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과 차별을 넘어

에제키엘 2:1-5; 123; 고전 12:2-10; 6:1-13

 

[암울한 남한 교회의 미래]


한국갤럽이 1984년부터 2014년까지 30년간 남한 종교인들의 실태 변화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종교인들의 숫자는 20년 동안은 계속 성장을 하여 오다 지난 10년 전부터 줄어들기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인구의 절반 정도가 종교인입니다. 불교가 22%, 개신교가 21%, 천주교가 7%입니다. 지난 30년의 변화를 통계로만 본다면 앞으로의 10년동안 교회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듯이 보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큰 감소가 예상됩니다.

 

20년 전 20대는 45%가 종교를 믿었지만 현재의 20대는 31%가 종교인이고 45%의 그 20대가 10년이 지나 30대가 되자 38%로 줄어들었습니다. 결국 미래를 구성할 젊은이들이 종교에 등을 돌리고 있고, 중도 이탈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는 남한의 몇몇 대형교회만 살펴보아도 분명합니다. 대다수가 노년층인 교회에서 1020년 후가 되면 교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더 나아질 징조는 없는 것인가? 답은 획기적인 전환이 없는 한 해결책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반에 해당하는 비종교인들 가운데서 오직 반수만이 종교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답을 했는데, 그 비율 또한 불교 25%, 천주교 18%, 개신교 10%로 개신교가 제일 낮습니다. 그런 여파로 현재 대부분의 모든 교회들이 재정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난관을 교회가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 노력이란 예수께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미래를 담당할 새로운 교인을 담아내려면 교회의 모든 예배나 조직들이 새로운 틀로 탈바꿈을 해야 하는 것인데, 다수를 차지하고 현재의 교인들이 얼마만큼 동의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는 머리나 마음으로 하는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주는 헌신적인 결단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그간 해오던 살림의 주도권을 새 며느리에게 내어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입니다. 내가 지켜온 교회이니 내가 주인이다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자연 도태할 것입니다.

 

갤럽 조사에서 재미있는 발견은 이것입니다. 종교가 개인생활에서 중요하다고 답한 이들이 전체 평균 52%입니다. 그런데 그중 개신교인들은 90%가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것을 개신교인들의 신앙 생활화가 가장 높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통계에 의하면 개신교인들은 80%가 한 주에 한 번 이상 교회를 가는 반면 천주교는 59%, 불교는 6%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개신교인들이 이렇게 생활화되어 있는데도 왜 개신교에 대한 호감도는 맨 밑바닥인 것일까요? 그것은 새벽기도를 열심히 다니고 성경을 열심히 읽어도 그 목적이 하느님의 나라 건설이 아닌 자기 개인의 영달과 세상 축복만을 간구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준 맘몬의 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그건 헌금에 대한 통계 결과입니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쳐 30년 전에는 38%가 십일조를 한다고 하였으나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조사에서는 61%가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왜 헌금이 이렇게 높아졌을까요? 받은바 은혜가 많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가난한 자에 대한 나눔인가요? 아니면 많이 내면 많이 돌아온다고 하는 자본주의 믿음 때문입니까? 개인이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개신교가 천주교보다 십일조 비율이 훨씬 높으니, 개신교인들의 십일조 비율이 80% 이상이라고 보는데, 향린교인들의 십일조 헌금 비율을 조사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합니다.

 

[그리스도교단 총회 참석]

 

제가 이번에 기장과 선교협력관계에 있는 미국의 그리스도교단, United Church of Christ 총회에 참석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미국장로교 총회는 몇 번 참석한 경험이 있지만, 다른 교단 총회 참석은 처음입니다. UCC 교단은 크기에 있어 기장보다는 5배 이상 크고 미국에서는 침례교 감리교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에 이은 큰 교단입니다. 그러나 개혁적인 성향, 곧 평화 정의 생명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가장 앞선 진보교단입니다. 그간 여성안수는 물론이고 젊은이들의 지도력 양성, 동성혼과 지구환경문제를 가장 먼저 제창하고 다른 교단을 이끌고 가는 교단입니다. 이번에도 지역교회를 대표하는 총대들이 모이는 총회 외에 약 300명의 젊은이들의 대표 모임이 바로 옆 장소에서 같이 열리고 있었고, 총회에 발언을 보면 2,30대의 발언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총대들의 발언의 횟수와 거의 동일했습니다. 우리나라 총회에 가보면 젊은이들은 도우미로 일하는 사람을 제외하곤 보기조차 힘듭니다. UCC 교단은 총회 조직에 고등학생도 의무적으로 참여시킵니다.

