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주일

 “두려움 없는 사랑”
사도 8:26-40; 요일 4:16-21; 요한 8:1-8; 시편 22:25-31

조 은 화 목사

[어린이를 위한 하늘뜻펴기]

영상(“하느님은 너를 사랑해”)

우리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하늘뜻말씀이예요


하느님이 말씀하셔요.
나는 너를 사랑해

하늘보다 더 높이





나는 너를 사랑해

 하루24시간




나는 너를 사랑해

깃털보다 더 부드럽게





나는 너를 사랑해

바다보다 더 깊이




나는 너를 사랑해

 큰 나무보다 더 높이




나는 너를 사랑해

코끼리보다 더 크게




나는 너를 사랑해

우주보다 더 넓게




나는 너를 사랑해

니가 슬플때나




나는 너를 사랑해

니가 기쁠때나




나는 너를 사랑해

네 모습 그대로




우리는 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우리 친구들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이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여기에 있는 어른들도 우리 친구들처럼 어렸을 때 엄마, 아빠, 어른들과 친구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 따뜻한 사랑을 우리 모두가 여기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 중에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 받은 멋진 친구들을 소개할께요. 누구일까요? 함께 만나요!
(유아/유치부 어린이들의 사진 영상)

 우리 사랑스런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하심이 보입니다. 언제나 어떤 모습으로든 우리의 친구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공동체의 현실]

 요즘 공동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일면을 나타내주는 어록이 유행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늦은거다.
-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본다.
- 참을 인이 세 번이면 호구
- 포기하면 편하다.
- 효도는 셀프
- 성공은 1% 재능과 99%의 빽 

 요즘 현실을 반영해주고 있는 것 같아 씁씁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개그맨 박명수씨의 어록입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살아남고자 어쩔 수 없이 이기주의화 되어버린 사람들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남을 위해 애쓰고 함께 가는 공동체보다는 내가 먼저 잘살고 봐야 한다는, 세상이 얕잡아 보지 않도록 있어 보이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인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현실은 공동체가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됩니다. 국가, 학교, 직장, 교회까지 우리의 도처에 있는 공동체성이 많이 무뎌져 가고 힘의 논리, 권력의 힘 앞에서 살기위한 경쟁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힘이 들고 버겨운 것이 아닐까 합니다.

 오늘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통해 요한공동체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간절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통속적으로 들리는 이 사랑이 세월호참사 1주기를 지내면서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유가족들의 요구가 이행하지도 않는 이 현실 속에서 참 어렵게 들리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사랑은 무엇인지 함께 보겠습니다.


[아가페 공동체]

 오늘의 요한공동체가 처한 사랑은 정말 무엇이었는가를 봅니다. 요한일서 본문에서 4장 전반에 나오는 사랑! 이것은 본디 아가페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저녁식사모임인 아가페는 그레코-로마 세계에서 널리 행해졌던 연회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연회는 1부의 저녁식사와 2부 주연의 구성으로 저녁식사가 끝나면 발을 씻고 카우치에 올라가 몸을 기대로 2부인 주연을 즐기는데 물론 이때 발을 씻기는 심부름은 노예들의 몫이었습니다. 서열에 따른 자리배정과 관계된 사람 외에는 함께 하지 못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당시 그레코 로마 시대에 이 모임은 친구나 동등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먹는 식사였습니다. 이에 대해 플라톤의 유명한 책 향연 즉 심포지온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잘 반영합니다. 소크라테스가 귀족들과의 향연에서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주연을 하면서 에로스를 논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 책은 귀족사회에서 로마의 모든 사회로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이향연의 형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고 플라톤의 영향력이 컸던 시대인 만큼 심포지온은 당시 사회에서 이상적인 연회였습니다.

 그러나 그레코 로마의 심포지온과 반하여 대립되는 개념의 모임이 그리스도교 안에 나타납니다. 그것은 바로 아가페라 명명한 저녁식사 모임이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저녁모임 속에도 그레코-로마 세계에서 시작되었기에 연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가페가 그레코 로마식의 연회의 형식을 차용하긴 했으나 그 내용은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 차별성은 참여한 사람들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동등한 자매형제라는 믿음으로 함께 섬기며 평등공동체로 이어져 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가페라 명명하는 초기기독교의 모임은 세상에 대하여 변혁의 힘을 나타냅니다. 그 모임 안에서는 어떤 이기적인, 사회적 잣대를 댈 수 없고, 진정 해방된 존재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요한복음서는 마지막 만찬에 잇대어진 저녁식사 모임인 ‘아가페’는 자신의 것을 나누는 일이며 ‘예수를 본받아 사랑하는 일’의 핵심을 강조하였습니다. 그 식탁은 서로 사랑하여라는 예수의 계명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 된 교회를 통해서 완성되고 세상을 향하여 진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야 말로 최고의 사랑이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요한공동체를 그토록 목숨까지 내놓으며 지키도록 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요한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는 교회가 아가페 곧 사랑으로 서로를 먹이는 저녁식사의 거룩한 사랑의 질서가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당시 요한공동체의 구성은 어떠했는가를 보면 오늘의 본문이 고민하는 지점을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한공동체의 형성과정을 보면 그들에게는 공동체의 여러분파가 함께 합류한 것을 알게 됩니다. 초기에는 회당 내에서 활동하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주후 70년경 유대전쟁으로 파멸된 유대교 체제를 빠른 속도로 정비하는 복원 기간에 고강도 유대주의 운동으로 회당 내의 이질적 존재들을 배제합니다. 이 시기에 요한계 공동체의 모체가 된 회당 내의 예수를 따르는 집단이 폭력적인 경험을 받으며 추방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동체 기본 성격의 구성은 자유 없는 진리, 권력의 근거한 거룩한 영, 현실을 외면한 제의 등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면서 그들이 지배하고 있던 전통을 추방하고 동시에 옛 기억 속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을 새로이 개방합니다.

