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아벨라르 (268~277)

 

아벨라르(Pierre Abélard, 1079~1142) : 12세기의 프랑스 신학자, 철학자. 가장 화려한 성공의 시기는 파리 노틀담의 학교에서 가르칠 무렵.

 

안셀무스가 신율적(神律的)’ 사상가 였다는 말의 이중적 의미

 ⓵ 타율적 권위에 의해서 이성을 압살하지 않았음.

 ⓶ 이성을 계시나 전통, 권위 안에 보존되어 있는 신적 실체로서 가득 채워져 있는 것으로 봄.

 

안셀무스와 아벨라르의 차이점

 ⓵ 안셀무스 : 중세적 사유에서 객관적인 극()을 대표한 인물

   - 그리스도교의 바탕인 전통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⓶ 아벨라르 : 중세적 사유에서 주관적인 극()을 대표한 인물.

   - ‘주관적의 의미 = 내면적인 인격적 경험을 통한 사고를 뜻함. 이것은 성서나 전통이나 권위의 실체에 의해서 주어진 실재(reality)를 향한 사고가 아님.

 

주관성과 객관성의 의미(모든 영역에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왜곡되어 있는 것은 불행한 일)

 ⓵ 객관성 : 실재적이고 진실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나 전통이나 권위가 지닌 실체에 의해서 주어진 실재(reality)를 의미함.

 ⓶ 주관성 : 의지적인 것을 의미. 인격적인 삶을 고려한 어떤 것을 의미함.

 

아벨라르의 정신적 태도와 성격의 특징인 주관성[또는 주체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나타남

 ⓵ 열렬한 변증법적 사고 : 모든 것에서 긍정과 부정을 지적하는 사람.

   - 신앙의 신비를 이성으로부터 이끌어 내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신비를 이성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기를 바랐음. 물론 그럴 경우 신비가 공허하게 될 위험이 언제나 따름. 왜냐하면 사고란 삶의 직접성을 무너뜨리기 때문. 문제는 좀 더 높은 직접성에 이를 수 있는가/없는가에 있음.


 ⓶ 아벨라르는 터툴리안(Tertullianus)과 함께 서구 그리스도교 안에 들어온 법률학적 사고의 형태를 대표함. 전통의 변호사. 그는 전통 속에 담겨 있는 여러 모순-아무도 이를 부인할 수 없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전통을 옹호함. 그는 이런 식으로 교회를 지지했지만 그리스도를 옹호하는 변증법은 한편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가능성도 가짐.


 ⓷ 그는 강한 내성(內省)의 사람이었음. 이것은 관심의 대상이 객관적인 의미 내용이었던 시대에서 하나의 새로운 현상[사건]이었음. 그는 자신의 의식을 사색의 대상으로 삼았던 최초의 사람.

   - 자서전 나의 불행한 역사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견줄만 함. 그러나 고백록은 신 앞에서의 고백이나, 그의 자서전은 자기분석을 그 자신과의 관계에서, 그가 겪었던 경험과의 관계에서 수행하고 있음. ()스러움이 엿보이는데, 이것은 늘 주관성의 표시다.

   - 이 주관성은 그의 분수 밖의 명예욕[야심]에서도 드러나는데,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데서, 특히 그의 교사들에 대해서 그렇게 했다는 데서 또는 계속해서 권위를 공격했다는 데서 잘 나타남.


 ⓸ 감정의 영역에서 나타난 주관성 : 그는 감정을 특별한 영역으로 발견한 사람.

   - 이것은 그와 엘로이스(Heloise)와의 사랑의 관계에 나타나 있는데, (낭만주의romanticism 보다 훨씬 이전에) 낭만주의적 사랑의 위대성과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 시대까지 지배적이었던 두 가지 힘(가부장적 권위와 인격적 관계를 전혀 문제시하지 않는 소박한 성관계)에 대립되어 있던 에로스(eros)의 발견.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것이었지만, 그 시대에서는 위험스러운 것이기도 했음. 아벨라르의 많은 교설과 함께 그의 사랑도 시대를 앞섰던 것.

