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주일: 생명을 택하십시오.

(3:8-15, 130, 고후 4;13-18; 3:31-35)

 

지난 한해 서아프리카에서 시작한 에볼라 전염병으로 온 세계가 공포에 싸여 있다가 이제 겨우 진정 국면에 들어가기 시작했는데, 또 다시 메르시 전염병으로 우리나라가 공포에 싸여 있고, 이것이 단지 우리나라 안에서 이 정도에서 그치고 말 것인지 아니면 다른 나라로 번져가면서 에볼라 마냥 세계를 공포 국면으로 몰고 갈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많은 행사들이 취소가 되고 있고, 저희 향린교회도 다음 주 광화문에서 있을 민주주의 회복을 기원하는 현장예배를 취소하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오늘 교회를 갈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셨을 분도 계셨을 것으로 생각하고 사실 오늘 이런 염려로 인해 나이 드신 분들이나 어린 자녀들을 둔 가정 상당수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 출석의 문제는 나오면 믿음이 좋고 안 나오면 믿음이 그렇지 않은 그런 믿음의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교회는 안 나오지만 학교나 직장은 간다고 할 때, 그때 신앙이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자기 성찰을 얼마만큼 진지하게 갖는냐 하는 점에 있다고 봅니다.

 

[메르시와 기능마비]

 

낙타를 숙주로 생기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이라고 불리는데, 중동의 나라들은 멀쩡하고 지구 반대편의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이것도 세계화의 일종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의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선진국은 별 것도 아닌 일 같은데, 처음부터 호들갑을 떨면서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고, 최고책임자가 책임을 지고 직접 나서는 반면 후진국은 처음에는 쉬쉬하다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다음에야 최고 책임자가 나서는데, 실상은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권력이 중앙집중형이냐 혹은 지방분산형이냐 하는 답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곧 우리나라와 같이 중앙집권형 정부에서는 담당 공무원들이 나섰다가 다치면 자기만 손해를 보니까 모든 걸 윗사람에게 공을 넘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면 일을 보다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세월호나 메르시 같은 위기 현상이 일어나면 정부 기능 마비 현상이 일어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진국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뉴스가 불거지면 다른 모든 뉴스를 잡아먹는 뉴스의 독재성입니다. 황교안국무총리후보인사청문회도 대통령 뽑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데, 메르시에 묻혀가고 있습니다. 이분은 일반국민정서에도 맞지 않게 박정희유신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일종의 국수주의자이기에 모든 종교계가 직접 나서서 반대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젊은 시절 무슨 만성피부 두드러기가 있어 군대징집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데, 저도 피부 알러지가 있어 가끔 고생을 하는데, 피부병이라고 하는 것은 대개는 나이가 들수록 병이 점점 심해지는데, 황교안씨는 그 반대인 것 같고 지금까지 탈 없이 살아온걸 보면 만성담마진이라는 요상한 이름 대신 징집영장기피성 특수심리두드러기병이라는 보다 쉬운 이름으로 분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판사로 있으면서도 신학을 공부해서 선교 강의도 나가고 교회의 전도사로 이중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법무부장관으로 있으면서 교회에 전도사로 공적으로 일하고 있는 것이 법적으로 타당한지도 의문입니다. 여기에 증여세 취득세 아파트다운계약서 등등 세금포탈 관련하여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고 있어 기독교 목사로서 창피하여 얼굴 들기가 어렵습니다.

