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전과 탈핵(사순절 셋째주일, 탈핵주일)

20:1-17; 고전 1:18-25; 2:13-22

 

[평신도 하늘뜻]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년 여신도회 조성주(집사)입니다. 평소에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향린의 여성 어르신 분들의 가정생활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최근 전체 여신도회 모임을 참여하면서 몇몇 분들과 편안한 수다의 시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내는 중에, 남편이 죽도록 좋아서 쫓아 다녔다는 젊은 날의 이야기며 지금도 꼼짝 못하고 살아간다는 당당한 고백을 들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의외로 이런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믿기지 않으신가요? 근사한 카페에서 차와 빵을 나누면서 탈모와 염색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피부 관리, 화장법, 결혼할 때 있었던 일, 맘에 안 드는 아들 며느리와 사위, 시누이 얘기 등 정말 쉬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참 편안하고 따뜻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의 미래가 그려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순수하고 예쁘게 나이 들면 좋겠습니다.

 

향린에 온지 어느덧 7년이 흘렀습니다. 광야로 내몰린 이스라엘 백성처럼 이곳저곳 교회를 떠돌아다니는 시기가 있었는데, 아직은 어린 저희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정착을 해야겠다는 다급함이 생길 즈음 향린에 오게 되었습니다. 첫 소감은 기존 교회의 틀은 유지하면서도 개혁적인 모습이 제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남편이 아주 만족스러워하더군요. 실은 저희가 다니던 교회는 선교회에서 활동하는 리더쉽이 많은 교회였고 독립교단으로 나서면서 평신도 교회의 모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30-40여 가정으로 시작한 작은 교회로 아주 친밀하고 따뜻한 저희 몸과 같은 사람들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전임사역자 초빙을 하게 되는 과정에 선교회 목사님 중 순복음 신학을 하신 목사님을 초빙하게 되면서 남편이 교회 앞에 통보를 해버리더군요... 저희 가정은 교회를 떠나겠다구요. 섣부른 결정이라고 많은 분들이 만류했지만 목사님이 오시기 전에 결정하는게 맞는 것 같다면서 오셔서 열심히 사역하시는데 도중에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나오게 되면 공동체에 더 나쁠 것 같다고 말입니다. 제가, 저희 가정이 이런 일을 겪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자유로움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광야의 길을 들어서게 되고 저희와 비슷한 몇 가정과 함께 모든 계파를 초월한 교회와 신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도 하고 참여도 할 수 있었습니다. 제 기반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아픈 시간들이기도 했습니다. 때로 이전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도 많았지만 전처럼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임이 자꾸 분명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저기로도 돌아갈 수 없고 여기도 내가 있을 곳인지 모르는 떠도는 나그네.

 

그래서였을까요? 향린의 예배는 늘 저희 가정에 깊은 위로와 안식을 주었습니다. 하늘뜻펴기의 말씀들은 진짜 하늘의 뜻 같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마지막 축도 시간에 전해지는 자유인으로 사십시오라는 메시지는 하느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요즘 저의 남편 이원규집사는 주일 오전 9시부터 도서관을 갑니다. 저보다 먼저 집을 나섭니다. 평일이나 주말이 바쁜 업무라 주일 아침 조용히 책 속에서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요. 진정한 안식일을 보내는게 아닐까 싶어 부럽기도 하지만 워낙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제가 따라한다고 같은 은혜를 누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늘 안부를 물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자신은 향린인이며 향린 교회만큼 훌륭한 교회는 없다고 저와 저희 아이들께 늘 말합니다. 제가 보기엔 교회는 나오지 않지만 향린인으로서 살려고 노력은 하는 듯합니다. 어여삐 여겨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평신도목회]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저는 2015년 제직 수련회의 순서 중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목회가 되는 교회라는 제2의 주제토의를 인도하고 발표했습니다. 제가 참가해야하는지도 망설여지는 주제들인데 인도자가 되라니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일 조장들의 발표 후 담임목사님께서 평신도 하늘 뜻 펴기 시간에 다시 한번 발표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들을 때도 물론 교회 전체에 유익한 부분이 있어서 적당한 분을 선정해서 하실 줄 알았지 다음날 제 이름이 주보 하늘 뜻펴기 담당자로 실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평신도 교회...실감이 오는 것 같습니다.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그날 나눈 토론의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벌써 4주가 지난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데 한계가 있겠다는 점과 더구나 제가 향린의 제도나 운영 등에 대하여 미숙해서 토론 중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정리를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토론에 함께 하셨던 분들의 의견을 제 나름으로 해석한 부분도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후에 제 생각을 추가한 부분도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저희 조가 나눴던 내용을 간추려보았습니다. 먼저 현재의 향린은 평신도 교회인가? 무엇이 평신도 교회임을 나타내 주는 것일까라는 날카로운 진단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교회 재정의 4-50%가 이미 전임사역자 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면에서 볼 때 평신도 교회라 할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평신도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라는 표현이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전에도 언뜻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 제가 2015 목회보고서를 살펴보았더니 2015년 전체 예산이 56천정도이고 여기에 특별선교 헌금 33백만원을 합치면 총예산이 약 6억원이더군요. 또 담임목회자와 두 분의 부목사 사례비 항목이 1억 천여만원이고 판공비를 더하면 13천정도 됩니다. 계산하니 약 21%였습니다. 그 외 교회 전도사와관리직원, 사무직원, 성가대 예향 봉사자를 다 합쳐도 이렇게는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역비를 어디까지 해야하는지 잘 모릅니다.

