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많은 자의 용기

3:12-19; 시편 4; 1 3:1-7; 루가 24:35-48

 

지난 한 주간 아니 지난 1년동안 남한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사안은 세월호 참사였습니다. 어제도 유가족들과 함께 했던 시민 백여명이 강제 연행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건강이나 혹은 직장 일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유가족들의 아픔의 외침에 함께 하지 못하였어도 마음만은 지금 삭발을 한 상태에서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침낭 하나에 의지하여 밤을 지새우는 유가족분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압니다.

 

[세월호와 향린교회]

 

교우들께서는 지난 1년동안 사고가 일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하여 왔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줄어들었던 지난 겨울에도 신도회별로 농성장을 방문하였고 최근 2주간은 매일 저녁 10여명의 교우들이 청와대 앞 청운동 거리에서 일인시위를 하여 왔고 16일과 어제 집회에도 수만명에 달하는 시민들과 함께 집회에 참여하여 왔습니다. 16일에는 새청 교우 한분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여러 시민들과 함께 강제 연행을 당하여 48시간을 유치장에 있다 나왔습니다. 저 또한 월요일에는 팽목항에서 백 명이 넘는 전국예수살기 회원들과 함께 9명의 실종자들이 속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화요일 저녁에는 기독교가 주최하는 예배 후에 유가족들의 요구를 담은 청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세 시간 가까이 도로에서 경찰들과 대치하는 일이 있었고, 나이든 목사들이 맨 앞장에 섰지만, 경찰들은 젊은 목사 2명과 신학생 5명이 강제 연행당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 목사들은 저들 대신에 우리가 들어가겠으니 저들을 풀어주라는 농성을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집회에 참석하여왔지만, ‘전도사를 석방하고 목사들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살다보니 별 이상한 구호를 다 외쳐댔습니다. 결국 8차 해산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물러서지 않자 자정을 넘어 목사와 신학생들을 맞바꾸자는 협상이 타결되어 목사 열한명이 제 발로 종로서로 걸어갔습니다. 붙잡힌 사람은 7명이었는데, 자원자가 더 많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를 대거 구속하면 교인들이 들고 일어날까봐 경찰은 약속을 어기고 구속을 거부하여 정보과 사무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고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40년 전 한신대를 다닐 때에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하여 4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 앞에서 아침 9시에 기습 거리 시위를 벌인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종로서 유치장에서 한 달 구류를 산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종로서 유치장에 들어가는 일은 제 개인에게 있어서는 추억의 옛 장소를 방문하는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그것도 39년도 아닌 41년도 아닌 성서가 자주 말하는 꼭 40년만이었거든요. 이거야 말로 제 개인에게 있어서는 크로노스가 아닌 카이로스의 사건이었는데, 이를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경찰이 사나이들끼리의 굳은 약속을 어김으로 아쉬움이 많았던 저녁이었습니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

 

지금 유가족들은 그동안 참아왔던 울분을 공개적으로 토로하고 있고, 죽음을 각오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보상금은 몇 억이 되었든 그건 돈 좋아하는 정부 관료들이 대신 가져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당시의 일들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전원구조라는 세 시간이 넘게 방송이 진행된 일이 대표적인 일입니다. 전원구조라고 말만 하였지, 구조되는 사진 한 장 없는 이상한 현장방송, 게다가 어떻게 모든 방송국이 그렇게 똑같을 수가 있었는가? 도대체가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게다가 해군참모총장이 두 번이나 통영함을 보내어 저들을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 보냈지만, 이를 차단한 세력은 도대체 누구인가? 기울어져가는 배를 보면서도 주위를 돌기만 했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해경이 어떻게 수십 척의 배와 헬기가 구조하고 있다는 이런 새빨간 거짓말을 어떻게 방송할 수가 있으며 그리고 어떻게 모든 공영 방송국이 이를 앵무새같이 그대로 따라할 수 있었는가?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목포방송 기자들은 전원구조가 아니다 배안에 사람이 있다라고 계속 정정하는 보도를 올렸지만, 누군가에 의해 전부 차단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외에도 더 많은 증거들이 있지만, 우리는 이런 사실만 갖고서도 세월호 사건은 최고 권력층의 사전 계획이 없지 않고서는 전연 가능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는 단순한 해양사고가 아닌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국가폭력에 의한 대량학살사건이요 대한민국의 아우슈비치입니다.

