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비추어라(1) 민족과 사회

이사야 60:1-6; 72:1-7; 3:7-12; 2:1-12

 

[성탄절과 주현절]

 

오늘은 세상 달력으로 말하면 2014년을 시작하는 첫 번째 주일이 됩니다만, 교회력으로 말하면 주현절(Epiphany Sunday)이 됩니다. 주현절이란 주님께서 현현(顯現)하셨다 곧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입니다. 이는 곧 예수 탄생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지키는 예수 탄생일은 1225일 성탄절이 아닌가요? 성탄절은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후 태양절 축제를 예수 탄생일로 변경시킨 것입니다. 로마도 여러 민족들이 합쳐진 제국이기에 태양절 축제가 딱 하나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4개의 큰 축제가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는 이를 통일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기독교를 국교로 하면서 예수 탄생일을 1225일로 정하고 이를 국가의 공식적인 축제의 날로 공포한 것입니다.

 

사실 이전까지 초대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여 모여왔기에 특별하게 어떤 날을 지정하여 예수 탄생일로 지켜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교도의 축제인 태양절 축제를 예수 탄생일로 정하는 일에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4세기 이후 공적으로는 1225일이 예수 탄생일이었지만, 일부 교회에서는 1225일부터 시작되어 12일간 진행되는 태양절 축제가 끝나는 16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켜왔습니다. 그러다가 로마가 동서로 나눠지면서 교회 또한 둘로 나눠지게 되었는데, 이때 서방가톨릭 교회는 1225일을 받아들였고, 동방가톨릭 교회는 16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의 개신교는 이 둘을 다 받아들여 서방 가톨릭의 전통을 따라 1225일을 예수 탄생일로, 동시에 16일을 전후한 새해 첫 주일을 주현절이라는 이름으로 지키면서 성탄절기에는 누가복음의 탄생 얘기를 주현절에는 마태복음의 탄생 얘기를 본문으로 택하고 있습니다.

 

동방교회도 나라와 민족에 따라 그 날짜가 5일에서 8일까지 조금씩 다르고 어떤 동방교회에서는 119일을 지키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16일을 예수 탄생일로 지킵니다. 이후 어느 때부터 교회는 주현절 다음 날을 예수께서 세례 받으신 날로 기념하여 왔습니다. 간혹 여러분이 러시아나 동유럽의 교회들이 성탄축제를 한다고 하면서 추운 겨울날 강의 얼음을 깨고 그 물속에 뛰어드는 전통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바로 성탄절과 예수 세례가 연이어 있었던 전통의 흔적입니다. 저희 향린교회에서는 이 주현절을 조금 더 의미 있게 지키기 위해 이 날이 새해 첫 주일이기도 하여 매년 십자가 신앙고백에 이어 십자가달기 예식을 진행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예수 세례주일이기에 이와 관련하여 지난 달 피택 되신 두 분의 장로 임직식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그래서 1월 한달동안 이런 신앙의 전통을 따르면서 동시에 새해를 맞은 신앙의 목표들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일어나 비추어라는 이사야의 말씀에 따라 첫 번째 주제로 민족과 사회의 빛에서 본 신앙의 목표를 그리고 다음 주에는 장로임직식과 공동의회도 있곤 하여 교회 내부의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갑오농민혁명]

 

성인의 탄생 이야기에 별이 자주 등장합니다. 고대시대에 별은 하늘의 뜻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별똥별 혹은 혜성을 보고는 그것은 하늘에서 점지한 사람이 이 땅에 내려오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마태오복음이나 루가복음의 아기 예수 탄생 이야기에 별이 등장합니다. 마태오는 동방에서부터 박사들을 이끌어 오는 하나의 큰 별을 말하는 반면에 루가복음은 수많은 천사들의 찬양과 함께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에게 이제 하느님 영광이 임했음을 선포하면서 모든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들며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 하며 노래합니다. 그런데 이 광채는 지금까지의 제국들이 가졌던 창과 칼에 의존하는 권세의 광채가 아닌 오늘의 시편 말씀과 같이 임금들이 이제는 바른 정치를 함으로 백성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약한 자의 권리를 세움으로 평화와 정의가 실현되는 세상 곧 하느님의 의로운 광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올해는 말의 띠인 갑오년입니다. 우리는 갑오년하면 1894년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갑오농민혁명운동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19세기는 제국주의 시대였습니다.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범하여 식민지로 만들고 갖가지 보물을 약탈하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서구 열강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인도를 나눠가진 다음 마지막 남은 지역인 동아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이어 미국 영국 불란서 독일 등의 모든 식민지 제국 세력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왔습니다. 처음 조선왕국은 세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한 채 쇄국정책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백성들의 고혈만 짜내기에 혈안이 되었고, 결국 이는 민중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부패한 권력과 외세를 동시에 척결한다는 새 역사의 혁명의 기운을 품고 아래로부터 힘차게 일어섰던 것입니다.