 

또 교우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한다는 면에서 직분 임명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섬돌 향린은 당회라는 조직이 없이 누구나 평신도임을 나타내는 000님이라는 호칭으로 사용하며 이것이 진정한 평신도 향린정신을 실천이 아닐까 이야기하셨습니다. 목회운영위원회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누어졌습니다. 함께 협의한다는 사항은 있지만 모든 결정이 목운위 중심인 현행 구조로는 장로와 당회는 불필요한 부분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교우 관계가 민주적인 것은 좋은데 한 공동체를 움직여 가는데 존경받는 장로와 당회의 사역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고 염려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지금 교회에 누구도 권력을 가지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지만 목운위는 제도적으로 마련한 민주적 장치이며 평신도 교회로서의 자랑거리라 힘주어 말씀하시며 목운위 제도를 높이 평가하신다고 주장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번 토론에서 제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향린 목운위가 설립된 목적에는 당회의 권력 집중화에 따른 폐해를 보완하고자 하는 취지가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권력이든 집중되면 그에 따른 위험이 있나봅니다. 저의 이런 이해를 돕고자 목사님이 참고하라며 보내주신 내용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고로 현재 당회와 목운위는 권력 집중을 막기 위한 방식도 되지만, 이미 장로의 임기가 정해져 있고 목회자 또한 임기제가 되어 있어 권력 집중의 폐단은 없습니다. 일을 나눈다는 입장에서 그리고 교회 일에 더 많은 교인들이 참여하기 위한 의도에서 목운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당회와 목운위는 현재 하는 일이 약간 구분되어 있습니다. 당회는 교회의 큰 방향을 세우는 일과 직분자 임명과 사람을 키우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고 목운위는 예산 관련 집행과 일을 하면서 신도회장들과 부서장들이 서로 만나 대화하는 장입니다. 권력의 입장에서만 양자를 보는 것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잘 모르는게 참 많습니다.

 

토론 도중, 제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던데, 젊은 분들은 다들 이렇게 생각해요 등 불명확한 대상을 거론 하지 말고 가능하면 제 생각은...”, “저는...” 으로 말하도록 주의를 나누기도할 만큼 팽팽한 의견 대립도 있었습니다. 그 외도 너무 많은 사역들로 생겨난 부서별, 기관별 모임들로 교회가 여기저기 울리는 징소리 마냥 시끄럽고 분주하며 정신없는 장소가 되가는 곳임이 안타깝다고 하셨습니다. 그에 따른 소통부재가 공동체성을 약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구요. 교회의 제도나 운영이 완전할 수는 없기에 현재에 안주 하지 말고 계속적인 고민과 성찰. 개선이 필요하겠다는 것을 인식하게 해주는 자리가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모든 장로님들의 생각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장로님 입장에서 그런 어려움이 있으시겠구나, 권사님은 이런 불편이 있으시구나, 또는 목운위원으로서, 부서 부서장으로서 여러 각도의 시선으로 평신도교회의 현재를 진단해 볼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분 한분이 일선에서 열심히 사역을 감당하시는 분들이라 더 할 이야기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열띤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나눠주시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기울여주신 한분 한분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혹 서로 다른 생각이 있음을 알았지만, 평등하고 자유로운 의사발언이 가능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시간이 진짜 멋졌습니다!!!! 향린 이전의 저의 오랜 교회 생활 중 이렇게 자유롭고 활기찬 의견 나눔을 가져본 기억이 없습니다. 교회운영은 토론의 대상일수도 없었고 언제나 일방적인 전달이 많았고 내 생각과는 달라도 순종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무엇이 더 옳은지 생각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이번 토론은 권리와 함께 책임을 다하며 합리적 방향을 찾아가는 향린 평신도들의 진면목을 보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목회가 되는 교회저희 2조가 공통적으로 일치 했던 사항은 실천 방안이었습니다. 지금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좋은 평신도 교회를 세워가는 일임을 확인하면서 서로에게 훈훈한 미소를 나누며 마무리 했습니다. 평신도 교회인 향린의 미래는 아주 맑음 아닐까요? 제 개인적으로는 향린을 출석하면서 충격적인 예배중의 하나가 평신도 하늘 뜻 펴기를 한다는 것이었음도 말씀드립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다는 것은 더 충격적입니다. 앞으로는 장로님들과 권사님들도 하늘뜻펴기에 정규적으로 참여하시면 어떨까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장로님들을 비롯하여 오랫동안 교회를 섬기시며 세워 오신 분들의 삶과 나눔은 언제나 교회에 큰 힘이 되지 않을까요?

