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62주년 기념주일

다시 목표를 향하여

사도 1:15-17; 시편 1:1-6; 필립비 3:12-4:1; 요한 17:6-19

      

연 규 홍 목사

 

올해는 향린교회가 62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입니다. 62주년을 맞이하는 교우 여러분께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권사임직을 받으신분께도 축하를 드립니다. 역사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35주년을 맞이하는 이때, 20144.16 세월호 참사 13개월째가 된 이때, 하느님께서는 62년전에 일찍이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의 공동체로 향린교회를 세우시고 미래를 준비한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의 악과 불의보다도 더 큽니다. 빛은 어둠속에서 빛이 납니다. 5.184.16은 오늘 이 땅에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저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한국교회에게 주신 하느님의 도전이고 또 풀어야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땅의 평화통일과 민중주권이 실현되는 이 문제들을 제대로 풀질 못한다면 역사는 한 걸음도 진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앞서 저는 향린교회를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의 공동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향린교회뿐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하느님 나라 운동의 현실태로서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어디에 있건 어떤 교회든 새 시대의 희망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불의한 권력과 물신이 된 자본이 지배하는 이 낡은 시대에는 교회가 그러한 시대를 심판하고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었지만 남북의 분단이라는 미완의 해방으로 6.25한국전쟁을 치루고 이 전쟁의 한복판에서 한국교회는 남북 교권의 갈등 속에서 분열로 치달을 때 새 시대의 희망을 꿈꾸는 공동체로 향린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지난 62년의 향린공동체의 실험은 평신도중심의 탈권위적인 교회로, 한국문화와 전통을 중시하는 민족교회로, 성차별을 지양하는 양성평등교회로, 분단극복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교회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민중교회로, 생태계의 파괴와 핵을 반대하는 생명의 교회로 끊임없이 실험하면서 뛰어왔습니다. 청년예수의 기상으로 늘 새 시대의 희망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험난한 민중사와 함께 고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서에는 교회를 바다같이 요동치는 험한 세상 속에서 항해하는 배로서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포구에 정착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험한 세상을 항해해야할 운명입니다. 따라서 끊임없이 교회는 세상이 주는 고난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열어가야 합니다. 고난과 실현이라는 것은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교회가 전진하고 성장하는 표징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고 행동해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세상은 지난 62년동안 변한게 없습니다. 현실은 더 악해지고, 민중의 삶은 더 힘들어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피시 생태계는 계속 파괴되어가고 있고 남북갈등은 더욱 격화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부익부빈익빈의 부조리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어렵게 일군 민주주의조차도 퇴보해 가고 있습니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죽으심으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그 구원의 완성을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예수님이 오신 오늘 이 세계는 더 악해지고 더 파괴적으로 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정녕 기다려야 합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룬 구원의 완성은 불완전한 것입니까?” 바로 여기에 우리의 문제가 여기 있습니다. 역사가 과연 진보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 되는 것인가? 우리는 그토록 힘겹게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그 민주주의가 다시 퇴보하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62년 동안 향린교회가 고난과 실현을 통해서 이룬 것이 과연 무엇인가. 아니 이룬 것 이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허무주의와 절망이 여전히 우리에겐 남아있습니다. 62주년을 맞이하면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할 수 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본 사도바울의 고백을 들어보겠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은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옥 안의 죄인의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은 결코 갇혀있지 않았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런 상황일지라도 꿈을 꾸었습니다. 결코 죽음이 그의 사명을 포기하게 하거나 그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목표를 향하여 사도바울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앞에 있는 것을 향하여 달려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고백이 62주년을 맞이하는 향린교회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62주년을 맞이하며 생각해볼 때 힘든 시간만큼이나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 함께 해준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정말 놀랍고 자랑스럽습니다.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회환과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일 뿐입니다. 과거를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 매여서도 안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역사의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여기에서 살라고 우리를 떠밀고 계시기에 우리의 운명은 현실을 떠나서 있을 수 없습니다. 뒤로 물러서거나 제자리 걸음이 아닌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오늘 바울의 말씀처럼 먼저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아니 다시 목표를 분명히 설정해야합니다.

