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불어 있는 자다

(출애굽기 3:12-15)

 

                                                                                김경호(들꽃향린교회 목사)

 

모세가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을 만나 엄청난 사명을 받게 되자 그는 하느님의 이름을 물어본다. 하느님의 정체성을 물은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야훼(여호와)라고 답하셨다. 야훼(여호와)는 히브리어 동사 하야’(영어의 Be 동사에 해당함)의 미래형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우리말 번역에 스스로 있는 자”(개역, 공동번역은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했다. 임의적으로 스스로라는 단어를 슬쩍 첨가해서 에서의 창조’(ex nihillo)라는 서양사상의 발생학적 개념을 부가시켰다.

 

그러나 Be 동사라는 것은 자체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오는 말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더욱이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느님이 이어 자신을 조상들의 하느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다른 존재들을 들먹거려 소개한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것은 “I was with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해석해야 자연스럽다. 따라서 나는 굳이 멋을 부려 해석한다면 더불어 있는 자”(Be with)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문맥에 맞아 떨어지며 이집트의 노예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성정에 부합한다. 하느님은 더불어 계신 존재이시며 우리들은 그의 본성을 나누어 가졌다. 옛날에 히브리 노예들,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하셨던 하느님은 지금은 히브리 노예들과 함께 하시며, 동시에 I am with you,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인해 주신다. 하느님은 나아가서 가난한자, 약자, 억울함을 당하는 자와 함께 하신다.

 

이스라엘은 더불어 있는 삶을 실천해보지 못했다.

 

이스라엘은 다윗 솔로몬 때 잠시 힘에 의한 통일이 있은 후에 한 번도 공동체로 같이 하지 못했다. 원래 원수는 가까운데 있는 것이다. 서로 잘 모르면 원수가 될 것도 없다. 본래 하나였던 그들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서로 원수가 되어 으르렁 거리고 싸웠다. 남과 북이 여러 번의 위기와 세 차례에 걸친 남북전쟁으로 다윗 솔로몬 때의 국력을 다 잃어버리고 2류 군주국으로 전락했다. 이들은 끝까지 화해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다가 결국 외세를 불러들여 그들에게 어부지리만을 주다가 결국은 그 외세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다. 그렇게 마감된 것이 남과 북 모두의 운명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나라가 망한 뒤에야 정신을 차려 우리가 화해하고 하나가 되지 못한 것이 멸망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최근에 가까울수록 현대 성경학자들은 성경의 기록 연대를 점점 더 늦게 잡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든 성경은 모두가 포로기 이후의 문서이고 포로기도 한참 지난 후라고도 한다. 하기는 이스라엘 12지파의 근원을 이야기하면서 한 아버지 야곱의 열두명의 아들이 각각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원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인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이 12지파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나라인데 그 지파의 시조들을 살펴보니 각 12지파가 모두 한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 아들 중에는 함께 살아간 아들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열두 아들이 모두 골고루 흩어져서 예외 없이 서로 다른 집단의 시조가 되었다는 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는 매우 힘든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12개의 서로 다른 지파는 각각 기원이 다른 뿔뿔이가 아니고 한 아버지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이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그러기에 야곱이 유명한 것이다. 그의 행적은 계속 속이고 속이는 연속이었지만 그는 모든 민족을 묶는 끈의 역할을 하는 조상이기에 그의 역할은 위대하다.

 

포로기 이후에야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서로 분열되어 싸우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것을 후회하고 비로소 12지파의 연합체라는 것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서로 원수로 알고 죽어라 싸웠지 12지파가 연합해서 하나가된 역사가 없었다. 서로 남북왕국으로 나뉘어 원수로 여기고 싸우다 망한 것이 실제 그들의 역사이야기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은 12지파 연합체라고 한다. 포로기에 에스겔은 남과 북이 하나 되게 두 개의 막대기를 붙잡고 있으라하고 12지파의 연합체인 이스라엘의 복원을 꿈꾼다. 새로 성전을 짓고 그 성전에는 12지파가 드나드는 문을 사방 3개씩 12개의 문을 만들고 하나된 이스라엘을 꿈꾸게 된다.

 

그래서 서로 분열된 역사에 대한 강한 반성과 후회가 배어있는 것이 이스라엘 역사이며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는 서로 다투거나 해하지 아니하고 강하게 결속하는 이스라엘을 꿈꾼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이다. 그런데 그런 역사를 성경으로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크리스천들은 우리의 역사와도 너무나도 흡사한 이스라엘의 교훈을 보고 거꾸로 우리는 반공의 최후의 보루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한심한 성경읽기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북한에 세 가지를 제안했다. 그런데 북한이 즉각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드레스덴 선언과 관련된 것이라면 거부반응부터 보인다. 드레스덴 선언이 점점 천덕꾸러기가 되어 가는 형국이다. 북한의 현실을 고려하면 드레스덴 선언은 북한이 그렇게 싫어할 내용은 아니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부터 풀어 나가자. 둘째,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를 함께 구축하자. 셋째 남북 주민간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자. 일단 나쁜 얘기가 없다. 그런데 북한이 극력 반발을 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제안의 도입 부분부터 북한의 자존심에 큰 생채기를 줬다고 본다.

 

저는 최근 외신 보도를 통해 북한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 추위 속에서 배고픔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습니다.”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이렇게 북한의 무능을 비판한 뒤에 세 가지를 제안했다.

