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화해 그리고 저항

욥기 38:1-11 107:1-3; 고린토후서 6:4-10 마르코복음 4:35-41

 

[메르스와 탄저균]

 

메르스 태풍에 휩쓸려 중요한 이슈로 부상하지 못하고 그냥 묻혀간 두 사건이 있는데, 하나는 황교안총리 국회인준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탄저균 사건입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황교안총리는 유신헌법을 지지한 공안검사 출신으로 편향된 이념은 물론 의혹 짙은 군면제, 탈세 등등으로 결코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부적합 인물입니다. 메르스로 어수선한 가운데 여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통과가 되었고, 취임식에서 메르스를 핵심과제로 삼겠다고 말하더니 실제로 그가 첫 번째로 한 일은 세월호 416연대 사무실을 압수 수색한 일이었습니다. 눈에 가시 같은 광화문 농성장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빨갱이로 몰아 공안정국으로 끌어가겠다는 의지 표명입니다. 결코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탄저균은 살상화학무기입니다. 쌀 한 포대만큼의 탄저균을 서울 상공에서 뿌리면 그 즉시로 100만명에서 300만명까지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무기를 미국은 '민간택배'로 남한에 보냈습니다. 그것도 본래는 죽은 균을 실험용으로 보내야 하는데, 살아있는 채로 보냈습니다. 이게 남한만 보냈으면 모른 채 하고 지나갔을 일인데, 미국 국내연구실에도 보내 여론이 들고 일어나자 국방부장관이 공개적으로 잘못했다고 한 것입니다. 사과는 지나라 백성에게 한 말이었고, 우리나라는 여기에 덧붙여진 것인데, 우리는 마치 우리에게 한 것 마냥 오해하고 있습니다. 현재 균에 노출이 된 22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는데, 구체적 내용은 함구하고 있습니다. 한미군사협정에 따르면 이런 화학무기를 들여올 때는 서로 협의하기로 되어 있는데, 깡그리 무시해 온 게 지금까지의 관례입니다. 요즘 종교시민단체들이 계속 문제 제기를 하고 있습니다만, 정부는 여기에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메르스가 확대되는 사태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가겠다고 우기던 박근혜씨가 돌연 일정을 취소했는데, 진짜 이유는 미국에서 메르스 감염을 염려한 나머지 연기를 요청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에볼라와 마찬가지로 메르스에 대해 엄청난 공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WHO 조사단이 즉각 왔던 것입니다. 청와대는 방문을 연기한 후 두 정상은 20분 동안 통화를 했다고 말하면서 '기후 변화 대응, -미 원자력 협정, 사이버 안보' 관련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탄저균 관련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미국정부는 메르스 감염 우려로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방문을 연기해달라고 할 정도로 국민 건강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메르스보다 수십만 배 위험한 탄저균이 살아 있는 채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도 항의는커녕 한마디 언급도 없는 현실을 보면서 민족적인 수치와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이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제 나라 백성들의 안전과 생명 보다는 미국이라는 상전의 심기를 건들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니까요.

 

[통일부? 분단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 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은 중국 심양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고 이의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통일부에서 교회협의회로 공문서가 날아왔는데, 남북교회가 만나 미일방위협력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종교교류 목적에 어긋나는 일로 추후 북측 교회와의 만남을 금지하겠다는 협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공문서를 보고 저를 비롯한 통일위원들은 매우 분노하여 통일부에 엄중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종교교류의 내용은 우리 종교인들이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통일부 산하에 있는 기구이냐? 그리고 임진왜란 시기에는 불교의 승려들이, 31독립운동 시기에는 개신교와 천도교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 만세를 외쳤는데, 그러면 이것도 종교의 목적에 어긋나는 일이냐? 이번 개정에 따르면 미국의 요청에 의해 일본군이 다시금 이 나라에 들어올 수도 있게 되어 있는데, 그러면 일본군의 재침략을 방관하고 있으란 말이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렇게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경우는 남북교회의 만남이 시작한 지난 20년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미국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이 무능한 정부가 평화와 통일을 위해 일하는 종교인들을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협박을 하고 있으니 이 정부가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보고 있는지, 통일이 아닌 남북대결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여실한 증거입니다. 통일부를 분단부로 그 이름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욥기 말씀은 재산과 자식을 모두 잃은 욥이 너무나 억울해서 꼬치꼬치 하도 따지니까 듣다듣다 못한 하느님이 이렇게 한마디 하십니다. “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너는 어디에 있었느냐? 그 누가 세상의 주춧돌을 놓았느냐? 그렇게 세상물정을 잘 알거든 한번 말해보아라. 너의 오만한 태도는 여기에서 멈춰야 한다.” 현 정부를 향해 바꿔 말한다면 야 우리가 평화기도회를 할 때 너희는 어디에 있었느냐? 남북정상회담을 보면서 온 백성이 환호하며 박수를 칠 때 너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너의 오만방자한 태도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종교도 먼저 사람의 목숨이 붙어 있고 난 다음에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전쟁으로 망하려고 하는 판국에 영혼 구원만 외치고 있으라고 하는 얘기는 독재 권력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여러분 이 기도는 누구의 기도인지 한번 알아 맞혀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앞으로 닥쳐올 우리의 미래와 우리가 행할 행동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 축복을 내려주십사 하고 신께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분은 교만과 소심한 복종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또 우리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신은 우리를 위해 그 길을 마련해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항상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위협이나 위험 앞에서도 결코 머뭇거리거나 약해지지 않을 용기를 주실 것입니다.” 이는 히틀러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기 위해 독일 국민들을 향한 연설문의 일부인데 차라리 종교를 이용하려는 히틀러가 더 똑똑한 것 같습니다.