 

향린교회는 세상의 많고 많은 교회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세운 것 아니었습니다. 교회만을 위한 교회만이 아닌 이 세상을 책임지는 교회, 그리고 이 땅에 존재하는 거짓 위장된 썩은 교회를 개혁하는 개혁교회로 시작하였습니다. 억압과 독재, 권위와 독재로부터 자유한 자유인의 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그 목표가 어느만큼이나 이뤄졌나 점검해봐야 합니다. 교회가 늙어지는 것은 노년층이 많아서가 아니라 새로운 청년예수의 꿈, 그리고 열정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향린교회의 실험은 계속되고 또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향린교회가 지금까지도 통일 운동에 앞장서서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왔지만 더 나아가 비판을 넘어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통일시대의 교회상을 이뤄가야 합니다.

 

저는 향린교회가 그동안도 해왔지만 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새로운 용기와 믿음을 가지고 통일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통일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들을 길러낼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며칠전 숭실대학교의 통일리더쉽의 훈련원에 초청되어 강연을 했습니다. 숭실대학교 총장은 총장이 된 후에 하나의 꿈을 꾸었습니다. 본래 숭실대학은 평양의 기독교 연합대학으로 세워져있던 기독교 대학입니다. 숭실대학이 해방 후에 남한에 넘어오고 숭전대학으로 거쳤다가 다시 숭실대학이 된 후에 앞으로 통일시대를 바라보면서 평양에 제2의 숭실대학을 세우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제2의 숭실대학을 이룰 수 있는 인재들을 남한의 숭실대학이 통일리더쉽 과정을 통해서 길러내겠다고 그렇게 표어를 내걸었습니다. 숭실대학교 동문회가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200억의 지원금을 줬습니다. 통일 시대를 바라보는 리더쉽 훈련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통일 이후에는 한국 최고의 sky 대학도 아니고 북한의 김일성 대학도 아니고 우리가 속해있는 기장과 한신의 지도력을 만들어내는 한신대학교가 통일 이후에 최고의 대학교가 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장공 김재준, 장준하, 문익환, 홍근수를 이어가는 향린교회가 이 일에 함께 해주셨으면 합니다. 통일시대에 남북의 통일뿐만 아니라 저 북쪽 고구려, 발해의 옛 영토까지도 유라시아 지역까지도 이끌어 갈 수 있는 믿음의 일꾼들이 우리 향린교회에서 나오기를 축원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꿈을 꿔야 합니다. 목표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저는 며칠전 어느 교회에 가서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권사님의 자녀들이 칠순잔치를 맞이하여 성지순례를 가시라고 봉투를 줬다고 합니다. 노 권사님 두분은 성지순례를 가지 않고 담임목사님께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이 돈을 성지순례에 가는 것보다 우리 교회에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고 있는 훌륭한 믿음의 인재들이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 장학금으로 써 주십시오.” 목사님께서는 아직 젊을 때 걸으실 수 있을 때 다녀오세요. 장학금은 따로 마련하겠습니다.” 라고 답했지만 노권사님 두분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저희 둘은 장차 몇 년 후면 이스라엘보다 더 아름다운 천국에 갈 것인데, 이 나이에 이스라엘에 갔다온들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적은 돈이지만 미래를 위해 꿈을 꾸는 우리 교회 젊은 믿음의 아들과 딸들을 위해 쓰는 것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권사임직을 받으시는 네 분께 축하의 인사와 더불어 한 마디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로부터 중고등학생들까지라도 이름을 외워주세요. 그리고 따뜻하게 격려해주시고 너는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가 될 것이다.” 라고 격려해주고 안아주세요.

 

여러분 미래는 준비된 자들의 것입니다. 통일을 위해서 기도만 할 수는 없습니다. 데모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을 없앤다고 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을 위해서 우리는 준비하고 쌓아가야 합니다. 우리 안에 기독교 인재를 길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훌륭한 향린교회의 신앙을,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훌륭한 정치가도 기업가도 예술인도 목회자도 나와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인물의 위기입니다.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처럼 무력하게 되었습니까. 오늘 향린교회라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여기 이렇게 세워주신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지 모릅니다. 옆의 분들에게 권면하시길 바랍니다. “목표를 향하여 꿈을 꿉시다!”

