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티매오

욥기 42:1-6; 시편 34:1-6; 히브 7:23-28; 마르 10:46-52

 

제임스 무스 목사

한국은 처음 방문하였습니다만, 교우 여러분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환대에 감사 드리고, 그리스도교단의 세계선교부와 기장총회의 오랜 우정,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앞길을 계속 이끌어주실 것을 알고 이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국가를 처음 방문할 때 마다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언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문화도 다르지만, 새로운 음식을 먹고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기쁨을 느낍니다. 제가 사는 미국과 모든 것이 다르지만, 하느님의 사람들이라면 모두 제 친구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렇기에 비록 제가 여러분들의 성함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전연 처음 만난 사람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제 친구이자 형제이고 자매이며, 아버지이시고 어머니이시고, 제 아들이자 딸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로 축복받았다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기쁘고 놀라운 일이지요

 

하느님의 사람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지 혼자가 아닙니다. 바다가 우리를 가르고 있어도 우리는 함께입니다. 세례를 통해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셨고,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내신 하느님을 경배합니다. 그렇기에 여러 교회가 아닌 단 하나의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 모두 우리 자신과 세상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르코의 복음서에 바르티매오라는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가 예수님께 치유 받고자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 바르티매오가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외칩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시자 바르티매오는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라고 답합니다. 바르티매오는 다시 앞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서에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신체적인 문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영적인 문제를 의미합니다. 성서에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눈으로 우리 앞에 놓은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성서에서 앞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음의 눈으로 하느님의 존재와 활동을 보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말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 보여주시는 사랑과 정의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눈 뜨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의 시대에도 있었고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충만한 삶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정의를 보지 못할 때 우리는 군사력으로부터 안정을 찾으려 합니다. 최근 미국은 안보를 위해 중동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이 두 전쟁으로 인해 사태가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눈을 감으면 어디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물질적인 것에 의존하지만,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봤자 남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억압 받는 사람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이들을 외면하면 우리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바르티매오처럼 우리도 눈을 떠야 합니다. 눈을 뜨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일들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도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를 할 수 있게 저를 이 자리에 초대해주신 조헌정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향린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그동안 향린교회에 대해 많이 듣고 읽어서 얼마나 특별한 교회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향린교회는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을 명확히 보고자 하는 교회이고, 여러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른 이들이 눈 뜰 수 있게 돕는 분들이십니다.

 

한국에 오기 전 제가 한국 역사에 대해 조금 읽어봤는데, 위대한 문명이 한국에서 꽃피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은 한국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을 다닐 때 마다 자국의 문화유산을 뒤로 하고 북미나 유럽의 예배 형식을 그대로 딴 교회를 보고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그 누구도 자국의 전통 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장점과 아름다움으로부터 눈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미국이나 유럽 출신이 아닌 아시아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향린교회가 국악 찬송 등을 통해 한국 전통을 예배에 접목시킨 것은 정말 축하할 만한 일입니다. 여러분들은 한국 문화 속에서 하느님의 은혜, 하느님의 선물을 발견하신 것입니다. 향린교회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자국의 전통문화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에 눈 뜰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또한 기장총회와 향린교회 교인 여러분들이 평화와 정의의 문제에 눈 감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속한 세계선교부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력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들에게 존엄성과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믿으며, 전쟁은 국가 간 불화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통해 우리가 서로 협력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제주 강정마을의 평화를 위해서도 함께 협력하고 있습니다. 이후 제주도를 방문할 예정이기도 합니다만, 이토록 아름다운 섬 제주도가 지금 군비 경쟁으로 인해 상처입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인들은 수 백 년 간 여러 참혹한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아왔습니다. 저희는 앞으로도 온 세상 사람들이 평화를 향한 하느님의 기대에 눈 뜰 수 있도록 여러분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현재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세계선교본부는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그리스도 교단(UCC)과 제자 교단(Disciples of Christ)의 협력 선교부입니다. 몇 개월 전 두 교단이 세계 최초로 통일에 대한 결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당시 조헌정 목사님과 기장총회의 에큐메니컬 선교부장 천민희 목사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두 목사님께서 보여주신 리더십에 감사 드립니다. 세계선교본부는 앞으로도 여러분들과 통일을 위해 연대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집안도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북 분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여러분들과 함께 세계가 정의와 화해의 통일의 필요성에 눈 뜰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 바르티매오를 만났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단 그는 거지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아무도 구걸하는 거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거지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게다가 바르티매오는 그냥 거지가 아닌 앞을 보지 못하는 거지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지은 죄가 많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바르티매오가 끔찍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벌 받는 것 혹은 바르티매오가 아니면 그의 부모나 가족이 죄가 많아서 벌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눈에 바르티매오는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위험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고 예수님께 다가가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까이 부르시고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눈을 뜨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를 치유하여 그가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르티매오를 분노와 혐오의 눈으로 바라봤습니다. 바르티매오는 피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를 보고 무언가 다른 점을 발견하셨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르티매오를 존중의 눈으로 바라보고 치유해 주셨습니다. 우리도 사회에서 버려진 사람들을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고 존엄성과 존중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들에게도 정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야 합니다.

 

기장총회와 향린교회의 민중신학도 바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고통을 자초한 악한 자들로 보거나, 사회에서 존중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려움과 증오의 눈으로 보지 않고, 억압 받는 자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봅니다. 고통 받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도 사랑 받고 존중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 사람들과 함께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기장총회와 세계선교본부도 정의를 위해 함께 싸우겠습니다.

 

미국에서 현재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합니다. 수년간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경찰에 의해 총격을 입거나 총살당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소수 인종의 삶은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당하게 죽음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멕시코와 남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도 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빈곤과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고 있고, 다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살도록 강제 송환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이 찢어지고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 산산조각 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지도자들은 시리아 난민의 미국 입국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시리아 난민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가 아닌 테러범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눈을 뜨고 하느님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난민들을 봐야 합니다. 성서에서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억압 받고 고통 받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특별히 돌보시고 걱정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바르티매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원하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르티매오는 다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예수님께서는 눈을 뜰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여기서 시력의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바르티매오가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주셨다는 점입니다. 성서에 바르티매오가 눈을 뜬 즉시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나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함께 따릅시다. 하느님 안에서 하나 되어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갑시다. 전 세계 곳곳의 신앙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고 기도합시다. 우리가, 세계가 눈을 뜨고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모두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바르티매오처럼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