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 풀에 내리는 비

시편 72:1-7; 미가 3:5-12; 살전 2:9-13; 마태 13:3-9  

이 세 우 목사

 

가을추수걷이가 채 끝나기도 전에 식량주권과 먹거리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는 지난 달 28일부터 쌀 전면개방 저지와 식량주권 사수를 알리고자 '우리농업 지키기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쌀 한 톨을 얻기 위해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이 필요하다 했습니다. 쌀 미()자가 뜻하는 것 또한 팔십팔(八十八)에 다름 아닙니다. 여든여덟 번째 손길로 귀한 나락을 수확하던 그 날만큼 농부에게 뿌듯한 날은 없을 것입니다. 헌데 농부는 나락 베는 날 풍년가 대신 즐거울 수 없다고 읊조립니다. 소출이 줄어서가 아닙니다. 가격이 폭락해서도 아닙니다.

 

정부는 내년부터 쌀 시장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겠다고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습니다. 정부는 513% 관세율을 WTO에 통보했고 우리나라가 높은 수준의 관세만 확보하면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앞으로 모는 자유무역협정(FTA/TPP)에서 쌀을 제외시키겠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를 믿는 농민들은 거의 없습니다. 513%? 저는 왜 박근혜정권이 516%라고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할 뿐입니다. 정부주장의 문제점은 말하기도 귀찮을 정도입니다. 지금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의 가격을 보시면 그것이 얼마나 자던 소도 웃을 멀쩡한 거짓말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쌀값 22만원을 보장한다고 길거리마다 현수막 걸고 난리쳤는데 지금 쌀값 어떻게 되었습니까? 513지킬 의지 조금이라도 있으면 죽사발 된 똥값 농산물 먼저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정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보겠습니다. 정부가 513% 부과해서 수입쌀이 들어와도 국내쌀이 충분한 가격경쟁력을 가진 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고관세로 말한 513%는 일본이 1,066%, 대만이 563%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게다가 고율관세는 협상에 따라 얼마든지 무너질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정부가 주장하는 것은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결정된 수치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작 고관세를 부과한 일본도 TPP(환태평양 동반자협정)협상에서 쌀 관세를 0%로 하라는 미국의 관세철폐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시장을 노리는 미국과 초국적 식량기업들이 손길을 뻗친 지 오래입니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공식문서를 통해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미국쌀 공급업체들이 한국시장에 지속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WTO검증과 협상과정에서 513%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이후 FTA, DDA, TPP가 추진될 경우 쌀 관세화가 유지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매우 희박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계속 정부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믿어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를 제도적으로 법률적으로 보장해달라고 농민단체는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이에는 대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관세화를 가지고는 결코 수입쌀을 막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냥 그나마 하나 남아 있는 쌀마저도 모조리 내주겠다는 소리입니다. 결국 쌀을 완전 개방하겠다는 것입니다. 쌀이 완전 개방되면 대한민국에 더 이상 농업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쌀 전면개방에 대해 이렇게 설교에서까지 심각하게 말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쌀 개방 반대! 쌀 개방 반대!를 외치는 것일까요?

 

[한국인의 주식은 쌀입니다.]

 

한국의 식량자급율은 23.1%입니다. 계속해서 하강추세입니다. 쌀 자급률도 근 3년에 걸쳐 8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식량자급률 OECD국가들 중에서 뒤에서 순서를 찾는 것이 빠를 정도로 하위권을 맴돌고 있습니다. 결국 대한민국 구성원들이 삶을 유지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80%에 가까운 식량을 외국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루 세끼 중 두끼는 외국 농산물을 먹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쌀을 전면 개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급율이 80% 대인 쌀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고작 4%일 뿐입니다. 현재가 그렇다고 하는 것이고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수치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결론입니다. 결국 쌀 전면개방은 우리나라의 식량주권상실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해 진다고 하겠습니다.

 

자유무역시대이고 세계화시대인데 즉 무한경쟁시대인데 우리쌀도 외국쌀과 경쟁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 계십니다. 외국쌀과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 있을까요? 낮은 생산단가와 외교적 압박수단을 통해 수입쌀이 들어오면 가격경쟁력에서 도저히 맞출수가 없을 것입니다. 관세를 적용시키지 않으면 미국 쌀만 해도 국내산 쌀 가격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아직 쌀 개방이 되지 않은 지금도 수입쌀이 국산쌀로 둔갑하여 팔려나가고 있습니다. 국산쌀 5%와 수입쌀 95%가 섞이면 이게 국산쌀이 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그래도 나은 편이라고 합니다. 아예 100% 수입쌀을 국내에서 포장지만 슬쩍 바꿔 국내산으로 내놓는 경우도 허다하니까요.