 

[정치의 3가지 요소]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공자는 정치란 식()과 병()과 신()의 세 가지라고 답합니다. 식은 먹는 문제,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입니다. 병은 국방 오늘날로 말하면 안보의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은 믿음 곧 신뢰의 문제입니다. 그러자 자공이 묻습니다. 이 셋 중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뭘 버려야 합니까? 병을 없애라. 군대를 가장 먼저 없애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둘 중 부득이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뭘 버려야 합니까? 식 곧 경제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곧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나라의 지도자에게 갖는 신뢰라는 것입니다. 고대 정치와 현대 정치에 차이가 있습니다만, 정치인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도 군사도 아닌 신뢰라고 하는 얘기는 매우 의미심장한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보지요. 지금 남한이 세계 200여개 이상의 나라 가운데 경제력으로 보면 15위에 해당하는 최상위권에 있지만 동시에 세계 제1의 자살률 국가라고 하는 사실은 경제가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고, 매년 수십조원의 국방예산으로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무기수입국이자 10위 안에 들어가는 무기수출국인 남한 국민들이 전쟁공포와 안보위협에 눌려 살아가는 것을 보면 국방력 또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명확합니다. 미국이 군사력 세계 제1위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그냥 1위가 아니라, 세계 2위에서 50위까지의 49개국의 국방예산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1위입니다. 독보적인 강국 곧 제국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 백성들은 모두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국민들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면 국방력이 최고라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자승자박(自繩自縛)]

 

그런데 어느 나라나 비행기 탑승 전에 보안검사를 받게 되는데, 엑스레이를 통과하기 위해 벨트를 풀고 신발을 벗곤 하는데, 이때 탑승객이 받는 공포가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입니다. 어디서나 농담을 잘하는 미국사람들도 일단 이 구역 안에만 들어가면 다들 긴장합니다. 그냥 긴장이 아니라 묘한 공포감이 전염병처럼 번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공포감은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숨어 있습니다. 경찰들이 총기를 들지 않은 시민 특히 흑인들을 사살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그건 잘못하면 자기들이 총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공포가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총기 사망자가 일 년에 3만 명이 넘습니다. 그런데 뉴스에 잘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자살국가이지만, 세 명의 자매가 한꺼번에 자살을 해야 뉴스에 나오듯이 미국도 누군가 폭탄을 터뜨리거나 학교에 들어가 수십 명을 사살해야 뉴스로 나오지 한두 명 죽는 경우는 뉴스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공기오염측정기와 같은 사회공포측정기가 있다면 아마도 남한과 미국이 1,2위를 다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국가가 만드는 이런 무의식적인 공포감이 우리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건강이라고 하는 것이 경제력이나 국방력보다 신뢰에 달려 있다고 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당하고 보면 쉽게 동의가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 안에는 별의별 얘기가 다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잘사는 동네일수록 더 심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불안감을 조성하는 SNS 발언자를 추궁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정부가 국민들을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지 백성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천안함사건, 세월호사건, 국정원대선개입사건, 사대강녹조사건, 성완종뇌물쪽지사건, 강기훈유서대필조작사건, 헤아릴 수 없는 간첩조작사건 사건마다 정부는 진실은커녕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해온 결과인 것입니다. 신뢰에 기초하지 않고 안보의 이름으로 공포에 기초하여 백성을 통치하고자 한 정부의 자승자박의 결과인 것입니다.

 

[선악과의 상징성]

 

성서는 인간의 범죄의 시작을 선악과로 설명합니다. 오늘의 제1성서 본문 말씀은 창세기 3장의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사실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범죄 사실 그 자체보다 저는 이 범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책임 회피의 이 이야기가 더 원죄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아담이 말합니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범죄 전에는 하느님과 함께 알몸인 상태로 함께 거닐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알몸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나체가 아니라, 너와 나 사이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하나됨 곧 합일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고 나니 선악의 구별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너와 나의 분리가 일어납니다. 그건 선과 악의 판단 기준선이 다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도덕의 기준을 양심(良心)에 두는데, 양심은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담은 자기 양심에 따라 선악과의 범죄 책임을 하와에게 미루고 하와는 자기 양심에 따라 뱀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아담이 책임을 전가하는 하와는 누가 만들었습니까? 하와가 손가락질 하는 뱀은 누가 만들었습니까? 결국 일은 인간들이 저지르고 책임은 하느님께 돌리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은 서로서로 간에 그리고 결과적으로 신과도 분리가 일어나고 이는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엿새 동안 빛과 어둠, 해와 달과 별과 모든 동식물을 그리고 마지막 날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나서 참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들 때에는 특별히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사람을 만들어 모든 짐승들을 다스리게 하자.’ 여기서 우리의 모습이란 하느님의 겉모습이 아닌 속모습 곧 하느님 창조주의 곧 어머님 사랑의 심성을 닮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그 세상을 계속 유지시켜 나갈 수 있는 그런 신의 대리자를 만든 것입니다. 다스리라고 번역했지만, 이는 개인의 욕망에 따라 동물을 착취하고 자연을 지배하는 통치로서의 다스림이 아닌 어머니의 심정으로 공존하고 연대하는 청지기 지킴이로서의 다스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빈곤과 스모그]

