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현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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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의 아침은 죽음을 이긴 승리와 생명의 탄생을 축하하는 기쁨의 날입니다만, 오늘 우리는 모두 지난 수요일에 일어난 여객선 세월호 대형 참사로 인해 슬픔 속에 잠겨 있습니다. 생명은 나이가 들었던 젊었던 모두가 소중한 생명입니다만, 다수의 실종자가 이제 17세의 꿈 많은 고등학생이라는데, 더욱 아픔이 깊습니다. 씻어낼 수 없는 아픔을 당하신 유가족 분들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세월호 참사와 민족 집단 트라우마]

 

교회 앞 사거리에도 십 년도 전에 잃어버린 딸을 찾아달라고 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습니다. 제 기억에 이 현수막을 1호 터널 입구에서 처음 본지가 7,8년이 넘었습니다. 현수막이 닳고 글씨가 희미해지면 새로 갈곤 했는데, 최근 몇 개월 사이에 서울 시내 곳곳에 이 현수막이 붙었습니다. 십년 전 딸의 어린 사진을 붙여 놓았습니다. 추측컨대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라고 가족들이나 친지들이 다 말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님은 딸에 대한 기억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를 보고 싶은 마음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 집단적 트라우마가 생기고 있고, 자녀를 떠나 보맨 부모님들은 전국의 중고등학생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어 더욱 마음이 괴롭습니다.

 

살다보면 사고는 기계고장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이유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사소한 부주의로 인해 일어납니다. 저는 참사 관련 언론을 읽어보면서 너무 화가 많이 났습니다. 구명조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고, 그리고 구명조끼를 꺼내 입으니 그 끈이 떨어진 것도 많았다고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배 밑창까지 들어 올려서 보는 안전검사를 마쳤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 시민연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선박 점검하는데 드는 시간이 평균 12분이었다고 합니다. 42개의 비상용 구명정 중 두 개만 펴졌다고 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제가 외국의 여객선을 타보면 구명조끼는 아주 눈에 쉽게 뜨이는 곳에 놓여 있습니다. 끈이 떨어진 불량품은 눈을 비비고 봐도 없습니다.

 

한번은 모든 승객들이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군대에서 사열받는 것처럼 일렬로 서서 일일이 제대로 조끼를 착용했는지 점검을 받았고, 비상구가 어디인지 알려줍니다. 며칠 전 독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중동출신의 한 아버지가 서류미비로 인해 불법체류자로 체포가 되어 십년을 넘게 살아왔던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강제출국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그는 승객들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얘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승객 모두가 안전벨트 착용을 거부해서 결국 비행기가 뜨지를 못해 이 승객이 보호소로 이송이 된 후에 비행기가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런 경우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몇몇은 큰 소리로 지금 장난하는거냐?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고, 저 사람 빨리 강제로 앉히고, 빨리 떠나자고 연결 비행기 놓치겠다고 재촉을 했을 것입니다.

 

[안보불감증과 안전불감증의 정비례 관계]

 

우리나라는 교통사고율이 세계에서 최고의 나라이고, 그리고 교통사고가 났다하면 중형사고로 번지는 치사율 또한 세계 최고입니다.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안전불감증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세계경제 13위국이요 군사력 7,8위의 대국이 이런 불명예스러운 국가가 되었는가? 그건 생명을 경시하는 죽음의 문화가 사회 전반에 깊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죽음의 문화는 어려서부터 들어온 남북의 군사적 대결로 인한 전쟁공포에 기인합니다.

 

근거도 없는 천안함 침몰사건, 최근의 장남감에 불과한 무인기 몇 대를 갖고 이것이 북에서 보낸 것이고 여기에 폭탄을 실으면 테러살상용이 될 것이라고 하는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테러공포가 밥 먹고 똥 싸는 일 마냥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쟁위협에 면역이 높아져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런 것들이 정부의 조작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천안함도 그러고, 무인기도 그러고 북에서 합동조사하자고 요구하면 떳떳하게 그 요구에 응하고 그 책임을 면전에서 물으면 되잖습니까? 아니 북이 그렇게 나오기 전에 북을 향해 조사단 만들자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늑대가 왔다고 소리치는 양치기에 하도 속은 마을 사람들이 늑대에 대해 불감증을 갖듯이, 지금 이 남한 땅은 계속해서 조작되는 간첩단 사건들과 전쟁공포용 거짓 사건들로 인한 안보불감증이 만연되어 있고, 이는 생활에 대한 안전불감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경제수치는 나날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여전히 십년 전의 세계 최고의 교통사고 치사율과 자살율은 변함이 없을뿐더러 2위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부터 불법관권선거로 당선되었다는 것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대선부정선거 백서를 낸 사람들을 재판하고 있는데,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안함에 의문을 제기한 미국에 사는 한국인 항해전문 박사가 사업차 입국을 하겠다는데 입국비자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거짓은 감춘다고 감추어지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진도 참사 현장에 있는 학부모님들은 실시간 발표되는 언론기사들이 엉터리가 많다고 분노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저도 유투브를 통해서 보았습니다만, 심지어는 참사현장을 찾은 박근혜씨가 마이크를 잡고 학부모들과 얘기하던 중, 바로 앞에 앉아 있던 한 학부모가 핸드폰을 들고 지금 배안에 있는 자식과 통화가 됐다고 하면서 전화를 받아보라고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를 치며 일어섰는데, 그대 갑자기 박근혜씨가 못들은 척 하고 등을 보이며 돌아서서 나가고 경호원들이 그 사람을 제지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자리가 아니라 분노를 더 키우고 있어 오밤중에 청와대를 찾아가겠다고 20킬로를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선장 이하 승무원들은 70%가 살고 300명 가까운 고등학생은 반대로 70% 사망하는 역전현상이 생기는 것은 바로 어려서부터 근거 없는 안보위협과 전쟁공포 속에서 살다보니 자기도 모르게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자기 안전부터 먼저 챙기는 무의식적인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나부터 무조건 살고보자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 사회 대부분의 정치인들, 재벌들, 법조계의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입니다. 오히려 평범한 분들이 살신성인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여성선원은 자기 조끼를 벗어 학생에게 주어 살아나지 못했고, 또 승객 중에는 자기 안전을 포기하고 시트를 찢어 끈을 만들어 학생들 20명을 끌어올린 분도 계십니다.

