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22_하늘뜻+우리는 목격자요, 증인이다!
사도행전 3:12-19 시편 4 요한의 첫째 편지 3:1-7 루가의 복음서 24:36b-48
다함께 : 사도행전 3:15b~16
찬167, 162, 국찬87장 갈릴리로 가라

 
지난 1월 마지막 주일 하늘뜻펴기 후, 3개월 만에 강단에 섰습니다.
지난 8일 주일에도 강단에 서긴 했네요. 춤추느라요. 그렇다고 그날의 제 모습을 굳이 기억해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날 일이 제주 강정마을까지 소문이 났더군요. 석방된 지난 월요일 밤 촛불집회 때 발언을 하기 위해 앞에 나갔는데  청년활동가들이 다 들었다면서 춤을 추라고 해서 아주 곤혹스러웠습니다.

[삶과 깨달음에 대한 나눔]

지난 3개월 동안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2012년의 2/4분기에 들어섰고, 춥고도 길었던 겨울이 물러가면서 파릇한 싹들과 꽃들이 만발한 요즘입니다. 곧 여름으로 들어설 준비를 하는 듯 낮 햇살이 뜨거워졌습니다. 어제, 오늘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지만요.


저를 돌아보더라도 지난 3개월은 마치 수년이 흐른 듯 많고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이는 차별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공약으로 전교 부회장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분가교회의 새싹틔움 사건을 통해 씨앗과 물방울의 소중함을 날이 갈수록 깊이 깨닫고 있고, 새 뜻과 열정을 품고 있는 씨앗들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현장의 증인인 유리카님, 사오리님과의 만남 사건을 통해서는 이 지구별의 미래가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많은 교우님들이 삼척에 있는 핵발전소 후보지에 다녀오셨습니다. 제 귀에는 유리카님이 어른들을 향해 ‘저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요? 제가 결혼할 수 있을까요? 제가 건강한 아가를 낳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던 그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하도록 촉구합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30~50대 여성목사들 몇몇은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여성주의 목회를 지향하며 서로의 꿈을 나누는 선후배 목사들과의 만남 사건에서는 여전히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성과 같은 남성연대로 인한 벽을 확인하게 됩니다. 경쟁상대가 되거나 이견을 갖게 될 경우, 공기취급을 당하거나 애초부터 배제가 되는 목회자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편견의 눈길들에 대한 경험을 나누며 다시금 여성목사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부르신 이유는 바로 이런 것들을 하나 둘 깨쳐나가기 위함이라는 것을 서로가 되새기면서 서로 격려하고 하늘의 뜻을 깨우쳐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연달아 강연 일정이 잡히고 원고 쓰는 일이 겹치는 바람에 감기몸살로 탈진하여 주일예배에 결석한 일도 있었지요. 그 일로 인해 몸 관리,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만사가 다 헛될 수 있다는 주님의 경고방송을 제대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맘먹고 운동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보름동안 유치장을 두 번이나 들락거리게 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서 가두지만 우리는 기쁨으로 갇힌다’라고 선언하고 직접 행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뭘 하던지, 먹고, 자고, 심지어 화장실 가는 것 등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들여다보일 뿐 아니라 늘 누군가가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방 안에 있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길어봐야 48시간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기장 총회의 면회단이 와서 제가 구속될지도 모른다, 임보라 목사가 구속될 필요도 있으니 그렇게 기도하겠다고 하셨을 때는 좀 심란한 맘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치장은 밤새도록 형광등을 켜놓기 때문에 빛에 민감한 저는 비치되어 있던 행주크기의 수건으로 눈을 가려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저 높은 벽 위에 창문이 있긴 한데 햇볕이 직접 들어오지 않다보니 축축 몸은 늘어지고 소화가 잘 되지를 않아 다람쥐처럼 방안을 뺑뺑 돌아다니기도 했습니다.
그 입장이 되어보면 안다고 교도소에서 장기간을 지내고 계시는 양심수들이 떠오르면서 절로 중보기도가 나왔습니다. 제 아무리 흉한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면회 오는 이 하나 없이 외롭게 지내야 할 이름 모를 장기복역수들을 위해서도요. 잠시 갇혀있었던 것 뿐 이지만,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 하여라’(이사야 61:1) 는 성서 말씀이 참으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 


