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

에스더 7:1-6,9-10, 9:20-22; 124; 5:13-20; 9:38-50

 

이해인 수녀의 [한가위]라는 시로 시작합니다.

 

노고지리 벗을 삼아 논밭 갈아 씨 뿌리고

긴긴 여름 김을 매어 땀방울로 흠뻑 키운 곡식

팔월이라 중추 되어 오곡백과 풍성하니

농부님네 잔주름에 함박웃음 피어나네

햇곡으로 담근 술맛 그 향기 향긋 그윽하고

이곳저곳 흩어 살던 모든 가족 모였으니

오순도손 모여 앉아 솔잎 따다 송편 빚고

햇과일 함께 토란국도 끓여서 조상님께 제수하세

동산 위 달님께 소원성취 빌면 오곡백과 풍성한

올가을 호시절 백년가약 못 맺으랴

우리 사랑 팔월이라 한가윗날 휘영청 달이 밝아 밝은 달

달구경도 좋지만 백년가약 임맞이도 오늘밤이 제격일세

 

[한가위와 스트레스]

 

오늘이 한가위 명절날이라 고향을 찾아간 교우들이 많이 있고, 바삐 살아가느라 마음 속 대화를 나누지 못한 가족과 친지들이 오랜만에 만나 정겨운 대화를 나누시는 줄 압니다. 좋은 시간 복된 시간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듯이 꼭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가 회원 1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추석 때 가장 큰 스트레스가 무어냐는 질문에 기혼 여성의 절반이 자신들은 하루 종일 음식 준비하는데 남자들은 텔레비전만 볼 때라고 응답했습니다.

 

지난 주 말씀인 잠언 31장을 보면 누가 어진 아내를 얻을까? 그 값은 진주보다 귀하다.”라고 하면서 어진 아내를 칭찬하는가 싶더니 이어지는 말은 남편은 넉넉히 벌어들이는 아내를 믿고 마음이 든든하다. 백년을 한결같이 속 썩이지 않고 잘해 준다. 양털과 모시를 구해다가 손을 놀리니 즐겁기만 하구나. 마치 상선과도 같아 멀리서 양식을 구해 온다. 아직 어두울 때 일어나 식구들에게 밥상을 준비한다.” 이렇게 아내는 열심히 일하는데 남편은 어디에 있는가요? “남편은 지방 어른들과 함께 성문에 앉아 존경을 받는다.” 요즘말로 하면 아내는 열심히 전을 부치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TV 앞에 앉아 야구경기를 즐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어제 성서배움마당에 참여하는 한 남편이 공부갈려면 전을 부치고 가야 한다고 해서 하루종일 감자전만 부치다 온 남편이 있었습니다. 우리 남편들 오늘만이라도 TV 보지 마세요.

 

두 번째 스트레스는 친정에 안보내주거나 늦게 보내주는 경우이고 남편 내조를 못한다며 잔소리 할 때친정 가면 잠만 자는 남편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기혼 남성의 경우는 목돈 지출에 따른 경제적 부담이 가장 크고 장거리 운전아내의 투정과 구박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응답자 10명중 3명꼴로 부부갈등과 고부갈등을 겪게 되고 명절 직후 이혼율이 올라간다고 하지요.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시어머니의 말이 뭐냐?’는 질문에는 얘야 아범 좀 챙겨라. 좀 야윈 것 같다.’ ‘넌 그간 살이 쪘구나!’ ‘내 아들 고생한다.’ ‘나같이 좋은 시어머닌 없다.’ ‘벌써 가니?’ 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듣기 싫은 장모의 말은 질문에 없는 걸 보면 이것도 성차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스트레스가 높아지다 보니 점점 명절 연휴에 오히려 해외여행을 가는 비율이 높아가고 있어 이번 한가위 연휴에도 무려 70만명이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다고 하는군요.

 

