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1:30 우리 향린교회 향우실에서 발표될 평화소모임 발표문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전쟁과 학살의 역사"를 첨부합니다.

이번 설 연휴기간 우리의 관심을 잠시라도 여기에 쏟아 주위분들의 동참을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생각에서 올렸습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인간 기본권을 전쟁과 학살로 말살하고 파괴하는 시오니스트 유대인은 그야말로 섹스피어가 말한  베니스의 상인과 진배 없다고 봅니다. 물론 예수님이 태어나셨던 그 곳 그 때의 유대인도 아니고요.


강정구 올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전쟁과 학살의 역사

평화소모임 2009년 1월 25일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강정구

I. 이스라엘 왕국 역사

 

1. 아브라함이 야훼로부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 받았다는 구약성서 기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백성과 함께 여기서 떠나서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기를 네 자손에게 주마 한 그 땅으로 올라가라

 

2. 출애급과 왕국건설

1> 이집트에서 대 민족 형성 후 40년 고난 행군을 거쳐 기원 전 14-5 세기에 가나안 땅 정착

2> BC1020경 팔레스타인 등 가나안 원주민 제압 후 사울 왕국건설, 다윗 왕국통일, 솔로몬 영화

 

3. 분열과 멸망 및 디아스포라

1> BC 932년경 솔로몬 사후 남부 유대지족이 독립. 북은 이스라엘왕국 남은 유대 왕국으로 분리.

2> 이후 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멸망, 유대는 신바빌로니아에 멸망

3> BC 63년경 로마왕국(폼페이우스)에 의해 점령

4> AD 135년경 로마에 의해 추방되어 예멘 등으로 디아스포라

5> 아랍인들 사라센제국 건설 이후 동로마 멸망시키고 팔레스타인 장악, 예루살렘 성도, 이슬람교 지배

 

4. 전통 유대인

: 기원전 6세기 '바빌론 유수' 때나 기원 후 1세기 로마시대 때 그 지역에서 디아스포라(분산)된 사람들

: 6세기 한 때 지금 예멘 땅에서 유대왕국 이미 건설 또는 기독교로 개종

 

5. 후발 유대인

: '아쉬케나'로 지중해와 흑해 연안에서 기원 후 740년, 중세 시대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

: 예수 이후 로마에서 쫓겨난 전통유대의 후손이 아닌 아쉬케나가 구약에서‘하나님이 약속한 고향 땅에 국가를 건설 한다’로 이스라엘 건국 빌미로 삼는 것은 사기

: 이들 중에도 팔레스타인 땅이 자신들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단적 '시오니스트'는 일부

 

II. 이스라엘 국가 건설 과정

 

1. 1897년8월 바젤계획과 극단적인 시오니스트 태동

1) 후발유대인의 극단적인 배타주의와 우월주의 등으로 악명: 베니스의 상인

2) 유럽 반유대인 운동(anti-semitism) 전개

3) 이에 대응해 스위스 바젤에서 제1차 시온주의자회의, 조국을 팔레스타인에 건설 결정

4) 당시 팔레스타인에는 다민족 거주와 86%는 무슬림, 10% 기독교, 4% 유대교로 평화로운 삶

 

2. 1917.11.2 발포어 선언(Barfour Declaration)

: 발포어(Balfour) 영국외상 저명한 유대인 Rothshild에 서한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조국건설 지지

3. 1920.4 영국 이주 지원정책

1) 1차세계대전후 팔레스타인 지역 영국 통치

2) 상 레모(San Remo)회의에서 유대인 팔레스타인 이주 지원정책 실시

3) 유대인들의 대규모 팔레스타인지역 이민시작.

 

4. 히틀러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

1) 이를 계기로 유럽전역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주 증가와 민족분쟁 빈발

2) 홀로코스트 때문에 시오니스트들이 생기고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이 아님

3) 시오니스트는 1897년 바젤회의에서부터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건국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벌이던 중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것임

 

5. 1947년 UN 분할 독립안

1) 당시 유대인구 30%, 영토 7%였지만 팔레스타인 영토 55% 유대인국가 할애하고 독립국 인정

2) 팔레스타인에게는 독립국가 인정 하지 않음

3) 팔레스타인 1948년 독립국가 선포했지만 국제사회 외면

4)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인 추방과 땅뺏기 등 강탈 자행과 미국중심의 유엔 뒷받침

 

6. 현재 상황

 

1) 인구

1> 팔레스타인: 400만(07년 유엔, 가자 150만 서안 250만, 동예루살렘 30만) 아랍계 팔레스타인75%, 유대계 팔레스타인17%, 해외거주 약 450만

2> 이스라엘: 총 690만(유대인 80.1%, 아랍계이스라엘인 19.9%140만), 해외유대인 800만(미국 600만)

 

2) 면적(6월전쟁 이전의 분할 구도를 기준으로 함, 이를 유엔 인정)

1> 팔레스타인 6,170㎢(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등 22%)

2> 이스라엘 20,770㎢(팔레스타인 전체의 78%로 1967년 전쟁 후 점령지제외)

 

3) 수도

1> 팔레스타인: 라말라(임시자치행정수도) 동예루살렘(이슬람 성지로 미래 독립국 수도)

2> 이스라엘: 예루살렘(국제적으로 미공인)--통곡의 벽이 있는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미래 수도 구상

 

4) 종교

1> 팔레스타인: 이슬람(97%), 기독교(3%)

2> 이스라엘: 유대교(80%), 이슬람(15%) 기독교(2%), 기타(3%)

 

5) 1인당 국민총소득(06년 세계은행 기준)

: 팔레스타인 1,120달러, 이스라엘 18,620달러

 

6) 군사력 비교

1> 이스라엘

: 핵, 전투기, 장갑차, 조기경보기, 백린탄, 집속탄, 열화우라늄탄 등 최첨단 중동 제1의 무장

: 연 20억 달러의 미국 군사원조

2> 하마스

: 소총과 조악한 로켓포뿐

: 이런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는 이스라엘에 의해 완전 포위와 통제

: 저항의 한계로 인한 자살폭탄과 테러행위가 유력한 저항행위

: 이슬람 자살 금지, 자살폭탄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자살이 아니라 점령에 항거하다 사망했다고 생각

3>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사이 불균형

: 1980년대 이스라엘 군비 87억, 시리아 8억, 레바논 5억 달러

 