 

광화문 사거리 외벽에 걸린 큼직한 글판의 내용이 올 3월을 맞아 새로운 봄편으로 바뀌었습니다. ‘꽃 피기 전 봄산처럼, 꽃 핀 봄산처럼 누군가의 가슴 울령여 보았으면함민복 시인의 마흔 번째 봄이라는 시의 한 구절을 나누며 하늘 뜻 펴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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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신 신앙의 핵심]

 

내 앞에 다른 신을 모시지 말라는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애굽의 태양신 신이나 가나안의 풍요의 신 바알이나 바벨론의 창조의 신 마르둑을 섬기지 말고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만을 섬기라는 뜻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신의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요? 야훼만을 예배하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야훼의 예언자들은 왜 그렇게 비난을 하였던 것인가요? 오늘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는 달리 첫 시작부터 성전 숙청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는 성전을 허물라는 과격한 발언을 모두발언으로 하는 것일까요?

 

오늘 세계의 모든 교회들은 오로지 야훼만을 섬기고 있는데, 왜 교회의 비판이 끊이질 않는 것일까요? 예배의 대상을 야훼 하느님으로 하는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예배하는 자의 삶이 담긴 내용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훼 하느님은 어떤 내용을 원하시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킨 하느님이다.’라는 이 한 구절 안에 나와 있습니다. 유일신의 핵심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라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특수성에 있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주의 기원을 말하면서 모든 인간들은 하느님의 형상을 띠고 태어났다고 하는 것을 선언합니다. 이는 인간은 그 누구로부터 예속 받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자유인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어떤 정치 체제도 어떤 권력도 어떤 이념도 심지어는 종교나 신앙의 이름으로 심지어는 야훼의 이름으로도 인간을 억눌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야훼라는 히브리말의 본 뜻은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듯이 나 야훼를 예배하는 너희들도 어디에도 예속되어서는 안 되고 예속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인간 위에 인간 없고 인간 아래 인간 없다는 절대적 자유, 절대적 평등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서의 핵심이고 기독교의 핵심이고 예수 말씀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이 이렇게만 살아갈 수 있다면 사실 교회에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삶 자체가 야훼 하느님을 예배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만약 성수주일이라고 하는 용어가 여러분을 억매이게 하고 교회를 가지 않으면 뭔가 한주가 불안하다고 한다면 그건 여러분이 신앙의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핵심]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은 자유와 해방의 야훼 하느님을 따라 우리 또한 자유와 해방의 존재가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계명은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입니다. 처음 고대인들은 자연 안에 있는 이상하게 생긴 큰 바위나 큰 나무들을 신의 형상으로 여겨 섬기지만, 집단화가 일어나면 특별한 모양과 거대한 형상을 만들게 되고 그 상이 거하는 거대한 집 곧 성전을 짓게 됩니다. 여기에는 거대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고 그러자니 노예를 필요로 하게 되어 침략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특수계층인 사제계급이 생겨납니다. 곧 신의 형상화 작업은 인간 위에 인간이 자리 잡게 하는 요인이 됩니다. 세 번째 계명 야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것은 사유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훼라는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본뜻은 나의 이름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훼는 하느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규정짓는 일이고 규정짓는 일은 곧 소유를 의미하는 것이니 이름 짓기 하지 말라는 것이 세 번째 계명의 본뜻입니다. 야훼의 본뜻은 하느님의 이름이 아니라 이름 짓는 일을 금지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성서를 읽다가 야훼라는 용어를 만나게 되면 그 본뜻을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네 번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 쉬라는 말씀은 노예에게는 쉼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식일 하루만이라도 모두가 신 앞에서 평등한 존재임을 확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금지, 간음금지, 도둑질금지, 거짓증언 금지,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는 금지 명령 등은 모두 힘을 소유한 자들의 권력 횡포를 금하기 위한 계명이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의 본뜻 또한 부모님의 마음을 갖고 형제 우애와 나눔입니다. 곧 십계명은 단순한 종교적 계명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을 전제로 한 사회경제적 계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탈성전과 평신도목회]

