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대한민국! 아, 향린교회!
         (시편 22:23-31; 창세기 17:1-7,15-16; 로마서 4:13-25 ;마가복음 8:31-38)


임태환 목사


1. (십자가 앞에서 예를 표하고) 십자가 달기


2. 어제 2월 28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3년차를 맞아 각종 현안에 대해 정부를 비판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민중의 힘, 민주국민행동 등 진보단체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역 광장에서 '민생파탄 민주파괴 평화위협 박근혜 정권 규탄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통신사 에이스 사진기자 우리교회 조신원집사님의 아드님 조성봉님은 이날 대회의 여러 중요 핵심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인터넷 뉴시스에 잘 올려 주셨습니다. 여기선 보여드릴 수 없고 교회 인터넷에 보실 수 있도록 8장만 올려놓겠습니다.

제가 여러 모임에서 만나 뵌 이분 저분 모두 그랬지만 특히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함세웅 신부님도 ‘이런 정부를 끝내는 길밖에 없다’고 언명했다. 이런 정부는 아주 전에도 그랬었고, 조금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여 내일을 도무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朴정부 규탄' 대규모 집회의 중심 뜻이 그러하고, "제2의 민주화운동에 나설 것"이라 하여 그 결의를 다진 것이다.


3. 저는 이런 글을 썼지요.

 아, 대한민국!

지도자의 정신이 혼미한 나라
지도자의 이성이 마비된 나라
지도자가 영혼이 없는 나라
지도자가 없는 나라

자기만의 생존을 위해 지도자부터 도망치는 나라
죽음의 위험 앞에서 지도자부터 탈출하는 나라
지도자부터 책임과 의무를 방기하는 나라
지도자부터 개 같은 짓을 자랑하는 나라

돈과 권력에 미친 나라
폭력이 만연 일상화된 나라
살인하고 살인을 부추기는 나라
싸늘한 가슴에 집념의 복수가 얼음강물인 나라

더러운 나라
몇 백 명이라도 기꺼이 수장시키는 나라
채 피지도 못한 꽃다운 아이들을 물속에다 때려잡는 나라
사람을 사람으로 못 살게 하는 나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말, 해라, 지도자여 잘못은 바로 나 때문이라고
지도자여 통곡하라 그냥 흐르는 눈물 감당할 수 없어라
무릎 꿇어 통곡하라 그냥 무너지는 무릎 세울 수 없어라 지도자여
울어라 울어줄 줄이라도 알아라, 자식이 바다 한가운데서 수몰되고 있다!

아~아~아~아~! 大·韓·民·國이 와장창창창 시퍼런 심해 속으로 고꾸라지고 있다!

심청은 제 한 몸 바쳐 아버지 눈 확 띄었는데
저 곱디고운 생명 삼백 하고도 몇인가 더해 마구마구
웬 바다에 생매장으로 바쳤는데 처박아 한꺼번에 바쳐졌는데
이 나라여 대한민국이여, 이제도 정녕히 눈 확 안 띌 것이냐? 안 뜰 것이냐?

아직 이랴?
아직 아니랴?
아직은 아니라?
아직도 아니라고?
아직까지 아니라니깐. 썅!
 
희망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나라
아득한 절망의 나락이 바로 가까이 있는 나라
희미한 별빛조차 스며들 틈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나라
천지사방 칠흑 같은 어둠이 벽으로 둘러싸여 막혀있는 나라
누구를 믿어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나라 아무도 용서할 수 없는 나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김시연 양의 마지막 기도(아빠 김종열님의 딸 휴대폰 공개화면)
 예수님 하느님 기독교 천주교 무슨 종교
휴머니스트도 어떤 전문가도 온 세상도 그 아무도 저들을 구해주지 않았다.
신들도 비웃는 나라, 대한민국!
온 세계가 비웃는 나라, 대한민국!

나!
나를 절대 용서하지 마라 하라
하라, 통절한 자성에 안광 형형할 일뿐인저
하라, 아,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하라, 저 생명이 약속되어야 할 새날을 위하여만 살으리랏다

아, 세월호, 2014. 4. 16.
꽃 생명들이여 그래도 제발 우리 안에서 부활하소서, 새로이
우리들 안에서 부활하소서 생혈로 생기로 생령으로, 기어이 하나로
이 나라의 숨결로 약동하소서 혁생 혁명 혁진으로, 그대 꽃님들 더불어
조작사회, 거짓공화국, 야만의 나라, 짐승들의 패쟁은 가라 가라 가라 영원히!

아,
아, 대한민국! 우리
아, 대한민국! 가자, 우리, 함께
아, 대한민국! 우리 가자, 생명의 나라로!
아, 대한민국! 가자, 가자, 가자, 우리함께의 나라로!