III. 핵심 분쟁요소와 해결방안 및 하마스

 

가. 핵심 분쟁거리

 

1. 총괄: 1948년과 1988년 두 차례 팔레스타인 독립국 선언, 국제사회 외면

1)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영토 범위와 시기

: 원칙은 유엔안보리 결의 242대로 6일 전쟁 이전의 영토로(78%) 복귀하는 것이나 이스라엘 거절

2) 팔레스타인의 주권독립국가 건설

: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 동예루살렘을(본래 요르단영토)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주권 독립국 건설

: 자치국 인정도 06년1월 강경파 하마스 총선승리처럼 팔레스타인 인민의 진정한 결정권 불인정

3) 이슬람·기독교·유대교 등 세 종교의 성지인 동예루살렘 문제

: 진보적이며 이스라엘 정책에 비판적인 이스라엘인들조차 동예루살렘만큼은 이스라엘 영토 주장

4)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의 지리적 연계(최근에는 포기에 가까움)

5) 시리아 골란고원, 레바논 영토로부터 철군

6) 유엔 총회 결의 194호에 따른 팔레스타인 추방난민 귀환권

 

2. 하마스가 2006년 의회 선거이후 일관되게 제시한 협상주제

1>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전의 휴전선을 기준으로 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국경 획정

2>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건설된 이스라엘 점령촌 완전한 철거

3> 동예루살렘의 주권 인정

4> 이스라엘에 의해 추방되었던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5>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

6> 이스라엘 군의 완전한 철수

7> 팔레스타인 땅 22%에 대해 완전한 주권과 독립의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

 

3. 2007년 3월 28일 재확인한 아랍연맹회의 '아랍 평화 계획'

1) 2002년 3월 28일 아랍연맹 수뇌 회의에서 처음 발의

2) 1967년 이후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영토, 시리아 골란고원, 레바논 영토로부터 철군,

3) 유엔 총회 결의 194호에 따른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인정

4)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주권독립국가 건설

5) 아랍 국가들 이스라엘 승인, 평화협정 체결, 관계 정상화

 

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

 

1. 지미 카터의 평화에 필요한 세 조건

1) 이스라엘 국가를 위한 안전 보장책

2)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폭력 근절

3) 팔레스타인인들이 67년 이전 국경을 중심으로 그들의 국가를 소유할 권리에 대한 이스라엘의 인정

 

2. 기타 안

1)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그리고 정당하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하마스와의 대화 필요

2) 서안의 94% 내외와 가자 전체에 팔 독립국가 건설

3) 팔 국가의 수도를 동예루살렘으로 하되 유대성지 통곡의 벽이 있는 성전산에 대한 최소한의 이스라엘 주권 인정

4) 팔 난민의 제한적 귀환

 

3. 주변 아랍국들 입장과 현실

1) 당연히‘가자지역과 서안 지역을 영토로 하는 팔레스타인 아랍 국가 건설’이지만, 현실적 정책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립 서비스 정도

2) 67년 6일 전쟁 패배, 걸프전 이후 아랍국 자국 중심주의, 아랍민족주의 동력 약화

3) 이집트와 요르단 가자와 서안 포기, 이-팔 갈등에 개입할 능력과 의지 없음

4) 레바논은 국내 정파 간 갈등의 불씨, 헤즈볼라 역시 전면전 개입 능력 없음

5) 시리아는 이스라엘-시리아 평화협정을 통한 골란고원 반환 받는 입장

6)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친 미?이스라엘 유화책을 펴는 파타와 강경하고 인민지지를 받는 하마스 간 분열

7) 이스라엘과 미국이 끊임없이 분열주의 조장해 지배하는 전략 구사

 

다. 하마스 탄생과 위상

1. 하마스 전신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으로 교육, 종교, 복지사업 등 비정치적 활동 집중, PLO 견제위해 이스라엘 암묵적 지지

2. 79년 이란 이슬람혁명 후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 국가 창건 추구, 독립지연에 따른 분노로 하마스 탄생

3. 87년12월 1차 인디파다(무력항쟁) 이후 이를 배경으로 하마스가 출범해 항쟁 전면에 나서게 됨

4. 1차인디파티 이후 더 이상 PLO는 팔레스타인 유일 대표기구 아님.

5. PLO의 자치정부 고수론, 하마스의 이슬람 독립국 건설론 사이 갈등 격화

6. 93년 오슬로 협정을 계기로 PLO는 대외적 지위를 공고화해 자치정부 여당, 하마스는 야당이 된 셈

7. 01년 미국 테러와의 전쟁 시작 후 하마스 테러조직 지목

8. 03년 미국 부시 행정부‘중동 평화 로드맵’은 독립국 미끼로 PLO에게 하마스 등 과격단체 해제 요구

9. 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1994년) 후 2번째 총선서 강경파 하마스 승리

1> 44% 지지로 다수당 차지, 총리 임명과 신정부 구성 권한

2>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확충과 파타 지도자와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들 부정부패로 하마스 인기상승

3> 팔레스타인인들이 PLO 자치정부에 이스라엘 야만적인 공격과 점령정책을 막지 못한 책임 묻는 선거

4> 빈곤층에 의료, 교육, 사회서비스 무상 제공의 역사, 부패와 정실주의 없는 점, 인더파티 주도

등으로 인민의 지지가 높아짐

5> 2003년께부터 이스라엘과 공존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수립을 1차 목표로 설정하는 등 현실적 대안

6> 총선 후 압바스 수반과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 탄생으로 이중권력

7>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 선거참가와 정권 불인정, 미국 하마스 정적들에 200만 달러지원 선거개입

 

10. 06년 총선승리 직후인 3월부터 파타와 하마스 사이 내전 시작, 6월 하마스 가자 완전 장악과 승기

11. 06년 3월 하마스 내각 출범 시 자치정부 총리로 임명됐으나 하마스의 가자지구 점령 후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파타당 주도 비상내각 출범으로 권력 이원화

12. 하마스 정부 창설과 함께 미국과 유럽 등 원조 중단으로 하마스 정부 고사 작전, 파타 동참

: 팔레스타인 지역에 산업시설 창설 일체 불허, 봉쇄정책으로 농산물 내?외부거래 불용

: 팔레스타인 경제 완전 외세 의존

13. 06년 6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적대지역 선포와 침략전쟁, 봉쇄 강화, 학살 등으로 고사작전