 

저희 당회도 청년들의 참여에 대해 계속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청년들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답하고 있으며 오늘은 다수가 들녘교회와의 자매결연 20주년 기념 예배 참석과 농활활동을 위해 들녘교회에 갔습니다만, 피아노가 놓인 이 자리에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림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더 강화하여 가겠다고 응답했습니다. 학업, 직장 등등의 이전의 교우들이 별로 겪어보지 못한 문제들을 겪고 있는데, 왜 너희들 나이 때에 이렇게 활동했는데, 너희는 하지 못하는가 하는 판단은 접어두고 먼저 저들의 어려움들을 듣고 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인가를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외국 문제를 총회의 결의문으로 채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이번에 분단 70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통일 문서를 총회의 10개의 핵심 사항 중의 하나로 채택을 하였습니다. 기장은 물론이고 남한교회의 총회를 가보면 위원회에서 올라온 수십 개의 안건을 다룹니다. 이를 다 알기도 힘들고 교인들의 실생활과는 별 상관이 없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UCC 교단은 딱 열 개만 핵심 안건으로 내어 놓고 이를 그냥 적당히 다루는 것이 아니라, 750명의 총대를 주제별로 나누고 하루를 온전히 이 안건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도록 하였습니다. 기장도 부서별로 나누어 토론하지만, 거의 형식적입니다.

 

이번에 나온 10개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감옥의 독방제도 폐지, 워싱톤프로풋볼팀(Redskin)의 인종차별적 이름 변경을 위한 결의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교우로서 환대하고, 목회에 참여시키기 위한 결의안, 식품내용에 유전자조작을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 찬성, 주식 투자의 사회윤리 책임 결의, 이스라엘의 팔레스틴에 대한 억압을 아파타이드(인종차별)로 규정하고 이의 해결을 위한 정의평화 행동 결의안, 한반도의 평화와 정의 그리고 통일을 향한 결의안, 화석연료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로 전환하는 결의안, 우주환경에 대한 청지기직 그리고 마지막으로 LGBT 성소수자들의 완전한 평등을 위한 교단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결의안입니다. 그리고 총회에서 어떤 결의를 하지는 않았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김복동할머니를 비롯한 4명의 한국관계자들을 초청하여 특별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한반도 평화통일 성명서 채택]

 

주제별 참석자들은 컴퓨터로 배정을 받는데, 한반도 통일 문제를 놓고 미국교회 지도자들이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하루 종일 진지하게 논의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토론에 자문위원으로 기장교단에서 저를 파송한 것인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언론이 말해준 것들만을 알고 온 사람들입니다. 분단은 우리끼리 서로 싸우다가 된 것으로 알고 있고 북조선이 전쟁을 일으켜서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전 과거 역사에서 미국이 한반도에서 어떤 일들을 하였는지 지금은 어떤 외교정책을 펴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점들을 새롭게 인식시켜 주었는데, 끝나자 다들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심지어는 총회가 마친 이후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 탑승을 하려고 줄에 서 있는데, 두 사람이 제게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천명 이상이 모인 총회석상에서 한반도평화통일 결의안을 놓고 의장은 저를 첫 번째 발언자로 초청하여 발언시간을 주었습니다. 본래는 2분 발언이 법적으로 정해져 있어 2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마이크가 꺼지게 되어 있는데, 제가 비행기 값을 더 많이 지불하고 온 사람이니 1분을 더 달라고 했더니 박수가 나오고 그래서 의장도 그렇게 허락을 했습니다. 나중에 스텝이 얘기를 하는데, 자기가 15년 동안 총회에 참석했는데, 2분 발언 원칙이 깨진 것은 처음이라고 놀라워하더군요. 3분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저는 3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갔습니다. 1. 남한에 장로교단이 모두 몇 개인지 아느냐? 공식적으로 236개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분열되었는가? 그건 교회에서는 사랑과 일치를 강조하는 예수 복음 얘기를 듣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북조선에 대한 미움과 보복과 살인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북조선은 언론이 말하듯이 악마도 아니고 미국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악의 축도 아니다. 그들도 평화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다만 미국에 의해 6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경제군사 봉쇄 정책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을 따름이다.

