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죽음의 시대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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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전쟁을 제외하고 최악의 순간을 지내왔습니다.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과거에도 그렇듯이 결국 전쟁은 민족공멸로 가는 일이니 어찌되었든 중지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정말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위기의 순간에 일개 교회의 목사가 전하는 설교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사람이 죽으면 모든게 끝장인데, 지금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판에 설교라는 것 하늘뜻펴기라고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반문하는 한 주간이었습니다.

 

목사는 전쟁이 일어나면 성경책을 들고 전선을 찾아다니며 병사들을 위로하고 저들이 전투에서 죽으면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이 주 업무가 되겠지만,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당장 피켓이라도 들고나가 전쟁은 절대 안 된다고 외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은 아닐까?

 

1성서를 보면 하느님의 사람 예언자들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는 위기의 순간에 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성전에 머물지 아니하고 오히려 성전의 제사장들을 향해 거짓 사제들이라고 비난을 하고 예배 따위는 집어 치우라고 소리를 치며 세상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자 왕도 듣기 싫어하고 권력가들도 듣기 싫어하고 백성들도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했습니까? 복음서를 읽어보면 제자들과 함께 성전에 나아가 예배드리는 장면은 거의 없고 언제나 저자거리에서 아픔의 현장에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히며 살았습니다. 오늘날의 예배에 해당하는 제사를 담당하는 예루살렘 제사장들을 비난하는 장면은 많아도 칭찬하는 얘기는 한마디도 없습니다. 저도 그 시대에 살았다면 예수로부터 비난받고 욕먹었을 사람입니다. 저만 욕먹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도 욕먹었을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민족 사랑과 죽음]

 

지난 주 오늘의 우리 상황을 매우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두 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죽음이 있었습니다. 한분은 80세의 독립유공자의 아들 최현열씨이고 다른 한분은 54세의 부산대 국문과 고현철교수입니다.

 

최현열선생께서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앞둔 812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진행되는 정신대 수요집회 현장에서 분신을 하셨고, 결국 지난 21일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최현열님은 평소에도 민족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오셨던 분이셨고, 아버님 고 최병수님은 19326월 조선 독립 쟁취를 목적으로 한 영암 영보 농민 독립만세 시위 사건에 참여해 1년 형을 선고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만, 독립유공자 추서가 되지 않으셨습니다. 최현열님은 유서에서 22녀 자녀들에게 불타는 마음 불나비처럼 뛰어들어 대한민국 제단에 바치고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나의 조국을 껴안고 후회 없는 나의 길, 나라 살리는 길을 내 발로 걸어가기를 결심했으니 내 뜻을 깊이 이해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다오라고 비장한 글과 칠천만동포에게 고함이라는 매우 긴 글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이 글은 을사늑약 당시 이를 비장한 마음으로 비판했던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에 버금가는 역사적인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지연씨는 후에 친일 경력이 붙어 있기에 오히려 최현열선생의 글이 더욱 기념되어야 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이 길어 이 시간에 읽어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말미에 붙인 나라사랑이라는 시를 읽고자 합니다. 그리고 칠천만동포에게 고함이라는 글은 여러 부를 복사하여 놓았으니 원하시는 분들은 예배가 끝난 후에 가져가서 읽어보시고 다른 사람에게도 읽게 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나라 사랑]

 

조국 너는

더는 타인이 아니요

칠천만 동포가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아 갈

사랑하는 우리의 성지이니

너를 버리지 않기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고 살아왔다.

조국을 버리는 것은 생명을 버리는 것

하늘의 뜻을 거스리는 것

....

내 땅 내 조국

우리의 삶을 이 땅에 발붙이고 살고 싶거든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몸과 마음을 바치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36년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해방이 되자 우리 몸

두 동강이로 갈라져

찢어지고 허물어져

포연이 하늘을 덮었어도

황토빛 눈물을 흘리며

무거운 짐 이끌고 힘있게 살아 온 민족이다.