 

아벨라르의 예와 아니오의 신학’(변증법적 신학) = 스콜라 신학의 시작

 ⓵ 첫째 단계 : 교부, 교회 회의, 교령(decrees), 성서의 텍스트를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하고 그것이 참인가, 아닌가를 확정하려는 시도. 이런 연구에 의해 이제껏 모순이라고 생각되었던 것이 실제는 같은 사상에 대한 여러 가지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밝힘.


 ⓶ 둘째 단계는 문헌학적 단계, 말의 엄밀한 의미를 탐구.

   - 틸리히는 기호논리학적 방법(의미론적 순화나 환원의 방법)은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절대적인 적용 가능성을 가지지 않았다고 주장함. 왜냐하면 그런 방법은 신학/형이상학/존재론 또는 미학이나 역사의 영역에서 말로부터 풍부한 의미를 빼앗아, 그것을 말에다 의미와 힘을 주는 모든 것이 빠져있는 수학적 기호로 환원시켜 버리는 것이 아닌가하고 염려하기 때문.


마지막 단계에서는 모든 이론이나 교설은 성서의 권위를 [궁극적] 기준으로 삼는다. 이것은 성서를 의인(義認)의 메시지의 원천으로 삼는 프로테스탄트적 성서이해와는 다름.

 

아벨라르의 윤리학

 - 주관주의가 윤리의 자율성에 대한 그의 이론의 기초 -> 칸트의 선구자.

 - 선이나 악은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의도 곧 의지. 선의지 외에 선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 Kant의 생각과 일치.


 - 결정적인 것은 도덕 체계의 내용이 아니라 양심. “우리의 양심에 어긋나지 않으면 죄란 없다.” 토마스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런 사상을 받아들임. 이렇게 아벨라르와 토마스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칸트에 앞서 양심을 선취한 셈. 윤리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그 시대에 앞서 있었고, 그가 선취했던 모든 사상은 18세기의 프랑스에서 관철됨.

 

아벨라르의 신학에 나타난 주관성

 - 우리가 모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에 반론 제기 : 아담의 죄는 우리의 의지로 그에게 동의한 것이 아니므로, 아담의 죄는 우리의 죄가 아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된 것은, 주관적인 고찰 방식은 반드시 원죄의 교리를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


 - 그리스도론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강조. 그리스도는 변화된 신/로고스/고차원의 신적 존재라는 이론을 단호하게 거부.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성이었고, 신으로부터 탄생했다는 그리스도의 존재론적 기원이 아니었다.


 - 속죄론[구원론]에 의해 프로테스탄트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음.

   . 안셀무스는 속죄를 신과 그리스도 사이의 거래로 서술, 배상이라는 양적 개념으로 말함.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답례[대가]로서 인간의 속죄가 이루어짐.

   . 아벨라르에 따르면, 속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볼 수 있는 신의 사랑에 의해 일어남. 그는 신의 용서란 사랑의 행위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속죄론을 창출했음. 그것은 그리스도의 대리적 고난 또는 만족에 바탕한 화해가 아니다. 화해란 인격적 행위다. 이러한 이설(理設)로 인해 프로테스탄티즘의 선구자, 이성의 자율과 인격중심주의 교설의 선구자. Kant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음.

 

결론 : 아벨라르의 사상 중 몇 가지(브라텐 판에는 많은 부분”)는 거부됨. 예컨대,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회개란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에서 일어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진정한 회개라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의 설교가 지닌 교육적 효과를 빼앗는 것이 됨. 이러한 이유로 그는 교설의 몇 가지가 거부되었지만, 그런데도 그는 변증법적 방법의 창시자로서, 스콜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신학자의 한 사람이 됨.



2018.04.16. 아벨라르(p.268~277).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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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
 - 교황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