4. 황석영 장편소설, ‘바리데기’에서

황석영 작가의 말입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 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갔습니다. 저는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논리를 여러 차례 비판해왔습니다.” 소설에서 탈북 소녀 ‘바리’의 여정은, (탈북)동아시아와 대양을 넘어(밀항) 서구 런던에까지 들어가(불법 체류자) 한반도와 전 세계에 닥쳐 있는 (9.11)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지하철 폭탄 투척)의 모습을 담아낸다. ‘바리데기’ 설화에서 차용한 인물인 주인공 바리는,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막내로 태어난다.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부모에 의해서 숲 속에 버려진 바리는 풍산개 ‘흰둥이’가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 준다. 이후 심하게 앓고 난 뒤부터 바리는 영혼, 귀신, 짐승, 벙어리와 소통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며 영혼들과의 소통과, 절망과 상처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바리의 여정은 21세기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생생하게 드러내 보인다. “세상을 구원할 생명수는 있는 것일까?”

바리의 말입니다. “나는 나중에 다른 세상으로 가서 수많은 도시들과 찬란한 불빛들과 넘쳐나는 사람들의 활기를 보면서 이들 모두가 우리를 버렸고 모른 척했다는 섭섭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93쪽) 아기를 잃고서 샹(친구이름 나쁜 년, 널 죽여버릴 거야. (262쪽) 미움의 덩이, 덩이 덩어리 응어리가 그 욕이다. 바리공주가 갔던, 지금 그녀가 가고 있는 그 세계는 그녀의 지나온 삶의 압축된 재현이었고, 그 삶, 너 나의 삶, 우리의 삶, 전 세계 전 역사의 피투성이 삶에 대한 질문이었다. 불바다, 피바다, 기러기 깃털도 가라앉는 모래바다, 무쇠성, 서천의 하늘 땅 끝, 무간 팔만사천 지옥을 경험합니다.(266쪽) 흑인들 백인들 황인들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배 안에 타고 있다. 굶어 죽고, 병들어 죽고, 시달리다 죽고, 일하다 죽고, 맞아 죽고, 터져 죽고,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 죽고, 애달아 죽은 온 세상의 넋들이....“얼른 대답해다오.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지. (268쪽)  우리의 죽음의 의미를 말해보라!” (270쪽) 겉으로는 평화롭게 씻은 듯이 깨끗한 백사장, 개신교 목사, 가톨릭 사제, 힌두의 바라문, 무슬림 이맘, 불승, 유대교 랍비,  목청껏 떠들지만 서로가 남의 말을 삼켜버린다. (272쪽)....다만 그럴 뿐! 다만 그것일 뿐, 피차 관계없는 사이들! 생명과 생명 사이는 관계의 결여태일 뿐이었다.

(남편 알리의 아버지 압둘 할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선 안 된다.” (압둘 할아버지, 286쪽) : 생명수란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5. 안병무 선생님 설교

향린교회는 1953년 5월, 6.25 동란을 거치는 피투성이의 삶, 불바다, 피바다, 모래바다, 무쇠성, 서천의 끝, 무간 팔만사천 지옥과 같은 와중에서 서울대 기독학생 몇몇 좋은 뜻을 모은 이들에 의해 출발했습니다. 그들 중 한 분 안병무 선생님은 1965년 9월에 설교담당자로 모셨고, 그분의 설교 한편이 살림지 98. 11에 실려 있습니다. 훨씬 줄여서 소개합니다. 이때의 향린교회1기엔 담임목사 없이 지낸 순전한 동기의 ‘하늘 기갈 지성 21년’입니다.