 

탈 성전을 주장하는 예수의 말씀 또한 같은 맥락에서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의 식민지배 체제를 옹호하고 사제들의 지배적 권위를 정당화시키는 일에 근거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난 제직수련회의 두 번째 논의 주제인 평신도목회와 직접 연관이 됩니다. 500년 전 루터로부터 시작한 교회개혁운동이 사제의 전유물이었던 라틴어성서를 민중들의 언어로 번역하여 돌려주는데 있었다면, 오늘의 교회개혁운동의 핵심은 목사들의 전유물로 되어 있는 목회를 신도들에게 돌려주는데 있습니다. 62년 전 향린교회의 출발은 여기에 있었던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남한교회가 앞으로 계속 성장 발전할 것인가 아니면 한때를 풍미했던 종교로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인가 하는 과제는 이 평신도목회를 이룩하느냐 하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구경꾼으로 남아 있지 않고 책임 있는 자로서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은 향린교회의 사활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남한 교회 전체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하는 역사 인식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탈핵과 과학맹신]

 

오늘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공동으로 지키고 있는 탈핵주일입니다. 탈핵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탈핵에 관련한 신앙 과제들은 조금 있다 읽을 기도문에 그 내용이 다 나와 있습니다. 다만 탈핵을 탈성전이라는 오늘의 성서말씀의 주제에 비추어서 말한다면, 탈핵은 단순히 에너지 정책에만 국한된 주제가 아닙니다. 핵을 이용하는 원전은 인류 과학의 집대성으로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어 매우 안전하다고 여기는 곧 과학에 대한 맹신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원전이 석탄이나 석유보다 비용이 적게 들뿐만이 아니라 지구온난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맹신도 문제입니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더하면 비용은 훨씬 비싸게 먹히고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하면 이는 돈으로 환산이 안 되는 반생명적 에너지인 것입니다. 이는 월성원전 인접지역 주민들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갑상선암 발병률를 보이고 있고, 그리고 트리튬이라고 불리는 방사물질인 삼중수소 체내 농도가 남한사람 평균보다 2,30배 높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명합니다.

 

신앙인들이 성전을 우상화했을 때에 일어나는 이념적 폐단이 인간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대신에 성전의 노예로 만들어가듯이, 현대인들이 원전을 우상화했을 때에 일어나는 이념적 폐단은 인간을 아예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탈성전탈원전은 종교맹신과 과학맹신으로부터의 탈이념이라고 하는 점에서 그 맥이 하나로 닿아 있습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탈이념이 있는데, 그건 탈종북입니다.

 

[종북의 잣대는 과연 무엇인가?]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마당독도지킴이대표인 김기종씨가 미국대사 리퍼드씨를 과도로 피습한 일로 인해 논란이 되어 있습니다. 그가 과거에도 일본대사에게 벽돌을 던진 전력이 있고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폭력을 행사하였고 저도 기자회견장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지만, 자기를 초청하지 않았다고 매우 흥분하여 큰소리로 비난하는 것들은 비정상적인 과격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질병으로 인해 길을 가다 혹은 공개석상에서도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박노자교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말한 대로 그가 본래 과격한 사람이 아니라 대학 시절 계엄군에게 끌려가서 심한 고문을 받은 적이 있고, 또 그의 사무실에 권력의 하수인들로 추정되는 괴한 4명이 난입하여 사무실을 부수고 그곳에서 자던 후배를 강간한 일로 말미암아 진실 규명을 요구하다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까지 시도를 하였던 여러 사건들을 종합해보면 그는 가해자가 아니라 이미 국가권력에 의한 희생자인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의 폭력을 정당화시켜주지는 못하지만 만약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로 판명이 된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이지 중형 선고는 아닌 것입니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불러일으킨다고 하는 것이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그가 외쳤던 한미군사훈련으로 인해 남북이산가족 만남이 무산되었고 그래서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잘못으로 말하고 더구나 이를 북의 주장과 같다하여 종북으로 모는 일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줄기차게 외쳐온 독도는 우리 것이다라는 주장 또한 잘못된 것으로 말해야 할 것이고 북조선 또한 독도를 우리의 것이라고 계속 주장해 왔으니 이 주장 또한 종북으로 판결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의 옳고 그름의 판단 기준을 남한에 사는 우리들 스스로의 기준이 아닌 북조선에서 어떤 주장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판단의 기준을 둔다면 이야 말로 진짜 종북입니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진짜 종북이고 이를 부추기는 조중동의 보수언론이야말로 종북언론입니다.