[명절을 쇨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 이 명절 연휴에도 가족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가 없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생 일하던 직장에서 갑작스레 해고를 당해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거리 농성에 나선 비정규노동자들도 있습니다. 멀리 인도까지 간 쌍용차해고노동자들도 있고, 국가인권위원회 광고탑 꼭대기 좁은 공간에는 백일너머 농성중인 최정명 한규협 기아자동차 해고노동자 두 분도 계십니다. 2주 전 목요촛불기도회를 가지면서 이분들에게 힘을 더하기 위해 경찰의 허락을 받고 올라가 보았습니다만, 공간이 너무 좁은데다 울타리가 없어 바람이 세게 몰아치면 추락의 위험성이 있어 바위를 타는 산악인마냥 24시간 자기 몸을 자일로 묶어놓고 지내고 있더군요. 대법원까지 이미 불법파견으로 판결이 났다고 하는데도 정몽구회장은 이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 차광호씨는 408일간의 고공농성이라는 슬픈 신기록을 세우고 지난 8일 땅을 밟았습니다. 힘겨운 싸움 끝에 해고자의 고용보장 합의가 이루어졌기에 차광호 씨는 땅을 밟게 되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업무방해 및 건물 침입혐의로 발부된 경찰의 체포영장이었고 그래 올해 한가위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연도 있습니다.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의 한 아버님은 지난 추석과 설 명절 때에는 나이 많으신 아버지가 해마다 내려오던 손주가 보이지 않아 손주를 찾으셨는데, 사실대로 말하였다가는 충격으로 돌아가실까봐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못 내려왔다고 둘러 됐지만, 올해는 뭐라고 둘러대야 할지 모르겠다는 아버님도 계십니다. 게다가 우리 한반도 안에는 북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갈수 없는 남쪽 사람들, 남의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올수 없는 북쪽의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한두 해가 아닌 근 70년 가까이 그렇다는 것이고, 세계 모든 나라를 다 가지만, 딱 하나 갈수 없는 나라가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하고 절망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 달에는 남북 각각 100명의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날 예정인데, 그 또한 시간 정해서 세 번 만나고 헤어져야 하는 눈물 없이는 볼 수가 없는 장면입니다. 남쪽의 신청자만도 6만 명이 넘는데, 그중의 100명만 선택이 되었는데, 이게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문명은 무슨 문명국가입니까? 야만이지요. 야만도 이런 야만이 없습니다. 언제 우리는 이 야만의 어둠과 치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에스더서가 주는 교훈들]

 

1성서의 에스더서는 야훼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 성서 정경화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책이고, 오늘 본문도 유대인들이 페르샤에 살다 총리 하만의 모략으로 모두가 죽게 되었다가 에스더 왕비에 의해 극적으로 구원받게 된 사연을 말하면서 이를 기념하고 축하하는 유대 명절 부림절의 기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기쁜 소식이긴 하지만, 비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부림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비유대인들에게 있어 에스더서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일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에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절이 한두 개 있는데, 유대인들을 모두 몰살하려는 모략을 미리 알게 된 에스더의 삼촌 모르드개가 이를 막기 위해 에스더에게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에스더가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왕이 먼저 자기를 부르지 않는 가운데 임의로 나아갔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삼촌이 말합니다. “왕후만이 궁 안에 있다고 해서 홀로 목숨을 부지하리라 생각마시오. 왕후께서 끝내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른 데서라도 구원의 손길이 와서 유다인들 앞에 살 길이 열릴 것이오, 그렇게 되면 왕후는 망할 줄 아시오. 바로 이런 때에 손을 쓰라고 왕후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겠소?”

 

나 혼자 안전하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이 안전할 때, 공동체의 안전이 먼저 보장될 때, 나의 안전도 나의 가족의 안전도 보장이 된다는 모르드개의 충고는 개인으로 파편화된 오늘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자 이 얘기를 들은 에스더 왕비는 깨달음을 얻고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담보하여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갖고 왕 앞에 나아가는데 이 또한 옳은 일이라면 죽음을 각오하고서라도 나서야 한다고 하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가 에스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새롭게 주목을 받는 구절이 있는데, 그건 에스더 왕비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전 왕비였던 와스디의 이야기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군인들에게 12일 외출이나 영화값 할인하도록 강요하거나 알량한 과자봉지 하나 주면서 대통령 하사품이라고 떠들어대는 정치선전용이 아니라, 무려 180일동안 나라의 국고를 여는 성대한 잔치를 베푼 것입니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어느 날 왕은 고관대작들에게 와스디 왕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름답게 치장을 잘하고 자기에게 오도록 전갈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왕후가 이를 거절했습니다. 그래 왕은 분노했고,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했더니 고관대작들은 이를 방관하면 남편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니 가만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여 왕후를 폐위시켰던 것입니다. 이는 고대 남성중심 시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여성신학자들에게 있어서는 남성들의 성적 노리개 되는 일을 거부한 와스디왕후야 말로 여성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것입니다. 에스더만이 우리가 기억해야할 여성 영웅이 아니라, 와스디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여성 영웅인 것입니다.