14. 현재의 가자전쟁도 바로 이의 연장선에 있음

15. 실제 이스라엘 공격 저지할 무장 세력이 못 됨, 유일한 것은 레바논에 있는 헤즈볼라 정도

16. 미국·유럽·이스라엘은 하마스정부 수립 후 ‘테러단체’라며 경제제재 강화. 하마스 07년 3월 파타와 공동내각 구성, 보안조직 주도권으로 충돌, 미국과 이스라엘은 파타 아바스에 6천만 달러 군사지원금과 무기 제공, 분쟁유발과 확산

 

IV. 전쟁과 학살 및 인종청소의 역사

 

1. 1947-1949년 1차 중동전쟁

 

1) 전개과정

1> 유엔의 분리독립안 가결로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 독립국 승인과 팔레스타인 추방 결정

2> 5개의 아랍국가(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로 구성) 전쟁 참가

3> 시오니스타군은 모든 아랍국과 팔레스타인을 합산한 것과 전투력 3:2 로 월등

4> 1949.2.14 UN중재로 이스라엘과 이집트 휴전, 이어서 레바논, 요르단, 시리아 간 휴전 성립

휴전 성립 후 가자는 이집트,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은 요르단 관할

5> 당시 아랍군은 이스라엘을 침공하지 않았고 전투는 팔레스타인 영토로 지정된 곳에서만 행해짐

6>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78% 점령. 400만 팔레스타인 중 300만이 쫒겨나 난민전락, 500개 이상 마을 파괴

7> 팔레스타인 문화 말살정책

: 새로운 지도, 모든 도시, 강, 언덕 히브리 이름으로 교체

 

2) 학살현황

1> 아랍군은 시오니스타 군에 의해 16번 학살 후 전쟁 참가.

2> 대량학살 중 하나인 데이르 야신 지역 학살에서 100 명 이상의 여성, 아동, 남성 학살당함.

3> 이스라엘 수상이 된 베긴이 대량학살 주범인 유대테러리스트 그룹 대장

4> 시오니스타/이스라엘군은 모두 합쳐서 33번의 대량학살을 자행

5> 베긴 팔레스타인 난민, 가자·서안 지구 점령문제 해결 못한 채, 이집트와 평화조약 체결로 노벨 평화상

 

2. 1956년 2차 중동전(수에즈 전쟁)

1) 이집트 민족주의자 낫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선언과 영국?프랑스?이스라엘 이집트 침략전쟁

2) 소련의 아랍지원과 미국의 영국?프랑스 거리두기로 수에즈운하 이집트 귀속되고 곧 종결

3) 이스라엘 이집트의 시나이반도 요충지 점령

 

3. 1967년 6월 3차 중동전(6일 전쟁)

 

1) 전개과정

1> 시리아와 이집트 1966.10월 군사동맹을 맺고 대이스라엘 군사공격 준비

2> 이스라엘군 이집트 고강도 기습 선제공격 6일 동안 감행

3> 팔레스타인 영토 22 % 추가점령, 곧 서안, 가자, 동예루살렘

4> 이집트 시나이반도와 시리아 골란 공원 점령

5> 이스라엘 관할 지역 3배 확장으로 본토의 5배 지역 점령

6> 국제법적으로 전쟁을 통한 영토 획득은 불법이므로 이 지역은 점령지이지 이스라엘 영토 아님

7> 유엔은 242호 결의안: 점령 불용과 이스라엘군 철수 촉구

8> 이스라엘 점령지서 불법적으로 유대인 정착촌 건설 돌입

9> 국제사법재판소 2004년7월 이스라엘의 이 지역 점령 불법 판결

10>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적극적 무장 투쟁과 팔레스타인인 지지, 아라파트 의장 1974년 유엔 총회 연설 이후 국제사회가 공인하는 팔레스타인 대표기구 탄생

 

4.1973년 10월 4차 중동전

1)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 이스라엘 선제공격으로 4차 중동전(라마단 전쟁, 욤 키푸르전쟁) 발발

2) 이스라엘 초기 열세를 만회하고 골란고원에서 일방적으로 승리, 11월 휴전

3) 지미 카터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로 79년 이집트와 평화협정 체결로 아랍권 분열

4) 82년 시나이 반도 이집트에 반환

5) 1980-81년 이스라엘은 3-4차 중동전쟁에서 점령한 동예루살렘, 가자지구, 골란고원 영토 공식 합병.

6) 이후 아랍권 분열과 약화로 인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통치는 가속화돼 유대인정착촌 증가

 

5. 1982년 제1차 레바논전쟁

1)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 위해 레바논 침공

2) 레바논 내 PLO 본부는 튀니지로 이전

3) 레바논 기독교민병대가 이스라엘의 비호아래 저지른 Sabra and Shatila 학살(massacre)

: 영화 "Waltz with Bashir" 2008년 말 가자 전투 중 영화상 수여받고 언론에 집중 조명됐으나 영화 내용인 학살에 관한 부분은 일체 언급하지 않는 언론

: 주로 어린이 여자 노인 등 수백만 피난 팔레스타인을 수용소에서 학살

: 당시 4십만 이스라엘인의 항의시위가 있었음

4) 약 18년 동안 계속되고 이스라엘군 500명 사망

5) 당시 주둔 미군캠프에서 자살폭탄으로 미군 백여 명(?) 사망, 곧 미군철수

 

6. 1987.12월 1차 인디파다(무력항쟁) 발생

1) 이스라엘 점령 지역에서 이스라엘군 지프차에 치여 팔레스타인인 4명 사망

2) 이를 계기로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 검문소 습격하면서 무력항쟁 시작

3) 86년 시작돼 93년 오슬로 평화협정까지 이어짐

4) 아주 소수만 무기 소지 나머지 돌 던지기 항전

5)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의 7-10배 이상 사망

6) 돌을 던진 사람의 팔을 부러뜨리는 정책

7) 이를 배경으로 하마스가 출범해 대(對)이스라엘 항쟁 전면에 나서게 됨

8) 더 이상 PLO는 팔레스타인 유일 대표기구 아님.