 예수를 따르는 여러 방면의 그룹들과 만나게 됩니다. 사마리아 추종자들, 갈릴리의 추종자, 이방인 추종자, 세례요한의 제자들 중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이들을 만나면서 그것을 구축해왔던 생각이 회당 추방 경험을 겪은 이후 예수에 대한 기독론적인 신학이 발전을 이루었고 영지주의적 언어가 요한공동체의 신학과 만납니다. 그리하여 다른 배경에서 성장한 예수공동체들과의 새로운 관계를 위한 것으로 발전해 갑니다.

 외부적인 면에서는 유대인들과 맞서야 했습니다. 주류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은 회당의 방식을 모방하면서 회당과 경쟁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공동체의 시각에서는 유대교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변절이라고 보았습니다. 유한공동체는 유대교 회당을 모방하여 자립을 모색하던 교회와 그 제도화의 길에 대해 극렬히 비판합니다.
 외부적으로는 로마와 유대교 등에 의해 사회적 핍박을 받고 거절을 당했으면 내부적으로는 기독론에 대한 분열, 여러 분파의 분열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요한공동체의 과제는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이 거부한 상황, 공간을 빼앗기고 그런 사이에 외부공동체들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그들과 맞서야 하는 상황은 매우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내부적인 어려움은 유대교에 대해서는 공개적인 충성을 외치면서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비공개적 충성을 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출교당해 쫓겨나기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파나 사도계공동체와도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도계 그룹들과 치열하게 경쟁함으로 예수가 사랑한 제자 계열 전승을 내세우며 치열한 삶을 산 요한공동체의 과제는 초기 공동체의 파급력, 사랑의 공동체 즉 아가페가 위기를 닥친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사회적 그룹들의 압제 속에서 내부분열까지 왔고 이러한 상황에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필요로 했습니다.

 요한일서는 공동체를 함께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매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쳐 함께 하는 것, 무엇보다 공동체를 지켜가는 것이 중요함을 절실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본문은 스테파노의 순교이후 기독교의 탄압 속에 그들이 고백하는 메시아가 어떤 분이었는지에 대해 말합니다. 필립보와 에디오피아 관원의 이야기 속에서 이사야의 말씀을 빌어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생기면서 핍박과 고난의 역사를 살았으나 그 상황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그리스도, 함께 고난 받고 어려운 삶의 한 복판에 함께 하시며 역사의 변혁이 이루지도록 한 예수에 대한 그리스도 고백을 통해 점차 더 넓게 퍼져나갔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공동체를 지켜가기에는 걸림돌이 있었으니 그것은 두려움이라 말합니다. 그 두려움은 형벌을 가져옵니다. 바로 내가 당할 어려움, 쫓겨남, 이 공동체를 함께 하기에 겪을 수 있는 고난을 생각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공동체를 저버리게 하고 타협하는 것은 완전한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본문이 이야기하는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이야기는 결국 서로가 공동체 안에 머물고 있을 때 많은 열매를 맺으며 힘을 낼 수 있음을 말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에게 머무는 것, 그래서 자기의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랑임을,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공동체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주의 길을 따르는 진정한 사랑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억압과 불평등한 일들이 발생하고 소외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공동체가 있다면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갈 것 같은 큰 두려움 속에서 이것을이겨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공동체의 위치를 새로운 질서 영역 안에 두기 위한 노력 속에서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두려움 없는 사랑]

 향린공동체는 1953년 한국전쟁의 참화라는 민족적 시련 속에서 뜻을 모아 공동체 생활, 입체적 선교, 평신도 교회, 독립교회의 뜻을 따라 세웠습니다.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생활의 모습을 본받아 공동체성을 지향하고 삶 전체를 헌신하는 선교를 하며 평신도 주체적 신앙을 활동과 선교에 책임을 다하는 교단이나 교파 싸움에 휘말리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맘몬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한국교회 현실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 그런 향린이 이제 곧 62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그러나 그러한 시간 속에서 향린공동체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가고 있는가?  여기저기 분파가 생기고 알력다툼과 주류 비주류가 있다는 생각들, 세대의 차이로 인한 문제들, 재개발로 인한 교회터전을 옮기는 일, 담임목사님의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목사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이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현실로 우리의 결단과 헌신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62년의 세월을 함께 지켜온 우리의 신앙공동체는 이제 함께 머무르지 않으면 안되는 지금에 와있습니다. 우리의 자매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잣대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두려움을 이겨내고 공동체를 함께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늘 요구되는 ‘두려움 없는 사랑’이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