 

두 번째, 오늘 바울의 권면처럼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과거를 잊을 수 있는가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북한에서 온 어떤 분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북한에는 종친회가 없고 동창회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학연 지연도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과거로부터 오는 것으로부터 연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부터의 오는 것으로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한 주님을 믿고 한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한 가족입니다. 피로 나눈 형제들보다도 더 사랑해야할 존재이며 사랑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을 이루는 지체들입니다. 과거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이전에 우리들이 이뤘던 업적도, 상처도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과거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로는 미래로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과거를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옛일을 잊어야지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2년 향린교회가 이룬 혁혁한 발걸음, 그러나 그것은 내일을 위한 걸음 일 뿐입니다. 과거로 회귀하거나 과거에 붙잡혀 있으면 안됩니다. 과거에는 잘했지만 지금 못한다는 것은 과거도 잘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선택과 결단의 권한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좀 더 단순해지고 좀 더 개별화되어져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향린교회는 짧은 역사 속에서 많은 교회를 분가했습니다. 그렇다면 분가한 교회와 달리 명동 향린교회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어떤 독자성이 있습니까? 이제는 교회도 캐릭터가 분명해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목표 의식이 분명해야 하듯이 교회도 캐릭터가 분명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끌고 갈 수 없습니다. 좀 더 단순화하고 집중화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여러분의 삶도 신앙생활도 좀 더 단순화되어야 할 것을 권면합니다.

 

오늘날 정보가 넘치는 풍요 속에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든 것을 종합해놓고 섞어 놓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벗어나 버릴 것은 버리고 떼어 버릴 건 떼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명확하게 보이게 됩니다.

 

교회는 좀 더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합니다. 명동의 향린은 지식인 중심이다, 엘리트 중심이다. 라는 비판 속에서 우리 모두가 민중이 될 수 없고 다 가난한자가 될 수 없지만 민중지향적인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이 있을 줄 압니다. 그렇다면 버릴 건 버리고 떼어 버릴 건 떼어야합니다. 오늘 바울의 권면은 우리에게 주는 하느님의 권면일줄 믿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특색이 없습니다. 종합선물세트 같습니다. 백화점 같습니다. 이 교회를 가든 저 교회를 가든 특색이 없습니다. 뭔가 특색이 있는 개별화된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의 구조를, 형태를, 이미지를 바꿔가야 합니다.

 

세 번째, 바울은 달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감옥 안에 있으면서도 달려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어느 미래학자는 한국교회는 앞으로 5년이 골든타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변화되야 합니다. 아니 향린교회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시간적인 부분에서 우리는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나 달려간다는 것은 시간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도 좀더 깊이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경기장에서 뛰는 운동선수가 마지막 결승점을 바라보면서 온정성과 힘을 다해서 사력을 다해서, 결승점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의 삶이 달려간다는 것은 우리가 맡은 일을 정성과 진정성을 다해 삶을 걸고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똑같이 돈주고 받고, 똑같이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진실함과 겸손한과 따뜻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모든일에 겸손함을 드러내 보이십시오. 진실함을 담으십시오. 그리고 따뜻함을 표현하십시오. 교회 올 때마다 이 따뜻함을, 진실함을, 겸손함을 경험한다면 여러분의 얼굴에서 예수의 얼굴이 빛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따뜻한 교회, 겸손과 진실함 속에 예수의 얼굴이 드러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이 교회 와서 위로받고 새 힘을 얻고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교회는 나를 자랑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을 과시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들어오는 모든 자는 하느님 앞에서 모두 죄인입니다 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의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겸손하십시오. 그리고 진실하십시오. 그리고 따뜻한 마음으로 나와 다른 이를, 타자를 끌어안는 우리 향린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내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을 믿으며 굳세게 살아가십시오.” 고맙습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