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뜻펴기'(설교)를 문서로 정리한 것입니다.
따뜻한 손길을 펴는 날
에스 7:1-6, 9-10; 9:20-22 시 124 야 5:13-20 마르코 9:38-50
향린교회 10년 목회 기간 중에 에스델서를 본문으로 하늘뜻을 펴기는 처음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에스더서라고 말하는데, 공동번역은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 에스델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가톨릭 성서에서 인물이나 지명의 명칭들은 원본 히브리성서를 따르지 않고 라틴어성서를 따르고 있어 원래의 발음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원어에 더 가까운 에스더로 발음하고자 합니다. 에스더서는 유대인들의 축제일 중의 하나인 ‘부림절’ 보다 정확히 발음하면 ‘푸림절’의 기원을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본래의 히브리성서의 에스더서에는 하느님이란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믿음에 관련한 구절도 거의 없기에 성서에 편입하기까지에는 상당한 논란이 제기되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가톨릭에서는 정경으로,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다루고 있는 그리스어 번역본(일명 70인역)에는 이러한 점들을 감안하여 하느님이란 단어가 들어간 수십 개의 구절들이 첨가되어 있는데, 공동번역에는 이 부분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번역으로 에스더서를 읽을 때에는 이 점을 유의하면서 읽어가야 합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인가?]
에스더서는 기원전 5세기경 페르샤의 통치 아래에 있던 유대인들이 민족의 대학살이라는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가 에스더의 지혜와 용기로 극적으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며 이를 축하하는 민족절기인 푸림절의 기원을 설명하고는 있지만, 이 책이 히브리 성서에서는 역사서에 포함되어 있지 않고 지혜문학에 포함되어 있으며 문학적 기법이 뚜렷이 드러나고 에스더서에 기록된 사건을 뒷받침할만한 역사적 자료가 희박하여 이 얘기가 역사적 사실인가 하는 질문에 분명한 답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류 역사 속에 있었고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종족학살사건들, 예를 들면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지시대에 겪었던 관동대지진 사건을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의 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1923년 지금으로부터 꼭 89년 전인 9월 1일 관동지역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사회는 극도의 혼란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조선인들이 방화를 하고 우물에 독약을 풀어 넣어 일본인들을 죽이려한다는 교묘한 음모설을 퍼뜨려 집단적인 조선인 학살만행을 종용함으로서 동요하는 민심을 달랜바 있습니다. 또 20년 전 로스엔젤레스에서는 백인 경찰관 4명이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구타한 사건으로 인해 오랜 세월 꿈틀대고 있었던 흑백 인종 갈등이 흑인 폭동으로 번져갔는데, 이때 백인 주도의 교묘한 언론 플레이와 경찰들의 의도적인 방관 작전으로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한인들이 주로 당했던 사건들을 종합할 때, 에스더서에 기록된 종족살해 계획 사건은 사실에 기초한 얘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여깁니다.
성서에서는 바사라고 알려진 페르샤의 아하스에로스 왕의 시대에 있었던 얘기입니다. 아하스에로 왕은 크레세스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왕의 총리대신 하만은 궁중 문지기로 있던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경의를 표시하지 않는 데 분노하여, 페르시아 치하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은 반역적이기 때문에 저들을 없애야 한다고 왕을 설득하여 제비를 뽑아 학살할 날짜를 정하고 자기의 뜰에 모르드개를 처형할 교수대를 세워놓습니다. ‘푸림’이라는 말은 제비뽑기라는 말입니다. 왕비인 에스더를 키웠던 삼촌 모르드개는 이 종족 학살 계획을 미리 알고 에스더에게 이를 막도록 부탁합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왕비가 나아갔다가는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주저하는 에스더에게 삼촌 모르드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왕후만이 홀로 목숨을 부지하리라 생각하지 마시오. 이때에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서라도 살길이 열릴 것이나 왕후는 멸망할 것이오.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겠소?”