교우 여러분들의 삶터와 일터에서도 수많은 사건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건을 통해 후회를 하며 가슴을 치기도 했을 것이고, 새로운 깨달음으로 무한히 감사드렸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 삶에서 사실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지요. 그러나 그 사건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일도 많기 때문에 무슨 사건이 일어났는지 조차 잘 모르고 지나칠 때도 많습니다. 관심을 갖어야 비로소 사건의 본질과 연결이 됩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 합니다. 하지 말걸, 할 걸 등등 껄껄 합니다.
우리의 선택으로 선택되는 사건은 물론, 그냥 흘려보내는 수많은 사건들 또한 우리의 입에 쓰던 달던 우리들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우리네 신앙인들은 모든 사건이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가 바로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과의 만남의 자리는 교회의 제도나 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 그 자체이며, 사건을 일으키는 주체가 되시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늘 사건 속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스럽고도 거룩한 것과의 만남, 궁극적 실재에 대한 체험은 결코 엄숙한 분위기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가능합니다. 황홀감과 전율이라고 표현되는 종교적 체험이 인위적인 시공간 속에서만 일어난다고 하면 하느님을 살아계신 분이라고 고백하는 것 우리의 고백은 거짓이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이 나의 욕심과 욕망으로 채워질 때가 많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성과 속을 구분해 놓고, 성스럽고 거룩하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장소, 또는 어떠어떠한 분위기에서만이 하느님 체험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내 욕심과 욕망은 내 일상의 한 부분이니, 눈에 보이는 교회 건물 안에서 잘 감추고만 있으면 스스로 거룩해 보일 수 있다는 착각 때문이지요. 그런 것이 강해질수록 성과 속의 괴리감은 커져만 갑니다.  


만약 절차에 따른 예배를 통해서만 하느님 체험이 가능하다면 24시간 예배를 드려야겠지요. 실제 24시간 예배를 드리는데도 있고, 24시간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주 예배를 드려야 한다면서 성전 안 예배를 많이 배치해 둡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우리들 삶 자체가 예배라면 성전 안이 아니더라도 24시간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삶에 분명 한계는 있지만, 삶으로 이어지는 예배를 통해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의 이치와는 전혀 다른 가치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갈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험한 하느님을 나누고 싶은 뜨거운 가슴으로, 그리고 더욱 용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모입니다. 물론 비즈니스를 위해, 인맥형성을 위해 모이는 사람들도 있지요. 그러나 이는 교회와 공동체의 본질을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예수의 부활사건과 초기 기독교 교회/공동체]



봄을 맞아 개강한 ‘여성의 눈으로 읽는 성서’는 이번 주제를 ‘교회/공동체’로 잡았습니다. 교회다, 공동체다, 말은 많이 하는데 정작 차분하게 훑어보는 기회는 그동안 많지 않았던 것 같고, 제 자신도 다시 한번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어서 잡은 주제입니다. 지난 주까지 4번을 모였습니다. 보다 깊은 소통을 위해 평화적 커뮤니케이션 워크숍을 했고, 교회/공동체의 발자취를 쭉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갖었습니다. 앞으로는 오늘날의 교회를 짚고, 내일의 교회를 그려볼 예정입니다.

