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촬영 때문에 경남 창원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엔 가출 소녀들의 대안학교와 쉼터가 있지요.
13살부터 19살까지의 아이들은 마치 30여년 세월을 산 것 같은
마음의 자상(刺傷)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습니다.

부친의 알콜중독과 구타, 모친의 가출, 친척들의 학대,
학교에서의 왕따, 성폭행, 가출, 음주와 흡연, 혼숙, 낙태....
제각기 조금씩 달랐지만, 아이들이 지금껏 살아온 경험들은
모두 그런 범주 안에 있었습니다.

마침 촬영 기간 중에 열일곱살 소녀가 상담을 하러 왔습니다.
아이는 무엇엔가 잔뜩 주눅들어 있었고, 두려움에 온몸이
짓눌려 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자살을 했고, 새아버지에게 줄곧 성폭행을
당해왔다고 하더군요.
열일곱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경험이지요.

세상 누구에게서도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아이들은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어른들을 향해 욕을 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제 둘레에 단단한 방호벽을 치는 것이지요.
그것만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뱃속 깊은 곳엔 사랑의 고픔이 있습니다.
목에는 언제든 툭 건드리기만 하면 터져나올 눈물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그저 사랑을 받고 싶은 평범한 십대 소녀들에
불과한 것이지요. 세상이 아무리 불량 청소년, 문제아, 가출 소녀로
바라본대도 말입니다.

그 중에 한 아이는 열다섯 살에 가출한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몹시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인터뷰 중에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진짜 미안한데, 엄마가 날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차라리 죽어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그럼 보고 싶단 말도 할수 있고,
불러볼 수도 있잖아요. 날 버린게 아니라 죽은 거니까.
근데 버려졌다는거 생각하면... 내가 원망해야 할 사람이니까
제대로 보고 싶단 말도 못하겠어요."

그 아이의 인터뷰를 들으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저는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껏 머리로만 이해해 왔던 그 아이들의 문제가 가슴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아니다, 이해한다, 하면서도
그런 아이들을 그동안 편견과 선입견으로 바라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중년의 교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바꿀 힘도 없고,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할 능력도
없지만, 한 아이의 영혼을 하느님께 돌려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그것이 진정 교회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