 

그런데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자기중심으로 관계 분리가 일어나면서 고대에는 주인과 노예로 인간 착취가 일어났고, 지금은 자연을 노예 삼아 욕망충족과 착취를 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환경주일입니다. 단순히 환경보존을 생각하면서 자연친화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을 생각하는 주일이 아닙니다. 고삐 풀린 시장자본이 조종하는 과학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합니다.

 

하루를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들에게 환경문제는 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상이변으로 인한 가뭄과 홍수, 해수면 상승 등등으로 인해 정작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생존과 후세들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구 자체가 병들어가는 일이기에 나 몰라라 지나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이 리스크사회’(위험 사회)를 출간한 것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직후였습니다. '빈곤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는 말은 그가 던진 유명한 화두였습니다. 당시 유럽은 러시아 체르노빌에서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 때문에 식품 오염에 대한 공포감이 널리 퍼졌습니다. 심지어는 천 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영국은 3개월 이상의 낙농제품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체르노벨 원전의 수십 배나 높은 방사능이 불과 수백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후쿠시마에서 4년이 넘도록 유출이 되고 있는데도 별다른 경각심을 갖지 않고 있습니다. 우선은 일본 정부가 사실을 숨기고 있기 때문인데, 일본이야 그렇더라도 우리나라까지 언론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은 이로 인해 국민들의 원전반대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이후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탈원전을 향해가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 기독교환경운동본부에서는 오래된 원전폐쇄와 탈원전을 위해 광화문에서 40일 금식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히카 대통령]

 

지난 시간에도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현재 지구촌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이 올해 은퇴한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입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대통령 취임 때 전 재산이 1987년 형 폴크스바겐 비틀 한 대였고 은퇴한 지금도 그렇습니다. 어느 석유재벌이 이 차를 백만불에 사겠다고 제안을 했더니 자기 개가 이 차를 좋아한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관저를 노숙자에게 내어주고 대신 수도 교외에 있는 부인 소유의 소박한 농장에서 생활한 것으로도 유명하고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마리화나를 합법화시켰고, 동성애 차별 금지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잃고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젊은 시절 독재정권과의 싸움에 참여해 여러 차례 투옥됐고 여러 차례의 총상을 입었으며 14년간 옥살이를 했고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희카대통령이 존경받는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그는 지구촌이 불행한 근본 이유를 통찰하고 있는데, 그의 신념과 철학은 2012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 정상회담에서 행한 연설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오후 내내 우리는 지속 가능한 발전과 빈곤을 없애는 문제에 대해 논의해왔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현재 잘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발전과 소비 모델을 흉내 내자는 게 아닙니까? 여러분들에게 묻습니다. 독일 가정에서 보유한 자동차와 같은 수의 차를 인도인이 소유한다면 이 지구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산소가 어느 정도 남을까요?