9) 하마스 전신은 ‘팔레스타인 무슬림 형제단’으로 교육, 종교, 복지사업 등 비정치적 활동 집중, PLO 견제위해 이스라엘 암묵적 지지를 받았음

10) 79년 이란 이슬람혁명 후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 국가 창건 추구, 팔레스타인인 분노로 하마스 탄생

 

7. 1993.9.13 오슬로 협정

: PLO 파타 무력 투쟁 포기선언과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출범

1) 클린턴 중재로 이스라엘 주권인정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대표기구와 자치정부 보장받음

2)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일부지역이(예리코)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합의, 자치 경찰 허용

3) 팔레스타인 최종 지위가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

4) 하마스와(야당) 경쟁에서 이 오슬로 협정을 통해 PLO는 대외적 지위를 더욱 공고화(여당)

5)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파타는 해외원조 수취 공식창구

6) 이스라엘로부터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낸 세금 수취

7) 05.8월 가자지구 유대정착촌 완전 철수

8)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식민지화 작업을 가속해 유대인 정착민 대폭 확충

9) 인종 분리장벽 등장: 철조망과 8m 정도 콘크리트 장벽으로 유대정착민과 팔레스타인을 분리

10) 2000년 까지 이스라엘 점령주민은 두 배, 점령지 이주정책 지속

11) 서안과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인 통행과 경제활동 엄격 제한, 물과 영공권 장악

 

8. 2000.9월 2차 인디파다 발생

1) 당시 이스라엘 야당 당수 샤론(전 총리) 동예루살렘 알 아크사원(통곡의 벽이 있는?) 방문

: ‘예루살렘은 분할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발언

2) 이에 분노한 팔레스타인 돌 던지기 작은 항쟁, 이스라엘 군대 발포와 첫날 5명, 둘째 날 10명 사살

3) 이스라엘 주기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탱크, 헬리콥터, F-16전투기, 로켓을 사용해 집단 침입.

4) 이스라엘 무력에 저항하기 위해 자살공격 시작

5> 2차 인티파다 이후 7년여 동안 사망자 6천 명 돌파

: 이스라엘 민간인 697명 군인 314명 1천11명, 팔레스타인 희생자 이스라엘 4배 수준

6> PLO의 자치정부 고수론, 하마스의 이슬람 독립국 건설론 사이 갈등 격화

7> 01년 미국 테러와의 전쟁 시작 후 하마스 테러조직 지목

8> 초기에는 이스라엘이 압도해 팔 희생자가 5배가 많았다. 나중에 이스라엘 희생자가 늘어 팔레의 3분의 1이 되니까 부시가 사태에 개입하면서 자제를 촉구하는 '평화 로드맵'

9> 03년 미국 부시‘중동 평화 로드맵’은 독립국 미끼로 PLO에게 하마스 등 과격단체 해제 요구

 

9. 2005.8월 가자지구 철수와 휴전

1) 가자지구 철수

2) 2006년 1월 총선에서 하마스 승리하자 다시 가자 봉쇄

3) 2008년 6월 6개월간 휴전합의

 

10. 2006년 7월 2차 레바논 전쟁

1) 헤즈볼라의 병사 납치 공격에 맞서 남부레바논 침공

2) 이스라엘 처음으로 군사적 ‘패배’ 경험

3) 1차 레바논전쟁에서 이스라엘 희생이 커 미친 지휘 원칙("mad boss" principle) 고안

: 전체이웃파괴(demolishing whole neighborhoods), 그 지역파괴와 유린(devastating areas), 수도 전기 등 사회간접시설파괴(destroying infrastructures).

4) 33일 전투에서 1천여 레바논 민간인 사망

5) 이스라엘 사람들 처음에는 열광적 전쟁지지, 나중 이스라엘 희생 증가되자 전쟁반대 여론 높아 조기철군

11. 2006년 3-10월 파타-하마스 내전과 6월 이스라엘 가자 침공과 분열통치

1)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1994년) 후 2번째 총선서 강경파 하마스 승리

1> 44% 지지로 다수당 차지, 총리 임명과 신정부 구성 권한

2>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 확충과 파타 지도자와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들 부정부패로 하마스 인기상승

3> 팔레스타인인들이 PLO 자치정부에 이스라엘 야만적인 공격과 점령정책을 막지 못한 책임 묻는 선거

4> 총선 후 압바스 수반과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총리 탄생으로 이중권력

 

2) 미국 이스라엘 하마스 선거참가와 합법적 민주적으로 탄생한 하마스정권 불인정과 내전 원인제공과 사주

: 미국이 합법적이고 민주절차에 따른 새로운 팔레스타인 정부 불인정은 미국 민주주의 가치 위선

: 미국 하마스 정적들에 200만 달러지원 선거개입과 내전 사주

3) 3월부터 파타와 하마스 사이 작은 규모의 내전 시작, 6월부터 하마스 가자 완전 장악과 승기

: 파타는 하마스-파타 공동내각 구성합의인 3월 메카합의 미 이행, 특히 보안군과 보안기구 공유합의 위배

4) 6월 거국내각 구성제안으로 하마스 중심의 통합수습국면 조성

5) 이스라엘 6월 10일 가자 해변 팔레스타인 민간인 10명 살해, 이후 하마스와 전투로 분열이간 정책

6) 3월 하마스 내각 출범 시 자치정부 총리로 임명됐으나 하마스의 가자지구 점령 후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의 파타당 주도 비상내각 출범으로 두 정부 출범

7) 07년 6월 하마스 파타당을 무력으로 가자에서 몰아내 완전 이원화, 곧 서안 파타, 가자 하마스

8) 하마스 정부 ‘창설’과 함께 미국과 유럽 등 원조 중단으로 하마스 정부 고사 작전, 파타 동참

: 팔레스타인 지역에 산업시설 창설 일체 불허, 봉쇄정책으로 농산물 내?외부거래 불용

: 팔레스타인 경제 완전 외세 의존

9) 이스라엘 징수한 5천만 달러 팔레스타인 세금을 압바스 비상내각에 전달

10) 이스라엘 7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적대지역 선포와 고사작전: 봉쇄정책과 전쟁의 실질적 지속

: “지난 7월 이후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가자지역에서 7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공장 85%가 문을 닫거나 가동율 20% 미만에 머물고 있다”세계은행은 07년 7월 18일 공개된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자지구 실업률이 35%이며 인구의 3분의 1이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 유엔과 인권단체는 “이번 조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반기문 유엔 총장은 성명을 통해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것은 국제 인도주의와 인권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의무에 반하는 것”