 

게다가 나날이 농촌은 고령화되고 농가인구는 줄어드는 상황입니다. 이렇게 모든 안전장치가 제거된다면 우리 농업과 농촌은 어찌되는지, 대한민국의 식량주권은 어찌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때를 만나서는 천지가 모두 힘을 합치더니

운이 다하매 영웅도 스스로 도모할 길이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의를 세움에 잘못이 없건마는

나라 위한 붉은 마음을 그 누가 알까

(전봉준 절명시)

 

올해는 갑오동학농민혁명 120주년 되는 해입니다. 갑오년에 이 나라 백성으로 태어나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사는 수많은 백성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짜내는 전세, 군포, 환곡…… 야반도주하여 도적이 되거나 칼 들고 일어서는 반란이 아니면 살 길이 없었던 시절.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백성들 위에 기름내 진동하는 탐관오리, 썩고 썩은 조정이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반봉건, 반외세를 실현하여 근대적 자주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염원과 쓰러져가는 봉건지배체제를 끝장내고 집강소와 같은 민주공동체를 세워 보려고 혁명의 깃발을 농민들 스스로가 높이 들었습니다. 두 갑자가 되는 올해는 그 의미가 남다릅니다. 제폭구민! 보국안민! 외세척결! 등을 기치로 내걸고 봉기를 했습니다. 인내천! “백성이 곧 하늘입니다!”를 꿈꾸고 이를 이뤄 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염원은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올해 우리지역 전북에서는 12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금도 혁명이냐, 전쟁이냐 하는 성격 논쟁, 혹은 동학교도들이 주축 이었냐, 농민들이 주력군이었냐 하는 대오 논쟁, 정읍과 고창의 발생지 원조 논쟁들은 해결 될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더 복잡해지고 있지만 갑오동학농민혁명을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올 한해 다채롭게 열렸고 지금도 열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라북도가 발생지이고 주무대였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대부분이 관변행사입니다. 관변행사는 늘 그렀듯 학생들과 공무원 동원해서 보여주기 식으로 넘어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당시 주로 활동했던 분들은 대부분 농민들인데 지금의 농민들은 동학혁명 기념의 어느 자리에도 초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농민들이 나타나면 귀찮아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동학혁명정신 계승, 발전 운운하고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농민들은 무시 받고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역의 농민들과 뜻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서 참다운 동학농민전쟁을 연구하는데 저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 자료들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몇 가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아이들 특별히 여성의 이름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오랜 기간 혁명이나 전쟁을 하면서도 밥은 안 먹고도 잘 싸웠나 봅니다. 밥뿐만이 아니라 집안일과 밭일은 누가 했을까요? 가장 중요하고도 힘든 일을 감당했음에도 여성들은 그 어떤 기록에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관심 갖지 않으면 진실 찾기는 120년이 흘러도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녹두꽃이 떨어지면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창수 울고 간다

 

전쟁 말미 중 농민군들은 계속 밀리기 시작합니다. 패퇴의 길로 접어든 농민군들은 처절한 저항을 하고 그 결과 모두 죽게 됩니다. 우리 민족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갑오동학농민전쟁은 녹두장군 전봉준의 체포로 그가 목이 잘려 떨어져 나가면서 끝나게 됩니다.

전봉준, 그는 매우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 당시 가장 흔하고 작은 곡물인 녹두에 비견했겠습니까. 그런데 횐 옷 입은 조선사람들은 그를 대장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럼없는 민중의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는 이후 조선의 영웅, 불멸하는 혁명가의 모습으로 자리 잡지만 현상금과 벼슬에 눈 먼 제자의 밀고로 포위당하고 무지한 산골 무지렁이가 휘두른 눈 먼 몽둥이에 쓰러지면서 체포당하고 맙니다. 이후 조선은 몇 고비의 우여곡절을 격게 되고 결국은 일본에 먹힌 바가 되고 말았습니다.