 

지금 살아남은 선장이나 선원들은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자책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는 저들의 증언은 눈을 씻고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국가권력이 저들의 입을 막고 있고 언론통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자유언론기구는 우리나라가 박정희유신독재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이번에 박근혜씨가 유가족은 한명도 없는 팽목항에 가서 20분동안 정치적 쇼를 하고 남미로 외교순방을 떠났습니다만, 하필이면 유가족들의 눈물을 씻어주어야 할 416일에 떠났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박근혜씨를 1년 전 빤츠 바람으로 배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을 친 선장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그러나 결과는 하느님께서]

 

물론 청와대 관료들은 이 16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오래 전부터 많은 연구를 했을 것입니다. 16일 하루 온종일 국내에 있으면서 유가족을 만나지 않는다면 비난의 화살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고, 그렇다고 해서 유가족을 만나게 되면 선체인양과 진상규명, 대통령특별시행령 폐기와 배보상논의 중단 등등 유가족들의 요구가 언론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16일 당일 오후에 떠나는 것으로 스케줄을 짠 것입니다. 시간이 없다는 사람이 유가족이 기다리고 있는 코앞의 안산의 합동분향소를 놔두고 유가족은 한명도 없는 저 멀리 반도 끝 팽목항까지 갔으니 이것이야 말로 자기모순이요 자가당착인 셈입니다. 이는 박근혜정권의 정체성을 분명히 말해주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 남미순방은 여러 가지 점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날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6일에 출발해야 세월호를 적당히 뭉개고 나갈 수 있고 더욱이 오늘 419민주혁명의 기념식도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이승만독재타도를 외치면서 온 국민이 들고 일어선 55주기가 되는 날입니다만, 이런 민주열기를 총칼로 짓밟은 사건이 곧 박정희의 516군사 쿠데타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언론은 419혁명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남미순방에서 돌아오는 28일은 29일 국회의원 재보선을 앞둔 하루 전날이라 선거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이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였다 하더라도 설마 경남기업의 성완종회장이 자살을 하면서 이완구총리를 비롯한 김기춘전비서실장, 홍준표경남지사를 비롯한 박근혜정권 실세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대폭탄이 터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도 주머니속의 뇌물금액이 적혀있는 쪽지만 있었으면 모른 채 덮고 가려고 했는데, 경향신문사에 육성 녹음으로 남겨놓았으니 이를 감출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을 바라보면서 잠언서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일의 결과는 하느님께 달려 있다.

 

[육의 고침을 넘어 영의 고침으로]

 

오늘 사도행전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왜 이 사람을 보고 놀라십니까?” 이는 성전 미문에 앉아 평생을 구걸하며 살아오던 한사람, 그는 나면서부터 장애를 갖고 앉은뱅이였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는데, 이를 사람들이 보고 놀란 것입니다. “왜 우리를 유심히 쳐다봅니까? 우리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거나 경건해서 이 사람을 걷게 하여준 줄로 생각합니까? 이것은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여러분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이 성서 본문의 핵심을 예수믿음으로 인한 병 고침 기적사건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중요한 구절은 그 다음에 나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것은 여러분이 무지한 탓이긴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을 것임을 예언한 바 있기에 이는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이룬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십시오.” 앉은뱅이를 고친 일은 단순히 병 고침 기적사건이 아닌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회개를 통한 새사람이 되는 일에 있음을 본문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지시하는 달을 보라고 곧 육신의 고침을 넘어 영혼의 고침으로 나아가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세월호와 남한교회의 3가지 죄]

 

저는 세월호 학살 1주기, 419혁명 55주기를 맞이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의미에서 회개를 하고 하느님께 돌아가는 새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잠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지난 11일 한국기독교윤리학회는 본회퍼 순교 70주년 기념, 세월호 이후의 신학과 윤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장신대 이동춘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한 남한교회의 3가지의 죄를 언급했습니다. 첫째는 세월호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 했던 한국교회 일부의 태도를 이기성의 죄로 말했습니다. 곧 국가폭력에 의한 집단 학살을 단순한 개인 참사로 돌려버린 죄를 지적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한기총 부회장이었던 조00목사가 세월호 참사 단원고 학생들을 가난한 집 애들이 분에 맞지 않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기에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 발언 같은 것입니다. 이는 결국 강도를 만나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보고서도 그건 개인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그냥 지나쳐간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될 것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돌리는 책임전가의 죄입니다. 강동구 명일동의 초대형교회 K목사는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게 아니다. 나라를 침몰시킬 수는 없어서 대신 이 어린 학생들을 침몰시키시면서 국민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자기 아들이나 손녀딸이 죽었어도 이렇게 설교하였을까요? ‘일제 강점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의 발언과 같은 논리인데, 역사의식의 부재라는 남한교회의 신앙 수준을 한마디로 보여준 것입니다.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비도덕적 양심과 행위 국가폭력은 그냥 악의 문제이지 이 악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하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이요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이중의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과거 광주시민 수백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정권을 쟁취한 전두환에게 여호수아와 같은 지도자라고 설교했던 목사와 같은 것입니다. 일제시대에 미국 선교사들은 일제의 지배를 합리화하기 위해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지 않도록 성서를 오용했는데,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남한 교회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입니다. 본회퍼목사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어느 미친 버스 운전사가 행인들이 걸어가고 있는 도보로 차를 몰고 갈 때에는 이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리는 것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행동이다.’ 이것은 폭력을 사용하는 일이기에 기독교인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인지 아니면 이것이야 말로 예수께서 말씀하신 원수를 사랑하라는 행동인지는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이교수는 현재 존경받고 있는 두 목사의 1년 전 설교를 인용하면서 비판하였습니다. ‘침묵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수록 입을 닫아야 합니다. 함부로 남을 정죄해선 안 됩니다. 여러분 그것은 범죄행위예요.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가야 해요이는 분당 W교회의 L목사의 발언인데 이분은 2만 명의 교인들을 훈련시켜 내보내어 10년 후에는 5천명으로 줄이겠다고 선언을 해서 유명해지셨던 분입니다. 2천명의 교회를 4개의 교회로 나누어 부목사들이 목회하도록 해서 유명해진 K목사 또한 1년 전 조용히 침묵하라고 설교를 했는데 이는 본회퍼목사가 당시 독재자 히틀러의 편을 들었던 독일교회를 비판한대로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드는 죄요, 악 앞에서 침묵하는 죄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같은 K목사가 엊그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또 다시 논란에 싸였습니다. ‘노란리본을 단 사람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길거리에 서서 기도하던 바리새인인과 같다. 자신은 그래서 달지 못하고 있다. 그게 종북좌파로 몰리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난 내 식대로 아파한다.’라고 썼는데 여기에 여러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건 강도당해 쓰러진 사람을 피해가는 제사장과 뭐가 다른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보듬지도 못하는게 무슨 종교인인가?’ ‘종북좌파 소리 듣는게 하느님 말씀 보다 더 무서운가보다’ ‘노란 색 리본에 대한 변명이 참 구차하고 길다. 타인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것은 그들의 방식대로 아파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1년 전에 말한 대로 그냥 조용히 침묵하시지 왜 또 그런 글을 올려서 유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불필요한 공격을 당하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장신대의 이동춘교수가 지적한 남한교회의 죄 3가지는 이미 40년 전 저의 스승들이셨던 한신대학의 문익환, 안병무, 서남동, 문동환교수들께서 이미 지적하신 내용들입니다. 장신대교수로서 자기 교단 내의 목회자들을 향해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만, 남한교회 전체로 본다면 지난 40년동안 교회는 신학적으로 정체된 상태에 있었던 것이고, 결국 교회가 침몰하는 현 상황을 뒤집기에는 너무 때가 늦은 얘기입니다.

