시집와 그가 얼마 살지도 않고 미국으로 소환되어 헤어지게 되자 맹목적인 사랑으로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결국 킴과 비슷한 이유로 자살하게 됩니다.


킴이 투이를 죽이며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듯한 모습을 조금 보여준데 반해, 나비부인은 철저히 순종적이며, 수동적입니다.


그리고 미 해군 중위 핑커튼은 크리스와 달리 정말 나쁜, 천하의 난봉꾼으로 등장합니다.


나비부인을 만나기 전에 친구인 샤플레스 미국 영사에게, 세상의 모든 미인을 얻는 것이 참다운 인생이라 운운하더니, 제대로 된 결혼은 미국에 가서 미국 여자와 할 것이며, 지금 하는 결혼은 잠시 하는 결혼이라며, 이미 결혼 전부터 나비부인을 버릴 생각이었음을 토로하니 말입니다.


그러니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오페라 [나비부인]에 비하면 인물의 성향은 훨씬 좋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주인공의 외모 또한 오페라 [나비부인]은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외모인데 반해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감정이입이 훌륭히 되는 외모이니, 아무래도 내용이나 외모면 에서는 - 음악은 비교 불가입니다. [나비부인]의 음악은 오페라 불후의 명곡이며, [미스 사이공] 또한 뮤지컬 불후의 명곡이니 말입니다. ^^ - 뮤지컬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역의 마이클 리는 성량이 조금 약한듯해 제 취향에 맞지는 않았습니다만, 특유의 미성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고, 킴역의 임혜영은 목소리도 뛰어났지만, 무대를 환히 밝혀주는 듯한 그 미모로 제 심금을 울려주었습니다. (솔직히 사심이 많이 들어간 평가입니다. ^^)


그리고 뮤지컬 [명성황후]의 미우라로만 기억하고 있는 저로서는 김성기의 변신이 사실 많이 낯설었지만, 시종일관 무대를 장악하며 특유의 아우라를 내뿜는 그의 포스는 정말이지 압권이었습니다.


무대장치 또한 탄성을 연달아서 불러일으킬 정도였는데, 특히 2막의 사이공 탈출 장면은, 마치 실제 대사관 정문의 안쪽과 바깥쪽을 동시에 보는듯한 연출과, 화면으로 연출되었지만 실제 헬리콥터가 날아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생생한 장면을 보여주어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가 이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The Morning Of The Dragon]과 [This Is The Hour]의 웅장한 장면의 합창에서 가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아무래도 합창부분이다 보니 가사 전달이 쉽지는 않은 듯해 보입니다.




몇 달 전 천안함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벙커에서 회의하기를 즐기는 어떤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지만, 전쟁을 원하지도 않는다.”


전쟁을 왜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만약 그 말을 한 사람이 직접 전쟁터에 나가 총을 들고 적과 싸워야 한다면, 그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피를 흘려야 한다면, 그의 딸이 전쟁 때문에 과부가 된다면....


그래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이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즐겨 합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쟁터에서 피를 흘릴 일이 거의 없는데 반해, 전쟁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피를 흘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구상에 이 저주스러운 전쟁이 종식되는 그날이 온다면, 아마도 전쟁을 통해 이익을 보려는 집단이 없어지고, 지도자 계층의 인물들이 전쟁을 진정으로 두려워하게 되는 날이 아닐까요?


다시는 [미스 사이공]같은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사족(蛇足).....


그런데 이 작품의 작곡가 Claude-Michel Sch?nberg를 어떻게 읽어야 하나요?


클로드 미셸(Claude-Michel)은 논란의 여지가 없지만, Sch?nberg는 쇤버그, 쇤베르그, 숑베르 등등 워낙 다양하게 한글로 적히니 뭐라 읽어야 할지 헛갈리네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