 

지금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이 죽음과 전쟁의 문화를 벗기지 않는 한, 이런 사고들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말로만 통일 대박, 남북대화 외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고 최소한 종교인들이라도 접촉을 허락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대화는 하지 않고 군사훈련만 계속하고 있으니 어찌 되겠습니까? 현대는 전쟁이 일어나면 승자는 없습니다. 민족공멸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쓰지도 못할 첨단군사 무기구입비의 백분지 일, 한미군사훈련비와 미군주둔비의 극히 작은 부분만 여기에 투자해도 우발적인 대참사는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현존- 저항, 고난, 개혁의 신앙 공동체]

 

부활절 아침 긍정적 얘기로 즐겁고 승리에 찬 하늘뜻펴기를 진행하고 싶은데, 이 땅의 현실이 저로 하여금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늘 새벽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있은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에 기장총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대표하여 화해통일위원장으로서 남북교회 부활절공동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연합예배 주보에 실린 글의 일부입니다.

 

부활절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한반도의 선교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88545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는 도착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 왔습니다. 이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예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로 하느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그렇게 부활의 소망을 품고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 온 한국개신교회는 올해로 선교역사 1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초창기 조선교회는 구한 말 사회전반에 공고하게 뿌리내린 봉건적 관습들을 개혁하고 민족의 위기 앞에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구호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들을 돌봄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회가 처한 현실은 매우 우울하고 암담합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로서 그리고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서세상적인 가치나 기준에 늘 비판적이었습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세상이 볼 때 교회는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이와 달리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고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개신교회는 세상의 대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세상의 걱정거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제 정말 남한의 교회는 만성적인 위기 불감증에 걸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질을 논하지 않더라도 그간 양적인 숫자를 자랑하여 왔습니다. 8,90년대에는 1200만 성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급속히 줄어 지금은 600만 성도가 정설로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남은 일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어떤 희망을 만들어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희망은 예수 부활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고 예수 부활에 관련하여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가장 정확한 질문은 왜 예수가 로마의 정치형인 십자가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으며, 왜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외침을 외쳤을 때에 예루살렘 성전 사제들과 로마와 헤롯의 정부 관리들이 이를 제재하고 소리를 치지 못하도록 감옥에 가두었는지에 대해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한국교회를 병들게 만들어 온 지금까지의 타계적이고 영적 개인 차원의 구원 신앙을 한단계 뛰어 넘어 하느님 나라에 연결되는 역사적-사회적 신앙의 실천으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된 부활 신앙은 세상에 현재하면서도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저항공동체를 통해서 증거 됩니다. 그리고 나아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역사에 기꺼이 동참하여 어떠한 고난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고난공동체를 통해서 확증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활은 우리로 하여금 결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개혁공동체로 나아가게 합니다. 김재준목사는 말합니다. 교회가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은 계속 창조하시고 쉬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이고 세상은 마치 급한 경사면을 흐르는 강물처럼 급류가 되어 흐르기 때문에 교회가 자칫하면 익사하거나 망각지대에 몰려 매몰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부활절을 맞아 우리 모두 부활신앙으로 다시금 재무장하여 향린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천상의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여기서 사도바울이 말하는 천상의 것이라 내세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의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세속적 가치에 반대되는 생명과 평화, 정의의 가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시어 그를 눈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벗겨내고, 그의 손과 발을 묶고 있는 끈을 풀어 가게 하라는 말씀은 곧 세상 가치에 매여 보지 못했던 진실을 바로 보고, 겁으로 인해 하지 못했던 진리의 행동들을 과감히 행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보고 겁을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배후에는 역사의 주관자이신 야훼 하느님이 계십니다.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놀라운 일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 세상이 쓸모없다 한 그 사람이라도 주님 손에 붙잡히면 놀라운 역사를 펼쳐나가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하늘의 말씀입니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