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민족 사랑

55:1-5; 145:8-9; 9:1-5 14:13-21

 

지난 주 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표 10명과 함께 와싱톤을 방문하여 미국 전역에서 모여든 3백명의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는 목사/신도들과 함께 2백년의 역사가 있는 파운드리 감리교회로부터 백악관 앞까지 평화시위를 갖고 이어 백악관 앞 라파에트 공원에서 통일기도회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먼저 영상을 통해 다녀온 보고를 드리고 오늘의 하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큰 슬픔-민족 사랑]

 

오늘의 로마서 말씀은 그 유명한 바울의 민족사랑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내 혈육을 같이하는 내 동족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조금도 한이 없겠습니다.” 물론 대충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전부였고 그리스도를 빼고 나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이 고백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생명도 천사들도 권세의 천신들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능력의 천신들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나타날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서 그리스도를 떼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고백과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하는 고백은 서로 모순이 있는 듯 보이지만, 전자는 현실의 고백이고 후자는 가상의 고백입니다.

 

민족 사랑은 그의 선택과 의지에서 나온 것이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사랑은 그의 선택이 아닌 하느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지가 하늘의 선택 곧 운명의 힘을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민족사랑에 대한 의지가 하느님의 선택 곧 자신의 운명을 거역할만큼 크다고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동족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율법주의에 매여 있기에 괴로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깊이와 모양은 다르지만, 삶에 아픔이 있고 번민이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여러 가지의 슬픔과 번민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민족에 관한 번민을 큰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의 아픔을 동시에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고 가장 크고 중요한 아픔을 먼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아 가족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만,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사를 헤매는 일을 겪을 때에는 큰 슬픔을 겪기 마련입니다.

 

[큰 슬픔 - 가족 사랑]

 

지난 주 저는 정란경전도사의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고, 그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자로 봉사하고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십여년전 가정 심방으로부터 지금까지 종종 그 얼굴을 대해왔고, 40대 후반의 건강한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정란경전도사님은 향린교회를 이십년 이상 출석하면서 성가대원으로 교사로 여러 봉사 직분을 감당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고 남편의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신학생으로 전도사로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고 있었기에 앞으로는 가정에 하느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을 기도하고 있었기에 저로서는 충격이 더욱 컸습니다. 며칠이 더 지나야 결과를 알 수 있다 하고 의학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회복을 위해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와싱톤 평화통일 행진에 많은 분이 애를 썼는데, 이중 한 분이 조금 전 영상에서 보았던 미국 아틀란타연합감리교회의 김정호목사입니다. 이분은 보스톤에서 홍근수목사님과 함께 부목사로 일하면서 홍목사님으로부터 민족통일에 대한 비전을 품었습니다. 작년에 그 교회에서 진행된 한반도국제평화회의를 앞두고 큰 아들을 잃는 슬픈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30년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전연 이를 눈치채지 못했고, 회의가 끝난 후 지인을 통해 들었습니다. 그는 민족분단의 비극으로 일어나고 있는 큰 슬픔 안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작은 아픔을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그도 한때 이로 인해 깊이 좌절하고 목회를 떠날 것도 고민하였지만, 지금은 더 단단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진주는 많은 여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보석입니다. 진주는 다른 보석과 달리 땅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바다 속 진주조개에서 얻습니다. 그런데 진주조개라고 해서 다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진주조개에 모래알이나 기생충알과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나카’(nacre)라는 물질을 만들어서 이를 감싸는 과정을 통해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조개에게 있어 이 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을 만드는 일은 자신의 몸을 쥐어짜는 하나의 고통입니다. 조개가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나카라는 물질을 내면 진주가 만들어지지만, 만약 이것이 고통스럽기에 이를 포기하고 자신의 몸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외면한다면 이 진주조개는 결국 부패하여 서서히 죽어갑니다.

 

[진주인가? 파멸인가?]