11) 압바스 정부 가자지구에서 발급된 여권 불인정

12) 10월 27일 파타와 하마스 가자 지역 무기 사용 중단 합의와 통합에 이름

13) 11월 1일 이스라엘 정치-안보 회의 가자 군사 공격 강화 결의와 '가을 구름 작전' 시작, 베이트 하눈 사건을 비롯한 무자비한 민간인 대량 학살과 대량 파괴 자행

14> 미국·유럽·이스라엘은 하마스정부 수립 후 ‘테러단체’라며 경제제재 강화. 파타 아바스에 6천만 달러 군사지원금과 무기 제공, 분쟁유발과 확산

15> 07년 12월 팔레스타인 원조 공여국 파리회의 70억 모금

: 한국 2천만 달러 지원 약속

: 전량 압바스 정부 지원

: 해결이 도움이 되지 못함

 

12. 2008년 12월 19일 휴전 종식과 5차중동전: 가자 재침략과 학살 및 인종청소

1) 1967년 6일 전쟁 이후 최대 규모 공격으로 전면적인 하마스 무력화기도

2)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우리는 우리의 계획이 있고 우리의 프로그램대로 간다"며 전쟁 각본 짬

3) 하마스는 이스라엘 상대 전력이 되지 못하므로 하마스 전쟁 도전 불가

4) 직접 원인은 하마스 총선 승리와 하마스 중심의 통합자치정부 출현 임박으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분열지배정책 관철이 힘들 것으로 예견돼 이를 사전 방지하는 차원의 분열지배를 위한 침략전쟁과 학살 감행

5) 학살 숫자가 팔 1,300 명, 이스라엘은 10명 미만으로(이도 자체의 오발 등이 주류) 일방적 학살과 전쟁행위임이 입증

6) 2차레바논전쟁에서 개발한 미친 지휘 원칙("mad boss" principle) 적용, 곧 전체이웃파괴, 그 지역파괴와 유린, 수도 전기 등 사회간접시설파괴

: 압도적 무력으로 공지전 이후 지상전

: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 까지 학살

: 앰브란스 운전사나 의사까지 학살

: 피난민수용학교, 환자나 부상자

: 유엔 학교 수용되어 있는 40여 부인과 어린애 포격으로 학살

: 빌딩, 모스크사원, 학교, 병원, 유엔식량호송차, 등 무차별 공격과 파괴

: 시체를 치우기 위한 집을 떠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아 시체 옆에 기거해야 하는 경우

 

7) 무력한 하마스와 세계 최강의 이스라엘 사이 전쟁은 불성립, 단지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극과 파괴 뿐

8) 가자 점령학살전쟁 이후 세계 사람에 비친 이스라엘은 흡혈귀

9) 폭력적이고 무지막지한 점령전쟁을 벌여왔던 이스라엘이 1980년대 하마스를 탄생시켰고 지난 2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이번 가자전쟁 이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속에서 더욱 강성해 질 것

 

 

V. 평화모색의 역사

 

1. 1978년 9월 17일 Camp David Accords

 

1) 카터 미국 대통령의 주선으로 베긴, 사다트 간 합의하고 미국이 증언하는 형식의 협정

2) 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은 유엔결의안 242조에(점령 불용과 이스라엘군 철수 촉구) 따른다.

: The agreed basis for a peaceful settlement of the conflict between Israel and its neighbors is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Resolution 242, in all its parts.

3) 3개월 내 이집트와 이스라엘 평화조약과 시나이반도 문제 해결

4) 가자와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립 틀에 합의

 

2. 1979년 이스라엘-이집트 평화조약

Framework for the Conclusion of a Peace Treaty between Egypt and Israel

1) 다른 중동 나라와 사전 논의 없이, 또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협정체결(All of the principles of U. N. Resolution 242 will apply in this resolution of the dispute between Israel and Egypt. The full exercise of Egyptian sovereignty up to the internationally recognized border between Egypt and mandated Palestine.)

2) 이집트는 점령지 전역에서 이스라엘 철군을 요구한 1967년 아랍연맹 결의안을 무시한 최초 아랍 국가

3) 이 결과 아랍권 분열로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편들기와 이스라엘 유대정착촌 건설과 식민화 정책 박차

4)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 1982년 돌려받음

5) 이스라엘은 가자와 서안의 주권을 이집트로부터 인정받고, 점령촌 건설 등 점령정책을 강화

6) 미국의 막후 역할: 카터, 베긴, 사다트

 

3. 1988년 팔레스타인 민족해방기구(PLO) 1947년 유엔 결의에 따른 2국가 안 수용(1988)

: 이전까지 이스라엘 존재 불인정

 

4.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과 제한적인 자치기구로서 PLO

: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의 제한자치를 인정하는 협정

: 이스라엘 주권 인정, 대신 팔레스타인인들의 대표 기구로서 지위를 보장받음

: 이스라엘로부터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내는 세금을 받기 합의

 

5. 1994년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 체결

1)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국경은 위임 통치하의 경계선이다... 이 국경은 이스라엘과 요르단 사이의 영구적이고, 안정되고, 승인된 국경이다."

2)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 요르단은 서안을 이스라엘 영토로 승인한 셈

3) 결국 카터와 클린턴 미국이 이스라엘/이집트, 요르단 평화 협정은 서안과 가자에 대한 팔레스타인인 권리 무시, 이스라엘 주권만 인정

4) 주로 요르단과 이스라엘 당면사항인 비행항공, 물 문제와 수로, 항구 등을 다루고 있음

 

6. 1995년 9월 오슬로 Ⅱ 평화협정 체결

: 요르단강 서안 관할권 세분화 등 명시

: 1995년 11월 오슬로 평화협정 주역 라빈 총리 극우유대인에 피살

 

7. 1998년 10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오슬로 협정 촉진 위한 와이리버 협정 체결

 

8. 2002년 6월 조지 부시 미 대통령,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출범 지지 선언

 

9. 2002년 9월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유엔이 후원해 2005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토록 한다는 중동평화 로드맵이 처음 공개됨

 

10. 2003년 1월 팔레스타인 온건파 마흐무드 압바스 총리 체제 출범

 