살림 98.11
“우리가 세상에 뭐 할라고 왔나? 얼굴 하나 보러 왔지.” 그게 함석헌 선생의 말입니다. 라시면서 ①율법주의, ②헬레니즘, 특히 그레꼬-로마 문화, 예수의 본 얼굴인 갈릴리의 시골 농민, 목수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지금의 그리스도론, 즉 완전한 신이며 완전한 인간, 해괴한 괴물을 그렸습니다. ③다음으로 중세기를 지배한 권력과 야합한 서방 기독교, ④동방 기독교의 신비한 존재이다. 예수와 나와의 관계는 신비한 관계라는 것, ⑤또 하나의 계보가 있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예수처럼 살고 싶다. 예수처럼 살고 싶은데, 예수의 모양대로, 그가 걸은 대로, 그가 입은 대로, 그가 굶은 대로, 살고 싶다. 그가 장가 안 갔으니 나도 장가 안 가고, 그가 소유를 안 했으니 나도 소유 안 하고, 되도록 그 길을 따라가겠다. 예수를 닮는다. 따른다가 아니고 닮는다.’ 그런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그게 뭔지 압니까? 그것이 수도원의 시작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성 프란치스코(오늘의 교황의 이름, 이전의 어느 교황도 차용하지 못했던 이름)입니다. 그는 예수처럼 살기 위해서 애를 썼습니다. 그 성 프란치스코는, 연애 감정도 있는,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클라라라는 여자를 아주 사랑했습니다. 미치도록 사랑했어요. 연애 감정도 없으면, 그것도 사람인가요, 뭐. 성 프란치스코도 클라라를 죽도록 사랑했는데,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면 안 되겠기에 수도원을 이루어서 수도원장이 되었고, 클라라도 그것을 못 견뎌서 여자 수도원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성 프란치스코는, 너무 그립지만 만나면 안 되겠고 해서, 눈이 오면 클라라 모습을 만들어서 그걸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엉엉 울었대. 어쨌든 예수처럼 살자는 그 운동을 난 높이 평가합니다. 무소유, 곧 가정 안 가지고, 아무 보상도 없이, 노동과 기도와 성서 읽는 것과 남을 돕는 것으로 전체를 다 바치는 것, 그 수도원의 전통이란 걸 기독교에서 절대로 버려선 안 됩니다. 그걸 두루두루 유지해 왔는데 ⑥마르틴 루터라는 엉뚱한 녀석이 수녀를 훌딱 가로채 왔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다른 수도사들이 너도나도 하면서 모두 장가를 갔어요. 그러고서 예수의 얼굴이 어떻게 되든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⑦우리가 세상에 뭐 하러 왔나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얼굴을 제대로 그려보자 그거죠. 왜 교회가 여기에 하나 섰나? 많은 교회들이 모두 그리고 있는 예수의 얼굴이 틀렸다. 우리가 바른 예수의 얼굴을 그려보자, 그거죠. 나도 참 예수의 얼굴을 그려보자는 것이죠. 한 마디로 얘기하면, 이유야 어쨌든 마지막에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입니다. 자기 위해 죽은 것은 아닙니다. 뭔지 미지수는 많지만 그는 남을 위해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다 쏟은 이입니다……. (여기서 한참 말씀을 멈추고 울먹이심) 왜 우리는 세상에 왔나? 왜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나? 하도 예수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그리고 있으니까, 나는 비록 못났어도, 내가 예수의 뒤를 따르지 못해도, 내가 그리는 예수의 얼굴과 내 모습이 너무도 달라도, 내가 그린 예수의 얼굴이 나를 마구 짓밟아도, 내가 모욕당하고 심판을 받아도 예수의 얼굴을 있는 그대로 그리자. 그 용기를 갖자. 나와 일치시킬 수는 없지만, 최소한 예수의 얼굴을 이렇게 그려보자. 그러면, 사람들이 비웃을 텐데. 아니야, 내가 비웃음을 받을지라도 그의 모습은 정직하게 그리자. 세상에 그대로 드러내 놓자. 세상에(는) 예수는 있다. 지금도 살아 있다. 2천년 전의 예수가 아니다. 오늘 어떤 형태로든 살아 있다. 우리의 거리에 살아 있다……. (다시 한 번 울면서 울음 섞인 소리로 계속 말씀하심) ❀그러나 교회에는 없다. 교회에는 없다. 순교하는 놈은 한명도 없다. 그러나 교회 밖에는 있다. 자꾸 죽어가지만 교회에는 없어, 오늘 너무 한계를 지어놔서 운신의 폭이 좁을 줄은 모르나, 예수의 얼굴을 정말 그리십시오. 여러분이 망해도 예수는 살아야 하니까. 세례 요한의 말대로, ‘당신은 흥해야겠고, 나는 쇠해야겠다.’입니다. 그 말을 지키십시오.……. (다시 말씀을 잇지 못하고 우심) 지켜야지. 세상에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인데……. (혼잣말을 하듯 말씀을 마무리하고 울면서 강단을 내려오심)
 
: 남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려 죽으신 예수가 관계의 참 생명수입니다. (위 설교문에서 번호부여와 ❀표시 및 괄호 속 함초롱바탕체는 오늘의 설교자 임의에 의한 것임.)

지난 주일에 예배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시던 향린 창립자 중 또 한 분이신 홍창의 장로님께서 식당으로 올라가던 저를 만나 (이런 표현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렇게도 환히 그렇게도 밝게 그렇게도 순전하신 웃음으로 반기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에서도 또 아산병원 10년 원목으로서도 늘 뵌 반가운 미소이셨으나 새삼 감사했습니다.