 

삶에 고통이 누구에게나 임하지만, 어떤 사람은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이겨내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더욱 성숙시켜 나가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술이나 도박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상 성공이라는 명분하에 일에 매몰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문제를 잠시 잊을 수 있게 하지만, 결국 그 인생은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민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민족의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하고 돈벌이에만 몰두하는 일은 마치 개인이 당한 문제를 술이나 도박으로 외면하는 일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현재 남과 북은 휴전상태입니다. 휴전이라는 것은 운동경기에 있어 휴식시간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북이 미사일을 공해상으로 쏘았다고 남한과 미국(迷國)이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서로 군사훈련을 하고 미사일을 쏘는 것은 축구경기로 말하면 선수들이 후반전 시합을 위해 몸을 풀면서 슈팅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과 미국이 미사일을 쏘면 괜찮고 북은 쏘면 안 되는 것인가요? 말은 유엔의 이름으로 제재를 하는 것이지만, 이는 결국 북을 굴복시키기 위한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미사일 중지나 핵포기 요구가 아니라 먼저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고 이 과정 속에서 군축이나 핵문제는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민족을 더 큰 수렁으로 몰아넣는 파괴행위입니다.

 

[회개와 용서 사이에서]

 

아까 영상에서 보았듯이 이번 평화행진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제가 작년에 만났던 미국무성을 대표한 킹대사와 대화를 갖는 시간에 NCCK 대표 3명과 미국교회 대표 6명 일행은 백악관 동부청사에서 미국가안보회의 한반도담당 보좌관인 시드니 사일러와 2시간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물론 미국의 대북정책을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북을 비난하고 북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얘기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세계 평화의 리더쉽을 발휘하기 위해 먼저 60년 이상 진행되고 있는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포기하고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으로 바꾸는 대화를 시작하면서 그 안에서 핵무기와 군축에 관련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물론 대화는 서로간의 입장이 맞서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는 없었지만, 남한 민중을 대표해서 평화통일의 확실한 입장을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었습니다.

 

대화 중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일본의 아베정권이 평화헌법 9조를 무시하고 군사재무장을 시작하는 일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자 이 보좌권이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가 남한에 거주할 때, 한국인 아내랑 남한의 대형교회 중 하나인 O 교회를 2년동안 출석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돌아가신 H 목사의 설교 얘기를 하였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회개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일본이 조선 침략이나 정신대에 대해 회개하지 않는다고 비난을 하였다고 합니다. 몇 주 후에 용서의 설교를 하기에 이 분이 속으로 아니 지난번에 회개하지 않는다고 일본을 비난했는데, 오늘 설교처럼 먼저 용서하면 되지 않겠는가?’하고 말하기에, 제가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Repent, first!'(회개 먼저!) 그랬더니 이분이 곧바로 ’No! Forgive first!'(아니, 용서 먼저!) 그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OK then, why don't you forgive the North Korea first.'(, 그래 그러면 당신이 먼저 북을 용서하면 되겠네.) 그랬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화제를 돌리더군요. 용서에 관해 누구나 남 말하기는 쉬운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주기도에서 용서에 관해서는 내가 먼저 남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 후에 하느님께서 나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가르친 것입니다.

 

[선교는 개종이 아닌 매혹으로]

 

이분이 H목사님의 영향을 받아 뉴욕에 있는 작은 한인신학교도 다녔고 은퇴하면 북에 가서 선교하는게 소원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는 북의 붕괴와 개종을 전제로 하는 얘기입니다. 14일 방한을 앞둔 프란치스코 교황이 얼마 전에 행복10계명을 발표했습니다. ‘식사 때는 텔레비전을 끄자.’라는 우리 생활에 매우 밀접한 구체적인 제안도 있지만,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들지 말자는 매우 충격적인 얘기를 했습니다. 사실 유럽의 가톨릭이 중세시대에 유럽에서 그리고 근대에 이르러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개종을 강요하였습니까? 죽음을 앞둔 인디언 추장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라며 개종을 권유하는 선교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네가 말하는 그 천국에는 저 백인들도 오느냐?’ ‘그렇다고 말하자 그렇다면 나는 천국을 가지 않겠다.’