 

미국은 김기종씩의 행위를 개인의 일탈로 보고 피습이라고 부르는데 반해 남한 정부는 계속 이를 테러로 말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칼을 사용하는 폭력에 대해서는 모두 테러라고 규정을 해야 할 것이고, 만약 그 피해자가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기에 테러라고 부른다면 그야말로 미국이 우리의 상전이라고 하는 식민지 노예 정신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 박근혜정권은 대선부정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물 타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의 승기를 잡기 위해 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파괴 행위라고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무려 100명이 넘는 공안부 형사들을 투입하여 배후를 캐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보면 지금 공안부원들은 진실을 캐는 게 아니라 뭔가를 조작하고 있을 것이고 그래서 공안(公安)부가 아니라 공작(工作)부 혹은 현 정부가 좋아하는 단어인 공안 창작(創作)부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평화협정체결 주장이 종북???]

 

저는 지금까지 통일운동을 하면서 박근혜정부 또한 이전 정부와 같이 당연히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분명히 밝혀지기를 평화협정을 주장하면 종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우리 교회가 종북이 되는 것은 물론 우리 교회가 소속해 있는 한국기독교협의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종북이 되는 것은 물론 2년 전 부산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한반도평화성명서에서 분명히 한미군사훈련 중지와 남북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였으니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회원 6억 명이 모두 종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안에는 미국교회가 포함되어 있으니 미국교회가 종북집단이 되었음은 물론 오바마도 기독교교인이니까 그도 종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예수께서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는 복이 있다.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평화주의자 예수 또한 종북이 된 것이고 성서의 가장 큰 핵심 주제가 샬롬 평화를 말하고 있으니 성서 또한 종북 책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정부가 완전히 미쳤습니다. 통진당을 해산시키고 나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1979년 박정희가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났을 때, 한 이백만 명 그냥 탱크로 쓸어버리면 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가 김재규정보부장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는데, 저는 두 번 다시 그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지난주부터 시작한 한미군사훈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그것도 두 달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북조선 붕괴를 목적으로 하는 침략 전쟁연습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흘리는 피는 직접 우리 눈에 보이지 않기에 그 폐해를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자살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요? 가장 큰 이유는 가난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그냥 자살하지는 않습니다. 자살에도 의지가 필요합니다. 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빈곤이 아닌 상대적 빈곤으로 인해 삶의 희망을 상실했을 때에 자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살률을 낮추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누구나가 기본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력이 비슷한 다른 OECD 국가가 갖고 있는 복지제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부자나 기업에 대한 세금을 적게 거두는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이유는 군사비 지출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 자살률의 근본 원인?]

 

국민총생산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은 세계에서 미국이 제일 높고 그 다음으로 그리스 영국 한국이 엇비슷합니다만, 우리 군대는 모병제가 아닌 징집제이기에 모병제로 환산한다면 단연코 세계 1위입니다. 그렇다면 남한의 GDP 대비 복지비율은 어떠한가요? OECD 최하위로서 다른 나라와 너무 차이가 심해 비교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군사비와 복지비용의 반비례 상관관계 그리고 복지와 자살율의 정비례 상관관계를 연결해 보면 남한의 세계 최고 자살율은 세계 최고의 군사비율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합니다. 그러하기에 한미군사훈련을 중지하는 요구는 우리가 살아남기 위한 매우 절박하고도 당연한 요구이지 여기에 무슨 종북이니 반미니 종남이니 친미니 하는 딱지를 붙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이요, 여기다가 안보 운운하며 우리 모두를 전쟁주의자로 몰고 가는 정치행태는 사람의 근본을 파괴하는 악마의 행태인 것입니다. 한미군사훈련으로 인한 우리 민족이 흘리는 그 피의 참혹함을 볼 줄 알아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참다운 지성인이요 신앙인이라 하겠습니다.