 

크게 보아 에스더서는 한 국가 내에서 소수민족이 당하는 아픔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소수민족들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지만, 지난 수십년동안 일본의 조선족들이 당하는 차별은 매우 심각합니다. 조선어를 가르친다고 하여 국가보조금도 지불하지 않고, 국수주의자들은 느네 나라로 돌아가라며 노골적인 살해 위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남북 어느 나라도 선택할 수가 없기에 무국적자로 남아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요즘 유럽은 레바논과 리비아 등지에서 오는 난민들로 인해 큰 소동을 겪고 있습니다. 이를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측과 우리도 먹고 살기가 힘든데 언제 다른 나라 사람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느냐? 말도 못하고 문화도 다르고 더욱 종교까지 기독교도가 아닌 모슬렘 신도들이라 이들을 받아들이면 사회 혼란과 분란만 초래하니 안 된다고 하는 반대 소리가 충돌하고 있습니다.

 

[부와 속임수]

 

대체로 잘 사는 서유럽나라들과 가난한 동유럽나라들 간에 의견 충돌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을 받아들이자고 하는 서유럽도 그 이면을 보면 순수한 인도주의적 입장보다는 경제적인 입장이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독일 수상이 80만의 난민을 받아들이겠다고 공포했는데, 이는 현재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의 부족을 메꾸기 위함입니다. 이민자들은 말이 낯선데다가 기술력도 없어서 자연히 자국인들이 피하는 3D직종(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직종에서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인들로서는 선심도 베풀고 경제 이익도 얻는 이야말로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소리치던 독일도 너무 많이 몰려오니까 국경을 닫아걸고 있다는 얘기이니 이 또한 빛 좋은 개살구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독일은 국내 최대 기업인 폭스바겐 회사가 디젤차 배기가스를 인증시험을 받을 때만 작동하도록 하는 소프트웨어를 몰래 장착해 온 사실이 탄로가 나는 바람에 깨끗한 독일 이미지에 엄청난 손상이 생겼습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속임수를 저질러온 일로 이는 독재자 히틀러 이상 가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것입니다. 무기장사꾼 미국이나 차 사기꾼 독일은 세계 제 1,2위의 부자나라로 모두 기독교국가의 상징 국가들인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거짓도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는 반기독교 반성서 반예수의 상징국가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전 여기서 오늘의 야고보 본문 말씀 바로 앞에 있는 성서 말씀을 저들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이번에는 부자들에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당신들에게 닥쳐 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통곡하십시오. 당신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 많은 옷가지들은 좀먹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그 녹은 장차 당신들을 고발할 증거가 되며 불과 같이 당신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잘 들이시오, 당신들은 당신들의 밭에서 수고한 노동자들에게 제 품삯을 주지 않고 가로챘습니다. 그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의 귀에 들렸습니다. 당신들은 이 세상에서 사치와 쾌락을 누리며 지냈고 도살당할 날을 앞에 두고도 마음은 욕심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30대 재벌들이 쌓아놓고 있는 회사보유금이 모두 얼마인지 아십니까? 천조가 넘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3년간의 전체 국가예산에 해당합니다. 노무현정부 시절에는 여기에 세금을 매겨서 그리 많지가 않았는데, 이명박/박근혜정부 아래에서는 세금도 없애 버렸으니 금고에 그냥 쌓아놓고만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약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도록 엄청난 압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매우 비열한 짓입니다. 4년으로 연장하면 뭐합니까? 4년을 다 채우기 전에 무슨 명목을 대서라도 해고를 시키고 또 싼 값의 노동자로 대체할 텐데. 4년을 일하고 문자메시지 하나로 해고를 당해도 비정규직이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고공에 올라가 죽음을 담보로 사장의 양심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발 이번 한가위에는 재벌 사장들 돈 욕심 좀 줄이고 함께 나눠 갖는 아름다운 마음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

 

