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은 제2의 십자가 운동

25:6-9; 118:1-2, 14-24; 10:34-43; 20:1-18

 

성서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러 제자들에게 심지어는 무려 500명 앞에 나타난 적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부활절 단상에 서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단 한번이라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성전이라든가 아니면 시장터에라도 한번 나타나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눈치 채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루가는 오늘 본문 사도행전 41절에서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부활을 목격하려면 먼저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나흘 동안 죽었던 나자로를 다시 살리신 예수께서 사흘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애기가 유별난 주장도 아니겠지만, 믿음이 먼저 있어야 부활 예수를 볼 수 있다는 전제는 교회 밖의 사람들을 설득하기에는 뭔가 부족합니다.

 

[‘부활에 관련한 질문들]

 

그런데 교회 안에 있는 우리라 하더라도 성서를 읽다보면 때로는 도마와 같이 의심이 일어납니다. 우선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서 마리아가 처음에는 동산지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부활하신 예수님었음을 확인하는 대목입니다. 죽었으리라고 생각했던 예수가 눈 앞에 나타나자, 마리아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예수를 껴안으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잠깐! 물론 잠깐이라는 단어는 본문에는 없습니다만, 예수는 그를 막아서면서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만지지 말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니 바로 다음 장에 가면 도마는 직접 예수의 못자국과 창자국까지도 만져보았다고 말하면서 이 대목에서는 왜 못 만지게 하는 것이냐? 이거 성차별 아니냐? 하는 항의가 나올만한 구절입니다. 추측을 해보면 그럼 마리아에게 나타나시고 그리고 도마에게 나타나기 그 사이에 하늘 아버지께 다녀온 것 같은데, 그 하늘은 우주 공간 어디에 있고, 예수는 뭘 타고 갔다 오셨을까? 날개가 달려 날아서 갔다 온 것인가?

 

그리고 도마가 예수의 손과 발에 있는 못자국과 허리에 나 있는 창자국을 직접 손으로 만져 확인했다고 증언 또한 예수의 몸의 부활 사실성에 대한 증거가 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부활을 하게 되면 우리 몸에 있는 상처의 흔적들은 복원이 되지 않고 그대로 남는 것인가? 수술 자국도 그대로 남는 것인가? 다리가 잘린 장애인은 다리가 잘린 채로 팔이 없는 장애인은 팔이 없는 상태로 부활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참수형을 당한 사람은 어떻게 부활하는 것인가? 제가 너무 나갔나요?

 

루가복음은 또 다른 얘기를 전합니다. 예수를 따라다녔던 글레오파라는 제자와 다른 한 제자가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고 있는데, 어떤 낯선 사람이 끼어들어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면서 한나절을 동행합니다. 그런데 함께 저녁을 먹고 나서 헤어지고 보니 부활 예수였다는 것 아닙니까? 얼굴 보고 스승 예수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떡을 뗄 때에 가슴이 뜨거워진걸 보니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 관련한 질문들]

 

오늘 모든 목사들이 설교 단상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건 몸의 부활이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몸의 부활! 몸의 부활! 하는데, 부활도 문제가 되지만, 도대체 몸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습니까? 의학에서 말하듯이 살과 뼈와 내장으로 구성된 생명체인가요? 아니면 생물학에서 말하듯이, 수십억 년 전 원초적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는 진화의 고리인가요? 아니면, 물리학에서 말하듯이, 138억년동안 진행 중인 우주빅뱅 폭발의 파편들인 세포들의 집합체인가요? 아니면 신학에서 말하듯이, 하느님의 형상을 띤 타자와 구별되는 개인화된 인격체인가요? 아니면 어떤 미학자가 말하듯이 몸이란 가없는 시공간내의 응축된 세계의 마디인가요?(김동규,멜랑콜리아22) ‘예수 몸의 부활성서의 저자들마다 해석이 달라 그리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부활의 첫 번째 해석]

 