 

[베인 풀]

 

너무 늦게 성서로 돌아 온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고난과 절망의 역사라고 불릴 만큼 힘든 과정이 수시로 끊이지 않고 지속된 민족입니다. 풍전등화 위기는 쉴 날이 없었고 산전수전 다 격은 나라였습니다. 그 안에 사는 백성들의 사정은 오죽했겠습니까.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죽을 지경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백성들의 삶이었습니다. 성서의 곳곳에 불쌍히 여기옵소서’, ‘속량하옵소서’, ‘우리를 버리시옵니까등등의 원망과 탄식의 구절이 쉼임 없이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고,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들을 힘들게 하는 자들을 향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옵소서’, ‘벌하여 주옵소서’, ‘망하게 해달라’ ‘사라지게 해달라라고 저주의 말들을 끊임없이 퍼붓고 있겠습니까. 마치 싱싱하게 자라다 열매를 맺어 갈 때쯤 베임을 당하는 풀 같은 운명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바라보기까지 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한낮 풀에 자신들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만 해도 처절하기 짝이 없는데 심지어는 잘려나가기까지 하는 그 풀에게서까지 자신들의 운명을 바라봤다고 하면 얼마나 통탄스런 그들의 심정을 표현한 것일까요.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제 사정은 조금도 과장됨이 없었습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억눌리고 빼앗긴 삶, 종과 노예의 삶이었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희망과 꿈을 이야기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부분 겨우 신음소리를 내다가 이내 체념하고 깃들여지기가 일쑤입니다.

 

[비가 옵니다.]

 

오늘 시인은 베인 풀에 내리는 비를 보게 됩니다.(72:6) 정직한 농사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뽑아도, 뽑아도 또 나오고, 잘라도, 잘라도 또 자라는 것이 풀입니다. 농사 지워 본 농민들이면 누구나 다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오늘 예수님도 보면 농사에 대해서 훤히 잘 알고 계신 듯합니다. 어쩌면 그리 적절하게 비유를 잘 드시는지 입을 벌릴 정도입니다. 농사에 대해 잘 알뿐 아니라 농업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알고 계셨기에 이렇게 자주 농사의 대한 비유를 자주 사용하신 것으로 보여 집니다.

 

보통의 농민들은 얼마나 징그러웠으면 풀을 웬수라고까지 부릅니다. 그러나 시인인 이 풀에게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잘린 풀에게서 오히려 복원력을 보게 됩니다. 피를 흘리며 잘려진 풀이었지만 이내 더 튼튼하게 회복될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로 비가 내리고 그 비를 잘린 풀이 맞고서 너무도 좋아 어쩔 줄을 모르고 춤을 추는 모습이 오늘의 성서 내용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잘린 풀은 얼마나 황당했고 억울했겠습니까. 엄청나게 상처 난 몸 때문에 너무 어이없어 주저앉고 있는데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 비를 맞고 다시 정신을 차립니다. 그리고 몸부림치며 재정비합니다. 그러면서 새록새록 싹을 틔웁니다. 더 알차고 힘 있게 잎과 줄기를 품어 올립니다.

 

[다시 갑오년에]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체제를 대신해 자주적 정권을 세우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구체제를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구실을 했습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신분제도를 철폐함으로서 인간평등의 새 세상을 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집강소를 통해 민주주의의 씨를 뿌렸습니다. 또한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는 대투쟁을 전개함으로서 민족자존을 오롯이 세운 역사적인 혁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지금, 다시 갑오년이 끝나가는 11월에 그 날의 함성을 떠올립니다. 소위 개방농정이라는 미명하에 우루과이라운드에서 WTO, 수많은 FTA 체결 등으로 우리 농업의 목은 서서히 졸려졌고 이제 단말마의 고비에 이르렀습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때인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그 날, 학정과 외세의 침탈에 맞서 일어났던 우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이 오늘을 다시 산다면 또 다시 일어서지 않겠습니까. 갑자가 지나 다시 맞은 갑오년은 대전환을 해야 하는 해입니다. 돈에 눈 먼 자본과 권력이 생목숨을 수장시키는 대학살을 우리는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도 여기저기서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크게, 아주 크게 바꾸어야 한다는 것, 세상을 바꾸는 것, 그게 동학농민혁명이 우리에게 주는 오늘의 외침일 것입니다. 잘린 풀이지만 내리는 비를 맞고 춤추면서 새 싹을 내는 것처럼 우리도 역사의 비를 맞고, 현장의 비를 맞으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새 꿈을 꾸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