 

교황은 개종에 관련하여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교회의 성장은 개종 시도가 아니라 매혹시킴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나는 당신을 설복시키기 위해 말한다는 태도야 말로 최악의 종교적 태도이다. 타인에 대해 마음을 열자. 마음을 닫는 순간 자기중심적이 되고 그리고 고인 물은 썩는다.’ 올 여름에도 남한의 수많은 교회들이 해외선교에 나서고 있습니다. 세계 2위의 해외선교사 파송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저도 미국에 있으면서 해외 선교를 오랫동안 해보았고, 이것이 갖고 있는 복음의 장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말한 대로 피선교지의 전통적인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동시에 저들이 갖고 있는 삶의 아픈 문제들을 해결하는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저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열린 태도로 선교하지 아니하고 당신들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우월적이고 강압적인 태도로 선교를 하고 있기에 우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시드니보좌관의 태도가 그러했습니다. 미국은 무조건 선이고 북은 무조건 악이라는 흑백사고가 뚜렸했고, 이 잘못된 신념에는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회의가 끝나면서 에스겔 37장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언자 에스겔 각각 북 이스라엘왕국, 남 유다왕국이라고 쓰여진 두 막대기를 하나가 되게 붙들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제가 뒷면에 North Korea South Korea라고 쓰인 작은 십자가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똑같은 십자가를 이미 목에 걸고 있었는데, 그가 십자가를 받자 자기 목에 걸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그가 진정 남과 북의 어느 한쪽에 의한 흡수통일이 아닌 쌍방이 공존하는 평화 통일의 정책과 오바마가 대선 후보 시절 공개적으로 답했듯이 북의 통치자와 직접 만나 대화로 모든 문제를 풀어갈 것을 기도했습니다.

 

[오늘의 바빌론 제국]

 

오늘 세계는 한반도의 문제보다 팔레스타인 문제가 더욱 시급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16세의 가자지구의 한 여학생이 트위터에 올린 글처럼 자기가 태어나서 벌써 3번째 전쟁을 겪고 있는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느냐?’는 문구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평화적 공존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거나 아니면 그 지역에서 내어 쫓고자 하고 있습니다. 2천년전 자기 조상들이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곳에 2천년동안 살고 있었던 주민들을 내어 쫓고 자기들의 나라를 세우고 저들을 완전히 몰살하려고하는 정책은 제국이 논리요 깡패들이 하는 짓과 다름이 없습니다. 이름은 이스라엘이지만, 그들의 태도는 유대민족을 노예로 만들었던 애굽제국이나 유대왕국을 멸망시켰던 바빌론제국이 하던 짓과 전연 다름이 없습니다.

 

김태준집사님 부인되시는 분은 이소희권사님으로 근처 초동교회 교우이신데, 저희 교회에도 행사가 있을 때마다 출석도 하셨고, 국악찬송가의 작사자이시기도 하십니다. 시인으로 활동하시면서 여러 시집을 내셨고 최근에는 귀의 비밀이라는 시집을 내셨는데, 그중 [이스라엘 순례기 2]라는 시가 있어 한번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소제목은 - 분리 장벽 안에서도 꽃은 핀다 -

 

이스라엘과 팔레스틴 사이에는

입을 봉한 근육질의 사내가

버티고 서 있었다

 

같은 조상의 형제와

피와 피 사이를 흐르는 혈통을

싹뚝 잘라버린 분리 장벽은

첨예한 칼이었다

사라졌다던 베를린 장벽,

만리 길 따라온 38선의 그림자가

흉물스러웠다.

 

왕눈 부라린 보초가

감시망을 펼치고 있는 문을

비자도 없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당찬 아몬드 꽃잎이

쌀쌀한 팔레스틴 길목마다

따뜻한 봄을 퍼부으며

 

형제들의 마을에 화해를 재촉하는지

분홍빛 찬란한 종을 메아리로 풀어

음흉스런 사내의 귓속을

후벼 파내고 있었다

 

분리장벽으로 인한 갈등의 아픔과 그것이 무너지리라는 희망을 기도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남북 민중들의 염원과는 달리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듯이, 팔레스틴과 이스라엘 또한 그 땅을 살아가는 민중들의 기도와는 달리 분단의 장벽과 차별 그리고 살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분단의 시작과 그 유지에 있어서도 배후에 미국이 있듯이 이스라엘의 배후에도 초강대국 미국이 있고 그 안에는 미국의 경제와 외교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있고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군사무기산업 체제가 있습니다.