사람마다 부활을 접근하는 방식과 해석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저는 가장 먼저 기록된 마르코복음의 빈 무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기를 좋아합니다. 빈 무덤 이야기는 두 가지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는 예수는 자신의 부활의 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는 대신에 이미 갈릴리로 가셨으니 나를 만나려거든 갈릴리로 오라는 것이고 이는 결국 예수께서 하셨던 갈릴리 하느님 나라 운동을 계속 이어가라는 얘기입니다. 이 얘기를 듣고 두려움에 떨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여성 제자들에 관한 증언은 여기에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따라 갈릴리에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하는 것은 결국 십자가의 죽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마르코가 이해하는 부활은 부당한 죽음을 당한 스승 예수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사 진실 운동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즘 도마복음을 공부하면서 더욱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건 예수 공동체 안에 가장 처음 회자하기 시작한 예수 이야기 곧 도마복음서나 마태와 루가복음서에 공통으로 나오는 예수 말씀 자료인 Q복음서에는 십자가 수난 얘기가 하나도 없는데,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서 마르코가 자기 얘기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를 지혜로운 스승으로만 보는 도마공동체나 Q공동체는 예수 죽음의 실체를 덮는 비겁한 행동이요 위선적인 신앙으로 보고 예수를 기억하는 운동의 핵은 그가 전한 말씀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처형을 각오하고 갈릴리의 억눌리고 착취당하는 민중들을 깨워 저들이야 말로 다가오는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데 있었음을 당당히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마르코가 자신의 얘기의 3분지 1 이상을 예수의 생애 마지막 일주일에 일어난 수난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고, 나머지 3분지 2의 생애 이야기의 전체 구조 또한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적대적인 틀 안에서 얘기를 풀어가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예수 죽음의 진실을 알리는 일과 민중의 저항 이것이 마르코가 목표했던 복음서 저술의 목적입니다.

 

후에 첨가된 마르코복음서 169절 이하의 부활이야기나 후기에 기록된 마태나 루가복음서의 부활이야기는 모두 부활이 꾸며낸 얘기라는 외부의 주장에 대한 변증의 요소가 많습니다. 당시의 시대철학인 영지주의자들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 잠시 인간의 몸을 빌려 오셨던 것이고 그 영은 십자가를 대신 졌던 시몬에게로 옮겨졌다고 하는 가현설에 대응하기 위해 몸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보다 후기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여기에 더 큰 방점을 두어서 역사적 예수의 몸을 일반적인 헬라어인 소마’()라 부르지 않고 굳이 사르크스’(살덩어리)라고 부르는 이유이고 부활 예수 또한 제자들과 함께 아침밥을 먹었다는 약간 억지스런 얘기까지 부연하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여기서도 저는 불경스럽게 그럼 나도 나중에 부활해서 아침을 먹게 되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멈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부활은 사실로서 증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내기에 부활은 복음의 핵심인 하느님 나라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천국과 영생이라는 개인/종교적 관점이 아닌 하느님나라라는 정치/역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부활 anastasis라는 헬라어 단어 문자적 뜻은 일어서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영생에 방점을 두고 해석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저항의 의미로 읽혔다는 것입니다. 이미 바빌론에서 살아가던 예언자 에스겔에게 그발 강가 광야에 널려진 마른 뼈들이 뼈를 맞추고 살이 돋고 생기가 들어가 하나의 거대한 군대로 일어서는 계시를 통해 남과 북의 왕국이 하나로 통일되는 환상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마른 뼈환상은 민중 저항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부활 사건입니다.

 

[국가폭력과 4]

 

4월은 유난히도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 난무한 달입니다. 194843일은 제주도민 전체 10분지 1이 넘는 3만 명이 무참히 살해당한 제주항쟁의 날입니다. 1960419일은 김주열을 비롯한 수백 명의 민주 시민들과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이승만 독재에 저항한 민주항쟁의 날입니다. 그리고 2014416일은 304명의 생명이 충분히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날입니다.

