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길

예레 15:15-21; 시편 26:1-8; 로마 12:9-21; 마태 16:21-26

 

향린교회는 매년 8월 마지막주일을 교회교육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일 년의 한번 교육부의 어린이와 푸른이가 함께 드리는 이 예배를 통해 향린공동체 세대 간이 함께 만나는 자리를 갖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알려드릴까 합니다. 바로 오늘이 향린공동체 예배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굉장히 낮은 날이 아닐까 합니다. 바로 여기 예배실 맨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예배드리고 있는 우리 유아/유치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 친구들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인사나눌까요? 이제 향린의 희망의 새싹들이 좀 더 집중하여 예배드리기 위해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유아부와 유치부 각 예배실로 향하려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발걸음을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친구들 인사드리며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로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노래를 아시는지요? 알고 계시는 분은 함께 하셔도 좋겠습니다.

 

(개똥벌레 노래)

아무리 우겨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동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를 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마라 가지말아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번만 노래를 해주렴

나나나나나나 쓰라린 가슴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요즘 뉴스를 봐도 돌아가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자꾸 외롭고 힘들게 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시작부터 여러분에게 쓸쓸한 슬픔의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

 

(울고 있는 표정의 사람을 보여주며) 여기 울고 있는 한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그가 왜 울고 있는 걸까요? 예레미야는 눈물의 예언자라고 할만큼 평생을 슬프게 우는 일이 참 많았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왕국 말기 요시아 왕 시대 예언자로 부름을 받아 자신의 나라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고 마지막에는 강제로 이집트에 끌려가 그 곳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는 참으로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나 참 많은 눈물을 흘리며 한 많은 생을 마쳤습니다.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방 아나돗에 있는 제사장 중의 한 사람으로 힐기야의 아들입니다. 그가 아나돗의 제사장 가정에서 났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직업적인 예언자, 즉 주류 예언자가 아닌 변두리 제사장 가정의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살면서 그렇게 힘들었던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때 슬픈가요? 어떤 때 힘들어요? 슬프고 외로울 때 절망적일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결하세요?

 

예레미야 시대 상황을 보면 이렇습니다. 예레미야가 살던 나라 유다왕국에 요시야는 기원전 621년 율법서를 발견하고 종교개혁을 단행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국제 사정은 강자 앗시리아가 점차 힘을 잃어가는 판이었기에 유다의 요시야 왕은 이틈을 타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바벨론 왕국과 손잡고 앗시리아에 반기를 듭니다. 그러나 이집트가 난데없이 앗시리아를 돕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이를 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집트는 여호야김을 왕으로 세우고 유다왕국을 통치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야김은 이집트와 바벨론 두 나라 힘 사이에서 때에 따라 이쪽에 붙었다 저쪽에 붙었다 하는 간사한 정치력을 보입니다. 그러나 바벨론 나라의 느부갓네살 왕은 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결국 유다나라를 공격합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여호야긴을 포로로 데려가고 그의 삼촌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0우지만 시드기야 왕 또한 바벨론편과 이집트편 사이에 권력 다툼에 휘말려 사태파악이 힘든 가운데 바벨론과 싸우려 하다가 공격을 받게 되고 유다 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결국 유다왕국은 완전히 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왕국의 포로로 끌려갑니다.

 

이런 가운데 예레미야는 두 가지 면에서 힘들었습니다. 하나는 자신 눈앞에 친구가 잡혀가고 그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이제 유다 우리나라는 망할 거야 하느님 뜻은 결국 우리는 지금 어떤 싸움을 해도 집니다. 그러니 이 어려운 과정을 최선을 다해 참고 잘 견디는게 필요합니다.” 라고 알려주었지만 그 말을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걸 똑바로 봐야하는 것도 힘들고 그의 친구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예레미야도 이 어려운 현실을 보고 많은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 나쁜 말을 전해주고 싶겠습니까? 무언가 희망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겠지요. “그냥 다 잘되겠지. 곧 독립을 하고 모두가 부자로 잘 살 거야, 슬픔은 잊어, 힘들잖아? 우리가 아무 힘도 없지만 싸우면 다 이기게해주시겠지라는 수많은 기대들을 말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성서는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절망의 때! 멸망의 때! 가장 슬픈 때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어려움을 절망하는 일이 왔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 것일까요?

 

유다백성이 고난의 문턱을 넘어보겠다고 애쓰지만 결국은 유다가 생각하는 평화란 없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힘이 커지고, 돈과 권력이 있는 독립한 나라가 지금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지금 나라를 세워 주는 게 아니라 유다백성이 하고 싶은 대로 다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다백성이 더 성숙하도록 어려운 고통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를 함께 만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는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암담한 현실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주님의 말씀, 곧 어려운 시대를 보고 함께 슬퍼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아 우리 지금 아픈 거구나. 참 울고 싶은 거구나. 지금이 왜 힘들어지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돌아보고 함께 이겨내자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희망을 가지고 같이 갈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절망의 현실]

 