불멸의 역사 위에 뼈를 묻히고 싶거든

어디서 어떻게 죽든

한 줌의 연기로 사라져도

우리의 핏속엔 민족의 혼이 살아 있으니

우리의 역사가 다시는

굽은 길을 걷지 않도록

조국을 구하고 세계를 구할려면은

녹슬고 정체된 우리들의 의식부터 뜯어 고치고

잠자던 민족혼을 일깨워

스스로 깨닫게 하고

계속 타오르는 열정으로

우리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

시뻘건 쇳물처럼 녹여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일어나라 조국은 우리를 부른다.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있는 칠천만 동포여!

조국의 앞날을 위해

어떤 어려움이 다가와도

가장 거룩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죽을 곳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생명의 날개로 달고 훨훨 날아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우리들의 큰 사랑 대한민국을

우리 능력의 열쇠로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꺼져가는 민족혼을 살리고

천 년이고 만 년이 지나도

역사의 향기가 풍기는 부끄럽지 않는

우리들의 큰 사랑

내 조국을 꼭 끌어안고

불 속이고 물속이고 뛰어 들어야 한다.

이것이 겨레의 소망이자 사명이다

 

[2의 가츠라테프트 공개늑약]

 

1905729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는가요? 1905년은 을사늑약이 있던 해이고 그해 11월에 을사늑약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을사늑약 넉 달 전에 이 늑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일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일명 가츠라테프트 비밀협약이라고 불리는 협약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당시 미국 루스벨트의 특사 국방장관 테프트와 일본 외무대신 가츠라가 만나 협약하기를 일본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배하는 것과 미국이 필리핀을 식민지배하는 것을 서로 용인한 협약입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그 시대에는 가능했고, 실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아베신조 일본총리의 전후 70년의 담화에 대해 우리 정부는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일본 아사히신문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담화인가?’라고 지적한 뒤 일본이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다는 주어는 애매하게 됐으며 반성과 사죄는 역대 내각이 표명한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거론됐다면서 이 담화는 낼 필요가 없었다. 아니 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번 아베 담화는 중국을 배려하였지만 실제 식민지 지배를 한 한국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었습니다. 이에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 교수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가 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됐고, 미국이 조선을 전리품으로 일본에 줬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 전쟁이 아시아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충격적이라며 이는 코리아에 대한 철저한 무시라고 말했습니다. 러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가 아시아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것은 러시아의 공산주의를 일본이 막아냈기 때문이라고 해석이 되는데, 이는 공산주의를 막아내긴 했겠지만, 그 이후 자본주의의 맹주라고 하는 미국이 주도한 수많은 세계전쟁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전쟁 그리고 지금의 시리아와 IS 전쟁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무식의 소치입니다.

 

일본과 미국의 언론이 이렇게 비판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815 경축사에서 아베담화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킴으로써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드러내고 있고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일본은 70년 동안 평화와 민주주의, 법치에 대한 변함없는 약속을 보여줬다. 이번 담화를 통해 일본은 모든 국가의 모델이 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발언을 했습니다. 평화헌법을 파기하고 군사재무장을 촉구한 셈입니다. 결국 남한은 백성들의 뜻과는 반대로 또 다시 미국과 일본이 합작한 가츠라테프트 비밀협약의 후속판에 말려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백성은 과거를 되풀이 한다는 진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 최현열선생은 이러한 민족의 위기를 유서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들어가기 직전 백성들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만일 야훼를 섬기고 싶지 않거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여러분이 오늘 택하시오. 유프라테스 강 건너편에서 여러분의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택하든지, 이 땅 아모리인의 신을 택하든지 결정하시오.‘ ’아니 우리가 어떻게 야훼를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애굽의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내신 분이 우리 하느님 야훼이신데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야훼 그분은 세상 제국들의 억압과 차별의 역사를 꺾으신 역사의 주 하느님 해방의 주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야훼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가요? 고 최현열선생은 지금 이순간 무덤에서 아니 저 하늘나라에서 엄중히 묻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믿고 고백하는 신은 어떤 신인가요? 하고.

