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좋은 영화 보기`는 <천국의 아이들>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왠만한 비디오 가게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보신 분들도 많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아닌가요. ^^)
그럼에도 이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 때문입니다. 대개 따뜻하고 착한 영화로만 보여지는 이 영화가 보시는 분들에 따라, 다른 감상이나 생각을 남길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함께 보고 뒷 얘기를 나누는 것에 더 중점을 둘까 합니다.

자, 그럼... 영화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천국의 아이들>
- 감독 : 마지드 마지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한 남쪽 마을. 실직한 아버지, 그리고 병든 어머니와 함께 단칸방에서 사는 남매 알리와 자라. 어느날, 알리는 동생 자라의 낡은 구두를 수선해 오다가 그만 잃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부모에게 새 신발을 사달라고 할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남매는 알리의 운동화 한 켤레를 번갈아 신기로 한다.
그래서 오전반인 자라가 오빠의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녀오면 오후반인 알리가 그 신발을 교대로 신고 학교를 가는 것이다. 그날부터 운동화 한 켤레를 나눠 신느라 숨이 턱에 닿도록 골목, 골목을 달리는 남매...

이란 영화는 대체로 `착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이후 줄곧 소개되어 온 이란의 영화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중동 지방 아이들 특유의 크고 검고 맑은 눈으로 착한 동심을 이야기한다. 그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는 감독의 시선 역시 한없이 따뜻하고 착하기만 하다.
이 영화 <천국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뿐인 낡은 구두를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던 남매는, 자라의 구두를 다른 여자아이가 신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아이의 형편이 자기들보다 더 곤궁하다는 사실을 알고 되찾기를 포기해버린다. 부모의 가난한 사정을 뻔히 알기 때문에 새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는 `속 깊은` 아이들이다.
영화의 후반부, 알리가 자라의 새 신발을 구해주기 위해 3등 상품으로 운동화가 걸려있는 마라톤 대회에 출전한다. 여기에서도 알리는 절대 1등을 욕심 내지 않는다. 오로지 운동화 하나만 타면 되기 때문에 3등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착하고 따뜻하기만한 영화인지는 한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제목과 달리, 사실 이 영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체로 비극적이다. 남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낡은 구두 한 켤레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절대 빈곤`은 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 결코 `천국`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독은 이란의 현실과 그런 사회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시선에 그다지 큰 갈등이나 긴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현실 가운데서도 사소한 희망의 이유를 발견해내고자 애쓰는 아이들을 그저 따뜻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테헤란에서 나오는 영문판 이란영화 잡지 <필름 인터내셔널>(2000년 봄)에 실린 로버트 사파리안의 평문은 되새겨봄직한 말이다.

“모든 악, 모든 증오, 모든 성적 욕망을 제거하는 것이 인간적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확실히 그렇진 않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속하는 모든 것이 제거된 세계이다. 아니면 대립하는 힘들 사이의 어떤 긴장과 갈등이 없는, 따라서 생명이 없는 세계가 따뜻하다고 불릴 수 있을까?”

세상엔 다양한 시선과 이념, 가치관이 존재하는 만큼, 개인의 창작행위의 소산인 예술작품을 놓고 그 시선의 옳고 그름을 논한다는 것은 그다지 생산적인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논란의 여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은 관객 각자의 몫이며, 그래도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면, 함께 얘기 나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