어려운 현실, 망해가는 나라의 안타까움이 단지 예레미야 시대에만 있지 않음을 우리는 지금을 보며 깨닫게 됩니다. 세월호 침몰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왜 그들의 자녀들이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기를 바라면서 매일매일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암담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진실요구를 외쳐도 들어주지 않는 정부, 그리고 그러한 정부에게 손을 들어주며,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해달라는 40일 넘게 죽음의 문턱에서 버티고 있었던 한 아버지의 단식을 무참하게 비난하는 비인간적인 사람들의 태도들을 봅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야말로 절망이라는 슬픔의 말이 절로 나오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교육의 장은 어떤가요? 학벌위주에 성적이 우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삶을 한글자로 말해주고 있지 않나요? 원래 오늘을 위해 준비했던 청소년부의 낮꿈이 지연된 이유를 아십니까? 연습부족도 있었고 함께 해보자는 의지가 떨어진 것도 그 원인 중 하나이겠지만 더 정확한 답은 푸른이들 자신이 힘들고 기운을 내기에는 삶의 자리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학원도 가야하고 성적을 올려야하고 대학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그들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지요. 이래저래 마음이 힘든 가운데 있는 푸른이들에게 왜 못 했냐고만 할 게 아니라 그들이 힘든 현실을 살아가고 있기에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마음을 함께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어린이들 또한 자라나는 동안 대학이 이미 결정되더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처한 이시대의 학업위주의 삶 가운데 어려운 시련을 잘 견디기를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절망은 실패가 아니라는 희망의 메시지!]

 

우리는 예레미야서를 통해 말할 수 없는 절망가운데 솟는 가운데 주님의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절망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힘들고 아프고 슬픈 것이 실패가 아니란 것이지요. 힘든 나의 현실, 슬픔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다음, 희망이 있다는 것이지요.

로마서 이야기 또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선을 악으로 이기자는 것입니다. 이 선은 무엇인가요? 그 선은 우리의 공동체가 깨지는 것에 가슴아파하고 서로의 삶에 희망이 되어주도록 함께 울어주고 기뻐해주는 것입니다. 악에 대해 분노할 줄 알고 그 분노가 복수가 아닌 세상의 돈과 무기와 힘으로 싸우는 방식이 아닌 오히려 악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과 우리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며 온 몸을 다해 만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은 어려운 상황을 없애주는 것이거나 도피가 아닙니다. 어려운 현실 상황 안에서 하느님이 함께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온전히 현실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그 다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서를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악에 대항하여 목숨을 바친 고통의 길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제자인 베드로는 깨닫지 못했음을 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은 그 공동체에 있어 절망의 존재가 아니다는 생각, 그리고 그들은 절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힘든 현실을 만나는 힘]

 

여러분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싶으신가요? 정말 무엇이 우리 자녀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정말 중요한 것은 학교에서 집에서 세상에서 우리의 자녀들이 상처받고 있는 이 현실을 함께 만나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악을 향해 믿음공동체가 어떻게 이겨내며 가는 지를 보여주십시오. 우리가 해결하기엔 너무나 큰 악! 그러나 그 가운데 그 힘든 일을 만나며 견디는 힘, 삶 가운데 어려움을 만나는 법을 알려주십시오.

 

우리 어린이들과 푸른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으세요? 우리는 아주 특별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가는 선한 길입니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무언가를 만날 때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친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말들을 소리내여 나타내 보면 어떨까요? “엄마 나한테 소리 질러서 제가 많이 놀랐어요.”, “지금 친구들이 저랑 놀아주지 않아서 참 슬퍼요.”, “내가 왜 살고 있는지 답답해서 아주 힘듭니다.”라는 이야기들을 여러분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주 특별한 길]

 

우리가 가는 이 믿음의 길은 아주 특별한 길입니다. 오늘은 교회교육주일입니다. 향린정신을 가득품은 우리의 자녀들이 또한 교사들이 이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더 서글픈 현실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가정도 교회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예레미야에게 다시 너를 내게 돌아오게 하겠다.”라고 하시며 어둠의 세상에 마음 아파하시며 그를 붙잡아주시는 야훼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예레미야를 위로해주시듯 우리가 절망가운데 외치고 아파할 때 그 순간 함께 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8월 초 서울노회와 일본 동경 북지구가 연합하여 11년째 개최하고 있는 한일연합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향린교회에서는 3명의 푸른이들이 참가하여 동경북지구의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이 함께 지냈습니다. 수련회를 통해 제가 깊게 느끼게 된 것은 직접 부딪히고 만나는 가운데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평화를 교육하고 평등세상을 알린다하지만 정작 함께 만나고 경험하는 그 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풀리고 오해가 풀리고 서로의 연약함이 만나 함께 친구가 되어 평등세상, 평화의 세상이 이루어져간다는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우리도 절망을 만나고 좌절을 직시하며 서로가 만남의 삶을 이루어갈 때 변화는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헛된 희망이 아닌 자신의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파하고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 길은 아주 특별한 길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 프란체스코 교황이 다녀가며 정말 그 짧은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친 것은 무엇일가요? 바로 그에게는 사람의 아픔을 함께 위로하고 만나줄 수 있는 만남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것 같은 마음 만나주기와 안아주기! 여러분들이 함께 해나가기를 바랍니다.

 

교사들이 어디에 속하여 헌신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까? 교사들이 매주일 일찍 교회에 와서 자녀들의 신앙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있음에도 장기결석자로 생각하며 걱정하는 분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오늘 야심차게 우리 교사들이 함께 얼굴을 맞대어 볼 수 있는 특송을 준비했습니다. 준비한 교사특송의 제목은 여러분께 나눠드린 별지에 실려 있는 아름다운 것을 힘써 지키세요.”입니다. 우리의 이 길은 아주 특별한 길입니다. 고난을 만나고 때로는 보기 싫은 현실을 봐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가야하는 특별한 길입니다. 그리고 이 길은 사실은 힘들지만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이 찬양을 교사들이 부를 때 아주 특별한 이 길을 아름답게 지켜 걸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