11. 2003년 6월 이스라엘 샤론 총리와 팔레스타인 압바스 총리, 로드맵에 합의

 

12. 2004년 2월 샤론 총리, 가자 불개입계획(Gaza Disengagement Plan) 발표로 가자 21개 정착촌 철수 계획 공표, 점령정책을 지배(occupation)에서 포위(siege)로 전환한 후, 서안과 가자 분할 통치

 

13. 2005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압바스 수반 취임

 

14. 2005년 2월 샤론-압바스, 상호 적대관계 종식 샤름 엘-셰이크 선언 채택

 

15. 2005년 9월 이스라엘, 가자 정착촌 및 주둔 병력 철수..이스라엘의 38년 가자 점령 종식

: 점령지배는((occupation)) 해제되었지만 포위 봉쇄(siege)는 지속

 

16. 2006년 1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1994년) 후 2번째 총선서 강경파 하마스 승리

: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 정부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불인정

: 이스라엘 가자지역 실질적 포위

: 이스라엘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을 통해 가자,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팔레스타인 땅의 22%)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으나 국제법상 불법적 군사 점령지

: 하마스는 국제법상 이스라엘 영역인 팔레스타인 땅 78%(1차 중동전쟁으로 차지한 부분)에서 이스라엘 실체 인정, 나머지 22% 영역인 가자, 동예루살렘과 서안에서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목표

 

1) 하마스가 2006년 의회 선거이후 제시한 협상주제

1> 1967년 6일 전쟁(3차 중동전쟁) 이전의 휴전선을 기준으로 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국경 획정

2> 서안과 동예루살렘에 건설된 이스라엘 점령촌의 완전한 철거

3> 동예루살렘의 주권 인정

4>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5>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석방

6> 이스라엘 군의 완전한 철수

7> 팔레스타인 땅 22%에 대해 완전한 주권과 독립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

 

17. 2007년 3월 28일 재확인한 아랍연맹회의 '아랍 평화 계획'

1) 2002년 3월 28일 아랍연맹 수뇌 회의에서 처음 발의

2) 내용

1> 1967년 이후 점령지인 팔레스타인 영토, 시리아 골란고원, 레바논 영토로부터 철군,

2> 유엔 총회 결의 194호에 따른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권 인정

3>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주권독립국가 건설

4> 아랍 국가들 이스라엘 승인, 평화협정 체결, 관계 정상화

 

18. 2007년 11월 이스라엘-압바스 수반 진영,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 위한 협상 재개 합의

: 팔레스타인 인민에 의해 창출된 하마스정권을 부정하고 압바스와 협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

: 서안지구는 실제 점령상태

 

VI. 황야의 무법자 이스라엘

 

1. 중동지역 아랍 군사력 강화 불용

1) 이라크 원전 시설 공습 파괴(1981년)

2) 시리아 핵 의혹 시설 공습(2007년 9월)

3) 현재도 이란 공습을 공공연히 거론

4) 이스라엘은 핵무기 100여기와 최신예 전투력으로 중동의 최강군사력 유지와 중동나라 침공 자행

5) 1980년대 이스라엘 군비 87억, 시리아 8억, 레바논 5억 달러

6) 2009년 가자전쟁은 사망자 수가 1300:20에서 보듯이 전쟁이 아닌 하마스학살과 파괴 극에 불과

 

2. 핵무기 개발, 배치, 위협

1) 100여 핵무기 개발과 보유

2) 일체의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국제원자력기구의 통제를 거절하고 있음

3) 미국의 전적인 지원에 의해 핵무기 개발과 보유하면서 핵사찰 거절로 일관

4) 이라크나 시리아 핵의혹시설에 대한 공습에서 보듯이 타 중동나라의 핵개발 징후에도 무력으로 파괴

5) 북한의 시리아 핵확산 의혹 등을 의도적으로 조장하고 문제 삼음

 

3. 유엔이나 국제기구 권위 불인정

1) 6일전쟁 이후 유엔 242호 결의안: 점령 불용과 이스라엘군 철수 촉구

2) 이스라엘 점령지서 정착촌 건설 돌입

3) 유엔안보리 이스라엘 규탄 안이나 점령지 철수 안 등은 번번이 미국과 때로는 영국의 거부권으로 무산

4) 가자전쟁에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본부 건물과 병원 3곳, 언론사 등 무차별 공격

5) 유엔인권위 이스라엘의 인권침해 조사 담당자 불법 구금과 축출 등 다반사

: 유엔 인권위원회 파견 두가르드 변호사 이스라엘 인권침해 방문조사 불허

 

4. 침략전쟁과 학살극의 상시화

1) 48년의 1차중동전에서부터 현재 가자전쟁에 이르기까지 점령전쟁과 학살전쟁 연속으로 일관

2) PLO나 하마스 등의 지도부 암살은 상시적, 가자전쟁에서도 하마스3인자 학살, 1인자는 시리아망명

3) 유대인 정착촌건설로 식민화 정책에 시도되면서 인종청소와 인종분리, 인종차별의 상시화

4) 82년 1차 레바논전쟁 이후 미친 지휘 원칙("mad boss" principle) 적용(가자전쟁도 마찬가지)

: 전체 이웃파괴(demolishing whole neighborhoods), 그 지역파괴와 유린(devastating areas), 수도 전기 등 사회간접시설파괴(destroying infrastructures).

: 이는 공지전으로 먼저 폭격과 파괴로 초토화한 이후 지상군 투입해 정리하는 작전과 연계

: 이 작전중에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필수적이 되고 그들 삶의 터전 허물기

5) 가자전쟁 경우 유엔 건물과 병원을 의도적으로 포격

: 사전 경고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상 위치 통보에도 피난민 700여명 있는 곳을 포격

6) 국제법상 금지된 화학무기 백린탄, 열화우라늄탄, 신규개발 무기 시험장으로 사용

7) 1차 인티파다: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의 7-10배 이상 사망

8) 2차 인티파다 이후 7년여 동안

: 사망자 팔 6천 명 돌파, 이스라엘 민간인 697명 군인 314명 1천11명,

: 팔레스타인 희생자 이스라엘 4배 수준

9) 가자전쟁에서 1300명 학살과 이스라엘 10명 정도, 그것도 오발 등이 5-6명, 이는 일방적 학살전쟁 입증

 

5. 인종 차별, 분리, 청소 등 최악의 역사

1) 948년에 발생했던 75-100만 명의 팔레스타인 추방, 국가건립 포기유도, 강제이주로 삶의 터전 파괴

2) 67년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동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토착 팔레스타인인들을 대거 추방하고 유대교 성지(통곡의 벽)를 위한 광장 설치.

