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지도 좋을까!(평양봉수교회 방문)

56:1,6-8; 133; 11:1-2.,29-32; 15:10-28

 

813일부터 16일까지 북조선의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초청을 받아 한국기독교교회협희회 대표단 19명 일행이 평양을 다녀왔고 저는 화해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참석하였습니다. 방문의 목적은 남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만나 815의 해방을 함께 기뻐하고 갈라진 민족이 화해하고 평화통일하기를 기원하는 모임을 갖는 일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이번 봉수교회 방문은 1997년 이래 다섯 번째 방문이었고 마지막 방문 이후 3년만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새로운 감격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히 제가 3년 전에 독창으로 불렀던 우리 국악찬송가에 있는 통일의 노래를 봉수교회 성가대가 이를 부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노래를 남북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찬양을 했는데, 저에게는 매우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먼저 이번 방문 길에 저희 교회 새날청년회를 담당하면서 한국기독청년연합회 총무이신 한세욱목사와 전국 YMCA연맹 사무총장이신 남부원집사님께서 동행을 했습니다. 이 두 분은 평양 방문이 처음이었습니다. 먼저 두 분의 얘기를 먼저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평양을 처음으로 다녀와서 ]

                                                                 남부원집사 (전국YMCA사무총장)

 

이번 방북은 저에게는 성서의 말씀처럼 마치 도둑과도 같이 다가온 참으로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저는 현금의 남북 당국 간 냉각된 관계를 생각할 때, NCC에서 나름대로 노력은 하겠지만, 결국 방북은 성사되지 못하겠지 하고 사실상 기대를 접고 있었는데 하느님께서 제 생일 선물로 주신 것 같습니다. 작년 11월에 중국 심양에서 <조그련> 그러니까 조선그리스도교련맹과의 한차례 만남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 장소가 평양인 만큼 괜한 설레임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제 안에서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34일 기간동안 여러 곳을 방문했는데 그 대부분은 옥류아동병원, 평양산원 유선종양 연구소, 릉라 곱등어관, 문수 물놀이장, 인민유원지 등 김정은 후계 이후 지난 3년간의 급속한(?) 발전상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짐작됩니다.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봉수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드린 이른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8.15 북남공동모임예배였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모두가 함께 참여한 성찬식이었습니다. 성찬식이 진행되는 내내 왠지 모르게 눈물이 계속 쏟아져 나왔습니다. 우리 대표단도 흘렸고, 봉수교회의 많은 교인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헌정 목사님의 솔로를 곁들여 함께 부른 통일의 노래도 모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예배 후 헤어질 때 교인들의 눈망울을 가까이 마주치면서, 그리고 다시 또 꼭 만나자는 따뜻한 석별인사를 들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저며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조헌정 목사님과 함께 보통강변을 산책하면서, 그리고 일정에 따라 방문했던 여러 곳에서 만나거나 스쳐 지나간 평양의 다양한 시민들(혹은 인민들)을 만나면서, 저는 한마디로 오랜 세월 경직된 체제 속에서 살아온 삶의 고단함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단함과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것이겠지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거기 머무는 동안 세 가지 생각이 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계속 어른거렸습니다. 첫째, ‘권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최근의 정치적 형국을 보더라도, 결국은 허리 짤린 한반도의 양 체제가 필요악과도 같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유지·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방의 존재 혹은 분단체제를 교묘히 이용해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은 혹은 민중들은 지배체제가 양산하는 이데올로기에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안타까운 형국이 지속되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동안 생각의 틀이 남한 중심으로 형성되고 고착되었었구나 하는 성찰과 자각이 일어났습니다. 외눈박이처럼 반쪽이 인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말이지요. 다석 유영모 선생이 말씀하셨던가요? 더 큰 전체를 사고하는 것이 진리에 더 가깝다고요. 그렇듯이, 한반도 전체를 늘 염두에 두고 사고하는 것이 바르고 옳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역사의 궤적들, 즉 조선말기 이후 일제 식민지 시대를 거쳐 8.15해방과 분단, 6.25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 분단체제가 고착화되어 서로 다른 길을 달려온 지난 60여년의 근현대사에 걸쳐, 우리 민족이 외세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려온불행한 역사가 계속 떠올라 저의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셋째, 한 사회의 변화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통일은 - 그것이 아무리 더디고 먼 길이라도 - 결국 의 각성과 민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튼튼하고 또 다시 퇴보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그 간명한 말씀이 다시금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저 자신, 한국기독교청년회의 사무총장으로서, 아니 그 이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한사람으로서, 하느님과 역사 앞에서 더 철저하게 신앙과 역사의식으로 저 자신을 연단하면서, 우리사회에 보다 넓게 평화의 기운을 일구고 그 기운들이 연합하여 민족의 평화적 통일로 수렴될 수 있도록, 다시 새롭게 옷깃을 여미면서 시민운동과 에큐메니컬운동에 매진해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안고 평양을 떠나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멀고도 가까운 길을 나서며]