1974년 10월에 향린1대 담임목사로 김호식 목사님이 부임하셨고 1986년 4월 사임하셨습니다. 향린교회2기는 김호식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시무하신 11년 6월입니다. 교회는 훈훈했고 말쑥했습니다. 믿음 좋은 사회적 성공이 칭송되었습니다. 교회는 부흥 발전했습니다. 출석교인이 1000명에 이르렀습니다. ‘목회는 김호식이다’라는 말이 탄생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세상에 흔한 저 많은 교회와는 그 파토스가 달랐지만 향린교회1기의 파토스와도 그 천착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김호식 목사님은 따르던 향린식구들과 예닮교회를 개척하셨고 1000명이 넘는 교회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7년 1월 향린교회3기의 향린2대 담임목사는 홍근수 목사님이셨습니다. 1991년 2월 홍근수 목사님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셨고, 1년 6개월 징역을 살고 1992년 8월 만기 출소하셨습니다. 홍근수 목사님은 온통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그에게 청청하고도 형형한 로고스를 뉘라 쉬이 비판할 수 없는 탄탄한 바탕 위에 파토스 넘치는 새 차원의 국민부흥목회를 펼쳐 해외라 예외일까만 평화와 통일의 사도임을 한반도 전역에서 고백하게 했고, 관련하여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향린의 영원한 무궁화요 향린 또한 겨레의 무궁화임을 각인시켰습니다.

저는 여기서 ‘파토스’란 말에 집착하여 말씀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6. 파토스

저는 제 논문에서 민중신학의 방법론의 시선이 바로 ‘파토스’(pathos) 성서에서 이와 관련한 언급이 가장 빈번하다는 것이 헤셸의 증언이다. 예언자들, 하」,종로서적, p.39. 성서에서의 의미는 “마음 속 깊이 애끓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이며 여기서는 이 의미로써만 적용한다. ‘인간에 대한 연민’, ‘자연과 이웃과의 관계에서 가지는 감수성’이 결여된 자기중심적 파토스를 경계한다는 뜻이다. 역자 이현주는 ‘정념’으로 번역했다.
이며 그 작용점이라는 점을 밝히며 적용하려 했습니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이 말하는 합류란 이 ‘파토스’로 일으키는 하느님의 사건임을 결말로 정리하고, “꼭” 아래 ‘당한 자’에 시선을 먼저 두어 살피고, ‘당한 자’의 현장에 먼저 참여하고, ‘당한 자’와 함께 ‘우리’로 초월해야 한다는 민중신학의 방법론적 파토스를 전통신학으로부터 구분하여 강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논문에서는 이를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1) 서남동이 ‘합류’에서 전거로서 제시한 것들은 그것이 성서의 전거로서 출애굽 사건이든, 예수십자가 사건이든, 교회사적 전거로서 요아킴의 성령의 제3시대이든, 뮌쩌의 사회혁명의 신앙이든, 우리 역사의 전거로서 동학농민운동이든, 3.1운동이든, 4.19혁명이든 서남동이 이미 강하게 지적하여 준 대로 그것들은 일러  ‘합류’라 하고 ‘성령의 공시론적 해석’이라 했다. 참다 참다 드디어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저 사건들, 그건 성령사건이다. 그렇듯이 그건 예수 사건이다. 하느님 사건이다. 사건의 그 정조는 ‘파토스’이다. 그 파토스는 하느님의 파토스다. 예수의 파토스다. 성령의 파토스다. 예언자들의 파토스다. 모세의 파토스다. 제자들의 파토스다. 그들은 드디어 사건을 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서남동이 제시한 모든 전거들에, 안병무가 불러 모으는 모든 민중들에, 현영학이 찾아 나선 모든 놀이패들에 드디어 분출하는 그 정조, 그 파토스, 그것들의 ‘하느님과 민중’ 사이의 조응관계. 그러므로 “마음 속 깊이 애끓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pathos)으로 인간을 향하여 살피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은 “마음 속 깊이 애끓는 안타까운 사랑의 마음”(pathos)으로 탄식하는 집단(공동체)의 정황에 공명으로 호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저 사건들이며, ‘화산맥’이요 ‘합류’로 발생한다 함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손상될 때, 아주 크게 손상될 때, 집합적으로 아주 크게 손상될 때, 그런 분위기가 집합적으로 형성될 때 하느님과 함께 사건을 일으키는 작용, 하느님의 사건에 동참케 하는 하느님의 형상, 그것이 일으킨 사건이 출애굽이며, 예수사건이며, 동학혁명이며, 3.1운동이며, 4.19이며, 5.18이다.