 

남북교회 공동성명서는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는 미가서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번 미일 개정안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의 군사력 증강에 날개를 달아주고 그것을 미국의 군사패권 강화에 활용하겠다는 것으로 우리는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 '군대 성노예 위안부' 동원, 남경대학살 등 전쟁범죄에 대한 미국의 면죄부와 다름없는 일로 이는 한국 백성과 전체 아시아인들에 대한 모독임을 밝혔습니다.

 

[625는 남북화해의 날]

 

이번 주 목요일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정부는 625만 되면 북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지만, 이는 남북 모두에게 아무런 이득을 가져오지 못하는 일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고 과거에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과거를 떠올려 서로의 복수심만 부추긴다면 인류는 이미 전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과거에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하고 화해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것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그렇게 살아갑니다. 과거에 전쟁도 수없이 했고 말도 다르고 핏줄도 다르지만, 국경도 없애고 경제단위도 통일하면서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직 후진국들만이 권력자들의 꼬임에 빠져 서로 미워하고 상대방을 조금이라도 칭찬하면 빨갱이라 부르고 피를 나눈 형제자매끼리 몇십년 만에 만나 얼싸안고 기뻐하면 국가안보 운운하며 감옥에 가둡니다. 저는 요즘 정부의 행태를 보면서 과연 저게 인간들이 하는 짓인가? 인면수심(人面獸心)이라는 말이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솝 우화에 네 마리의 황소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딜 가든 함께 행동했습니다.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워 쉬었습니다. 그렇게 늘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어떤 위험이 다가와도 그들은 서로 힘을 합해 대처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들을 잡아먹고자 하는 사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사자는 황소와의 일대일 대결은 자신이 있었지만 네 마리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사자는 꾀를 부립니다. 소들이 풀을 뜯고 있을 때 그 중에 약간 뒤처진 황소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귀속 말로 다른 소들이 네 흉을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처음에는 팔짝 뛰었습니다. 네가 우리를 갈라놓으려고 수작을 부리는구나. 저리 가라 이 사자놈아! 그러나 사자는 계속해서 다른 소에게도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던 황소들도 결국은 꼬임에 빠져 서로를 불신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뿔뿔이 흩어졌고 그래서 사자는 네 번의 훌륭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정치 용어로 분리지배정책이라고 말합니다. 패권국가나 독재자들은 끊임없이 패를 나눕니다. 남과 북으로, 여와 야로, 전라도와 경상도로. 역사적으로 보면 어느 사회나 집단이 망하는 것은 밖으로부터 오는 위협 때문이 아니라, 내부 분열에 기인합니다.

 

[분열 위기의 극복]

 

오늘 복음서 말씀은 예수와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침몰의 위기에 처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배에 물이 가득 찼는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게 삼아 주무시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소리를 쳐서 깨웁니다.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무슨 수천 톤의 큰 유람선도 아닌 겨우 열댓 명 정도 타는 고기 배에 풍랑이 일어 배 안에 물이 넘쳤는데도 예수는 자고 있었다. 이건 상식 이하의 얘기입니다.

 

곧 이 얘기는 마가공동체가 존폐 위기를 겪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탄 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배들도 따라 갔다고 하는 구절이 이를 증명해 줍니다. 공동체가 당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해결책으로 마가는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힘을 믿고 그를 따라 하나가 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가끔 노아의 방주로 비유하기도 합니다만, 이는 세상은 멸망하도록 버려두고 교회만 열심히 나오면 된다고 하는 탈세상적인 위험천만한 타계 신앙을 갖도록 만듭니다. 예수께서 당부하신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해달라고 하는 곧 구원은 세상 안에서 완성된다는 Missio Dei로서의 세상 구원입니다. 저 피아노 쪽 구석에 보면 세계교회협의회(WCC)의 로고가 그려져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풍랑과 함께 그려져 있고 중앙에는 십자가 돛을 달고 있습니다. 세계교회의 신학을 에큐메니칼이라고 합니다.