한세욱 목사

 

어느덧 시간은 흘러 2015, 내년이면 분단 7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렇듯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통일의 이미지는 이렇게 쇠약하고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북측의 동포들이 먹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듣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고, 그들을 돕자는 광고나 포스터를 보고 행동을 결심했으나 그 때 그 마음뿐이었습니다. 이런 제 자신을 돌아보며 오로지 통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번 남북 공동기도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3년 만에 남북교회가 함께 기도회를 한 자리였고, 정부 차원이나 민간 차원에서의 남북 간에 만남이 거의 없는 현재의 분단 상황을 고려한다면 역사적인 자리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이번 남북 공동 모임의 의의와 역사성을 몇 번을 거듭 이야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는 제가 느끼고 생각한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전해드리려 합니다.

 

첫째는 이번 방문단에 감리교 감독 회장님이신 전용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봉수교회에서 설교 중 자신의 이번 평양 방문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제 돌아가신 아버지의 고향이 평안도입니다. 그렇게 말씀으로 듣기만 했던 평양인데, 이렇게 제가 와 보게 되다니 꿈만 같습니다. 그것도 66년 만에 말이지요. 이렇게라도 올 수 있어 하느님께 감사하고, 돌아가서도 통일의 길에 더욱 열심을 다하겠습니다.”

 

목사님의 그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할아버지의 고향도 평안남도 강서입니다. 평양과의 거리는 고작 90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차로 30분이면 달려갈 거리입니다. 한국전쟁 때 피난길에 아버지를 낳으시고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장성에 터를 잡으시고 두고 온 고향의 가족을 죽기까지 그리워하셨을 할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가슴이 먹먹해 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남북교회의 지도자간의 만남을 주선하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한반도의 화해와 통일을 향한 교류가 시작되고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한 논의들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공동 모임도 지난 보세이 프로세스의 결과라고 한다면 그 공은 아마 WCC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공동기도회는 아이러니 하게도 남북교회는 세계교회협의회의 도움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는 오늘의 비극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속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서울에서 평양까지 불과 3시간이면 차로 갈 것인데, 우리 대표단은 북경을 거쳐 그리고 심양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이렇게 돌고 돌아서 만나야만 하는지,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가 없었습니다.

 

[만남]

 

힘든 여정 끝에 북경에서 평양 가는 비행기에 앉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만난 북측의 인민들을 보자 가슴이 떨려 왔습니다. 실제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저를 보는 시선 속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낯선 곳에 이방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제 자신 속에 있던 어떤 마음의 소리가 들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떨리고 소외된 마음을 품은 채 순안공항에 내렸습니다. 어느새 우리 대표단을 마중 나오기 위해 강명철 위원장을 비롯한 조선그리스도교련맹의 임원들이 나와 계셨습니다. 익숙한 사람들의 환한 미소와 환대해 주는 그들의 웃음과 가슴 벅찬 포옹에 비행기에서 가졌던 알 수 없었던 두려움과 걱정이 눈 녹듯 녹아내렸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인 것을, 이렇게 만나면 좋은 것인데. 만나고 만나고 또 만나길 소망합니다.

 

[통일 세대]

 

지난 보세이 프로세스의 결과물 중에 주목할 것은 남과 북의 교회가 그리고 세계교회가 차세대 지도력 개발을 위해 청년과 여성의 참여를 의무적으로 보장하고 교육/양성 프로그램을 실행하자는 것도 실천사항으로 함께 결의한 것입니다. 이는 평화와 화해의 세대를 열어나갈 세대들인 청년들이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며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매우 의미 있는 제안이라 생각했었고, 보세이 회의가 끝나고 2달 만에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이번 대표단 19명 중에 청년대표가 4명이나 포함되었기 때문입니다. 4명은 제가 일하고 있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를 비롯하여 YMCA, YWCA,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의 대표자들 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로 볼 때 진짜 청년은 저밖에 없었다는게 함정입니다.

 

이제 2015년이면 해방 70, 분단 70년 그리고 6.15 공동선언 20돌을 맞게 됩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이룬 분단 이후 최고의 성과를 후세인 우리가 이뤄 내야할 위치에 서게 것입니다.