 

더 명확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서양의 부유한 사회가 하는 그런 소비 행태를 세계의 70~80억 사람이 누릴 수 있을 정도의 자원이 지구에 있을까요? 그게 가능합니까? 지금 우리 문명은 무한 소비와 경제 발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장 경제가 값싼 자원과 노동력을 찾아 세계 곳곳을 헤집는 세계화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세계화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계화가 우리를 통제하고 있습니까? 이런 무자비한 경제시스템 아래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의를 할 수 있나요? 어디까지가 동료이고 어디까지가 경쟁 관계인가요?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번 모임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큰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닙니다. 그 위기는 정치적인 위기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인류가 만든 이 거대한 세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이 같은 소비사회에 통제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발전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지구에 온 것입니다. 인생은 짧고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생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소비가 사회의 모토입니다. 왜냐하면 소비가 멈추면 경제가 마비되고 경제가 마비되면 불황이라는 괴물이 우리 앞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대량소비를 위해 예를 들면 10만 시간을 사용하는 전구를 만들 수 있어도 1000시간만 쓸 수 있는 전구만을 팔아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일하고 더 많이 팔 수 있게 하려고 일회용 사회라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은 분명히 정치 문제이고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써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합니다. 동굴에서 살던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을 통제해야만 한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제 부족한 식견으로 보면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는 정치적인 것입니다.

 

먼 옛날의 현자들, 에피쿠로스, 세네카, 아이마라 민족까지 이렇게 말합니다. “빈곤한 사람은 조금만 가진 사람이 아니고 욕망이 끝이 없으며 아무리 많이 소유해도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다이것은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국가의 대표자로서 리우 회의에 그러한 마음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제 연설 중에는 귀에 거슬리는 단어가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수자원 위기와 환경 위기가 문제의 근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만든 사회 모델인 것 입니다. 그리고 반성해야 할 우리들의 생활방식인 것입니다.

 

저는 환경자원이 풍부한 작은 나라의 대표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300만 명밖에 안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1300만 마리의 소가 있습니다. 염소도 800만에서 1000만 마리 정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식량, 유제품, 고기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아주 작은 나라임에도 토지의 90%가 비옥합니다. 제 동지들인 노동자들은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6시간 노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6시간 노동을 하게 된 사람들은 다른 일도 하고 있어 결국 이전보다 더 오랜 시간 일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오토바이나 자동차 등의 구매에 들어간 할부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 돈을 다 갚고 나면 자신이 저처럼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는 노인이 되어 있고,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나간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습니다. 이것이 인류의 운명이 아닌가 라고요? 제가 말하려는 것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개발이 행복을 가로 막아서는 안됩니다. 개발은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어야만 합니다. 개발은 행복, 지구에 대한 사랑, 인간관계, 아이 돌봄, 친구 사귀기 등 우리가 가진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은 바로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해 싸울 때 우리는 환경 문제의 가장 핵심 가치가 바로 인류의 행복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구환경과 신앙]

 

결국 그의 말을 종합하면 환경의 문제는 삶의 가치의 문제라는 것인데, 저는 그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의 문제는 바로 우리가 믿는 신앙에 직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모세는 잘 살려거든 하느님의 말씀에 기초한 생명의 길을 선택하라고 경고합니다. 우리는 남태평양 한가운데에는 9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가장 인구를 가진 투발루라는 나라의 운명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50년 후면 이 나라는 온통 물속으로 잠기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그 이웃은 강도만나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사람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금 투발루 사람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내 몸과 같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메르시도 크게 보면 사람이 동물을 착취하고 자연을 오염시킨 결과로 인한 병으로 이해합니다. 동물은 본래 인간의 친구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마구 죽이고 집단 양육을 한답시고 좁은 우리에 가두고 살을 빨리 찌라고 풀 대신에 자신들의 동료들의 뼈가 섞인 먹이를 먹게 하니까 결국 동물들이 신경질을 내면서 몸에서 독소가 나오고 전염병이 생기니까 이를 위해 항생제를 먹이니까 바이러스들은 계속 자기 변형을 해오는 과정 속에서 광우병도 생기고 에볼라도 생기고 메르시도 생기는 것이라고 저는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청지기로서 이 지구와 모든 창조물들을 다스려가는 길이 되는 것일까요? 에덴동산에로의 회복의 길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까요?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