 

2.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가 어디인지 아느냐? 남한이다. 삼성, 현대가 있는 세계 13위의 경제 부국이고, 총과 탱크와 미사일과 미국의 핵우산으로 안보가 가장 잘 되어 있는 세계 8위의 군사강국이지만, 사회심리 분석에 따르면 남한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전쟁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쉽게 좌절하여 죽음을 선택하게 된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전쟁공포는 생명에 대한 모든 희망을 파괴한다. 3. 유엔 회원국 250개국 중에 군사작전지휘권을 남의 나라 군 사령관에 맡기고 있는 나라가 하나 있는데,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느냐? 나는 민족적 수치심 때문에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하겠다. 한반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이 대북봉쇄 대결정책에서 쿠바와 같이 평화공존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여러분이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바꾸도록 의원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면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한국인들도 인간으로서 평화롭게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저의 발언 이후 여성 총대 한 사람이 거의 울먹이면서 찬성 발언을 하였고 다른 발언자가 없자 바로 투표에 들어갔는데, 750명 총대 가운데 단 두 사람만 반대가 나오고 전원 찬성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두 사람은 한국전에서 희생당한 군인 가족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Unexpected Places]

 

UCC 교단은 이번 총회 주제를 Unexpected Places 라고 걸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예기치 않았던 곳혹은 뜻밖의 장소라는 뜻인데, 이 말은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우리가 예기하지 않았던 곳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UCC의 교단 로고 중 하나는 쉼표였습니다. 총회 곳곳에 크고 작은 빨간색 쉼표가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이런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God is still speaking. 하느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은 마침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말씀하고 계신다는 그래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하는 이런 신앙 성찰을 단순히 쉼표라는 상징으로 표현하는 것이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대부분 신앙이란 하느님에 대한 어떤 변치 않는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마치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하는 차별적인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이건 신앙이 아니라 신앙의 이름으로 된 이념입니다. 신앙과 이념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신앙은 열려 있는 쉼표인 반면 이념은 마침표로 닫혀 있습니다. 신앙은 쉼표여야 합니다. 마침표가 되면 그때부터 그 신앙은 절대화가 되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닫고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고 남을 비난하면서 공동체 내에 분열을 일으킵니다. 신앙은 쉼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까지 배우고 알고 깨달은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학생이라는 깨달음 그래서 언제나 나의 생각은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말합니다. 왜요? 동물 제물 대신 인간 제물을 원하신 건가요? 이삭은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의 선물이니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깨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은 그 뜻을 변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깨우치시기 위해 시시각각 새로운 방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동성혼과 교회]

 

제가 미국에서 목사로 봉직하는 16년동안 미국장로교 총회는 동성애자 안수 문제로 매번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지금은 일부 반대하는 교회들이 분립함으로서 안정을 찾았습니다. UCC 교단은 오래 전부터 성소수자 문제를 교회가 해결해야 할 신앙의 주요 과제로 다루어 왔고 지금은 갈등은 전연 없습니다. 오히려 개회예배에서는 동성혼을 포함한 성 차별 투쟁 신앙운동을 회고하는 축제 형식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개회예배 하루 전날 미국 대법원에서 동성혼을 합법화하는 결정을 발표했는데, 이로 인해 축제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그간 UCC 교인이기도 한 오바마대통령의 적극적 지지를 통해 이미 3분지 2에 가까운 주들이 이를 합법화하여 왔지만, 남부의 보수적인 몇몇 주들이 이를 반대하여왔던 것인데, 이로써 동성결혼에 대한 법적 논쟁에 종지부를 찍은 것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문]

 

결혼보다 심오한 결합은 없다.

결혼은 사랑, 신의, 헌신, 희생

그리고 가족의 가장 높은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관계를 이루면서 두 사람은

이전의 혼자였던 그들보다 위대해진다.

결혼은 때론 죽음 후에도 지속되는 사랑을 상징한다.

 

동성애자 남성들과 여성들이 결혼이란 제도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을 오해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혼을 존중하기 때문에,

스스로 결혼의 성취감을 이루고 싶을 정도로

결혼을 깊이 존중하기 때문에 청원하는 것이다.