[푸림절의 배경과 전개]
이후 왕후는 유대인들과 함께 삼일 금식을 하고 나서 죽음을 무릎 쓰고 왕 앞에 나가 잔치를 여는 허가를 얻어낸 다음 계속되는 잔치 자리를 통해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 하만의 음모를 고발합니다. 이게 화가 난 왕은 궁정의 뜰로 나갔다 다시 돌아와 보니 하만이 왕후의 몸을 누이고 있는 평상에 엎드려 있었는데, 왕은 하만이 당황하여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것을 왕비를 겁탈하려는 것으로 보고 오해하여 하만을 교수형에 처하게 하고 하만의 직위에 모르드개를 임명합니다. 결국은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는데, 이를 유대인들은 민족의 축제인 푸림절로 지키면서 선물을 교환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풉니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면서 종교와 상관없는 관습들이 그 축일에 덧붙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하만타셴'(하만의 귀들)이라고 하는 세모꼴 과자를 굽는 관습이 있고, 17세기에 유행한 푸림절 연극들은 축제 분위기를 돋우었고, 오늘날은 가면극으로 발전하여 어린이들의 축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만은 술에 취하도록 마시어 하만과 모르드개를 혼돈하여 술잔을 들고 ‘하만에게 축복을, 모르드개에는 저주를’ 하여도 괜찮다고 하는 관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매일 퍼지게 먹고 취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어떤 실수를 해도 용서가 쉽게 됩니다만, 다른 나라에는 술에 취하도록 마시는 일은 관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고, 대신 마음대로 먹고 마시는 날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몇 년 전 네팔의 한 작은 마을에 갔는데, 그 마을 길가에는 마리화나 풀이 즐비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너도나도 가져다 피우겠지만, 이곳에서는 이를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평상시 피우다 걸리면 마을 촌장으로부터 징계를 받습니다. 단 일 년 중 하루 축제기간 동안에는 이를 마음대로 피어도 되는 날이 있었습니다. 불행히도 제가 갔던 날이 그날이 아니었습니다만, 우리나라도 오늘같은 한가위나 설날 같은 축제기간에만 술에 취하는 날로 정하고 나머지 날에 술에 취하면 심한 벌을 주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요?
[에스더서와 주변 얘기]
지금도 술자리에서는 억지로 술을 마시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특히 회식을 할 때, 직장 상사가 술잔을 권하면 이를 피하기가 어렵고, 우리나라는 특히 군대문화가 사회에까지 계속되어 ‘위하여’를 외치며 술잔을 들게 되는 강제 권주 문화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에스더 1장 8절에 보면 “왕이 내리는 술은 한이 없었다. 그러나 술을 마셔도 법도를 따라 억지로 마시게 하는 일은 없도록 하라는 분부가 있어 저마다 원하는대로 마시게 하였다.” 이게 고대 페르샤의 술 법도였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보다 훨씬 문명인다운 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이 구절과 연계하여 에스더서에 잘 아는 얘기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는 이 에스더 왕후를 유관순에 비유하여 민족 구원의 여인으로 목사님들의 삼일절 설교 본문으로 사용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에스더 왕후 이전에 있었던 와스디 왕후 이야기를 하면서 에스더 왕후는 지혜로운 여인으로 와스디 왕후는 지혜롭지 못한 여인으로 비유하곤 하였습니다. 축제날에 왕이 큰 잔치를 며칠 동안 베풀고 나서 왕은 왕후의 미모를 하객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기 위해 잘 꾸미고 잔치 자리에 나오도록 명령을 내렸는데, 그만 이 왕후가 이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 이유인즉 자신도 왕궁의 여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고 제국의 왕이 신과 같은 위치에 있던 고대 시대에서 왕후가 왕의 명령을 거절하고 결국은 이로 인해 폐위를 당하게 된 이 사건을 통해 와스디 왕후를 지혜롭지 못한 여인으로 얘기하곤 하였습니다만, 실상인즉 와스디 왕후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 세운 보기 드문 선각자였습니다. 자신의 인격을 단지 겉의 아름다움으로만 판단한 남성들의 미적 기준에 대한 거부라는 점에서 그리고 최고 권력자이자 남편인 왕의 명령을 거역한 일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여성 해방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에스더서는 단순히 유대인들의 축제인 푸림절의 기원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얘기를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고발하는 해방의 문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니더냐?]