 

언제나 역사는 앞을 내다보고, 사소한 일에도 날카로운 이성과 세심한 감성으로 준비하는 자들의 몫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평양에서의 꿈결 같았던 시간들이었지만, 그 곳에서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은 결코 작지 않고,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 것들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어갈 청년들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힘으로 우리가 나서서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을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기를 바라며,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제 몫을 감당하기는 저와 청년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5번째 방문에 있어 특이한 경험]

                                                                                                      조헌정목사

 

1. 우선 815라는 남북이 광복절과 해방절로 축하하는 국가 경축일이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남한에서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서울을 방문하고 미사를 비롯한 여러 축하 행사가 있었고, 북조선 또한 국가적 행사가 있었고, 휴일이었기에 다른 때와는 달리 수많은 시민들이 놀이장소를 찾아 즐기는 활발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2. 특히 북에서는 곱등어라고 부르고 남에서는 돌고래라고 부르는 놀이관과 문수물놀이장을 각각 방문하였는데, 이는 최근 2년동안에 개장이 된 시설로서 북의 변화된 모습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곱등어놀이장에 가서 자원을 하여 수천명의 북조선 형제자매들이 보는 가운데 훌라 허리 돌리기를 했는데, 제가 열정적으로 하여 주민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서너 차례 앵콜 돌리기를 하였습니다.

 

3. 이전에는 호텔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밖으로 나가 산책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주 자유스럽게 아침마다 호텔 주변 보통강변으로 나가 30분씩 산책을 하며 지나가는 주민들과 눈을 맞추고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4.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주고받고 있었고, 택시도 볼 수 있었고, 특히 여성들의 옷맵시나 머리맵시가 완전히 달라져서 남한인지 북조선인지를 구분하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5. 그러나 우리가 병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을 방문하는 동안이나 호텔에 머물 때에도 몇초 동안 불이 전기가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것이 전력부족 때문인지 아니면 시설노후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미루어 볼 때, 아직도 전력의 어려움이 있는 것은 아닌가 추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병동이나 북조선에서는 류선이라고 부르는 유방암 전문 병원을 방문하였는데, CTMRI 같은 국제적인 최신 기계들을 수입하여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뉴스에서 보았듯이 북조선은 김정은위원장 통치 시대에 들어와 경제개발에 힘을 쏟고 있고 그 효과가 일어나고 있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평양시민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기운이 이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통일의 길은 아직도 멀다.]

 

저희들은 저 멀리 북경을 거쳐 비행기를 갈아타며 평양을 들어갔다 와야 했기에 4일간의 여정 중 이틀은 모두 오고가는 여행시간으로 소비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 3세 우츠벡 사람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에서 남으로 내려왔고, 얼마 전에도 오스트렐리아 사람 4명이 자전거로 한반도 북쪽에서 판문점을 거쳐 저 남쪽까지 한반도횡단 일주를 하였습니다. 왜 외국 사람들은 저렇게 판문점을 통해 오고가는데, 정작 언어가 같고 풍습이 갖고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우리 북과 남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가? 도대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남북은 서로를 향해 비난을 하고 있지만 말고 정말 교황께서 당부한대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를 해서 그 해결점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언론은 지금도 끊임없이 북조선을 악마의 나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60년 이상 경제봉쇄와 적대적 대결정책을 통해 북조선을 멸망시키기 위해 압박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대로는 그건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미움이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무너뜨리듯이 우리가 북을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우리 안에서의 미움도 계속 커져 내부 분열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가 기회만 되면 통일대박이니 드레스덴선언이니 녹화공동사업이니 하며 아무리 대화를 주장해도 북을 점령하기 위한 한미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이는 허공을 향한 독백밖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칼을 감추고 대화하자고 손을 내밀면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번에도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목사님들이 계속 말합니다. 화해나 평화를 얘기하면서 계속 군사훈련을 하는데, 그게 말이 되느냐고 거기서 훈련을 하면 우리 북쪽 사회는 이에 맞서서 계속 긴장할 수밖에 없고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 훈련이 북을 점령하기 위한 군사훈련이 아니고 그냥 정기 합동훈련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조선반도 근처에서 하지 말고 저 멀리 태평양에 가서 하던지 아니면 미국 근처에 가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입니다. 훈련이 필요하다면 훈련은 훈련이니 불필요하게 상대방을 자극하면서 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다음 주면 또 다시 을지가디언 한미군사훈련이 시작합니다. 방귀가 잦으면 싼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났다하면 한반도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합니다. 오직 패자만 있을 따름입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최근 윤일병집단 폭행살인사건이 군 막사 안에서 일어났듯이 군대 내에서의 폭행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하구한날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하는데, 그게 부지불식간에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자나깨나 사람 죽이는 훈련을 하는데, 어떻게 폭행을 막습니까? 못 막습니다. 저도 전방에서 사병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기합이라는 미명 아래 숱하게 폭행을 당했습니다. 1년간은 밤마다 변소 뒷간으로 불려가서 몽둥이로 맞거나 손으로 맞았습니다. 심지어는 그냥 보초근무하고 있는 저를 대학 나왔다고 술에 취한 상급병이 지나가다 저를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상급병이 기합을 준다고 제 뺨을 때렸는데, 그때부터 고막에 이상이 생겨 청력에 문제가 생겼는데, 요즘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어 주위가 시끄러우면 소리는 들리는데,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거기에 저는 81미리 박격포부대였는데, 훈련 중에는 무거운 포열이나 포판을 어깨에 메고 다녔고, 기합을 받으면 이를 메고 연병장이나 작은 언덕을 뛰어오게 했는데, 그때 무릎 연골 파열이 있어 제대로 걷지를 못했었고, 그때부터 평생동안 무릎 통증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우리 고상균목사도 지금 허리통증으로 심하게 고생을 하고 있는데, 군대에서 작업을 하다 얻은 병입니다. 여러분 중에도 군대에서 얻은 병 때문에 평생 고생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거 국가가 보상합니까? 안합니다. 남의 귀한 아들 죽여 놓고도 사고사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창조와 창의를 외쳐도 군대문화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그건 구호에 불과합니다. 지금 청와대 주변에는 군장성들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사고는 획일적입니다. 평생 명령에 따라 살아왔고 명령만을 하기에 거기에서는 창조가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평화상 이외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세계수학대회가 서울에서 열렸지만,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는 아직까지 한명도 없습니다. 이란사람 인도사람 세계 각국 출신의 사람들이 다 받지만, 아직까지 한국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머리가 나쁜게 아니라, 성적입시위주의 학교문화와 군대문화에 의한 획일통제사고가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안에 내재되어 있는 창의적 사고를 짓누르기 때문입니다.