(2)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 1907-1972), 유다인 학자이자 히브리 사상가, 기독교-유다교의 대화를 재촉한 강력한 에큐메니스트, 끊임없는 반전시위와 인권운동에 참가하면서 “내 중심된 관심사는 인간 정황이다”라고 한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실천한 휴머니스트. Abraham Heschel은 구약 예언자들의 신학을 하느님의 파토스의 신학이라 명명했다. 전능자 하느님은 그의 파토스 속에서 자신으로부터 나오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스스로 언약 상대자가 되신다. 이스라엘과의 언약적 연합 속에서 하느님은 고난 받으시며, 이스라엘의 존재와 역사는 하느님의 파토스와 결합되어 있다. 창조, 해방, 언약, 역사 그리고 구속은 모두 하느님의 파토스로부터 흘러나온다. 구약계시의 하느님의 파토스는 곧 하느님의 자유이다.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파토스는 고난에의 동참이라는 자유로운 관계를 말한다. 하느님은 고난 받으실 수 있을 뿐 아니라(leidensfahig), 고난 받으시기를 자원하셨다(leidenswillig). 예레미야, 시편의 祈禱者, 욥기와 이사야 53장은 모두 십자가를 향하고 있다.
은 예언자들의 마음을 알아내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 예레미아, 하박꾹, 제2이사야를 두루 살폈다. 그에 의하면, 예언자들이 선포한 것은 인간과 하느님의 긴밀한 연관성이다.

“예언자들이 정의에 몰두하고 뜨거운 정열로 불의를 정죄한 것은 그들이 하늘의 pathos에 공명(共鳴, sympathize)했기 때문이다.” 「예언자들, 상」. p.275.
 

헤셸은 예언자와 하나님의 마음을 “파토스(pathos)”라 했다. 헬레니즘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격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헤브라이즘(Hebraism)을 그 원전으로 한다. 2천년이 넘도록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신학자들은 성경에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는 하느님의 pathos에 대하여 매우 난처해하고 반대했다고 헤셸은 꼬집으며, 그것은 그들이 고전적 희랍사상에 뿌리를 둔 철학의 전제들을 받아들인 데서 연유했던 것으로 본다.

“성서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의 빈도수를 살펴보면 하느님의 pathos를 언급하는 말들이 다른 개념들보다 더 많이 나타난다.” 앞의 책, p.10.
 

“거룩한 pathos가 인간을 대하는 하느님의 주조음(主調音)이다.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말미암아 동요되시고 영향을 받으시며 거기에 다라 반응하신다. pathos는 선(善)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돌봄을 의미한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를 의미한다. 그냥 단순하게 세상을 은밀히 훑어보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세상을 호출하는 것이다.” 앞의 책, pp.12~13.


“하느님의 pathos를 ..... 하느님의 의지의 한 표현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본체라기보다는 기능이다. 그것은 차라리 그분의 행위 속에서 나타나는 어떤 상황(situation) 혹은 인격적인 연루다. 그분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신다.” 앞의 책, pp.21~22.


“하늘의 이성적 ethos는 감성적 pathos 없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다. ..... 하느님은 전인격적이시며 전주체(全主體)시다. 그분의 ethos와 pathos는 하나다. .....예언자들의 마음은 온통 역사라는 현장에 가 있다. pathos, 즉 세상에 대한 관심이 곧 하느님의 기질이다.” 「예언자들 상」, pp.275~277.
 

여기에서는 기본 범주가 부동성이 아니라 행동이다. 역사 사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절대 초월이 아니라 운동, 자연 창조, 역사 안에서 행위함이 최고 존재의 속성이다. “하느님”이란 말은 인간의 고난과 번민, 해방과 희열의 외침이다. 성서는 하느님을 정의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사건 속에서 명명한다. 하느님은 어떤 계시의 대상이 아니라 계시의 주체, 곧 계시의 사건(event)이며, 그 사건의 의미는 사랑이다. 낮은 자와 비천하고 억울한 자와 함께 거하시고 과부, 고아와 동거하신다.

제가 이렇게 길게 ‘파토스’를 강조하는 뜻은 교회가 으레 이러해야 한다는 확인이요 고백이면서, 바로 이를 신학으로 삶으로 확인하신 분이 안선생님이시며, 삶으로 목회로 실천하신 분이 홍목사님이시란 뜻입니다. 자기를 버리신 참 생명 예수와의 실천적 관계의 표본 말입니다.



7. 로고스에 뒷받침하고 에토스에 방향을 확정한 홍목사님의 파토스는 지칠 줄 몰랐으나 건강을 잃으시다.