 

그 중심에 천도교가 있었고, 전통 유학과 서학의 가르침을 하나로 한 천도교의 인내천' 사상은 민이 곧 주인임을 선포하는 혁명적 사상이었고, 오랜 세월 양반과 권력가들의 착취에 신음하던 민중들은 일시에 일어섰습니다. 110일 전라도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엄청난 기운으로 관군을 밀어붙여 5월에는 전주성을 점령하고 호남지역 53곳에 집강소를 설치했습니다. 척양척왜, 제폭구민의 깃발 아래 양반을 족치고, 노비를 해방하고, 남녀차별을 없애고, 신분을 철폐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진행해갔습니다. 그러자 권세 잡은 자들은 나라를 구하여야 한다는 미명하에 청군을 불러들였고, 청군이 들어오자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군 또한 조선을 구한다는 이름하에 들어옵니다. 결국 곡괭이와 죽창의 동학농민군은 그 뜻과 기상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지만, 일군의 조총 앞에서는 추풍낙엽이 되고 말아 119일부터 12일까지의 우금치 전투에서 수십만 명이 희생당하고 녹두장군 전봉준이 체포됨으로 이 농민혁명은 불발로 그치고 맙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을 판돈으로 놓고 전쟁 놀음을 벌여 일본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였고, 이후 35년간 징용과 징병과 정신대는 물론 모든 중요 문화재를 빼앗기는 엄청난 폭압과 수탈을 겪어야만 했고, 이 때의 식민지 지배로 인한 그 후유증은 해방된 지 70년이 되었지만, 최근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논란에서와 같이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1894년의 대 격동으로부터 역사의 수레바퀴는 크게 두 번을 굴러 2014년 갑오년을 다시금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정세는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권이 당시에는 세계의 주변부였다면 지금은 세계의 중심부 중의 하나가 된 것입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현재 세계 최대의 강국들로 여전히 한반도를 둘러싸고 무력 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댜오위다오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격돌하는 모습은 하나의 상징일 따름입니다. 지금 중국은 엄청난 경제력을 기반으로 미국에 대항할만한 막강한 군사력을 키워가고 있으며, 일본은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 무장화를 노골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 세력들은 세계재패를 꿈꾸며 평화헌법 9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공공연한 활동을 하고 있고 이에 힘입어 아베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했습니다. 120년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한반도는 여러 가지 점에서 120년 전과는 다릅니다. 더 이상의 약소국은 아닙니다. 남의 경제력 군사력 또한 세계 10위권 안팎에 들고 있고, 북은 경제력은 약하지만, 핵무기를 소유한 만만치 않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만, 민족적 입장에서 본다면 남과 북이 각각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라는 전통적인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으로 갈려 서로 싸우고 있어 자멸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남북통일의 전망]

 

다행인 것은 2014년을 시작하면서 북은 신년사를 통해 북남관계 개선 의지를 내비친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을 중시하고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불문하고 함께 나갈 것이다. 백해무익한 비방 중상을 끝낼 때가 되었으며 화해와 단합에 저해를 주는 일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가 하고 물음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동시에 현재의 남쪽 정부가 말하는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과연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진정성에 대한 질문만 던지다보면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뒤로만 갑니다. 이제는 진정성을 따지기 전에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의가 어디에 있느냐 묻기 전에 먼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나야 할 것입니다. 싸우더라도 자주 만나야 할 것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남북 두 정부는 모두 자신들 앞에 닥친 불을 끄는 것만도 벅찬 해인 것은 사실입니다. ()은 장성택 제거로 인한 그 후유증을 치유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고, ()은 관권부정선거개입을 그냥 모른 채 지나가기에는 이미 상황이 너무 악화되어 있습니다. 청와대는 자신들의 지지율을 과신한 나머지 전국교사노조와 전국공무원노조를 불법화하고 통진당 해산 청구와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폭력적 진압 등의 무리수를 연속하여 두고 자신의 복지공약을 지키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민주세력과 민중들로부터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남과 북은 자신들의 내부 문제를 희석시키고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남북대화를 추진하겠지만, 이미 우리가 지난 시절 충분히 경험하였다시피 이는 하나의 쇼로 끝날 것입니다. 남북대화에 진정성이 담보되려면 민()의 참여가 절대적입니다. 지금 청와대가 말살하려고 하는 모든 민주세력들은 통일을 향한 민의 세력들입니다. 이들을 짓누르면서 남북대화를 얘기하는 것은 위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2014년 한해를 조명하여 볼 때, 북은 북 나름대로의 정치적 고민과 경제적 당면 과제가 있습니다만, 제가 몸담고 있는 남한 사회 또한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현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든 부정선거라는 민중들의 소리를 누르고 4년을 끌고 갈려고 할 터인데, 민의 저항이나 시대가 아버지 박정희군사독재 시절과는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는데, 청와대의 내부는 40년 전 그 당시 인물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또 한 번의 6월 민중항쟁이냐 아니면 군사쿠데타냐 하는 양 갈래의 파국의 길 외에 다른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언제라도 남한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자주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군사쿠테타를 조종할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집권을 했지만,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함으로 인해 민중의 뜻에 반하는 군사정부가 들어선 것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보다 남한이 훨씬 더 조종하기 쉽습니다. 저는 이 두 길은 모두 민중들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에 저의 이런 예측이 하나의 기우로 끝나기를 기도할 따름입니다.