 

[민주화 회복을 위한 죽음]

 

최현열선생께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난 5일 후, 81754세의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고현철교수께서 총장 직선제 폐지에 반발하며 본관 4층 국기게양대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이명박정권은 '국립대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며, '총장 직선제 폐지' 카드를 들고 나왔습니다. 폐지 명분은 직선제가 교수들의 정치화를 불러 교육·연구 분위기를 해친다는 주장이었다. 교수들은 반발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직선제는 과거 민주화 시기, 대학이 정권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성을 얻게 된 상징처럼 여겨온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교육부는 재정지원 사업 등의 평가지표에 직선제 폐지를 반영시켰고, 국가 재정을 삭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행정방침은 박근혜정부에 와서 더욱 공고해져 직선제가 아닌 간선제로 뽑힌 총장이라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임명을 허락하지 않고 있어 무려 2년이나 총장이 없는 대학도 있고 5번이나 총장을 바꿔 올렸지만, 여전히 거부하고 있고, 몇몇 대학은 정부를 대상으로 소송 중에 있고 승소도 했지만,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박근혜씨 자신이 이명박정부에서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는 방침을 발표하자 이를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소신발언을 했던 사람인데, 그놈의 소신은 화장실 들어갈 때, 나올 때가 다르니 소신이라기보다는 소인배의 처신발언이라고 말하여야 하겠습니다.

 

이제 국립대 중에서 딱 하나 남은 대학이 부산대였고 현 총장은 직선제회복을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총장이 되신 분인데, 이 분도 정부의 압력으로 결국 간선제 수순을 밟기로 하자 이에 교수협의회에서 단식농성을 하던 중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다. 고 교수는 유서에서 교육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후보를 임용하지 않아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으며, 이어 "국정원 사건부터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상황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 있다"고 절규하며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고 유서는 끝을 맺었습니다.

 

모든 독재권력이 그러하지만,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가장 처음 한 일은 언론장악 군대장악 그리고 검찰과 법원장악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학과 일부 종교 장악만은 쉽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교수들을 해직하고 바른 목소리를 내는 목사들과 신부들을 감옥에 가두고 수많은 간첩단사건을 조작해 내는 18년간의 장기집권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비판적 지식인들과 학생들이 깨어 있음으로 장악이 되지 않았고, 결국 민심에 눌린 김재규장군의 총에 의해 피살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정권은 똑같은 길을 걸어오고 있어 지금 언론은 철저히 장악이 되었고 국정원대선개입에 경찰총장의 압력을 거부한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수사과장을 적반하장식으로 고발하는 검찰은 이미 정권의 시녀로 전락을 했고, 법원 또한 가끔 박정희정권에서 일어난 간첩단 사건들이 무죄가 되기도 하지만, 통진당 해산 판결이나 이번의 한명숙전총리 뇌물사건처리를 보면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대법관이나 부장판사들의 행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판단을 갖게 됩니다. 수재 중의 수재만 들어간다는 S대 법과는 홍근수목사님과 몇 분을 제외하고 모두 똥통이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이제 마지막 남은 보루가 대학이지만,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 또한 취직과 스펙에 매여 대학의 자유를 거의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물론 교수들 또한 최현열선생께서 지적하였듯이 미국에서 공부한 대부분의 교수들은 자본주의에 물이 들어 민족주체정신이 사라진지 옛날입니다. 대학과 종교는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예전 광부들은 깊은 굴속으로 들어갈 때 카나리아 새를 갖고 들어갔고 잠수함에는 토끼를 들고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이 생물들이 산소희박에 가장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사회로 말하면 자유의 정신이 산소입니다. 교수와 목사 신부 스님들은 이 사회의 운명을 판단하는 카나리나와 같고 토끼와 같은 존재들이어야 합니다.

 

고현철교수는 단순히 대학의 민주화만을 열망하는 교수가 아니라 이 시대의 산소가 희박해져감을 민감하게 느끼는 카나리아였습니다. 2013년 발표한 <평사리 송사리>라는 시집에 실린 시 '평사리 송사리'를 보면 이러한 그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평사리 송사리 / 고 현 철

 

마음도 머리도

아주 무게를 더할 때

혼자 찾은

고향 같은 하동 평사리.

내가 발 딛고 있는, 토지

서희는 어떻게 견뎌왔던가.

힘든 세월

비틀어진 나무를 본다.

바람 찬 겨울일수록

잔잔한 개울

흑싸리 홍싸리 화투패처럼

쉽사리 휩쓸리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살얼음 얼음물 속

흙자갈 속을

자갈자갈 헤치며 떠다니는

평사리 송사리 같은 것.