언젠가도 얘기했지만, 지금 스위스 비밀은행에 한국인의 이름으로 쌓여 있는 검은 돈이 또한 천조가 넘는다고 하니, 이 두 금고에 쌓여 있는 돈만 제대로 활용한다고 하면 우리나라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노동문제, 복지문제, 교육문제, 의료문제 일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도대체 정부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뭐를 하라고 경찰력을 주고 검찰력을 주었습니까? 이런 부정행위 막으라고 국민들이 공권력을 정부에게 위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거짓 세력들 붙잡으라고 준 공권력으로 대선개표컴퓨터 조작이나 하고 힘들어 못살겠다고 거리로 나와 소리치는 노동자들 잡아가두고 이들을 보호하는 변호사 잡아 가두고 최루액 마구 쏘아대고 있습니다. 프란체스코 교황도 미국 의회에서 가서 말했습니다. 정치란 백성을 섬기는 일이라고... 청와대 권력에 쫓는 일이 아니고 백성을 섬기는 것이 정치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입니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하느님을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꼭 교회에 나가고 헌금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 중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가장 사악한 일들이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사악한 일들이란 단지 개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황이 미국 국회에서 지적하였듯이 무기 공장 그 자체가 사악 자체입니다. 미국인들이 교황의 방문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말에 귀를 기우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도 있습니다. ‘나를 믿는 보잘것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 맷돌을 달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낫다. 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불구의 몸으로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애꾸눈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 이는 단지 율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민중들을 죄인으로 만들어가는 종교지도자들만을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평화유지와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로마제국이 끊임없이 일으키는 침략 전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 무기 공장을 허위로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의 정치지도자들이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돈의 욕심에 사로잡히면 사탄의 노예가 될 따름입니다. 미국은 탱스기빙데이가 우리의 한가위마냥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칠면조 고기를 먹는 가장 큰 명절인데, 이게 언제부터인가 세일이 시작하는 첫날로 변해버렸습니다. 상술에 넘어간 것입니다. 바라기는 세계 최강의 미국인들이 감사의 마음을 회복하여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 받아 세계인들로부터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가 기도의 완성]

 

한가위 명절은 한해의 수확을 놓고 가족들이 모여 하늘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조상제사는 본래는 조상신을 숭배하기 위한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친지들이 함께 모이는 친교의 자리로 그리고 한해의 축복에 감사해서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감사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감사는 인간의 행위 중 가장 고귀한 행위입니다. 감사의 마음이야 말로 가장 완전한 기도라는 말도 있습니다. 감사는 꼭 있어서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나는 한 때 신발을 살 돈마저 없어 맨발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불평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무거운 마음으로 쿠파의 한 커다란 이슬람 회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나는 발이 없는 사람을 보았다. 그때 나는 두 발을 가진 일에 대해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유대인 탈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모든 경우에 있어 배우는 사람이다. 진정 강한 자는 누구인가?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진정 부자는 누구인가?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멕시코 어떤 마을에는 온천과 냉천이 가지런히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 있다고 합니다. 동네 아낙네들이 빨래하기가 너무 좋습니다. 한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이곳 부인들은 찬물과 더운 물을 마음대로 거저 쓸 수 있으니 늘 감사하겠습니다.’ 안내원이 답하기를 천만에요. 더운 물과 찬물이 땅에서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비누가 나오지 않아 불평이랍니다.’ 자신의 처지에 불만이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생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앞의 것은 조건이 따르지만 뒤의 것은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이 시간 눈을 감고 자신을 향해 조용히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감사하는 사람인가? 바울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라고 했는데, 나의 처지를 넘어 진정 감사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진정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면 웬만한 병은 다 사라질 것입니다. 그건 목사인 저의 얘기가 아니라 올해의 가정의상을 받은 홍승권집사의 말입니다.

 

오늘 하늘뜻펴기를 처음 시작할 때 읽어드린 이해인수녀의 시에 휘영청 밝은 달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바로 우리의 넉넉한 마음을 두고 한 말입니다. 오늘 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보면서 우리의 마음이 넉넉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에스더로 인한 부림절 축제가 단순히 하느님께 감사하는 절기로 그친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들끼리 선물을 주고받는 일로 그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나눔의 날로 나아갔듯이 이번 한가위 명절에는 내 주위의 어려움을 당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따뜻한 손을 뻗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

 

직녀에게

 

- 문병란 (1935 ~ 2015) -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선 채로 기다리기엔 은하수가 너무 길다.

단 하나 오작교마저 끊어져 버린

지금은 가슴과 가슴으로 노둣돌을 놓아

면도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선 채로 기다리기엔 세월이 너무 길다.

그대 몇 번이고 감고 푼 실올

밤마다 그리움 수놓아 짠 베 다시 풀어야 했는가.

내가 먹인 암소는 몇 번이고 새끼를 쳤는데,

그대 짠 베는 몇 필이나 쌓였는가?

 

이별이 너무 길다

슬픔이 너무 길다

사방이 막혀버린 죽음의 땅에 서서

그대 손짓하는 여인아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우리들은 은하수를 건너야 한다

오작교가 없어도 노둣돌이 없어도

가슴을 딛고 건너가 다시 만나야 할 우리

칼날 위라도 딛고 건너가 만나야 할 우리

이별은 이별은 끝나야 한다

말라붙은 은하수 눈물로 녹이고

가슴과 가슴을 노둣돌 놓아

슬픔은 슬픔은 끝나야 한다, 연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