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인가? 희생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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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늘뜻펴기 제목 <제국의 위안부>란 말은 세종대 일본문학과 박유하교수가 2년 전에 펴낸 책 제목입니다. 제목부터 도발적이지만, 정신대 할머니들이 허위 사실로 이 책을 고발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34곳을 삭제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박유하교수는 이를 인정할 수 없다며 삭제 판결을 거부하였습니다다. 그런데 지난 달 검찰이 박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를 하자 책에 대한 찬반 논쟁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고 박교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검찰의 기소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하는 비판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박교수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책 내용을 갖고 공개토론회를 갖자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민족주의에 기초한 반일감정으로 인해 다루기 힘든 위안부 문제를 잘 다루었다는 긍정과 명예 훼손에 준하는 지나친 서술이 있다는 비판이 함께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다소 있지만,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아 올해 마이니치신문사가 주는 특별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행방불명]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입장에서만 보면 박교수의 삭제 거부는 타당성이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에도 이와 관련한 법원의 판결이 있었습니다. 2년 전 416일 의문의 세월호 침몰 참사가 일어났을 때, 박근혜씨가 아침 10시에 사라졌다가 오후 515분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타났는데, 그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학생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들을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힘이 듭니까?’ 이는 7시간동안 엉뚱한 곳에 있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이에 일본 산케이신문의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는 <조선일보> 기자의 칼럼을 인용하여 <박근혜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이라는 제목으로 당일 전 보좌관 정윤희씨와 함께 L호텔에 있었다는 기사를 썼는데, 이에 국무회의 석상에서 박근혜씨가 발끈하였고 이어 보수단체의 고발이 들어오자마자 검찰이 기소를 한 것입니다.

 

검찰의 기소는 애당초부터 무리한 기소였습니다. 명예훼손죄는 피해자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이기에 박근혜씨가 공적으로 고소를 하지 않았기에 기소가 될 수 없는데, 결국 이는 검찰이 알아서 기는 권력의 개 노릇을 한 셈입니다. 이에 외신기자단들은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 권리를 심히 침해하는 일이라고 우려를 표명하여 왔고 이번 판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려 왔습니다. 오죽하면 산케이신문이 호외를 발간하여 이를 알렸을까요?

 

또 하나 저에게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가토 지국장의 기사는 추측성 발언이 아니라, 조선일보의 칼럼을 기초로 해서 쓴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를 고발해야 하는데, 잘못 건들었다가는 정윤희씨랑 호텔에 들어가는 사진이라도 공개되는 날에는 문제가 더욱 확대될 수 있기에 조선일보에는 시비를 걸지 못하고 엉뚱한 외국신문사를 걸고 넘어간 것입니다. 결국 금요일에 있었던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만, 미국 정부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기사도 엿보여 판결에 환영을 하면서도 남한의 정치권력의 옥상 옥 구조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프라이버시]

 

무슨 내용을 담았는지 판결문을 읽는데,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는데, 통역을 감안하더라도 1시간 반이나 걸리는 긴 내용이었는데, 결론은 간단합니다. ‘기사 내용은 명예훼손에 해당하나 대통령에 대한 비방목적은 없었다.’는 아주 애매모호한 판결이었습니다. 사실 가토지국장이 7시간동안 정윤희씨와 L호텔에 있었다는 내용을 기사화한 것은 박근혜씨의 비방이 목적입니다. 304명의 자국 국민이 죽어가는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한두 시간도 아닌 7시간이나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대통령으로서의 자격 없음을 공격하기 위함이었고, 이런 일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났다면 이미 탄핵을 당했을 일입니다. 남한 국민은 마음씨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어리석어서 그런지 그런 일이 생기지도 않았고, 지금도 그럴 기미가 전연 없습니다. 물론 그 이전 대선에서도 국가정보기관들이 총체적으로 관여를 했음이 폭로가 되었고, 일부 선거구에서는 개표가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개표 결과가 발표되는 등 컴퓨터 부정이 있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음에도 외국과는 달리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판부의 판단에 따르면 기사 내용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으니, 이 말은 기사 내용이 틀렸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재판부는 박근혜씨의 사라진 7시간에 대해서 왜 이것이 허위인지 설명을 해야 하는데, 청와대 안에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는 한 청와대 관리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당시 비서실장 김기춘씨가 국회에서 답변을 하였을 때, 본인은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고 답변을 했고, 이는 프라이버시에 해당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았다는 주장은 허위입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여기에 손을 들어주었는데, 이것이야 말로 재판이 아니라 개판입니다.