교회/공동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처음 시작과는 달리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변질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종교개혁도 그랬고요. 노예들의 신인 야훼를 고백했던 이스라엘 공동체는 평등공동체가 깨지기 시작하면서 부가 특정인들에게 편중되기 시작하고, 사제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남용하면서 변질의 길을 걷습니다. 
예수 당시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성전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하여 부패했습니다. 예수는 ‘서로 섬겨라, 서로 사랑하라’ 라고 외치며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 했지만 십자가 처형으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바로 종교 권력자와 정치 권력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반전이 있지요. 예수가 “부활”한 것입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를 기억하며 모인, 초대 교회로 명명되어진 공동체들은 이후 모진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예수의 복음을 실천하며 그 신앙의 명맥을 이어갑니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당당하게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하여 예수를 따르는 헬라인 기독교인들, 기독교로 개종한 디아스포라 유대인 등이 박해를 받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히브리인 기독교인들도 박해를 받습니다. 아시다시피 64년 로마에서는 도시의 2/3가 타버리는 대형화재 사건이 일어나는데 건설 사업을 벌이기 위해 황제 네로가 벌인 자작극이라는 소문을 돌자 이를 무마시키기 위해 기독교인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처형을 했습니다. 이후 황제 도미티안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빌미로 성전에 바치던 헌금을 황제에게 바치라는 강요하면서 박해를 했습니다.
2세기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반국가적이면서도 반인류적인 불법 종교 취급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느냐를 따져보기도 전에 그냥 기독교인이라는 것 그 자체만으로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믿는다는 것은 순교를 의미했고, 믿지 않는다면 모를까 믿는 순간부터는 순교 외에는 다른 어떤 것을 할 수도 없는 시대였습니다. 게다가 근친상간을 하는 집단 또는, 살과 피를 먹는 식인집단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습니다. 
3세기 즈음에는 교회 건물이 파괴되고 성서는 불태워졌습니다. 불타는 성서를 앞에 두고 네가 믿는 성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내 마음 속에 있다라고 대답하며 죽어갔다고 전해집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채찍이나 고문의 흔적이 없으면 그 신앙이 의심받을 정도였다고도 하고요.  
 

그러나 312년. 당시의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고, 탈탈 털어서 남김없이 빼앗겨도 말할 수 없었던 위치에서 다양한 혜택을 얻게 되는 위치로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그러자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죽임을 당했던 이들이 예수를 믿는 증거로 지켜왔던 여러 가지 생활 지침, 엄격하긴 했지만, 이런 것들이 하나둘 무너져 갔습니다. 교회는 ‘부’야말로 하느님의 은총의 증거라고 선포하기 시작했고, 가난이 아닌 사치를 택하는 것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그렇게도 절박하게 기다리던 하느님 나라는 구호에만 머무를 뿐 ‘여기가 좋사오니’를 추구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 개발을 통해 도시화되고 상업화되어 갔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경험했거나, 혹은 직접은 아니더라도 명맥을 이어가고자 했던 이들은 이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분명, 제도와 틀거리로 굳어져버린 교회는 물질과 권력이라는 유혹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빨리 거기에 순응해 나갈 것인가, 아니면 직접 행동이던 침묵이던 간에 저항을 지속해 나갈 것인가? 이 시대는 순응이 지혜로운 것이라고 우리의 귀에 대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양심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닌 것에 ‘아니오’ 하는 것이 진실한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바울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을 리가 없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는 우리는 결국 하느님을 거스르는 거짓 증인이 되는 셈입니다.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헛된 것이 되고 여러분은 아직도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고전 15:15-17)


우리가 예수의 부활이 실제적인 사건으로 여긴다면, 분명 순응하기보다는 저항하는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의 부활 사건은 불의와 악으로부터 정의와 평화로 변화된 세상의 시작을 나타내는 증거이기 때문에 이 부활사건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맞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자고 사람들은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것이 교회로 불리던, 그냥 공동체로 불리던, 뭐 그냥 그렇게 모여 있나보다 라고 여겨지던 간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은 모였고 믿은 바대로 실천했습니다.
‘이 공동체 생활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지 보여주며, 이러한 삶을 근거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그러한 삶을 살도록 설득’하게 됩니다. ‘이 공동체의 삶이 바로 우리가 누리는 새로운 창조이며, 변화된 세상’인 것입니다.

잠시 퀴즈하나 내볼까요? 부활절부터 매 주일 성서본문들 중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강영옥 장로님께서 정확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부활주일부터 성서일과에는 제1성서(구약)에서 시편만 들어가 있습니다. 부활 사건을 기억하며 제2성서(신약)에 집중하는 것이지요. 오늘 본문도 서신서, 루가복음, 그리고 사도행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루가와 사도행전, 이 두 책은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책이며, 이방인 출신의 유대교인들을 염두에 둔 책입니다.