 

아기예수의 탄생을 그리는 마태오복음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탄생했다는 기쁨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민()의 기쁨은 곧 권력자들의 칼부림을 동시에 불러오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별을 따라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 성의 헤롯 왕을 방문했습니다. 그러자 헤롯은 당황하여 불안에 떨었고 예루살렘 성안은 온통 술렁거렸습니다. 지난 한 주간 성탄절과 주현절 사이인 송구영신의 시간, 언론에서 애써 무시하려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터졌습니다.

 

[통치자의 불안과 백성의 안녕]

 

1231일 오후 5시경 40대의 한 사람이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 갑자기 차를 세우더니 박근혜 사퇴와 특검 실시라는 현수막을 내어 걸고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을 한 것입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하루가 되지 않은 11일 아침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이남종열사가 국민에게 남긴 짧은 글을 남겼는데, 이 유서가 지닌 역사성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는 어쩌면 전태일열사의 죽음과 같이 당시에는 신문 4단의 작은 기사로 실렸지만, 후대에 엄청난 역사의 진폭을 가졌듯이 그의 죽음 또한 상황에 따라 그 역사의 진폭이 엄청나게 커질 수 있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의 유서는 국민 모두를 향해 안녕하십니까?’ 하고 묻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안부도 묻기 힘든 상황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총칼없이 이룬 자유 민주주의를 말하며 자유 민주주의를 전복한 쿠데타 정부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그 원칙의 잣대를 왜 자신에게는 들이대지 않는 것입니까?

많은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진 공권력의 대선개입은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개인적 일탈이든 책임져야 할 분은 박근혜 대통령입니다. 이상득, 최시중처럼 눈물 찔끔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던 그 양심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이 아니길 바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모든 두려움을 불태우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그의 유서에는 경찰이 발표한 것과는 반대로 개인 신상에 대한 비관과 울분은 전연 없습니다. 경찰은 보험 운운하며 개인적 일탈로 언론에 유포하였습니다만, 그가 동생에게 명의를 변경하도록 부탁했다는 보험은 2천만원짜리 생명보험이 아니라 2만원짜리 운전자보험이었습니다. 그는 교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조선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학사장교로 임관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로 택시운전사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당하며 여러 가지 일을 했습니다. 그는 시를 좋아했고,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써왔습니다.

 

밥값 좀 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답게 살라는 말이다. 그 반대로 꼴값하고 있네라는 말이 있습니다. 꼴은 짐승들의 먹이를 말합니다. 짐승들과 같이 하루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행동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말의 해인데, 수레를 끄는 매여 있는 말이 아닌, 벌판을 힘차게 뛰어다니는 준마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 선생의 마지막 말씀으로 하늘뜻펴기를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살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서슴치 않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글]

 

새해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소서.

가진 게 많아서 신나는 사람보다는 가진 것만큼으로도 충분히 신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적게 먹고 적게 싸는 딱정벌레가 되더라도 대박의 요행 따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나 자신을 위해 너무 많은 열정을 소비해온 지난날을 꾸짖어주소서.

 

내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만 바라보던 이에게는 남의 자식의 구멍 난 양말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고, 내 말을 늘어놓느라 남의 말을 한마디도 듣지 못하는 이에게는 파도 소리를 담는 소라의 귀를 주소서.

 

이 땅의 젊은 아들딸들에게 역사는 멀찍이 서서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아프게 몸에 새기는 것임을 깨우쳐주시고, 늙고 병들고 나약한 이의 손등에 당신의 손을 얹어 이들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시간을 연장해주소서.

 

우리로 하여 당신이 괴롭지 않은 세상 일구게 하소서.

(안도현의 새해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