오늘 본문은 지혜라는 관점에서 에스더왕후가 하만의 음모를 직접 고발하지 않고, 몇 번의 잔치를 통해 왕의 환심을 얻은 후에 하만을 되돌릴 수 없는 궁지로 몰아넣은 얘기를 말하고 있습니다만, 에스더서 전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말씀은 아까 언급했던 바, 모르드개가 에스더왕후에게 한 말입니다. “왕후는 궁에 있어 이 화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구원은 분명 어디에선가 올 것이고, 당신은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은 이 때를 위함이 아니더냐?” 개인의 성공이 단지 개인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일이라고 하는 깨달음입니다. 요즘은 너무나도 개인주의화 되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성공을 하면 자기가 열심히 하고 자기가 잘나서 그랬다 생각하고 잘못되면 자기는 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적으로 이해하는 훈련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교회 또한 그러합니다. 분명 교회는 공동체입니다만, 많은 경우 기도의 내용은 개인의 축복, 혹은 자기 가정만의 안일과 행복만을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을 넘어서는 이웃의 행복과 공의로운 사회 그리고 인류의 평화를 향한 하느님 나라가 핵심입니다만, 대부분은 구원을 개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는 것으로 좁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앙을 통해 우리의 시야가 더 넓어져야 하는데,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품어 상대방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는 신앙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기 안에 갇혀 있는 하느님만을 절대화하는 이기적 신앙인으로 만들어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유전자가 비록 이기적 유전자이지만, 신앙은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의 장점은 개인적 사건을 모두 공동체적인 사건으로 만든 것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라는 족장들의 얘기는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지만, 저들은 이를 모두 공동체적 사건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야훼 하느님을 향한 자신들의 신앙의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름만을 믿고 갈 바를 알지 못한 채 살던 곳을 떠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고 얍복강가에서 하느님의 축복을 바라며 천사와 밤새 씨름했던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을 자신들의 나라 이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3천년 전에 일어난 출애굽의 해방 사건을 과월절이라는 민족의 축제로, 2천 5백년 전 에스더의 목숨을 건 결단과 지혜를 푸림절이라는 민속의 축제로, 2천 2백년 전 로마에 빼앗겼던 성전을 되찾은 독립 투쟁의 사건을 하누카라는 민족 공동체의 축제로 만들어내어 그들은 세계 어디에 흩어져 살든지 이를 예배의 틀 속에서 기념하여 왔던 것입니다. 과거의 자신들이 당했던 아픔을 잊고 오늘날 팔레스타인들을 억압한다는 점에서 저들은 분명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만, 분명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저들은 지나간 역사를 공동체적으로 현재화시킨 점입니다. 단지 하루의 기념 행사가 아닌 최소한 일주일의 기간을 정하고 이 또한 단순히 먹고 마시는 놀이의 축제로서만 그치지 아니하고, 먼저 금식과 기도가 선행하는 종교적으로 절제화된 축제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를 우리의 것으로 현재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유대인들과 같은 설날이나 한가위와 같은 민속 축제의 날이 있습니다. 31절과 815와 같은 해방절도 있습니다. 419나 5월 광주항쟁 그리고 6월 민중항쟁과 같은 민중투쟁의 날도 있습니다. 625와 같은 비극의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하나도 온 민족이 다함께 우리의 삶 속에서 재현해 내는 그런 살아 있는 절기로는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같은 사람이 기념식순을 행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번 주에 진행되는 개천절행사 또한 잘 보시기 바랍니다. 나라가 세워진 거대한 축제일이지만, 그 행사는 단지 세종문화회관 안에서의 만세 삼창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한민족공동체 전체가 유대인과 같이 며칠간의 축제와 기도를 통해 이를 오늘의 삶에 현재화시키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에스더라는 한 여인으로부터 시작한 푸림절 축제는 단순히 저들이 즐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이날을 기쁜 잔칫날로 지내며 선물을 주고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로 삼은 것’입니다.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
오늘은 인구의 반에 가까운 2천만이 고향을 찾아 이동한다는 추석 곧 한가위 명절입니다. 또 다른 최대 명절인 설날은 새해를 시작하기에 더 큰 의미를 두는 사람도 있고 저희 어렸을 때는 설날이 한가위보다 더 크게 지켜졌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극도로 기계화된 도시문명화로 인해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는 계절 한 가운데 위치한 한가위가 더 크게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명절 증후병을 앓는 사람도 있고 그냥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자연이 주는 향수를 찾아 고향 농촌을 찾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도 상당수가 고향을 찾아 이미 길을 떠났습니다. 저도 도시에서 태어났고 서울 LA 뉴욕 워싱톤이라는 대도시에서만 평생을 생활하여 오고 있지만, 농촌에 대한 향수를 져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 오늘 예배가 끝나면 배낭을 메고 노오란 들녘이 있는 남쪽 바다와 조상 묘소를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오려고 합니다.