 

[무엇이 참 기도인가?]

 

마태복음 25장에 마지막 심판 때에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양의 그룹은 언제 주님이 목말라하실 때에 물을 주었는지 언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갔는지 기억이 없다고 반문을 하였고 염소 그룹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느냐고 주님이 그랬다면 우리가 그냥 지나칠 리가 있었겠느냐?’고 항의를 합니다. 그때 주님은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니라.’. 이 비유 말씀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 주위에 작은 자들이 슬퍼할 때, 말없이 손을 잡아주고, 저들이 분노할 때, 저들을 대신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저항하는 일 그것이 바로 구원의 기준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전도사인 예은이 엄마는 말합니다. 학생들이 마지막에 보낸 영상에 보면 배가 기울어져가는 순간 예은이와 학생 그리고 선생님이 함께 손을 잡고 기도하는 장면이 나온다구요. 그때 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저들을 구해내지 않으셨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우리는 잘못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앉아서 두 손 모으고 하늘을 향해 소원을 아뢰는 것이 기도의 전부라고! 아닙니다! 그건 기도의 시작일 따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두 손 모으고 하느님께 소원을 아뢰고 그리고 나서는 그 기도를 향해 전심을 다해 발로 뛰는 것입니다. 아니! 어떤 신앙인은 말합니다. ‘기도란 먼저 최선을 다해 발로 뛰고 나서 그 후에 일의 결과를 겸손히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라고.’

 

어느 것이 진정한 기도인지? 이제는 수십 년을 교회를 다니신 여러분이 신학자나 목사의 말을 듣고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믿지 말고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여 발로 뛰는 것이 옳았다고,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행동이었다고 밖에 살아남은 우리는 그렇게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남한의 기독교인들이 마지막 심판 때에, 주여! 주여! 열심히 하늘을 향해 소리만 치다가 아니, 언제 주님이 헐벗으셨고, 언제 목말라하셨으며, 언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으셨다는 말입니까?’ 하며 주님께 항의하거나 아니면 목사의 멱살을 잡고 왜 잘못 가르쳤느냐고 항의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인 <겁 많은 자의 용기70년대 박정희유신독재 반대에 앞장섰던 고 이문영 선생이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역사는 위대한 한 두 명의 영웅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겁 많은 시민들이 함께 연대할 때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김대영시인의 <나 하나라고 말하지 말자>

 

나 하나라고 외로워 말자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갈대뿐이냐고 말하지 말자

저 북극의 외로운 별처럼 외롭더라도

그대를 보는 수많은 눈들이 있으려니

밤하늘의 별이 없다면 우리는 어찌 이 험한 길 왔었겠는가?

 

그대 노란 리본 하나 단다고

그대 집회 한번 간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냐고 말하지 말자

바람이 세차도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열매를 맺으려니

그대 밤하늘의 별처럼 외롭다 해도 걸어가야 하나니

진실은 저 멀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려니

손에 손잡고 가슴마다 리본 달고 나간다면

진실은 우리에게 오려니

우리 이제 나 하나라고 말하지 말자

 

[보냄의 말]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