 

[안보논리와 미국의 군사자본]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군사비 지출을 줄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안보이념에 노예화가 되어 있는 분단 상황이고 또 이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북과 남은 엎드리면 서로의 코가 닿습니다. 여기에 중국 내륙 깊숙이 무려 반경 2천킬로을 날아갈 수 있는 F35 전투기나 공중급유기나 사드와 같은 신형 미사일체제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런 무기들은 한반도 안에서는 모두 무용지물이고 이는 모두 중국이나 러시아를 상대로 한 무기들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남한의 군작전통제권을 쥐어 잡고서는 우리에게 불필요한 이런 무기들을 구입하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가다가 만약 중국과 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은 미국을 대신한 총알받이가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대화를 바라는 북조선을 지난 70년 동안 경제봉쇄와 적대정책을 통해 구석으로 몰아놓고 악마화를 계속하고 있고 무조건 무릎을 꿇을 것을 강요하여 왔습니다. 여기에 북은 살아남기 위해 똘똘 뭉쳐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습니다.

 

본래 북은 비핵화정책을 갖고 있었고, 19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협약에 따라 핵무기 원료 추출이 불가능한 경수로 원전으로 바꾸기 위한 KEDO에 참여하였고, 영변의 핵시설을 공개적으로 부수었고, 남한이 돈을 대어 영변에 기초공사까지 닦았지만, 미국이 매년 원유 50만톤을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 이 협약은 파기되었고, 결국 시간이 흘러 북이 핵을 갖게 된 것입니다. 미국은 겉으로는 북이 핵을 갖지 못하도록 압박을 하는 척 했지만, 실제로는 핵을 갖도록 방치하였고 그리고는 핵을 빌미로 남한과 일본에 미군사기지 주둔을 정당화하고 비싼 신무기를 계속 팔아먹고 있는 것입니다. 한미군사훈련이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전쟁도발의 위험이 있으니까 한반도 근처에서 하지 말고 저 멀리 하와이나 알라스카에 가서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병사들도 그런 기회에 하와이도 한번 가봄으로 해외견문을 넓힐 수 있으니 이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겠는가. 제 얘기가 틀렸나요?

 

[위안부 문제와 미국]

 

그런데 이런 극단의 남북대결 상황에서 최근 웬디 셔먼 미국무부 차관이 우리나라와 중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을 놓고 일본 아베정권과 과거사 문제로 다투고 있는 걸 나무라며 과거는 흘러간 것이니 과거를 넘어서라는 충고성 발언을 하여 양국가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자기 누나가 그런 치욕적인 일을 당했다면 과거를 잊자고 말하였겠습니까? 아니 미국의 15, 16세의 앳된 소녀들이 하루에도 30명 이상을 상대해야하는 일본군인의 성적 노리개로 이용당했다면 과연 이런 발언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주 못된 사람이고 몰상식한 인간입니다. 아니 어디 한번 이스라엘에 가서 나치의 학살을 넘어서자고 얘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떤 반응이 나오는지? 정말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입니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먼저 진정어린 사과가 있을 때에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폴란드가 과거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의 대통령이 희생자들 무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정한 용서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사과도 없고 오히려 식민지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도움이 되었다는 식의 침략주의 발언을 하고 일본 교과서에 조선의 식민 지배와 중국 침략을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일본의 진출이라는 역사날조와 미화를 꾀하고 있는 아베 정권 하에서 과거를 넘어서라는 발언은 정신 나간 발언입니다. 그간 기회만 되면 과거사 문제를 분명히 하겠다고 말해온 박근혜씨가 셔먼의 발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또한 미국의 가르침(?)에 굴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신앙의 최종목표]

 

우리는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한국전쟁 그 외에 수많은 양민학살의 참혹한 과거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려면 과거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지배자들의 논리에 담긴 허구를 제대로 알아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야훼 하느님은 하필이면 지지리도 못난 애굽의 노예들을 새로운 역사의 주역으로 삼았는지, 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허물라고 하였는지 왜 사도바울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 수 없고 오로지 어리석다는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만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하였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최종 목표는 세상 그 무엇으로부터 예속되지 아니하는 자유와 해방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오늘의 하늘뜻펴기를 마치겠습니다. 야훼 하느님의 자유하심의 은총이 여러분이 이 땅에 거하시는 내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