 하느님의 참종, 친애하는 홍근수 목사님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며 이 글은 2011.11.10. 한겨레에 실린 설교자의 글의 일부다.


상식으로 좀 살자
사람으로 좀 살자

당신은
죽임의 신을 이기신 분입니다.
무자비하게 마구 죽여 대는 저 악마의 주구를 이기신 분입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언론으로, 기업으로, 학연으로, 지연으로, 혈연으로, 종연(宗緣)으로까지 섞이고 엮이고 기득을 버무려 우리, 우리, 우리 무지렁이들을 그냥 막 죽여 버리는 저 흉포한 저주의 세력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 세력을 휘두르는 악의 근본, 거룩하게 근원적으로 빙자/포장한 신위(神位)를 이기신 분입니다.

배반과 모욕과 허위와 가증과 끝없는 그 거래,
아닌 듯이 분 발라 인사(人事)하고 단행(斷行)하고
피둥피둥 히죽히죽
너희들만의 리그 준칙
10년을 굶어도 20년을 굶어도 100년인들 더 굶어도 누군가는 내패대기쳐지는
저 음험한 야만의 시장에 불을 질러
흔쾌히 이기신 당신은,



8. 넬슨 만델라

1. 28년이란 기나긴 수감생활의 시작이 된 1964년 내란 혐의 재판 최후진술에서 만델라는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 맞서 싸웠고,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에도 맞서 싸웠다.” 했습니다.
2. 그가 ‘투쟁은 나의 삶’이라 했으니 그게 그의 의무였습니다. 투쟁하는 것! 그런데 그 의무는 ‘자유를 향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4. ‘화해의 정치’를 실천한 그 획기적인 공로로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지만 연임을 포기하고 물러났습니다!!!


9. 공지영 장편소설, “즐거운 나의 집”

“이 편지를 쓰기 전 엄마는 잠이 안와 거실로 나갔다. 겨울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 서 있다가 문득 돌아보니 자그마한 성모상이 서 있었다. 성모마리아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구세주를 낳았기 때문이 아니란 걸 엄마는 그제야 깨달아버렸다. 달빛 아래서 엄마는 거실 바닥에 엎디었지. 그녀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그녀가 그 아들을 죽음에 이르도록 그냥, 놔두었다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야. 모성의 완성은 품었던 자식을 보내주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실에 엎디어서 엄마는 깨달았다.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은총이라는 것을 말이야.”

저(설교자)의 성찰은 <신은 인간이 (신이) 있게 (그렇게) 살면 있고, 없게 (그렇게) 살면 없다. 인간이 위대한 신을 있게 살면 위대한 신이 있고, 저급하고 천박하게 신이 있도록 인간이 살면 저급하고 천박한 신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

10. 한의 사제-대통령:

그래서 민중신학은 ‘고난의 현장’에 임하는 ‘한의 사제’를 호출한다. 우리의 대통령은 ‘고난의 현장’에 임하는 이로 자기의 자리를 정위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이 정책을 추진 이행 이룩함에 있어서는 대통령은 국민에게 한없이 낮아져야, 겸양해야 한다. 저 가장 아래를 높이고 치유하고, 거기를 그들을 받들어 부양하고, 그 지경을 넓히고 두터이 하여 그 감격이 온 누리에 편만 충만케 하고 그 기운으로 그 파토스로 울렁울렁 출렁출렁 넘실대게 해야 한다. 그런즉 그 이름을 민중신학적 통찰로 ‘한의 사제’라 명명하여 그 직무에 세례하고 파송한다.

“하느님의 파토스에 감응하라. 민중의 파토스에 조응하라. 그 합류에 합류하라. 저 아래 ‘당한 자’를 먼저 보고, 그 현장에서 가진 자의 ‘횡포’를 직시하고, 민중이 역사의 주체임을 알아 ‘우리’로 초월해내고, ‘고난의 현장’이 역사의 심장임을 통각으로 통찰해, ‘한의 사제’로 그 직무를 다하라.
 
이것은 민중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민중대통령이 되어야 하겠다는 말이다. 민중의 한, 민중민족의 한을 풀어주는 민중대통령, 민중민족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 말은 이제는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는 시대적 요청언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대통령은 대통령이려 말고 ‘한의 사제’라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리의 경험에선, 완성품은 아니었어도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그들이다.