루가복음은 갈릴래아-예루살렘으로 마무리가 되고,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로마로 마무리 합니다.
부활 후 예수의 행적을 보면 제자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12명 외에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는 당연히 부활의 증인이었던 여성들도 있었고요.
부활하신 예수는 다양하고도 많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서는 말을 붙이고, 같이 먹고, 같이 걷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는 ‘예수께서는 돌아가신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사십 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시어 여러 가지 확실한 증거로써 당신이 여전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 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 주셨다.’(사도행전 1:3)로 되어 있습니다. 사도들 중에서도 베드로, 바울로와 같은 특정인이 지도자로 부각됩니다. 물론 부활하신 예수를 기록한 복음서에도 그렇게 부각시키는 부분이 담겨 있습니다. 부활한 예수를 누가 먼저 만났는가, 부활하신 예수는 누구누구에게 나타났는가, 안보고도 믿는가, 보고도 못 믿는가 등등에 관심을 갖는 이들을 위해 슬쩍슬쩍 이야기를 흘려둡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초기 기독교 공동체 안에 있었던 권위를 놓고 지도력 경쟁, 권력 다툼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경쟁자들 중 베드로파가 우세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나 도마는 이런저런 이유로 많이 등장시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복음서를 통해 만났던 예수의 행적과 유사한 사건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성령사건이 일어나고, 삼천명이나 세례를 받고, 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어서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 하나를 일으켜 세우기까지 합니다.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신도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사도행전 4:32-37)는데 그렇게 된 것은 사도들의 ‘기적’, ‘증언’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면서 한껏 사도들의 위치를 높여갑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중들이 예수를 대신하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고 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예수의 자리에 있고자 원했던 사람들이 있어서였을까요? 


오늘 읽은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는 예수를 배척하고 죽인 당사자들을 혼내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예수를 부인하고 도망간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마르코복음에는 ‘열 한 제자가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마음이 완고하여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는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신 것을 분명히 본 사람들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이다’(마르코 16:14)라는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탓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는 조의 설교를 합니다. 나를 포함한 ‘우리’가 아닌 ‘여러분’이라고 반복해서 부릅니다.
정작 부활하신 예수는 의아해 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무라기보다는 손과 발을 보여주고 같이 먹어가면서 축복을 해주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베드로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사를 통해서나 다양한 공동체들의 흐름을 보더라도 빈자리나 틈이 생기면 곧바로 미묘한 경쟁관계, 주도권 싸움 등이 늘 있어 왔기에 어찌 보면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생기는 현상이겠지요.
당시에는 베드로, 바울로 계열이 득세했던 것입니다. 그 외의 인물들은 기록되어 있지 않거나 있어도 채택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록을 살펴볼 때는 잘 분석해야 합니다.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하찮고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권력에 의해 밀려나서 기록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다른 면이 드러내지 않기 위해 한쪽만 치우쳐 쓰기도 하는 것이고요.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역사의 기록도 달리 해석되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 타이타닉과 구럼비 붉은발말똥게 이야기]

 
3주 전쯤 딸들을 데리고 3D로 새롭게 제작한 영화 ‘타이타닉’을 보러갔습니다. 본디 1997년에 개봉을 했던 것이니 보신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계급을 초월하여 죽음을 코앞에 두고도 열렬히 사랑했던 연인들의 이야기가 메인 스토리이지만 1등실, 3등실의 대비되는 장면들, 그리고 초호화 여객선을 움직이기 위해 석탄을 나르고 퍼넣어가며 땀투성이가 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또 마지막까지 찬송가를 연주하던 음악인들의 모습도 빠트릴 수 없는 명장면 입니다.