 

물론 대통령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당일은 휴가도 아니었고, 밤 시간도 아닌 대낮 근무시간이었고 이 나라의 최고 공직자이기에 당일 어디서 무엇을 했느냐고 하는 질문은 결코 프라이버시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지난 주 3일 동안 바로 옆 건물 YWCA 강당에서 세월호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304명이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었고, 그럼에도 당일 오전 서너시간 모든 공영 TV 방송은 전원구조라는 허위 제목을 달고 있었고 구조되는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배가 바다 위에 떠있는 정지된 사진 한 장만 계속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런 방송의 예가 어디에 한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해양사고가 일어나면 방송국은 저마다 경쟁적으로 헬기를 띄워 현장중계를 하게 마련인데, 헬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못 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권력의 핵심으로부터의 방해가 없이는 전연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게임]

 

지금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세월호 주인으로 알려진 유병언씨가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패한 주검으로 발견이 되었다고 정부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정원이 실제 주인이라는 여러 증거와 당일 침몰 현장에 나타난 해양대원들은 승무원만 구조를 하고 승객들은 의도적으로 구조를 방조할 뿐만 아니라 아예 구조를 방해하는 일까지 하였다는 증거 영상과 증언들이 SNS 상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측과 소문이 난무한 가운데 참사 600일이 지나 겨우 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청문회가 열리는 3일 동안 정부 보조금을 받는 고엽제회원들과 어버이연합 회원들이 건물 앞에서 고성능 스피카를 통해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제가 업무를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알기 위해 가보았습니다. 저들이 든 피켓은 여럿이었는데 내용은 하나였습니다.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문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때문에 여당 측 조사위원들은 참가도 하지 않았습니다.

 

난 박근혜씨가 지금이라도 7시간 어디서 무엇을 하였는지 속 시원히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이것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불필요한 충돌이나 분열이 심각합니다. 환갑을 훨씬 지난 독신 여성과 유부남이 7시간을 호텔방에 머물렀다고 해서 다 불순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지요. 음악 감상도 할 수 있고, 국정관련 학술토론도 할 수 있고, 그런데 자꾸 감추고 조선일보 기자는 고소를 못하고 엉뚱한 일본 언론인만 고소를 하니까 목사인 저마저도 자꾸 불순한 상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발언하다가는 국가원수모독죄로 고발을 당할 수가 있어 더 이상 언급은 피하겠습니다만,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외국 언론의 조롱감으로 전락하게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옛 교우이기도 하셨던 안무가 정영두교수께서 국립국악원 공연 검열에 맞서 최근 1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이윤택 박근형 연출가가 박정희 박근혜 부녀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정부 창작 지원 사업에서 탈락한바 있고, 세월호를 연상시키다는 이유로 연극 <이 아이> 공연이 방해를 받았기에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한 것입니다. 지금 예술계에는 7,80년대 군사정권이래 가장 치밀하고 광범위한 검열의 풍파가 불어 닥치고 있다고 합니다. 정영두교수가 말한 대로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독립적인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똥술입니다.

 

[언론 자유의 한계]

 

이렇듯 언론 표현의 자유는 한 사회의 공기와 같은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만, 위안부 할머니들을 일본 제국의 동조자로 표현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인지 아니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박유하교수께서 자신의 어머니나 혹은 언니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책의 한 구절입니다. “병사는 분명 위안부와의 관계에서 가해자임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내일이면 죽을지 모르는 운명 앞에서 그들이 하룻밤 따뜻한 '위안'을 원했다고 한다면 누가 그들을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이는 분명히 군인을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병사에게는 한번일지 모르지만, 당하는 여성은 하루에만도 스무 번이 넘는 고통 아니 죽음 그 자체였습니다. 본인이 여성이면서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데 대해, 저는 남성이지만, 불쾌감을 감추기가 어렵습니다.

 

더 나아가 박교수는 가부장제와 빈곤에 시달리던 여성들을 속여 위안부로 끌고 간 것은 일제의 협력자 조선인들이 행한 범죄이지 일본 정부에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선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이미 이름조차 일본식으로 개명을 한 사람들을 조선인 일본인으로 구분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이며 정신대원 모집이 민간의 자발적인 일이 아니라 일제의 강압적인 요구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 일본 정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결론입니다. 더 나아가 박교수는 일본 군인과 위안부의 애틋한 사랑과 일상을 강조하면서,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군대에 애국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부 그럴 수는 있지만, 매일매일 폭력과 강간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애국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이거 너무 무리한 해석이 아닌가요?