11. 2003. 5 홍근수 목사 자원은퇴하시고, 2003. 6 조헌정 목사님이 담임목사로 취임하셔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향린4기 향린교회 제3대 담임목사님이십니다. 제가 많은 불편을 드리기도 했지만 목사님의 노고와 공로는 혁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설교 준비 과정에 세심하게 안내해 주신 고상균 목사님, 오늘 설교 후 참 마음에 드는 찬송을 골라주신 조은화 목사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12. 기장여신도회 전국연합회는 어제와 오늘 “제37차 나라와 민족을 위한 3·1절 기념 에스더기도회”를 실시하면서 주제는 “더불어 평화를 이루는 하나님의 가족-차별의 벽을 허무는 생명사랑”이라 하도록 권면해 왔습니다.

에스더서는 외경 부분이 있는데 4장17절만 30개의 절을 갖고 있습니다. 앞부분 10개는 하만의 모략으로 동족과 함께 죽을 위험에서 처한 모르드게의 기도로서, "주님,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면 나는 하만의 발바닥에라도 기꺼이 입을 맞추었을 것입니다. 하만은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당신께서 옛날 우리에게 주신 유산을 파괴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당신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소서."라고 탄원하고 있으며, 17절 뒷부분 20개는 에스더의 기도인데, 왕후 에스더는 화사한 옷을 벗고 슬픈 상복을 입고, 재와 오물을 뒤집어쓰고, 머리칼도 어수선하게 헝클어진 채로 “오직 한 분이신 나의 주님, 우리의 임금님, 오시어 나를 도와주소서. 나는 홀몸, 당신 외엔 아무런 구원자도 나에겐 없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없애버리어 당신을 찬미하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당신의 재단에서 불을 꺼버리며, 당신 성전의 영광을 짓밟기로 작정한 아무것도 아닌 자들에게 당신의 홀을 넘겨주지 마소서. 절망에 빠진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악인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하시고 나를 공포에서 구하소서.”라고 하느님께 탄원하였습니다.


13. 3.1운동 당시 14살부터 기생까지 “조선독립 만세” 외쳤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년부터 기생, 승려까지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일제 강점기 법원의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다. 일제에 의해 식민화된 당시 법원은 ‘조선 독립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소년들에게도 보안법과 형법 등을 적용해 징역형을 선고했다. 국가기록원은 일제의 판결문을 통해 본 영남과 호남, 제주의 3·1운동을 담은 ‘독립운동 판결문 자료집 3·1운동 Ⅱ’를 펴냈다고 26일 밝혔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기생들도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통영의 기생조합 소속 기생 정막래(21)와 이소선(20)은 금반지와 금비녀 등을 팔아 같은 복장차림으로, 수천명이 함께 한 독립운동에 앞장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보탰다. 식민지 법원은 정막래와 이소선에게 각각 징역 6월형을 선고했다. 기록원은 교사와 학생은 물론이고 승려, 목사, 관료, 농민, 노동자, 상인, 수공업자, 기생 등 나이와 신분을 뛰어 넘어 각계각층의 조선인이 3·1운동의 주인공이었음이 판결문 분석을 통해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 판결문 원문과 번역본은 국기기록원 누리집(http://archives.go.kr)을 열어 기록정보콘텐츠-전문콘텐츠를 누르면 열람할 수 있다. 인명, 지역명과 혐의별로도 검색할 수 있다.


14. 사랑의 결핍은 그것이 채워짐으로써도 치유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줌으로써도 치유됩니다.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하는 것입니다. 버려진 것들과의 관계, 피투성이의 삶, 불바다, 피바다, 모래바다, 무쇠성, 서천의 끝, 무간 팔만사천 지옥과 관계하는 손입니다. 바리공주와 함께 하시는 손이며, 에스더와 모르드게와 함께 하는 손이며, 교사와 학생은 물론이고 승려, 목사, 관료, 농민, 노동자, 상인, 수공업자, 기생 등 나이와 신분을 뛰어 넘어 각계각층의 조선인이 3·1운동의 주인공과 함께 하는 손이며, 오늘 이 땅의 남북 민중과 함께 하는 손입니다.


15. 내가 읽거나 들은 바 그 동안의 향린교회 목회기도들은 그 수치를 공식적으로 산술화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내부의 호소와 통곡으로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평신도 목회자의 하늘 뜻 펴기는 국가 폭력 앞에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라는 말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공동체, 공동체성이란 서로 간의 신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 나라 감사원, 대법원(1,2심은 고사하고), 헌재, 검찰, 줏대 없이 흔들리는 저들에게  그냥 이 나라를 맡겨둘 수만도 없어 신뢰의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어 향린을 한 나라(국가)로 본다면, 향린을 국회로 본다면! 국회의원 300명, 향린멤버 300명, 이 나라를 고추바로세우기에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르 8:34)”는 주님의 말씀에 의지합니다. 향린은, 수능처럼 줄서기 장소가 아닙니다.