 

21세기는 창조의 시대입니다. 창의력이 경제를 먹여 살리는 시대이고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어가는 시대입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군대 병영문화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남북이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 먼저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돈 벌어서 외국으로 이민을 한다고 해도 분단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외국으로 나가 살면 살수록 외국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분단의 모순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분단의 아픔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됩니다.

 

성서는 이런 분단의 아픔을 지적하면서 이로부터의 회복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시편 133편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개역성서에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성서는 한명의 개인을 말하지 않습니다. 에덴동산은 하느님나라의 상징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한몸으로 살았습니다. 죄가 들어온 이후 저들은 분열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12명을 비롯한 여러 제자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초대교회는 120명의 성도가 다같이한 곳에 모여 있을 때에 성령이 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묻는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여기까지만 들으면 혼자 골방에 가서 기도하고 혼자 예배해도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교회는 홀로 믿는 곳이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곳이라는 말씀입니다,

 

부부간에도 하나되는 것이 쉽지 않거든 교회가 하나되고 또 나뉘었던 민족이 하나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하느님께 간구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도나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내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라면 굳이 교회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믿음도 필요 없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하나되는 일입니다. 그래 예수님의 유언도 내가 하느님과 하나인 것 같이 너희도 하나가 되어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이를 위해 선택하신 그 길이 바로 골고다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오늘 이사야서의 말씀에도 너희는 바른 길을 걷고 옳게 살아라. 나 너희를 구하러 왔다.’고 말하면서 외국인들이 야훼께서 돌아오는, 그리고 쫓겨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의 회복을 말합니다. 마태복음은 가나안 여자가 딸의 고침을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위해 왔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예수님의 차갑고 모멸에 찬 거절에 강아지들도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는 간절함이 담긴 재치와 여유로 예수님의 마음을 얻어 딸의 병을 고치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가 전하고자 하는 얘기는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이 오히려 구원의 길에 앞선다는 반전과 혁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남과 북 두 나라의 구원을 갖고 얘기한다면 우리 남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세계 대다수가 남한 편을 들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스라엘 유대민족의 구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나중 된 자가 앞서고 앞선 자가 나중 되는 역사가 바로 복음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남과 북의 형제자매의 하나됨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고 불의한 세력에 대해서는 저항하는 기도의 투쟁을 통해 죽을 각오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구원의 반열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악령의 역사는 우리를 분열시킵니다.

 

처음에 언급을 하였습니다만, 제가 3년 전에 봉수교회에 가서 부른 통일의 노래라는 국악찬송을 봉수교회 성가대가 찬양으로 불렀습니다. 저희도 그 노래를 부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찬양팀을 다시금 나오도록 해서 우리가 그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이라고 하는 시편 기자의 찬양이 어떤 것인지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국악찬송은 홍근수목사님 때에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뭔가 예배 형식이 갖추어진 국악 예배로서는 향린교회가 국내에서는 유일합니다. 그런데 그 국악찬양을 부른 날이 815일이었고, 또 그날은 살아계셨다면 홍근수목사님 77세 생신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홍목사님께서 매우 기뻐하셨을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에게 유업으로 남겨주신 평화통일을 위해 더욱 매진하는 향린 식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