3) 유태인정착촌, 유태이주 정착민과 팔레스타인인 사이 인종분리장벽 약 700km, 600개가 넘는 검문소, 팔레스타인 주민 일거수일투족 통제, 감금, 학살, 고문, 연좌제

4) 인종분리장벽 노선 3/4 정도는 3차 중동전 이전의 이스라엘-서안지역 경계인 그린 라인(국제공인 국경선)을 넘어 서안지역 안쪽에 설치

5) 2007년 1월 미국은 이 700km의 인종분리장벽을 국경선으로 인정하도록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에 요청

6) 동예루살렘의 아랍인 지역 건축 불허로 30년 전의 모습과 현대화된 유대인 거주 지역과는 인종분리 전형

: 예루살렘 쪽으로 오는 검문 힘들게, 서안 내륙으로 가는 검문 수월, 팔레스타인인을 예루살렘에서 축출

7) 영국 신문 가디언 예루살렘 특파원 크리스 맥그렐

: “국적과 거주지에 관한 일련의 법을 제정해서 한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자민족과 타민족에게 달리 적용하는 정부는 지구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불의가 자행되는 곳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한 곳은 인종차별정책을 실제로 실행되었던 남아프리카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곳은 바로 이스라엘이다.”

 

6. 팔레스타인 인권파괴와 세계 최대 감옥 만들기

1) 수십 차례의 침략전쟁과 소탕전으로 팔레스타인이나 아랍국가의 생명권을 파괴하고 침해함

2) 유태인정착촌, 분리장벽 약 700km, 600개가 넘는 검문소, 팔레스타인 주민 일거수일투족 통제, 감금, 학살, 추방, 고문, 연좌제

3) 토지 강탈, 가옥 파괴, 추방, 개별적 저항과 보복행위를 공동체 전체에 연좌제 적용

4) 자살폭탄 방어 명분으로 서안에 유대정착민과 팔레스타인 사이 인종분리장벽(02년3월부터)

: 이 인종분리장벽 때문에 20킬로 떨어진 도시에 가기 위해 60킬로 이상 돌아가야 하는 실정

5) 이 결과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 생활과 생활을 단절시켜 팔레스타인은 마치 수많은 섬으로 쪼개짐

6) 통행은 물론 생필품까지 통제해 팔레스타인을 세계 최대의 감옥과 수용소 만들기

7) 가자나 서안 외부는 물론 그 내부에서도 도시 간 통행이 통제되므로 농공산물 정상적 유통경제 불가.

8) 한 도시 생산품을 그 도시에서 소비하는 중세봉건 사회와 같아 상품유통구조가 봉쇄

9) 이 결과 물자가 턱 없이 부족하니까 거의 외부 원조로 먹고 살기

10) 동예루살렘은 강남특권층 부류가 거주, 서안에 서방원조가 집중돼 좀 낫고, 가자는 이슬람 모스크(사원) 네트워크를 통해 하마스가 들여오는 정도로 가장 열악.

11) 06년 1월 총선에서 하마스승리 이후 6월 가자지구 적대지역 선포와 수시침략과 학살, 봉쇄로 고사작전

: “지난 7월 이후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가자지역에서 7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공장 85%가 문을 닫거나 가동율 20% 미만에 머물고 있다”세계은행은 07년 7월 18일 공개된 보고서에서 지난해 가자지구 실업률이 35%이며 인구의 3분의 1이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 유엔과 인권단체는 “이번 조처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경고했다. 반기문 유엔 총장은 성명을 통해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것은 국제 인도주의와 인권법에 따른 이스라엘의 의무에 반하는 것”

 

7. 거대감옥이 된 팔레스타인

 

1)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통치아래 지구촌에서 가장 장기적이고 극단적인 인권말살과 인종 차별, 청소 자행

2) 팔레스타인 지역 유태인정착촌, 700km에 이르는 인종차별 분리장벽, 600개가 넘는 검문소, 통행통제 등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을, 생활과 생활을 단절시켜 팔레스타인은 마치 수많은 섬으로 쪼개져 있는 감옥

3) 세계 유일의 인종분리장벽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영토 14.5%를 잠식해 이스라엘 소유화 기도

4) 군사점령(서안), 봉쇄(가자), 침략전쟁(가자), 통행?경제활동?생필품 통제 등으로 식민지보다 열악

5) 상시적 민간인추방, 토지수용, 절차 없이 아동 포함 시민 구속, 고문, 가옥파괴, 야간통행금지, 학살, 군사재판, 선거기간 중 후보자 구속과 격리 자행, 영공마저도 이스라엘 약 80% 장악, 수자원 장악

 

8. 팔레스타인 자살폭탄에 대한 견해:

유엔 인권이사회의 의뢰로 작성된 이-팔 분쟁 보고서(남아프리카공화국 변호사 존 두가르드)

 

: “팔레스타인의 테러 활동이 지탄받을 만한 일이지만, (이스라엘의) 식민주의와 분리·차별정책, 군사 점령의 고통스럽지만 불가결한 결과로 이해돼야 한다.” “식민주의, 분리·차별정책, 군사 점령에 대한 저항과 알카에다 같은 테러조직의 비양심적 테러는 전혀 다르다”며 “군사 점령에 대항한 테러행위는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이스라엘의 점령이 지속되는 한 테러도 계속될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점령을 빨리 종식시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VII, 미국의 일방적 이스라엘 지원과 보호막

 

1. 미국의 일방적 지원과 보호막

1) 1999년 해외 원조총액의 약 40% 지원, 2004년 정치, 경제, 군사 원조로 27억 달러, 연 20억 군사원조

2) 핵무기와 첨단무기 지원, 핵사찰 차단

3) 전쟁 시 모든 첩보와 수집 정보 제공

4) 유엔과 국제사회의 이스라엘 제재 움직임 무력화

5) 이스라엘의 무차별 학살과 보복공격에는 침묵하고 팔레스타인인의 대 이스라엘 테러만 과장보도

6) 이스라엘과 합작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적대지역 선포와 고사작전: 봉쇄정책