16. ‘우리의 꿈’이 핑계가 되지만 자기는 아무것도 잃으려 하지 않는 사회는, 자기 자식(무리 당 패거리)을 위해선 누구라도 죽이는 ‘죽은 시인의 사회’입니다. 법은 하나입니다. 또한 너도 나도 한 번의 인생만 살아야 합니다. 자기예외주의는 예수를 자꾸 죽입니다. 예수를 죽여서라도 내 갈 길, 우리의 갈 길을 가고 말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시를 읽는 것은 시가 아름답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랍니다. 사무엘 베게트가 그랬다네요. “시련은 포기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코스모스 프로젝트: (어떤 물이든) 물이 있으면 생명체는 존재할 수 있다. 물이 없이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 암흑물질: 탐지 불가능, 미국 뉴욕대학 마이클 람피노(Michael Rampino) 박사는 23년째 찾고 있다.


17. 남원 추어탕과 창세기 축복: 저는 경상도 사람이고 제 아내는 전라도 사람입니다. 제 아내에 따르면, 최근 기장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금식선교대회에서 목사님 설교말씀이, 남원의 어느 교회 신자가 교회건축헌금을 1000만원 작정하리라 결심했는데 그날 그 교회 설교제목이 “0 하나 더 붙이기”여서 여간 고민이 아니었답니다.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으나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너무 어려워하던 중 장마가 져 어느 날 여러 형제들과 미꾸라지를 잡아다 탕을 끓였는데 그 양이 너무 많아 주변 사람들과 나누어 먹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이 맛이 너무 좋다면서 추어탕 집을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해서 정말 그렇게 했더니 너무 잘 되어서 전국망을 갖게 되었노라고, 그게 남원추어탕이라는 겁니다. 귀 있는 분들은 들으시고, 이걸 복음으로 받으실 분은 분량만큼 복을 누리십시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나눈다는 것, 어려운 이웃과 생명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에 귀가 활짝 열리신 분들은 바로 그 복을 누리시기를! 어려운 이웃은 온 세계에, 또 북에도 있고 남에도 있으며, 어려움의 내용도 다양하므로 그 생명의 관계망도 무지개 빛일 수 있지요. 또한 우리 교회에도 부모·자녀들 간 불편한 관계나, 병으로 인하여, 가난 때문에, 실직 중에 있어서 어려운 분들이 계실 터인즉 거기 생명의 관계에 0을 하나 더 붙여 가슴 벅찬 기쁨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지난해 마지막 주일 “하느님의 상속자” 제목의 설교 끝부분에서 조 목사님은, “향린교회는..... 남한 내의 7만개의 교회 가운데 세상에 그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자유와 해방의 복음을 생명으로 하는 진보교회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불의한 국가권력이 틈을 타지 못하도록 서로 용서하고 서러 격려하고 손 잡아주면서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 매진하십시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말씀을 붙잡고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 하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향린은 오늘 본문 창세기의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대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향린은 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나와 향린 사이에 내가 몸소 언약을 세워서, 향린을 (생명 나눔 관계에서) 크게 번성하게 하겠다. 향린은 (생명 나눔 관계에서) 자기 나라를 살리고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생명 나눔 관계에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만들었으니, 너에게서 (참 생명의) 여러 민족이 나오고, 너에게서 (참 생명의) 왕들도 나올 것이다. 너의 뒤에 오는 너의 자손과도 대대로 세우는 영원한 언약이다. 향린은 생명 나눔 관계의 어버이가 될 것이다.”라는 축복이 오늘 향린우리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계속되는 박근혜 대통령 규탄 전단지 뉴시스|입력2015.02.28 16:40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박근혜는 물러나라' 플래카드를 들고 시청으로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주의를염원하는시민들 회원들이 한국은행 맞은편 건물 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는 전단지를 뿌리고 있다. 2015.02.28.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 행진 |입력2015.02.28 16:36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박근혜는 물러나라' 플래카드를 들고 시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5.02.28.


구호 외치는 백기완 소장 |입력2015.02.28 16:11|수정2015.02.28 16:29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중의 힘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에서 백기완(가운데)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02.28.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 |수정2015.02.28 16:30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중의 힘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02.28.


'박근혜는 물러나라'구호 외치는 범국민대회 참가자들 |수정16:30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중의 힘 등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박근혜는 물러나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02.28.


박근혜 대통령 규탄 유모차 행진 |입력2015.02.28 16:59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가 '박근혜는 물러나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고 아이와 함께 시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5.02.28.

행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입력2015.02.28 16:59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28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역 광장에서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범국민대회'를 마친 SKB, LGU+ 비정규직지부 노조원들이 '비정규직 철폐'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청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5.02.28.suncho21@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