 

에큐메니칼이란 단어는 그 로고에 쓰여 있는대로 희랍어 오이쿠메네(oikoumene)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집을 뜻하는 oikos에서 나왔는데, 이 말의 뜻은 교회란 이 세상을 하나의 집으로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여기자는 것입니다. 경제라는 economy, 그리고 생태학 ecology란 단어가 모두 집이라는 oikos 에서 나온 말입니다. 여러분이 저 로고를 볼 때마다 모든 인류는 한 가족이라는 사실, 그리고 교회는 풍랑 이는 이 세상에서 도피처가 되는 장소가 아니라, 풍랑을 잔잔하게 하는 사명과 그 능력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

 

올해 625를 맞아 영국의 작가 앤드류 새먼이 쓴 <그을린 대지와 검은 눈>이라는 책이 우리말로 출간되었습니다. 19509월 낙동강전선에 투입된 영국군부대의 활약상을 담은 책으로서 참전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은이는 한국전쟁을 이렇게 말합니다. “냉전기간에 벌어진 분쟁 중 분노의 악마적인 힘이 이만큼 크게 분출된 싸움은 없었다.” 그리고 그 악마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병사의 회고입니다. “우리는 북한이든 남한이든 구별할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지. 그저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었거든.” 한 소대장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저항하는 마을은 불태워버렸습니다.”

 

대대군의관의 회고입니다. “어떤 나라에 쳐들어가서 그 나라 사람들을 마구 죽이는게 과연 도덕적으로 옳은 일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사람들은 공산주의니 뭐니 하는 데는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그저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사는게 주된 관심사였을 뿐인데 말이지요. 이게 해방이라면 참 웃기는 해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우리가 없었으면 더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윌로비라는 병사는 미국전투기가 한 이미 폐허가 된 마을에 무차별 기총소사를 가하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일기에 적었습니다. “한국인들은 저 꼴을 당하려고 일본에게서 해방된 건가?”(한겨레 201561918)

 

저는 묻습니다. 815를 우리는 광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서로 미워하며 살고 있는데, 빛 광()에 돌아온 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도대체 이 나라에 무슨 빛이 돌아온 것입니까? 자유와 해방과 독립의 빛이요? 무슨 자유? 자살하는 자유? 그래서 세계 자살률 1위 국가가 된 것인가요? 해방? 그래서 청소년 흡연율 세계 1위 국가가 되었나요? 자유? 그래서 자동차사고율 세계 1위의 국가가 되었나요? 그래서 결핵환자 발생률 사망률 1, 당뇨사망률, 간질환사망률, 심장마비 사망률 세계 1위 국가가 되었나요? 독립? 그래서 군작전통제권을 미국군대에 주었습니까? 가지고 가라는데도 굳이 갖고 있으라고 미루고 미루는 세계 유일의 나라? 독립 맞습니까? 이제 두 달만 있으면 815 광복 70돌을 맞이한다고 하는데, 이 나라는 무슨 빛을 되찾았으며 여러분은 지금 무슨 빛을 되찾았나요?

 

[오늘의 남북관계]

 

지금 한반도는 요동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른 채,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서로 간에 깊은 상치기만 남긴 채 갈 방향을 잃고 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살다보니 비정상이 정상으로 착각되는 거짓과 오류를 당연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근혜정부는 남과 북의 민간단체들이 만나 615민족공동행사를 하도록 허용했다가 막판에 가서 뒤집었습니다. 국제관례상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짓을 행했습니다. 15년 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위원장이 만나 서명한 합의문서를 갈가리 찢고 말았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신뢰가 형성이 되겠습니까? 자기 맘에 안 들어도 앞서간 정부가 맺은 규약은 서로 존중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웃끼리 맺은 협의는 집주인이 바뀌어도 존중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런데 법치와 민주를 기본정신으로 하는 이 나라가 앞선 대통령이 서명한 일을 헌신짝처럼 버린다면 도대체 어떤 나라가 협약을 맺자고 하겠습니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과 여러분이 약속을 하시겠습니까? 이는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단지 합의만 깨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대결과 전쟁의 국면으로 몰아 국민을 공포 속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경제와 복지를 말하는데, 개성공단 축소로 인한 경제손실은 말할 것도 없고 북의 값싼 지하자원은 모두 중국과 러시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남북갈등이 심화되면 국제신용등급이 하락합니다. 여행객이 급감합니다. 달러 사재기가 일어납니다. 순식간에 경제가 엉망이 됩니다.

 

복지의 목표는 국민행복입니다. 하구한날 전쟁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민족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러니 나날이 국민소득은 올라간다고 하는데, 국민행복도는 세계에서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빵 한 조각 더 먹는다고 행복해집니까? 그건 돼지나 그러합니다. 누가 여러분을 돼지라고 부르면 매우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우리를 돼지 취급하고 있는데도 가만히 있는 건 무슨 이유인가요? 메르시도 어찌 보면 사육을 강요당한 낙타들의 반란인데, 언젠가는 돼지들이 정신을 차려 반란을 일으킬 때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낙중-돈키호테?]