 

[악의 축]

 

미국은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는 전쟁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미국 산업의 3분지 1이상이 모두 군사무기 생산에 관련되어 있기에 만약 전쟁이 수십년간 진행되지 않아 창고에 무기가 차고 넘치게 되면 군수공장은 문을 닫아야 하고 그렇게 되면 수천만명의 휴직자가 생겨나고 그렇게 되면 미국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베트남과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등 세계 어디선가 미국이 직간접 개입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무기는 미국산이 주로이지만, 총이나 포탄 그리고 소형 미사일은 남한 제품입니다. 이스라엘과 남한은 미국의 중재 아래 무기수출국으로 급상하고 있으면 서로 간에 무기를 사고팔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세계 전쟁을 유발하는 악의 축인데, 여기에 똘만이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가 남한입니다.

 

그래서 이번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보면서 국제 앰네스티에서는 남한 정부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서명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공식적으로 남한은 2008년 이후 이스라엘에 23조원어치의 무기를 판매했는데, 그 무기가 지금 가자 지역의 팔레스틴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를 희석하기 위해 영국의 유대인이 운영하는 Telegraph라는 신문에서 하마스정부가 북조선으로부터 무기 구입을 하기 위해 선금을 지불했다는 기사를 보도했는데, 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이를 뒷받침할만한 어떤 증인이나 증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않고 그저 추측에 근거한 애기였고, 북조선 정부는 즉각 이를 부인하는 발표를 했습니다. 사실 지금 가자 지구에 밖으로부터 무기를 들여가는 일은 이스라엘이 해상을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있는 무기들은 이집트를 통해 오래 전에 들어간 이미 유효 날짜가 지난 무기 매우 성능이 약한 무기들입니다. 그러니 수천발을 쏘았는데도 목표지점에 떨어진 포탄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피 묻은 손을 부끄러워하면서]

 

이제 우리도 평화를 이야기하려면 남한 자체가 미국 주도의 세계 군사제국주의의 아류로 편성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얘기해야 합니다. 이제는 다른 나라만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무기를 통해 사람이 죽는 피 묻은 손을 갖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손에 묻은 피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평화주의자로서 이런 현실이 너무 부끄럽고 원망스럽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는 말은 허구요 거짓입니다. 세계는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면 군사기지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반드시 교회가 있는데, 여기서는 성서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서의 핵심은 샬롬 곧 평화인데, 이런 군사기지 교회에서는 목사는 성서가 말하는 참된 평화를 말할 수가 없고 오직 거짓 예언자들이 말하는 무력에 의한 평화, 로마의 평화와 같은 제국의 평화만을 얘기합니다.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이사야와 요엘이 외쳤던 참 평화, 창을 녹여 곡괭이를 만들고 칼을 녹여 호미를 만드는 참 평화를 얘기하면 군인들은 사기가 떨어지고 양심에 가책을 받으니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고 결국 교회는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니 목사가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야훼 하느님은 언제나 미국 편이라는 국수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핵발전소 옆에 있는 교회는 교인들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핵발전소를 찬성하게 되는 것이고 핵폭탄기지 근처에 있는 교회 목사는 핵폭탄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당시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 후원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무차별 공격해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 전 2,3 주를 다닌 새 교우가 이런 얘기를 저에게 하였습니다. ‘마음으로는 향린교회에 계속 나오고 싶은데, 현재 자기가 일하는 직장이 무기생산에 관련된 회사라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갈등이 일기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 순간 매우 괴로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을 것인지 아니면 그분이 편하게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다르게 얘기를 해야 할 것인지 갈등이 일었습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분이야 말로 살아있는 신앙의 소유자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향린교회로 돌아올 것을 확신합니다.

