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하늘뜻펴기 평화를 이루는 선물”/차민호 전도사]


 먼저 오늘 여러분들과 나눌 성서말씀을 읽고 시작할게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요한복음 1512-14)

여러분 벤포스타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 있어요? 스페인의 오렌세라는 도시 바깥쪽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에요. 아마 들어본 적이 있는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전도사님은 1997, 그러니까 전도사님이 중학교 3학년 때 이 나라를 처음 들어봤어요. 이 나라의 정식 이름은 벤포스타 나시온데 무차초시에요. “벤포스타는 포도농장의 이름이었는데 우리말로 하면 위치가 좋다정도의 뜻이고, “나시온데 무차초시어린이 나라정도의 뜻이에요. 그러니까 이 나라 이름은 좋은 곳에 있는 어린이 나라정도가 되겠네요. 이름 참 재미있지요?

이 나라는 말 그대로 어린이 나라였어요. 한 신부님이 엄마 아빠가 없는 어린이들과 함께 60년 전에 나라를 만들었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 그러기 위해서 또 새로운 사람을 만들자.” 이런 뜻으로 나라를 만들었어요. 처음엔 국민이 몇 명 없었는데, 나중엔 100명 정도의 아이들과 40명 정도의 어른이 살았지요. 이 나라의 모든 건 어린이가 중심이 되어 어른들과 함께 토론하고 선거를 해서 결정했어요. 나라의 장관, 시장, 대통령을 어린이와 청소년이 했지요. 여러분과 같은 어린이들은 아침에 학교를 가서 자기가 원하는 수업을 듣고, 낮에는 원하는 봉사활동이나 일을 했어요. 15살이 되면 큰 모험이라는 걸 선택해서 하는데, 가령 감옥 1, 거지생활 1, 빈민가 봉사 1년 등을 선택해서 해요. 이런 경험을 통해 나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게 되는 거지요. 신기하지요?

이 나라는 주로 서커스로 돈을 벌었어요. 모든 국민이 서커스를 연습했지요. 다른 나라를 돌며 서커스를 해서 돈을 벌었어요. 어린이들은 더 빨리 서커스단원이 되고 싶어서 열심히, 또 신나게 연습을 했고요. 서커스는 위험한 동작이 많아요.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을 완전히 믿어야 하지요. 서커스 연습을 온 국민이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모든 국민이 어른, 어린이 상관없이 서로를 굳게 믿는 친구가 되었어요. 이렇게 벤포스타는 하느님 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였어요. 모두가 친구인 나라 그게 하느님 나라지요. 근데 이 신나는 나라의 지금은 사람도 거의 살지 않은 채 잊히고 버려진 모습이라고 해요. 더 이상 어린이와 친구하지 않으려는 어른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안타깝게도 나라는 망가졌지요. 무언가 잃어버렸거든요.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오늘은 세계 성만찬 주일이라고 해요. 옛날에 여러 갈래의 그리스도교 어른들이 , 이래서는 안 되겠다. 매일 서로 잘났다고 싸우기나 하고. 창피하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든 날이에요. 같은 날에, 같은 음식을, 각자의 교회에서 나누며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라는 걸 생각하고 다짐하는 날이에요. 사람은 누구와 음식을 나누어 먹는지가 그 사람을 설명해요. 함께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는 건 가까운 사이라는 이야기지요. 그럼 오늘은 세계의 많은 그리스도인이 친구가 되어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날이네요.

어린이 여러분들도 성찬, 성만찬을 교회에서 해본 적이 있을 거예요. 성찬을 할 때 목사님들은 알쏭달쏭한 말을 해요.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라고 하고, 떡을 예수님의 살이라고 하지요. 예수님이 사람들과 마지막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하신 말씀이에요. 그 말의 뜻은 예수님이 자기의 살과 피, 그러니까 목숨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말이에요.

조금 전에 읽은 요한복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어요. 또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게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하셨네요. 목숨을 바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에요. 좀 무섭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사람은 사랑을 하면 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고, 자기가 가진 걸 뭐든 다 주고 싶어져요. 한마디로 자기를 전부 다 선물로 주고 싶어지지요. 예수님은 한 발 더 나갔지요. 예수님은 사랑 그 자체였어요.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너무 사랑해서 자기 목숨까지도 줄 수 있었지요.

선물은 친구끼리만 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한 학생에게만 먹을 걸 준다. 그게 선물인가요? 편애라고 하지요. 한 학생만 선생님께 무언가를 준다면? 그것도 선물은 아니에요. 뭔가를 기대하고 주는 거예요. 이런 건 선물이 아니지요. 진짜 선물은 사랑하는 사이, 친구끼리만 할 수 있어요. 친구의 마음은 태양 같은 거예요. 태양은 우리 주변의 모든 생명을 살게 하지만 자기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아요. 예수님도 그랬지요. 자기 목숨을 바쳤지만 아무 것도 사람들에게 받기를 바라지 않았어요. 선물은 그런 거예요.