 

희생자 안산고등학교 2학년 유예은 양의 어머니 박은희전도사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절규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오열하는 가족들을 향해 사고로 죽는 사람이 한둘이냐? 그만 유난 좀 떨어라하며 꾸짖는다. 단순한 사고라면 그리고 책임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았다면, 함께 있던 탑승객들의 수습이 모두 끝났다면 우리는 지금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416일 우리가 진도에서 본 모습은 뉴스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구조보다는 감시가 이루어졌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구조를 위해 달려온 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리고 부모들과 국민들은 멀쩡한 목숨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봐야 했다. 이후 전쟁보다 더 참혹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아직도 수습되지 않은 가족들이 있기에 합동영결식조차 하지 못하고 여전히 2014416일에 묶여 있다.(기독교사상 2015460)

 

43, 419, 416일 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4월의 날이 있습니다. 그건 49일입니다. 박정희유신독재의 절정의 해인 197549일에 새벽 인혁당 관련 8명의 사형집행이 있었습니다. 대법원 사형 판결이 있기도 전에 사형판결문이 군검찰부에 이미 와 있었던 사실만으로도 청와대 권력의 직접 개입을 분명히 알 수 있는 사건입니다. 당시 가족들이 당해야 했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다음의 얘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동네 아이들이 하재완씨의 세 살 먹은 어린애를 끌어다가 목에 새끼줄을 묶어놓고 빨갱이 자식이니 총살해야 한다는 놀이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빨갱이가 뭔지 총살이 뭔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부모님들과 마을 어른들의 공공연한 손가락질을 통해 미움을 배운 것이지요. 지금은 박정희유신독재가 저지른 조작으로 판결이 났지만, 당시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이 또한 역사 속에 그냥 묻혀 있을지도 모를 사건입니다.

 

[시노트신부와 인혁당 조작사건]

 

그 한분은 얼마 전에 돌아가신 시노트 신부입니다. 49, 사형장 앞에서 가족들과 함께 주검만이라도 돌려 달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끌려가는 사진이 외신에 크게 실렸습니다. 이후 신부님은 시신 확인 과정을 선교회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렸고 이로 인해 국제법학자협회는 4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했던 것입니다. 후에 시노트 신부님은 인혁당 사건이 BBC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나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신부님은 곧 바로 정부로부터 추방을 당했었고, 876월 항쟁 이후 14년 만에 입국하여 인혁당 사형수 8명의 가족과 눈물의 재회를 했으며 작년 10월에는 197549이란 책을 통해 인혁당 간첩조작사건을 보다 자세하게 증언했습니다. 이번 주 목요일은 4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영국의 시인 엘리오트가 읊었던 잔인한 4월이 2015년의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더욱 잔인해지고 있습니다. 진상 규명과 인양을 통해 9명의 시신을 구해내기 위해 일부 유가족들은 목숨을 건 삼보일배 걷기 투쟁이 팽목항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지난 주 목요일에는 50여명의 유가족 부모님들이 광화문에서 삭발을 하였으며 어제 안산에서부터 출발한 운구가 광화문을 향해 걸어오고 있습니다.

 

[세월호와 교회의 책임]

유가족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면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돈과 권력이라는 우상숭배의 결과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단이라고 말하지만, 유병언의 구원파 또한 기독교의 일파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권력과 교회가 합작해서 이루어진 살인사건입니다. 우리는 구원파 신도들이 당시 청와대의 비서실장으로 권력의 핵심이었던 김기춘씨가 자신들을 주범으로 몰자 김기춘실장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나서 유병언씨의 시신이 갑자기 논두렁에서 발견되었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것이고 이것으로 유병언 구원파는 책임 전면에서 뒤로 사라졌습니다. 종교권력과 국가권력의 깊고 깊은 밀착을 암시하고 있으며 저는 그럴 리야 없겠지만, 정부 발표에 속은 경우가 너무 많다보니 나중에 정말 유병언씨가 재림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염려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은 국민이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밝혀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국가권력이 깊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1년이 다되어가도록 그 진상규명을 위한 위원회조차 제대로 발족하지 못하고 있다는게 말이 되는 얘기입니까? 하늘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천 미터 이상의 바다 속으로 잠수함이 드나드는데, 불과 수심 오십미터 배 속에 들어있는 시신조차 끄집어내지 못하고 있고 선체 인양 또한 예산을 문제 삼는 것은 변명일 따름입니다.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전도사이기도 한 예은이의 어머님은 한국교회에 대해 쓴 소리를 내어놓습니다. 교인들은 위로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곳에 갔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떤 목사들은 강단에서 이번 참사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마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고통의 원인을 물었는데, 질문마저 죄악시하며 이를 문제시여기는 교회를 비판합니다.