내 어찌 여기서 끊겠는가.

그동안 어렵사리 길들여 온

지겨운 이 길을

흙먼지 날리는 이 길을

헤엄쳐 가지 않겠는가.

 

저는 고 고현철시인의 시 앞에서 오늘 시편기자의 고백을 듣습니다. “야훼의 눈길, 의인들을 보살피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신다. 악한 일을 하고 야훼 앞에서 숨을 길 없다. 악인들은 그 행실로써 죽음을 부르고 의인을 미워하는 자 멸망하리라. 야훼께서 당신 종의 목숨을 구하시니 그에게 피신하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죽지 아니한다 함이 이 땅에서 이백년 오백년 산다고 하는 말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영원한 삶, 곧 부활의 삶을 의미합니다. 고현철교수의 죽음을 어리석다고 말하는 사람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누가 매설한 지뢰인가?]

 

자유로운 영혼이기를 갈망하는 목사이기에, 그리고 적어도 이성에 기초한 비판적 지식으로 60평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기에 이번 남북전쟁위기의 발화점이 된 DMZ 지뢰폭발 사건에 대해 한마디를 하고자 합니다. 84GP초소 출입문 안에서 세발의 지뢰가 폭발했고 두 명의 남한군인의 발목이 잘리는 희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5일이 지나 9일 국방부는 이 지뢰는 북의 군인들이 몰래 매설한 목함지뢰라고 비난을 하고 하지 않기로 한 대남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직전까지 갔다가 지금은 대화국면으로 곧장 전환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6일자 경향신문 그러니까 사고 바로 다음날 김기호씨라는 지뢰제거연구소 소장이란 직함을 갖고 있는 분이 글을 쓰기를 ‘41사단에서 일어난 지뢰사고는 이미 몇 년 전에도 같은 사단에서 중대장 이하 몇 사람이 같은 사고를 당했지만, 이는 남쪽에서 매설한 M14대인지뢰가 폭발한 것으로 하루 속히 남쪽과 북쪽에서 매설한 대인지뢰들을 모두 제거하자는 내용의 글을 실었습니다. 제가 교회 홈피에 그 글을 옮겨 놓았습니다만, 이 김기호씨라는 분은 군기무사에서 30년을 봉직한 지뢰전문가인데, 만약 국방부에서 이번 사고를 북쪽 책임으로 몰아가고자 계획하고 있는 줄을 알았다면, 당연히 실지 않았을 것이고 경향신문도 이를 실지 않았을 것입니다.

 

목함지뢰는 크기가 커서 쉽게 발견이 되지만, 남쪽 M14대인지뢰는 크기도 4센티 4센티로 되어 있는 아주 작고 그리고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작은 공과 같아 비에 쉽게 쓸려내려 갑니다. 이번 폭파장면을 보면 출입구 오른쪽이 훨씬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우리가 매설해 놓은 지뢰가 이번 폭우로 출입구 쪽으로 쓸려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국방부는 발표하기를 북조선의 군인들이 대낮에(밤에는 수색을 하기에 절대 그렇게 못함) 포복으로 수백 미터를 기어와서 그리고 30분 이상을 남쪽 출입문 입구에 쪼그리고 앉아 지뢰를 매설하고 또 포복으로 몇 시간을 기어갔다고 했습니다. 물론 포복으로 기어왔다갔다고 하는 얘기는 제가 덧붙인 얘기입니다만, 땅굴로 왔던가 아니면 공중으로 날아오지 않아오지 않았다면 포복으로 기어왔다 기어가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거짓투성이]

 