저는 이번에 다시 보면서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한 구명선이 띄우는데 그 숫자가 20척입니다. 물론 전체승객들 수로 따져보면 구명선이 많이 모자른 것이 여주인공의 입을 통해 복선으로 깔립니다.
파선이 되면서 초기에 띄운 구명선에는 올라탈 수 있는 최대 인원에 한창 못 미치는 숫자의 사람들이 타기 시작했습니다. 여성과 어린이 먼저라고는 했지만, 구명선에서도 1등석이 있다는 둥, 지위가 있고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넉넉하게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이것저것 짐을 챙겨서 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구명선에 올라탄 사람들은 침몰하는 배로부터 사람들이 우수수 낙엽 떨어지듯 바다로 떨어지는 광경을 봅니다.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며 바다 위에 떠있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타이타닉 승객들이었다면 구명선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구명선에 탈 순서가 오지 않아 결국 바다 속으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 속해 있었을까요? 물론 그 중에는 구명선에 탈 수 있었지만 타지 않고 배에 머물렀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구명선에 탈 차례가 아닌데도 술수를 써가며, 어린 아이를 이용하여 배에 올라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타이타닉으로 비유할 수도 있겠습니다. 크다는 것, 그리고 호화롭다는 것이 타이타닉의 상징이었습니다. 거기에 빠른 속도까지 과시하려고 하다가 무리한 항해로 인해 빙산에 부딪히게 된 것이지요. 
만약 여러분이 구명선에 타고 있었다면 바다 속에서 얼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을 했을까요?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러대던 소리가 잦아들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자, 카메라는 구명선에 앉아 멍하니 죽어서 떠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20척의 구명선 중 단 1척만이 사람들을 더 태우기 위해 돌아왔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들 중 다만 몇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텐데, 사람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였을까요? 행여 물에 빠진 사람들 가까이로 다가가면 너도나도 배에 오른다고 아우성을 치다 구명선에 타고 있던 자신들마저 물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겠지요. 이미 구명선 안에 앉아있지만 저들로 인해  빠져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차디찬 바다에 내몰린 사람들을 외면한 뒤 연장된 삶을 살게 된다 한들 나머지 삶이 편안하겠습니까?


지난 3월 말 강정마을에 갔었을 때,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입는 수트를 빌려 입고는 구럼비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가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참아가며 삼발이산성을 넘어넘어 갔습니다. 많은 인원들이 들어갔을 때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먼저 끌려 나간 사람들도 있었고, 송강호 박사는 이날 폭행을 당한 채로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경찰들과의 대치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남아 있던 사람들은 힘에 부쳐 구럼비 이쪽저쪽에 누워 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바위 틈 한 구석에 붉은발 말똥게(와 매우 비슷해 보이는, 혹자는 아니다, 맞다로 의견분분) 두 마리가 서로의 집게발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이 발견되었습니다. 주변에 같이 있던 사람들과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한창 쳐다보던 중 한분이 손을 집어넣어 직접 만져보다가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있던 게는 사람 손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니 틈새를 보아 도망갈 법도 한데 집게발 하나로 죽은 게를 꼭 붙잡은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던 우리에게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습니다. 구럼비 지킴이들이 내린 결론은 ‘두 마리의 게는 서로 죽도록 사랑하는 사이였다’였습니다. 물론 말똥게의 입장에서는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이유는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런 용기 있는 사랑의 필요성에 대해 매순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예수 부활사건 증인들]


물론 위험한 찰나 사랑하는 이의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고, 엄청나게 불의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다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모른 척 할 수도 있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속이 다 들여다보이게 욕심과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주체가 되어 일으키는 사건들에 대해서 조차 어떻게든 동참하려고 하기 보다는 딴지걸기에 바쁜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 볼만큼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던 초대 교회 사람들도 그 안에서 자리다툼을 했고, 자기 몫을 남겨두고도 다 내놓은 척 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는 욕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공동체다운 실천의 몫을 이어가려고 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고, 그들은 서로서로를 책임져주며 가난한 사람들, 고난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예수의 삶을 따르는 것이라고 여기며 박해를 받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실천하다 죽기로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시대마다 또 필요할 때마다 소수더라도 계속 있었기에 예수의 삶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루가복음에서 예수가 말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다”
베드로는 예수의 대사를 따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다 그 목격자들입니다.”
한글번역은 목격자와 증인으로 다른 말을 썼지만 헬라어로는 양쪽 모두 ‘μ?ρτυ?(martus)'라는 같은 단어입니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 자기가 듣고 본 사실을 진술하는 사람, 어떤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목격자요, 증인입니다.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사람, 그리고 사건과 관련되어 있는 증인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목격했으면 사실대로 증언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위증죄에 해당합니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디서 부활사건을 경험하게 됩니까? 아니 먼저 솔직히 말해보지요. 정말 부활사건을 경험하고 싶은지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안의 소리를 들어봅시다.