 

[정체성의 왜곡(歪曲)]

 

박교수는 그의 또 다른 책 <반일 민족주의를 넘어서>에서 내가 아는 일본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타국을 식민지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 문제시 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야욕이 아니라 우리의 보이는 왜곡이다.”라고 말하면서 일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남한의 시민단체에 의해 반일민족감정이 확대되면서 위안부 문제 등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한겨레 121731)

 

저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경계하는 사람입니다만, 여기서 저는 도대체 박교수가 한국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습니다. 박교수가 자신이 이해하는 일본이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일본은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타국을 식민지 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는 확신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가요? 내가 만난 사람들에 근거해서 어느 나라가 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인가요? 어리석음인가요? 저는 미국에서 20년을 넘게 살면서 좋은 사람을 수없이 많이 만났어도 제가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타국을 식민지할 만큼 어리석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미국의 실체라고 하는게 제가 만난 사람 몇 명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번 박교수의 약력을 보았습니다. 고등학교만 남한에서 졸업하고 대학 대학원 과정을 일본에서 보냈더군요. 제가 미국에 살면서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온 한인 1.5세들을 만나보면 한미 양쪽의 문화를 긍정적으로 균형 있게 갖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대체로 미국일변도의 정체성을 갖고 있거나 아니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모호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경우를 자주 보았는데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유학생들의 경우 학교에만 머물러 있어 그 사회나 사람들의 어두운 면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교수의 친일 발언은 자기 정체성의 왜곡에서 출발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동정녀 탄생과 성령 잉태]

 

오늘 제가 박유하교수의 얘기를 꺼낸 것은 정신대 문제를 다루고자 함이 아니라, 실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임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는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그대로 처녀가 성령의 도움으로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동정녀탄생을 교리로 확립하고 이를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으며 가톨릭에서 여기에 문제 제기를 했다가는 당장 파문을 당할 수 있는 확고부동한 교리이자 절대의 진리입니다. 물론 저도 여기서 잘못 말하면 조목사는 동정녀탄생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먼저 학문적으로 접근을 한 이후에 여기에 바탕을 해서 신앙고백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마태복음 123절은 이사야 714절의 예언을 인용한 말인데, 이사야서의 히브리어로는 처녀가 아닌 젊은 여인인데, 이것이 헬라어성경에 처녀로 번역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미 신학적 해석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우선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모든 자식들은 하느님의 뜻에 의해 탄생한 성령의 자식들입니다. 예수만 성령에 의해서 잉태된 사람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429절을 보면 바울은 아브라함의 아들 여종 하갈에게서 태어난 이스마엘과 아내 사라에게서 태어난 이삭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때 육정으로 난 자식이 성령으로 난 자식을 박해하였는데 지금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을 성령으로 난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로 나야 된다는 나의 말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듣고도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성령으로 난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마찬가지다.” 여기서 예수가 말하는 성령으로 난 사람은 불특정 다수입니다.

 

오늘 마리아와 함께 등장하는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임신 또한 분명히 그의 아버지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서 천사로부터 들었던 성령에 의한 잉태였습니다. 사가랴가 우리는 둘 다 나이가 많아 이미 생식능력이 다 사라졌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믿지를 않아 오히려 벙어리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 잉태는 단지 아기 예수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한 목적을 위해 태어난 모든 생명은 성령에 의한 탄생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성령에 의해 태어났다는 구절에 근거해서 동정녀 탄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타당성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적 교리의 틀에서 잠시 벗어나서 생각을 더 해보면, 루가복음에서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할 때에 어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라고 반문하지만 끝에 가서 주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 답하여 처녀가 아기를 낳는다는 것을 하나의 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는 약혼자 요셉은 전연 등장하지 않습니다. 반면 마태오복음에서는 마리아 얘기는 없고 요셉의 얘기만 나옵니다. 처음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런 문란한 여성과는 결혼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깊이 고민한 끝에 조용히 파혼할 것을 생각합니다. 사실 이는 마리아를 진정 사랑하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마리아의 아기는 내 아기가 아닙니다라고 발언을 하였다면 동네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당시의 법이자 관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동에서는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예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 하여 가족이 나서서 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천사가 나타나 요셉을 설득합니다. ‘성령에 의한 일이니 마리아 태중에 있는 아기를 받아들여라.’

 

여기서 우리가 동정녀 탄생 교리를 따라 하느님은 못하는 일이 없으시니 이건 하느님의 기적 사건으로 받아들여 나에게도 이런 비슷한 기적 사건이 일어나기를 믿고 나아가는 신앙인으로 머물거나 아니면 한발자국 더 나아가 도대체 나는 이성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난 못 믿겠다 하고 접어두거나 아니면 또 다른 합리적 해명은 없는 것인가 하고 질문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여기서 멈출까요? 더 나가 볼까요?