 

그들의 소망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 중 하나로부터

배제되어 고독함 속에 남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을 요청하였다.

연방헌법은 그들에게 그럴 권리를 부여한다.

연방 제6 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동성애자들의 결혼을 합법화한다.

 

[Bible Belt]

 

동성안수 혹은 동성혼에 대해 반대해 왔던 미국의 동남부의 주들을 통틀어 Bible Belt 라고 부르는데, 이는 보수적인 교회들이 사회정치문제를 장악하고 있기에 부쳐진 이름입니다. 과거 흑인노예를 끝까지 주장한 주들이고, 지금도 인종차별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입니다. 130여년 전 이 지역에서 교회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이 지역에서 보낸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조선 땅에 많이 왔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남한교회는 이들의 보수적 신앙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습니다.

 

2주전에는 바로 이 바이블 벨트에 속한 찰스톤이라는 도시에서 20세의 백인 청년이 200년이 넘는 역사 깊은 흑인교회의 성경공부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해 담임목사를 비롯한 9명을 살해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백인경찰들의 흑인시민들에 대한 불필요한 살인사건 여러 도시에서 있었고 이로 인해 시민폭동이 있었기에 이는 미국 사회를 또 다른 폭풍으로 몰아갈 수 있는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긴장감이 팽배했던 순간 놀랍게도 희생자 가족들이 살인자에 대한 용서를 선언하여 백인인종차별주의자들을 부끄럽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바마대통령은 추모식에 참석하여 모든 이들의 예상을 깨고 추모사 대신 영국의 흑인노예선 선장이었던 존 뉴톤이 회심한 이후 가사를 만든 ‘Amazing Grace’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를 직접 노래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들은 거의 대부분 교회에 출석합니다. 그런데 왜 인종차별을 하는 것입니까? 그건 성서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는 인간의 이기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이념입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사람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그게 하느님의 계명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건 인간을 도구화하는 하나의 이념일 따름입니다. 신앙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는 것입니다. 사람이 중심입니다. 생명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이블벨트라는 미국 동남부 지역에서는 찰스톤 살인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여러 개의 흑인 교회들이 이유 없이 불에 타거나 기물들이 파손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특별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은 미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지역 차별, 학벌 차별, 빈부차별, 여성차별, 성소수자 차별 등등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고 있고, 북조선 사람이나 연변 출신에 대한 차별은 물론 얼굴 색깔 다르다고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차별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편견과 차별을 넘어]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주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일을 이루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상대가 존재함으로 내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예수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저 사람은 그 목수가 아닌가? 그 어머니는 마리아요,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한마디로 직업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말하고 있고, 또 출신 배경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를 만난 빌립이 나타나엘을 만나 내가 오늘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분명히 특별한 하느님의 예언자임에 틀림이 없다. 한번 가서 만나보자고 요청했을 때, 나타나엘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나사렛 고향 사람들의 이런 편견과 차별로 인해 예수께서는 몇 사람의 병자만 고쳐주실 수 있었고, 다른 기적을 행할 수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편견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하느님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란 단순히 도덕적으로 행한 잘못을 뉘우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아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변하는 가치관의 변화를 말합니다. 어린이주일학교에서는 예배를 마칠 때는 꼭 똑같은 건 없어요.”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주는데, 그 찬양의 마지막 소절은 달라서 더 소중한 주님의 한 가족”입니다. 우리 학부모님들께서는 가정에서 식탁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 노래를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평화통일의 사도 이승만목사께서 1960년대 루이빌대학의 교목으로 있을 때에 하루는 인종차별반대 데모에 참석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는데, 누군가가 여러 색깔의 젤리빈이 담긴 작은 그릇을 책상 위에 갖다 놓았고, 그 중앙에 노란색 젤리빈을 얹어 놓았습니다. 여기 젤리빈 한통이 있습니다. 여기에 모두 몇 가지의 다른 맛과 향기 색깔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신가요? 49가지입니다. 식사 후에 후식으로 몇 개씩 잡수시기를 바라고 그때 옆 사람을 보시면서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다르게 창조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하시면서 잡수시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은 내가 깨닫지 못하는 방식으로 전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오늘도 말씀하고 계심을 기억하시면서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