부활 사건을 경험한 이들은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창조했습니다. 예수의 말씀대로 살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기적들, 하느님께서 일으켜 주신 수많은 사건들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건인 것일까요? 그런 시도는 한낱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예수의 부활을 교리적으로만 인정한다면 부활 사건은 결코 나와 상관없고, 별 볼일없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교리적 믿음은 영생, 불멸, 그것도 이 세상에서 실컷 누리며 살다가 죽어서 더 누리고 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에 불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자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언제나 죄를 짓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요한 1서 3장)”


우리를 부활사건의 목격자요, 증인으로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고 있는 죄는 다름 아닌 온갖 걱정과 불안입니다. 희망을 예수에 두지 않고 재물과 지위, 권력, 학력 두고 내 자신은 물론 내 아이까지 닥달하는 것이야 말로 죄입니다. 우리들의 복만 헤아리는 욕심이 죄입니다. 내 욕심을 감추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고, 지어낸 말들로 자매와 형제들을 비방하는 것이 죄입니다. 내 탓이요는 못할망정 남의 탓만 하면서 내 대신 죽을 희생양만 자꾸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들의 죄 입니다. 


그리스도교 첫 수세기 동안 가장 인기 있었던 비경전 작품인 헤르마스의 가르침입니다.

“들어라. 세상에는 한 번도 진리를 탐구해 보려 하지도 않고 하늘의 일을 이해해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피상적인 신앙에 만족하여 상거래, 부, 이방인과의 우정, 그리고 수많은 이 세상의 잡다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허영의 노예가 된 자들은 모두 하늘나라 일들의 우화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그들의 일상사가 그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을 파멸시키고, 그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윤리생활과 전례와 제반 규정에 관한 중요한 문헌인 디다케의 가르침입니다.

“얻기 위해 손을 벌리지 말고 주기 위해 오므려라. 네 손으로 벌이한 것이 있으면, 네 죄들을 속량키 위해서 주라. 주기를 망설이지 말며, 주면서 불평하지 말라. 보수를 후하게 쳐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자에게서 돌아서지 말며, 모든 것들을 네 형제와 함께 공유하고 네 것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불사하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니 하물며 사멸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쯤이랴.”


부활사건은 오늘도 여전히 계속 됩니다. 고로 십자가 사건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부활사건의 목격자요, 증인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따라 기꺼이 그 역할을 해내겠다고 결단하면 십자가 사건에 참여하게 되고 연이어 부활 사건에도 참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 예수를 만나고 잘 아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마 우리가 제대로 믿기 시작한다면 기독교는 기득권의 종교가 아니라 또다시 박해 받는 종교가 되겠지요.


부활의 계절, 온 땅에 새싹과 꽃이 한껏 피어나는 이 때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찾아오시는 부활 주님의 꽃이 피어나길 기도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물끄러미 바라만 보지 맙시다! 더 이상 모른 척 하고 지나가지 맙시다!
왜요? 우리는 목격자요, 증인들이지 않습니까?


[파송사]


편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비겁은 안전한지를 묻습니다.
편이주의는 그것이 정치적인가를 묻습니다.
허영은 인기가 있는가를 묻습니다.
하지만 양심은 무엇이 옳은가를 묻습니다.
안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양심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때가 있는 법입니다.’


새로운 한 주간,
양심이 옳다고 말하는 그 음성을 따라
주님의 사람답게 당당하게 삶의 예배를 이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