 

[‘비천한 신세?]

 

하바드신학대학의 여성신학자 피오렌자교수는 오늘 본문의 마리아가 부르는 찬가에서 마리아의 임신 이유를 찾아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여기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라는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불임을 말하는 것인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아기를 낳지 못함을 한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녀가 갖고 있는 비천한 신세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희랍어 타페이노스는 지위가 낮다. 가난하다. 상태가 비참하다. 겸손함 등등을 뜻하는데, 정확한 뜻은 문맥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기도에서 이렇게 마리아는 말합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습니다.” 여기서 마음이 교만한 자들 권세 있는 자들을 누구를 말하는 것이고 보잘것없는 이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당시 유대백성들이 로마의 혹독한 식민지 지배 하에서 살아갔음을 생각할 때, 교만한 자들과 권세 있는 자들은 로마인들이고, 보잘것없는 이들이란 이들에게 눌려있는 유대백성을 두고 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배 피지배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한 피오렌자교수는 여기서 마리아가 처한 비천한 신세란 곧 다름 아닌 성폭력에 의한 임신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때, 우리는 왜 요셉이 자기 자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였는가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약혼녀 마리아가 혼외정사를 가진 것이 아니라, 로마 군인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강간을 당해 아기를 배었고, 이는 피식민지 여인들에게 있어서는 다반사로 일어난 일이었기에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보는 것은 매우 타당한 일입니다. 특히 갈릴리는 로마 권력에 저항하는 게릴라 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따라서 갈릴리는 로마군인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당해왔고 그리고 그곳의 여성들은 성폭력의 희생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 보듯이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는 죽이지만, 여인들에게는 저들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단일민족의 허상]

 

우리말에 화냥년이란 욕이 있습니다. 이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끌려갔던 30만 명의 여인들 중 어찌어찌하여 고생 끝에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고향에 돌아온 여성이라 하여 환향(還鄕)년이라 불렀던 것인데, 욕으로 변질이 되었고 이 여인에게서 태어난 자식을 호로자식이라 부르는데, 이 또한 오랑캐의 자식이라는 말인데, 지금은 버릇없는 망나니같은 남자들을 가리키는 욕이 되었습니다. 약소민족의 한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이건 하나의 예입니다. 지난 5천년 역사 속에서 외부로부터 당한 크고 작은 침략을 다 더하면 5천 번도 넘는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도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마디로 말해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외세 침략과 이에 맞서는 도전과 반응의 역사 발전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흔히 우리 민족을 단군의 자손이요 단일민족이라고 말합니다만, 문화와 언어로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가능하지만, 조선인들이 순수한 혈통과 피를 유지해왔다는 말은 아닙니다.

 

미국 대학에서 역사학교수로 있는 제 둘째 여동생이 우연한 기회에 DNA 검사를 했다고 하면서 그 인종별 결과를 보내왔는데, 매우 흥미롭더군요. 41.2% Korean 10.6% Japanese 2.1% Chinese 1.7% Mogolian 38.6% nonspecific East Asian. 0.5% native American 0.1% European 0.1% Ashkenazi Ashkenazi는 천년 경 유고나 폴란드 등 중앙 유럽에서 살아가던 유대인 혈통입니다. 조선여성의 피에 중국일본몽고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민족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피가 마구 섞여 있고 심지어는 극히 작지만 아메리카 원주민과 유대인의 피까지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고서 결론에 이런 말까지 있습니다. "Along your mother's line, you have ancestry in eastern asia in the past few hundred years, that traces back to eastern Africa around 50.000 years ago. 모계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수백 년 전의 동아시아의 혈통과 연계되어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오만 년 전 동아프리카의 혈통과 연계되어 있다.

 

저희 어머님이 우리나라 성씨 중 가장 많다는 김해 김씨입니다. 김해 김씨 시조는 김수로왕인데 삼국유사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阿踰陁國)의 공주가 건너와 황후 허황옥이 되어 아들 열을 낳았다고 말합니다. 저는 우리 여동생의 DNA 결과를 보면서 삼국유사의 얘기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여간 혈통을 하나로 보는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허구이고 모든 민족의 피가 조금씩은 다 뒤섞여 있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분명한 것은 성폭력에 의한 여인들의 임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김낙중선생께서는 그래서 민족이라는 단어 대신에 같은 운명체라는 의미에서 겨레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엊그제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김무성씨가 연탄 나르기 사회봉사를 하다 함께 일하던 아프리카 유학생을 보고 네 얼굴이 연탄색깔과 같네라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보고 한심하다 못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가졌습니다. 자기 얼굴은 얼마나 하얀가요? 그 사람도 한번 DNA 테스트를 하여 자기 조상 중에 아프리카 사람도 끼어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합니다.