 

그리고 의가사 요구, 특례입학 등등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는 언론으로 인해 유가족들을 돈밖에 모르는 파렴치한으로 만들어졌다고 하소연합니다. 이웃들과 친지들은 가족들을 향해 돈 많이 받아 좋겠다.’ ‘아껴 써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있습니다. 지금도 정부는 보상비 4억을 운운하며 유가족들을 고통으로 몰아놓고 있습니다. 그래 유가족 기독교 교인 대다수는 실망하여 교회를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처럼 소외된 이들, 군중 앞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을 일부러 찾아 가셨지만, 현재 남한의 교회들은 개교회성장이라는 담에 갇혀 세상의 아픈 자들을 볼 수 없게 된 현실을 고발합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 얘기를 말하면서 나사로는 천국에 나사로를 외면한 부자는 지옥불 속에 있다고 말하지만, 실상 교회는 나사로가 아닌 부자의 편을 들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 편이 된 남한 교회]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가는 도보 길에 어느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 것을 듣습니다. ‘어떻게 하느님이 그 아까운 애들이 부르짖는데 응답하지 않으셨을까?’ “그러게 말이야, 하느님이 잠깐 어디를 가셨나?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셨나? 그런데 어쩌겠어? 하느님이 이고 우리가 인데, 계속해서 물어보는 수밖에...‘

 

이어서 예은이의 어머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이 얘기에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신 하느님은 마냥 으로 계시지 않았다.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철저하게 로서 고난당하고 죽임당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서서히 의 위치가 되어가고 있다. 찾아가기보다 찾아오라고 하고, 나눠주기보다 모으기에 바쁘다. 교인들은 이 된 교회의 위치가 자신의 위치인 것처럼 착각하여, 더 이상 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더 강력한 이 되기 위해서 더 큰 교회로만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을 겪으면 비로소 이 허상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기독교사상 20154월호)

 

세월호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1년이 다되어 가도록 굴뚝에 올라간 노동자가 땅을 밟지 못하는 현실, 세계 제1의 자살공화국의 수치 속에 있습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지만,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은 계속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있습니다.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말합니다. “고통 그 자체는 아무 의미도 없다. 고통을 없애려고 투쟁할 때에만 고통은 의미가 있다.”

 

십자가 죽음의 사건을 부활 승리의 사건으로 고백하려면 우리가 먼저 십자가의 사건에 동참해야 하는 것이지, 십자가만 바라보고 입으로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노래한다고 해서 우리의 부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은 시체가 살아났다는 말이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무리들 속에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능력의 영으로 희망의 영으로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문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그렇다면 부활의 영이 들어가는 천국 문에는 무엇이라 씌어 있겠습니까? 이건 신곡에 나오는 얘기가 아닙니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너희 자신이 곧 희망이니라.’ 우리는 광화문 농성장에서 언제나 이를 확인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몸, 곧 그 살과 피를 우리로 하여금 나누어 먹도록 부탁하신 것은 바로 자신이 국가폭력으로 인해 살해당했던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고, 그리고 오늘의 갈릴리의 현장으로 가서 억눌린 사람들 편에 서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눌 때에 십자가와 부활 예수의 영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