아까 오늘이 세계 성만찬 주일이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이 날은 예수님이 자신을 선물로 준 걸 기억하는 날이고, 모두가 예수님 안에서 친구가 되어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날이라고 했지요. 이런 날이 있는 건, 아까 처음에 말한 벤포스타란 나라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세상이 잃어버린 걸 찾기 위해서예요. 바로 평화에요. 평화란 건 조화롭게 사는 것, 쉽게 말해 잘 어울려 사는 걸 말해요. 사람과 사람이 사귀고 잘 지내는 게 평화에요. 어른들은 잘 못하는 데 여러분들은 잘 하는 거, 바로 친구처럼 지내는 게 평화지요.

원시부족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요? 이미 전도사님에게 들은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원시인이라고 하면 굉장히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고 매일 부족끼리 싸움이나 하는 줄 알지만 절대 아니지요. 원시부족에겐 우리들이 잃어버린 평화라는 게 있어요. 원시부족은 부족끼리 선물을 해요. 이게 평화를 지키도록 해주거든요.

트로브리안드 군도라는 원시부족들이 사는 섬이 있어요. 그들은 부족끼리 음왈리라는 팔찌나 술라바라고 하는 목걸이를 선물해요. 어떻게 주냐, A라는 부족이 B라는 부족에게 선물을 해요. 그러면 B라는 부족은 A에게 다시 선물을 할 것 같잖아요? 근데 C부족에게 선물을 해요. 그러면 C부족은 D부족에게 주지요. 이런 식으로 선물을 하다가 결국 A부족도 어느 부족에게 다시 선물을 받게 되지요. 부족끼리 혹은 원시인들 각자가 서로 선물을 하는 방법도 재미나요. 선물을 교환할 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법이 없어요. 한참 지나고 선물을 되갚지요. 그리고 받을 때 선물을 갚겠다고 절대 얘기 안 해요. 또 부족끼리 혹은 원시인들끼리 선물을 할 때는 선물을 버리는 것처럼 해요. 가령 한 부족이 한 부족에게 선물을 할 때 아까 말한 팔찌나 목걸이를 선물할 때, 선물하러 가는 길에는 막 춤을 추고 노래하고 그들만의 예배를 드려요. 예배를 드릴 때 쓰는 물건들이거든요. 막 그렇게 가다가 부족과 부족의 경계에 오면 그 팔찌나 목걸이를 다른 부족이 사는 땅에 버려요. 그리고 조용히 돌아가지요. 그럼 상대방 부족이 와서 그 목걸이랑 팔찌를 조용히 주워요. 줍고 나서 갑자기 춤을 추고 노래를 하지요. 이렇게 하는 건 선물을 받는 사람이 선물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그런 거예요. 굉장히 지혜롭지요. 실제로 원시부족들은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는 행동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어요. 그런 게 평화를 망친다고 믿었고요.

그럼 어떻게 평화를 이루고 지킬 수 있을까? 어른들에겐 어려워도 여러분들에겐 어렵지 않아요. 바로 누구 하나 따돌리지 않고 친구들과 잘 어울려 놀고, 그 친구들과 뭐든 함께 나누어 먹는다면 그게 평화를 이루고 지키는 일이에요. 또 그게 예수님과 친구하는 일이지요. 잠시 후 어린이들은 퇴장할 텐데, 모두 멋지게 퇴장하고 평화를 위해 열심히 놀아보도록 해요. , 하늘 뜻 펴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평신도 하늘뜻펴기 부끄럼 없는 삶”/서가을 푸른이]

 

안녕하세요. 저는 향린교회 청소년부 회장 서가을입니다. 2주 전 학교에서 석식을 기다리며 메이즈러너라는 영화를 열중해서 보고 있던 중 고상균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인즉슨 성만찬 주일에 짧은 하늘 뜻 펴기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영화를 열중해서 보고 있는 데 끊어져서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얼마 전에 향린교회 청소년부에서 진행했었던 낮꿈 콘서트홍보를 위해 어른 예배 광고 때 앞에 나갔다가 엄청 떤 이후론 앞으로 다시는 사람들, 특히 교회 어른들 앞에서 어떤 말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기에 저는 하다가 울꺼다’, ‘다음 날이 중간고사다라며 온갖 핑계를 댔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정해진 답만 해라. 답정너일 수밖에 없었던 그날, 그 전화는 받지 말아야 했던 전화였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한 번도 스스로 성서를 주의 깊게 읽어보지 않았던 저는 그 전화 덕분에 매우 여러 번, 그리고 세밀하게 성서를 펼쳐보아야 했고, 진짜 고 목사님이 미치도록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헤드락을 걸더니 아주 여러 가지로 사람을 괴롭히는구나.’하는 마음에 잠시 깽판을 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동안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다시 열심히 하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아무튼 이와 같은 기회를 제안하신 고 목사님은 이후 여러 기회를 통해 좀 갈굴생각입니다. 이제 하늘 뜻 펴기를 시작하기 전에 여러분께 부탁 말씀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제가 혹 이야기를 하다 목소리가 떨리면 그건 절대 우는 것이 아니라 떨려서 그런 것이니 놀라거나 당황해 하지 마시기 마랍니다.