7) 01년 테러와의 전쟁 시작 후 하마스 테러조직 지목

8) 03년 미국 부시 행정부‘중동 평화 로드맵’은 독립국 미끼로 PLO에게 하마스 등 과격단체 해제 요구

9) 이중 잣대: 이라크 후세인 대량살상무기 개발혐의로 국제법을 어기며 침략전쟁, 시리아와 이란 위협하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점령?학살전쟁은 외면

10) 미국·유럽·이스라엘은 합법적 하마스정부 수립 후 ‘테러단체’라며 경제제재 강화. 파타 아바스에 6천만 달러 군사지원금과 무기 제공, 내전유발과 확산

11) 양심적인 이스라엘인 평가: "나는 이스라엘인이지만,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모든 분쟁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의 정책으로부터 비롯된다.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은 너무 고통스럽게 지낸다. 현재 이들은 하루에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한다. 파타와 하마스가 내전을 하는 것도 이스라엘 탓이다. 강력한 힘을 가진 이스라엘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힘이 없다"고 말했다.

12) 미국 정책:

탈냉전 시대 소련위협 대신 이슬람 적 만들기(헌팅턴의 문명의 충돌), 테러와의 전쟁으로 가속, 이라크와 이란의 중동 패권 저지, 석유통제와 석유산업 이익, 디아스포라와 히틀러로부터의 홀로코스트 등에 대한 연민, 미국 내 유대 단체의 영향력

13) 미국은 북한인권법, 쿠바민주주의법, 이라크해방법, 이란민주주의법, 시리아책임법 등으로 문제 삼으면서 이스라엘에게는 면죄부

14) 다른 나라 인권문제 제기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파괴 문제 삼지 않는 것은 위선

15) 허구적 중동민주화론: 9·11 뒤 중동민주화론을 내걸었지만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하마스 정권 불승인

16) 유대인 미국인구의 2.2%로는 6백 만 소수이나 권력의 중추를 차지

 

2. 오바마 정책: 기존정권 답습 수준

1> 독립된 두 국가 건설 지지 표명, 선거철이면 침묵하는 힐러리, 오바마

2> 07년 6월 미국 내 최대 유대압력단체 AIPAC방문

: 이스라엘 안보 신성불가침성, 미-이 동맹 관계와 민주주의라는 공동의 가치,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히즈발라?이란의 안보위협, 이스라엘 위협과 미국 위협 동일성 강조, 10년간 300억 군사원조 MOU

3> 07년 7월 이스라엘, 요르단 방문, 홀로코스트 기념관, 통곡의 벽, 스데로트(Sderot) 이스라엘 점령촌 등의 상징성과 발언들은 기존정권 답습 수준

: "국가의 대표성도 없고,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테러를 자행하고, 다른 나라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집단과 협상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4> 당선 후 발생한 가자전쟁과 민간인 학살에도 침묵

 

3. 미국의 양심 지미 카터 미국의 금기 깨기

1) Camp David 협정으로 이집트와 평화조약 이끌어 냄

2) 『팔레스타인: 인종차별이 아닌 평화를』에서 진실 밝히기

: “두 민족이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또한 이스라엘 국민들이 억압과 폭력으로 팔레스타인들에게서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박탈하고”

 

: “만약 탄압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대에서 계속 된다면, 또한 만약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들의 국가 건립을 주제로 협상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유사한 상황에 봉착하게 될 것”

 

: “팔레스타인 땅에서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의 통제와 식민지 지배는 신성한 땅에서 광범위한 평화 협정을 이끌어 내는데 있어 큰 걸림돌”

 

: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 대통령, 이스라엘, 아라파트 사이에 정상회담(2000년 7월 24일) 사이팔레스타인국가 설립과 관련 구체적인 제안이 없었다

: 따라서 아라파트가 좋은 기회를 놓치고 평화협정을 가로막았다는 주장은 거짓

 

3) 이스라엘의 행위를 인종차별로 규정

:“반복해서 하건 데 평화에 대한 대가는 곧 이스라엘 내부에서가 아닌 요르단강 서안지대와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에 이르는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자행되고 있는 분명 인종차별이다. 바로 이 지역들 내에서 가장 경멸적인 형태의 인종차별이 행해지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은 그곳에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들을 박탈당하고 있다.”

 

4) 미국의 금기를 깨고 08년 4월 팔레스타인 방문

: 하마스 최고 지도자인 칼리드 마샤알은 4월 21일 ‘이스라엘이 지난 67년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경우 암묵적으로 이스라엘과 공존 가능성을’ 받아냄

 

VIII. 가자학살과 점령전쟁 결과와 우리의 성찰

 

가. 가자점령학살전쟁의 결과

1. 가자 학살이후 세계 사람에 비친 이스라엘은 흡혈귀

2. 폭력적이고 무지막지한 점령전쟁을 벌여왔던 이스라엘이 1980년대 하마스를 탄생시켰고 지난 20년간 폭발적인 성장을 가능케 했던 것처럼 이번 가자전쟁 이후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속에서 더욱 강성해 질 것

 

나. 우리의 성찰

1. 우리에게 냉전성역이 금기이고 허구이듯이, 이스라엘 일방에 치우친 서방의 팔레스타인 문제 평가나 사실전달이 대부분 허구이고 금기성역임

2. 미국과 서방 언론, 정치, 여론 등이 대부분 이슬람근본주의를 비난하면서 자기들은 유대근본주의에 빠져 있고 이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아류 근본주의자

3. 자유·해방·민주주의를 확대한다는 미국의 가면은 위선, 거짓, 책략, 미국헤게모니를 위한 위장임이 입증

4. 한반도 남과 북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마치 팔레스타인에서 파타격인 남한과 하마스격인 북한으로 비유할 수 있는 구도가 지난 65년간 지속된 측면은 없는지 성찰 필요

5. 북한 인권을 위한다거나 인권의 범인류적 보편성을 역설하면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권말살과 세계 최대 ‘감옥’을 규탄하지 않는 것은 위선중의 위선임

6. 이스라엘이 불법적인 점령전쟁과 학살을 자행하고 팔레스타인에 유대정착촌을 건설해 식민화하는 것의 근본문제를 문제 삼지 않으면서 부시 미국이나 힐러리의 하마스 무장해제 요구하는 것은 위선의 극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