 

이런 제안은 받으라고 하는 말인가 받지 말라고 하는 말인가? 북이 자존심 때문에 받고 싶어도 못 받게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이후 민간단체의 대북사업들이 줄줄이 드레스덴 선언을 이유로 거절당하고 있다. 626일 산림 병충해 방제 작업을 합의해 놓고도, 북한은 714일 그것이 드레스덴 선언의 일환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는 이유로 합의 자체를 파기했다. 그가 말하는 통일대박론에 대해서도 북은 흡수통일론으로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상대의 자존심을 짓밟고 정체성을 무시해 가면서 어찌 한걸음 인들 통일로 가는 길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결국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생색만 낼 뿐, 실제는 북한이 거절할 수밖에 없도록 사전에 준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2 이명박 정권 때,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이 밀실에서 진행되자 국민들의 들끓는 반대에 부딪혀 그것을 조인하는 날 급하게 무기한 연기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꼼수를 부려 미국을 끼어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양해각서체결로 처리하려고 한다. 이것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구축하고 한국을 MD체계에 포함시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에 참여시키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간 밀착을 방해하고 긴장관계를 유도하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한국은 중국 탄도미사일의 공격 대상으로 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엠디(MD)뿐 아니라 미군 보호, 해상수송로 보호, 기뢰 제거, 유엔 다국적군과 피케이오(PKO) 활동 등에서 자위대와 공동작전을 수행하고, 상황에 따라 한국군이 자위대의 통제를 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에서 격변 사항이 있을 때 자위대 군대가 연합작전을 빌미로 한반도에 주둔 가능하고 그놈들이 또 몇십년을 한반도에 남아있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재진출 열어주게 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국민의 저항이 예상되니 국방부의 정보 기관간의 약정이라는 형태의 꼼수로 밀실에서 진행하려고 한다. 이는 전 국민적인 준엄한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을 경고한다. 문창극 사건이 정부의 정보력이 부족해서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조직적으로 친일세력이 국가의 중앙부를 장악하여 미국을 앞세워 일본 진출의 교두보의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칼날 위의 평화(개마고원, 2014)라는 이종석 장관의 회고록을 보았다. 2005년에 이종석 장관이 NSC 사무차장으로 있을 때, 노무현정부와 부시 정부는 북한의 급변사태시 작전계획인 작계 5029의 문제와 전략적 유연성 등에서 매끄럽지 않았다. 그런데 돌발사고가 생겼다 국가 기밀사항인 작계 5029의 내용이 신동아지에 비교적 자세하게 대서특필된 것이다. 그 일로 이종석 장관은 미국을 방문해서 민감한 기밀을 유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해명을 하고 마음을 조이며 책임추궁을 당해야 했다고 그 때의 난감함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신동아 기자에게 이제 지나간 일이니 이야기해달라 그 정보를 어디서 얻었느냐?”고 했더니 미국 정부의 당국자에게서라는 답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방문 이후에 한국은 작계 5029는 개념계획이라는 형태로 유지했고 반대하던 전략적 유연성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음흉한 외세들이 한국 정부를 주무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우리가 정신 차려서 주인 된 입장에 서지 못하고 여기 저기 끌려 다니면 결국 그들의 손아귀에 재산도 나라도 국민도 모두 바쳐야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보시고 목자 잃은 양같이 불쌍한 존재라고 안타까워하셨는데 오늘 대한민국의 국민이 그렇다. 더불어 계신 하나님은 온데 간데 없으며 진실은 사라지고 각종 음모와 거짓과 조작이 판을 친다. 어린 아이를 잃은 부모들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30일 가까운 시간을 금식하며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자며 단식을 하고 있다. 도무지 안 통하는 여당은 그렇다 치고 야당마저 야합하여 그들과 한패가 되어 돌아가니 이 백성이야말로 목자 잃은 양 같은 불쌍한 신세가 되어 하나님께 호소한다.

 

세월호 참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을 속이고 한강 다리 끊고 도망친 이래 권력층에 의해 저질러진 가장 무책임하고 끔찍한 사건이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가 터져 참사로 악화되는 동안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던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해경이 왜 구조는 않고 그저 배회했던 까닭이 밝혀져야 한다. 국정원은 세월호와 무슨 관계인지 밝혀져야 한다.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 등 모든 재난 관련 부처들이 엉망진창으로 허둥대거나 눈치만 봤던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세월호가 운항할 수 있도록 선령을 10년이나 늘린 이유는 무엇이며 과적이나 엉터리 상태에서 배의 출항을 허가한 이유가 무엇인지, 유병언씨를 잡으려 한 건지 죽이려 한 건지, 사인도 모를 정도로 그의 시신이 방치됐던 이유가 밝혀져야 한다.

 

정부가 사과한다고 한다. 몽땅 의혹투성이지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사과한단 말인가? 국가를 개조하겠다구 한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데 무엇을 개조한단 말인가? 모든 것에 앞서서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 가장 먼저이다. 그래야 아픈 가슴을 위로할 수 있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는데, 돈으로 봉해버리자는 것은 더불어 계시는 하나님께서 용인하지 않으실 것이다. 진상을 밝히고 용서를 구할 것은 구하고 털 것은 털어 버려야한다.

 

더불어 계시는 하느님,

임마누엘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