 

오늘 준비한 하늘 뜻 펴기의 제목은 부끄럼 없는 삶입니다. 사실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고민을 하던 중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음악을 듣다가 우연히 거북이의 빙고를 듣게 되었는데 가사 중에 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만이라는 가사를 들었고,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성서 중 1성서 본문의 주인공인 욥이 좀 전에 말씀드렸던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본문 중 11절은 흡사 어린 시절에 읽었던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같은 동화처럼 욥이란 인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스라는 곳에 살았고, 진실 되었으며, 악한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또 욥은 신념 있고, 믿음이 강한 것으로 볼 때 저처럼 성서를 펼치면서 화가 나는 부류와는 거리가 먼 신앙인, 혹은 신실한 크리스천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2장의 욥도 그러할까요? 어느 날 천사 또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인 자리에 사탄이 나타나자 야훼는 어디를 다녀오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사탄은 반항아, 불만 있는 학생처럼 땅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왔다고 약간은 건들거리는 말투로 대답합니다. 그러자 야훼는 사탄에게 욥을 눈여겨보았냐고 물으면서 그만큼 진실하고 신을 두려워하며, 악한 일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은 땅위에 없다고 합니다. 이에 사탄은 하느님께서 그에게 너무 좋게만 대해주니까 그런 것이라고 응수하고, 이에 야훼와 사탄은 욥의 운명을 가지고 매우 위험한 게임을 시작합니다. 일순간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앗아가 버린 것이죠. 그럼에도 자신을 원망치 않는 욥을 보며 야훼은 매우 흡족해 하면서 사탄에게 네가 나를 충동하여 그를 없애려고 했지만 다 헛일 이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약간 오기가 생겼던 것일까요? 사탄은 가죽은 가죽으로만 바꿀 수 있습니다. 욥이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목숨에 이상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람이란 제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 내놓지 못할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 이제 손을 들어 그의 뼈와 살을 쳐 보십시오. 그는 당신께 면전에서 욕을 할 것입니다. 라고 응수합니다. 이 모습은 마치 군사독재정권시절 사람들을 고문하면서 살고 싶으면 불라고 외치던 고문기술자들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무 이름이라도 말해야 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예언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사탄이 그렇게 말을 하자 야훼께서는 좋다! 이제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인다. 그러나 그의 목숨만은 건드리지 마라라며 위험한 게임을 이어갑니다. 이에 독이 바짝 오른 사탄은 야훼 앞을 나와 욥에게 가서 그를 쳤고,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심한 부스럼이 나게 하였습니다. 이야기 속 욥은 이후 과연 어떻게 하였을까요? 신을 저주하고 욕했을까요? 이야기가 묘사하고 있는 욥은 잿더미에 앉아 토기 조각으로 몸을 긁었습니다. 처지를 비관하고 그동안 믿었던 신에게 욕을 퍼부을 법도 하지만 그는 그저 가만히 있습니다. 이 모습이 답답했던 것일까요? 욥의 아내는 그에게 당신은 아직도 요지부동이군요? 차라리 하느님을 욕하고 죽으시오라고 말하지만 욥은 그런 아내에게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았는데 나쁜 것이라고 하여 어찌 거절할 수 있단 말이요라는 말합니다. 이유 없이 왕궁에서 고통을 받고 쫓겨나는 백설공주 이야기의 처음과 같은 욥기의 처음 고난 이야기는 210절의 마지막과 같이 반복해서 욥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이렇게 욥은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입술로 죄를 짓지 않았다.”

 

우리는 때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쉽게 누구를 원망하기도 하는데요. 저 역시 저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악몽을 꾸었을 때에는 한 번만 이런 꿈꾸게 하면 확 종교를 바꿔 버리겠다라고 하느님과 예수님께 협박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겨도 하느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많이 주셨다면서 안 좋은 일이 생겨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드리며, 자신의 상황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에 맞게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었고, 이야기 속 야훼의 말처럼 진실 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짧은 하늘 뜻 펴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살면서 한 번쯤은 유혹이 여러분을 찾아올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른 분들 중에서는 유혹의 순간을 이미 경험하셨던 분들도 있을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때,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생각함을 통해, 여러분의 신념을 지키며 사십시오. 비록 그로인해 어려움이 찾아오거나 다소 힘들어지거나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였을 때, ‘그래도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았구나라고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암에 걸렸음에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수단 난민을 위해 일했던 이태석신부처럼 이 시대의 욥은 바로 여러분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