 

그제 유엔의 중재 아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72시간 휴전을 맺었지만, 두시간만에 협상은 파괴되고 죽음의 전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60여명의 군인들이 사망한 반면 팔레스타인은 약 1,500명의 사망자와 8천명의 부상자가 일어났고 20만명이 살던 집을 떠나 방황하고 있고, 사망자의 대다수는 어린이들과 여인들이며 심지어는 유엔이 운영하는 학교에까지 폭격을 하였습니다. 하마스정권이 일방적인 폭력에 그냥 당할 수만은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이 전쟁의 발단에는 지나가는 차를 세워 타고 가던 이스라엘 대학생 3명이 살해당하는 일에서 시작하였고 또 그 살해의 배경에는 가자 지역을 고사시키려는 이스라엘의 군사봉쇄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러하지만, 국가간의 전쟁의 원인에는 매우 깊은 뿌리가 있습니다. 이 뿌리를 뽑아내지 않는 한 전쟁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뿌리란 다름 아닌 민족사랑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애국 애족입니다. 약소국이 애국 애족하는 것은 생존의 한 방편입니다만, 그러나 이것이 절대화되면 역설적으로 전쟁은 피할 수가 없는 것이고 자기 파멸의 길이 되고 맙니다.

 

오늘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질지라도 자신의 동족을 위하겠다는 바울의 민족 사랑이란 하느님의 인류 사랑에 기초한 민족사랑이지 남을 죽이고 자기가 사는 이기적이고 국수적인 민족사랑은 아닌 것입니다. 지금의 호슬리를 비롯한 바울신학자들은 한결같이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에 반대하는 영적 존재들은(2:15; 고전 2:8; 15:24) 다름 아닌 로마제국과 그 통치 이념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하고 있습니다.(리차드 호슬리 바울의 반제국주의 복음’ {바울과 로마제국} 홍성철 옮김 2007 기독교문서선교회 214-224) 따라서 바울이 말하는 동족에 대한 슬픔과 번민은 로마제국의 통치이념에 포로가 되어 있는 유대율법주의와 성전중심의 지배 체제를 두고 하는 말이지, 유대교로부터 예수교로의 개종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라고 자처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바울이 말한 것처럼 설혹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민족을 사랑하겠다는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만 이 민족 사랑이 다른 민족을 폄훼하거나 말살하는 국수적이고 이기적인 민족 사랑을 넘어선 인류의 공존과 평화 연대라는 큰 틀에서 민족 사랑을 얘기하고 동시에 세상 제국의 거짓 평화를 고발하고 그들이 진정 무기를 내려놓는 그날을 향해 우리는 동요없이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 이사야가 말하는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먹을 것이 있다.’는 초청의 핵심이 담겨 있고, 예수께서 남자 성인만도 5천명을 먹이셨다는 4복음서에 모두 등장하는 급식기적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말이란 육적으로 풍성한 삶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넘쳐나는 영적 축복을 함께 나누라는 말인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께 경배하지 아니하는 이민족을 말살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한 형제자매로써 나눔과 평등의 공동체를 이룩하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왕을 세움으로 다른 민족들을 점령하기 시작했고, 결국은 더 큰 제국들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실패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같은 실패를 또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끼의 육적 목마름과 배고픔을 해결하는 일은 오히려 제국들이 더 잘하는 일입니다. 노인연금을 주겠다고 하여 대통령에 당선이 되고 청와대 권력의 측근인 어느 국회의원 후보자는 자신이 당선이 되면 이 지역 사회를 위해 폭탄예산을 끌어오겠다고 말하고 당선이 됩니다. 저는 민중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는 않지만, 대중에 대한 모멸감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깨어있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선생님의 말씀을 다시금 기억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사람을 부르시어 먹이시는 복음의 양식은 그런 육적인 것이 아닙니다. 세계 평화와 인류의 하나됨을 그리는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통치에 근거한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여기에 제자들을 향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는 예수님의 명령의 핵심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무슨 돈이 있었겠습니까? 빵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지만, 평화를 외치는 일에는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을 외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땅 끝까지 나아가 전해야 하는 선교의 핵심이고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는 전도의 핵심인 것입니다.

 

권정생선생의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란 글을 읽어드림으로 하늘뜻펴기를 마치고자 합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 만들 테고

탱크도 안 만들 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