올해는 봄의 가뭄과 여름에 불어 닥친 4번의 태풍으로 인해 그나마도 FTA로 어려워진 농촌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하여 농사를 사회의 근본으로 삼았지만, 지금은 우리 교회 앞 중소기업은행 건물에 한동안 붙어 있던 현수막과 같이 ‘상인천하지대본’이나 혹은 ‘산업천하지대본’의 시대에 돌입한지 오래되었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스마트폰천하지대본’의 시대에 돌입하였습니다. 농업인구는 점점 줄어 이제는 전 인구의 6%에 불과하고 농업생산 비율은 4%에 불과합니다. 현대인들이 자연을 잃어버리고 고향 농촌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일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높아만 가는 자살률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로만 설명될 수는 없고, 녹색 자연을 떠난 회색 도시인, 종이에 써진 100, 1000, 10000이라는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샐러리맨들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파트라는 한 건물 안에 수십 가정이 몰려 살아가는 도시문명화는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극도의 개인주의 문화를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현관문을 마주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지만, 이웃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웃사촌이라 하여 사촌보다 이웃이 더 가까웠지만, 지금은 전연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문을 드나들면서 서로 마주쳐도 왜 눈을 마주 보면서 따뜻한 인사말 하나 주고받지 못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에 가면 모르는 사람이라도 길에서 마주치면 눈을 맞추고 웃음으로 인사를 하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지, 경쟁사회, 도시문명이 우리를 이렇게 피폐하게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번 만나 목회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 목회자 그룹이 있습니다. 그중 한분은 집에서 지난 3년간 개척교회를 하고 있는데, 생계를 위해 우유와 요구르트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이런 얘기를 하세요. 새벽에 아파트 우유 배달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성경책을 끼고 새벽기도회를 나가는 신자들을 만난다는 겁니다. 그러면 자기가 우유 배달원인줄 아니까. 자기가 잠시 우유병을 들고 나간 사이에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면 좋겠는데, 이 기독교 신자들이 매몰차게 그 문을 닫고 그냥 내려간다는 겁니다. 전 그 얘기를 들으면서 매우 씁쓸했습니다. 도대체 왜 하느님을 믿는 건지요? 10초 20초를 기다리지 못하는 신자들이 어떻게 그 영원의 하느님의 때를 기다릴 수 있는 것인지요? 그렇게 해서라도 새벽기도회 10초 20초 더 기도하면 이루지 못하는 기도가 이루어지나요?
세계 저 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다 아는 이 세계화의 정보사회에서 바로 옆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도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나 카카오톡을 통해 수십 명 수백 명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나이 든 부모님을 나 몰라라 내치는 자식들이 날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명절(名節)의 회복]
오늘이 명절이라고 합니다. 사전을 보니 명절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명절이란 전통적으로 해마다 지켜 즐기는 날로, 오래도록 계속된 관습에 따라 생겨난 아주 좋은 시절’을 말한다. 그런데 한자말을 보면 명(名)자는 이름을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명예, 명분 나아가 인륜이라는 뜻을 담고 있고, 절(節)자는 마디를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절개, 규칙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곧 명절은 가까운 사람끼리 먹고 즐기는 날을 넘어서서 인간의 본래됨을 회복하는 날인 것입니다. 곧 인간(人間)이란 한자어가 상징하듯이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의 본성을 회복하는 날인 것입니다.
조상제사의 본 뜻도 종교적인 의미에서의 제사에 있다기보다는 함께 한 상에 절을 함으로써 서로서로가 따로따로 살아가야 하는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조상으로부터 나온 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하는 사회적 공동체성이 더 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한 마을 전체가 다 같은 씨족이었습니다. 마을공동체란 그래서 크게 보면 한 혈연공동체였습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의 구별이 거의 없었습니다. 뭐든지 나눠먹었습니다. 저는 명절은 바로 이러한 인륜의 근본됨을 회복하는 절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에스더서의 푸림절에서와 같이 친지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그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그런 날로 승화시켜야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주위에는 외로움과 가난의 설움 속에서 흐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성서 말씀에 기초해서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를 제안합니다. 혹 추석 선물이 필요 이상으로 많거들랑 이를 나누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누구랑 나누면 좋을까요? 오늘 우리 시대에서 가장 아픔을 겪는 분들은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과 쌍용차와 재능 교육 해고노동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에게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국가의 폭력으로 마음들이 상해 있고 점점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강정주민들과 그곳에 새롭게 새워진 평화교회를 위해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소는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평화센터 혹은 평화교회로 하시고 받는 이는 주민들과 평화지킴이 이렇게 해서 택배로 보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는 한가위 추석의 의미를 성서적으로 되살리는 일이라고 봅니다. 단순히 음식상 차려놓고 드리는 조상제사를 넘어서서 민족공동체적인 역사성을 회복하는 감사의 절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인수녀의 달빛 기도란 시를 읽어드립니다.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 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마음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가을의 노오란 들녘의 바다를 보며 우리의 설익은 마음도 벼가 익듯 곱게곱게 익어가기를 바랍니다.
익어갈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를 통해 겸손함을 배우고, 떨어지는 낙엽을 통해 자신을 비워내는 지혜를 얻기를 바랍니다.
삶의 고향을 찾아 나설 뿐만 아니라 영혼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 한가위 명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