 

남북분단의 문제를 자기의 문제로 알고 평생 매진하여 오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만, 그중 대표적인 분은 김낙중선생이십니다. 1954년 휴전 직후 20세의 젊은 나이에 남북의 평화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는 탐루(探淚)라고 새긴 등불을 대낮에 부산 광복동 거리를 들고 다니다 미친놈으로 몰려 고생을 하시고는 이제는 평화통일안을 직접 만들어 청와대(당시는 경무대)에 보내고 이것으로 안 되자 이를 북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홀로 임진강을 건너갔다가 간첩으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시고 천고만고 끝에 겨우 남쪽으로 돌아왔지만 또 다시 간첩으로 몰려 죽을 고생을 하시었습니다.

 

이후 박정희독재유신정권은 정권이 불리하다 싶으면 그때마다 김낙중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지금까지 5번의 사형선고를 받으셨고, 18년의 감옥 생활을 하셨습니다. 지금도 무기수 신분이라 투표권도 없고 여권도 없으십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남북분단의 고난 역사의 산증인이십니다. 80이 훨씬 넘으셨지만, 지금도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시고 글을 쓰시고 계십니다. 정권은 틈만 나면 김낙중선생님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합니다. 그래 지난번 김기종씨가 미대사를 피습하는 사건이 있어났을 때, 국정원은 경제신문기자 한명을 향린교회에 끄나풀로 보내 김낙중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게 한 이후 선생님과 향린교회를 배후 세력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당시 조중동의 여론을 앞세운 국정원과의 숨 막히는 심리전이 오고갔었습니다. 결국 무리수를 두다가는 더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기에 국정원이 포기를 했지만, 지금도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있는 향린교회를 죽이기 위해 계속 그 기회를 노리고 있고 보이지 않는 가운데 내부분열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금요일자 한겨레신문은 특별기고난을 통해 국회의원과 노동부장관을 지낸 언론인 남재희님의 글을 실었는데, 그 제목이 김낙중-돈키호테일 뿐인가?’입니다.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김낙중선생님은 마치 이 사회에 돈키호테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그러나 이 사회의 근본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분이 아닌가 하며 조심스럽게 반문하고 있습니다.

 

글 말미에 김낙중선생님의 공동상속제 도입 주장을 소개합니다. ‘돈 많은 사람들이 죽을 때 일정액 이상의 소유재산을 국가가 관리하도록 하여 청년들에게 일정액을 자본분배해서 모든 젊은이들이 공평하게 인생을 출발할 수 있도록 하자.’ 얼핏 들으면 엉뚱한 얘기로 들리고 자본주의 기본에 어긋나는 주장처럼 들리지만, 지금과 같이 자본주의의 패악으로 말미암아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절망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하는 상황 하에서는 이런 주장이 오히려 자본주의를 살리는 방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보적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고 돈 많은 분들은 없으시니까 다들 동의하시겠지요?

 

우리가 통일을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이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이 담긴 고린도후서는 가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내는 구제헌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자신이 전도하는 일로 인해 겪은 갖가지 어려움을 언급하고 나서 그럼에도 자기는 두 손에는 정의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믿음 안에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여러분도 우리와 같이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활짝 열라고 말한 것은 마음과 더불어 지갑일 두고 한 말입니다.

 

[남북나눔헌금]

 

우리가 남북나눔헌금을 드려온 지가 십년이 다 되었습니다. 그간 매년 약 2천만원 정도를 모아 조그련에 전달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밀가루 대신 농사용 트랙터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한 대에 2천만원정도라고 합니다. 올해는 트랙터를 한 대 보내주었으면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남쪽도 피해가 많지만, 북쪽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미국 국회에서 어떤 연구원이 발표하기를 올해 북에 또 다시 심각한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때 미국이 식량 지원을 금지하는 것은 인도적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미국 국회에서도 인도적 지원을 얘기하는데, 한 핏줄을 나눈 남쪽 정부는 지원예산이 책정되어 있는데도 이를 쓰지 않을 뿐더러 민간단체가 보내려는 인도적 지원마저 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인면수심 정말 냉혈 인간들입니다. 이 정부가 정말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지금까지 매해 남북나눔헌금에 동참하여 오신 교우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도 매주 혹은 매일 한 끼를 굶어가면서 드리는 교우들도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새 봉투를 사용합니다. 바라기는 모든 교우들이 한주에 천원이든 만원이든 적극 동참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다 함께 우리의 결의와 소원을 담아 목회자마당에 실려 있는 남북평화통일 기도문을 읽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