 

[귀신 걸린 여인들]

 

복음서의 귀신들린 여인들 곧 막달라 마리아나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은 왜 귀신이 들렸을까요? 이 또한 성폭력 희생을 말합니다. 물론 이는 여성들만의 아픔은 아닙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무덤에 머무는 귀신들린 사람 얘기가 나옵니다. 그의 귀신 이름은 레기온이라는 로마의 군단 곧 우리말로 하면 사단부대귀신이었고 이 귀신들이 이천마리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 모두 수장을 당하고 그는 고침을 받게 되는데, 이 또한 로마제국의 군사적 폭력을 예수께서 물리치시고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오신 자라고 하는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제 아기 예수가 탄생하는 성탄절이 5일 남았습니다. 저는 이 기간이 진정한 기쁨과 환희의 날이 되려면 알이 껍질을 깨고 나오듯이 이 땅의 고통당하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곳곳에서 당하는 성폭력에 대한 자기 성찰 더 나아가 우리 땅에 대한 겨레적 성찰이 필요한 시대라고 봅니다. 미군주둔비용으로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이들은 이 땅에서 끊임없이 폭격 연습을 하고 있고 신형전투기나 소용가치도 없는 고가의 미사일방어체제를 구입하도록 강요받고 더욱이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가운데 핵보다 더 무서운 생화학무기 탄저균 실험이 이루어지는 군사식민지 현실은 우리 모두의 생명을 탄생한 어머니 자궁인 한반도가 외세의 폭력으로 강간당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이를 낳았다거나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경수가 끊긴 후 나이 많아 아이를 출산했다는 얘기는 모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기적을 통한 역사 개입을 말하고 있지만, 이 배후에는 약한 자들의 고통과 희생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더러운 씨앗들이 오히려 하느님 나라에서는 참된 자녀로 곧 역사의 주체자로 되살아난다는 것 이것이 마리아가 부르는 성탄절의 노래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교리적 관점이 아닌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마리아가 동정녀로 그리고 아기 예수는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신앙고백은 반드시 필요한 고백인 것입니다.

 

[미친년 프로젝트]

 

사진예술계의 원로로 트렁크갤러리의 관장으로 끊임없이 활동하고 계시는 박영숙권사님께서 어제 8주간의 사진인문학강좌를 마치셨는데, 어제 권사님 자신의 사진과 그 역사를 들려주셨을 때는 참으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나라 사진작가라고 말하는 모든 분들에게 박영숙선생 하면 떠오르는 단어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백이면 백 다 미친년 프로젝트라는 말을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외국에서 더 인기를 얻었고 내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세계 컬렉터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분이 야심차게 운영하고 계시는 천안의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인전 초대를 받았다고 합니다. 미친년 프로젝트에 대한 간략한 설명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왔다. 현모양처라는 너울을 씌워놓고 여성들의 자아의식을 박탈했던 봉건사회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버리고, 어머니 또한 대가 집 안주인 역할로만 살기를 요구해 왔다. 제도문화가 그러했으니 여성자존이 묵살 당했던 것은 당연했다. 자신을 자기라고 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그래서 이따금 가슴이 터지고 찢어지는 경험이 여성들을 미치게 하곤 했다.... 가문, 남편, 그리고 자식(아들)을 위하는 일만이 그녀들의 본분이라 믿어왔던 것이다. 여성에게는 자기 또는 자아를 지켜낼 그 어떤 조건도 주어지지 않았고 모든 지적 교육도 박탈당했었다. 단지 여성을 생물학적 암컷으로만 인식,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만이 여성의 본성으로 생각하도록 길들여졌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구조에 도구화돼 있었던 것이다.”

 

저는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 그 배후에는 예수가 당시 가문에 의해 혹은 마을 집단에 의해 내팽겨 쳐진 성폭력의 희생자들인 화냥년들을 품에 안고 저들을 하느님 나라의 주체자로 세워나간 그 역사 전복성에 대한 회고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라는 신학적 상상력을 가져봅니다. 마구간 탄생,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경배, 베들레헴의 유아 학살, 애굽으로의 피신 등등 아기예수 탄생에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이런 역사 전복(顚覆)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