이는 마치 5년전 백령도 근처에서 대잠수함 침투방어를 주목적으로 한 한미군사휸련 중에 북쪽 잠수함이 몰래 수 킬로미터나 남쪽으로 내려와 천안함을 어뢰로 피격하고 다시 몰래 북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 이상으로 공상소설에 불과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젊어서 이번에 사고가 일어난 1사단 옆 25사단 철책선에서 군복무를 했고 DMZ 안에도 수없이 들락날락거려서 이번 상황은 보지 않아도 국방부의 발표가 거짓투성이라고 하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여름에 수풀이 우거졌다 해도 초소에서는 망원경으로 보고 있기에 북조선 군인들의 움직임은 물론 숲속의 다람쥐같은 움직임도 다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GP초소에서 출입구는 무조건 다 관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탈출병이 있을 수도 있기에 출입구를 통과하려면 그 인원을 초소에 보고하고 초소는 그걸 확인하여 기록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안 되었다고 국방부가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번에 다친 하사들이 상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 언론 인터뷰를 거절한 이유입니다. 3년 전 일어난 북쪽 귀순병이 우리 군 숙소의 창문을 노크할 때까지 몰랐다고 해서 그때는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지만, 사단장 이하 소대장까지 장성 5명 영관급 9명 지휘자들 모두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천안함이나 이번 지뢰폭발이나 수많은 희생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옷을 벗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런 일들이 모두 조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최고의 거짓말은 북조선 군인이 30분을 출입구에 앉아 지뢰를 매설했다는 얘기입니다. 북조선 군인이 투명인간이 아닌 한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철책선은 항상 경계를 하고 있어 1분만 아니 30초만 자기 몸을 드러내고 있어도 저격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완전히 자살행위인데, 30분이나 출입구에 몸을 내놓고 있었다 공상소설도 이렇게는 못합니다. 날이 잔뜩 흐려 관찰이 안되었다고 말하는데, 날이 흐리면 비가 올지 모르는데, 그리고 8월초는 장마가 계속되던 때인데, 그렇다면 폭우로 인해 매설해 놓은 지뢰가 둥둥 떠다닐 수도 있는 상황인데, 목함지뢰를 매설했다고 하는 것은 국민을 바보로 보고 하는 애기입니다. 저는 이렇게 주장하는 국방부장관 여기에 동조하는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각료 정치인들은 모두 대한민국 군인 모독죄로 당장 옷을 벗기고 군사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거짓 조작의 속내]

 

천안함조작사건 이후 10년 후에나 제품이 나올까말까한 F35전투기 구입을 강행했듯이 이번에도 국방부는 이를 기화로 민간단체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미군의 탄저균대량살상무기 문제를 희석화시키고 이어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사드미사일체제 도입을 밀어붙일 것이고, 청와대는 이번 지뢰조작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해킹사건 더 나아가 국정원개입 대선조작댓글사건을 희석화시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이렇게 허점투성이거늘 어느 언론 하나 지뢰폭발에 의문점을 달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언론 모두 죽었습니다. 지식인 모두 죽었습니다. 심지어는 경향신문 자기들이 실어놓고도 정부 발표만 대변하고 있습니다. 한겨레기자 만나 이 얘기했더니 자기는 군대 다녀오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한심하다 못해 두심 세심합니다. 언론이 죽은 나라, 비판적 지식인이 죽은 대한민국, 아니 지식은커녕 상식도 사라졌습니다. 모두가 제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빨갱이 소리 듣기 싫다는 이유 하나로 진실 앞에서 모두가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 사이 나라 전체가 썩어가고 있습니다. 히틀러 시대에 니묄러 목사의 기도가 생각납니다.

 

[나는 침묵했다]

 

그들이 왔을 때에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바울 선생은 말합니다. “속임수를 쓰는 악마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주시는 무기로 완전무장을 하십시오.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세력의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의 악령들입니다.” 악신들과 암흑세계의 지배자들과 악령들은 보이지 않는 거짓세력을 말하는 것이지만, 결국 인간을 통해 그 세력은 힘을 드러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바울선생은 우리가 대항하여 싸워야 할 원수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미움의 감정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문제의 근원을 보아야지 그 겉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얘기는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필연적으로 낳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저는 예수께서 오늘 요한복음 오천명 급식기적 이야기 말미에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라는 말씀의 핵심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분명히 저항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비폭력으로 이루어진 저항이요 섬김이요 희생입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악인을 어떻게 비폭력의 사랑으로 이겨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쉬운 해답이 있을 수 없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래서 빵을 먹었던 기적을 보았던 수없는 제자들이 예수의 곁을 떠나갔고, 가롯 유다 또한 끝내 배반합니다.

 

저의 하늘뜻펴기는 여기서 끝납니다. 그 이후는 여러분이 만들어 가시기 바라고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주시기를 바라면서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