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 목자가 보내는 오늘의 성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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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모님은 힘없고 가난한 떠돌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는 갈릴리 지방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배자 장군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황제라는 뜻을 지닌 가이사라는 명칭 대신에 신의 아들이라는 뜻을 지닌 아우구스투스로 명칭이 바뀌더니 원적지에 가서 등록을 하라는 명이 내렸다. 인구조사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세금을 걷어내기 위한 통치 전략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백성들이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오래 전 다윗 왕이 인구조사를 하겠다고 했을 때, 야훼 하느님이 엄청 화를 내지 않으셨지 않으셨던가?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마리아가 임신 중이었지만, 할 수 없이 호적을 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걸어 고향 베들레헴에 도착하였다. 공교롭게도 밤늦게 도착하는 그 시간에 출산의 진통이 왔고, 여관에는 빈방이 없어 할 수 없이 가축들의 우리에서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었고, 아기는 짐승들의 밥통에 뉘일 수밖에 없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다는 메시야 탄생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곧 예수는 지배 권력의 횡포로 인한 민중들의 애한과 더불어 태어났음을 말하고 있으며 이는 그의 삶의 끝이 평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저자 루가는 구세주 아기 예수를 처음 영접한 사람들은 베들레헴 촌락 밖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어야 함을 선포한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동물을 집단으로 키우면 냄새가 많이 나기에 마을 안에서는 키우지 못한다. 곧 목자는 마을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경계 밖의 사람들, 볼품없는 사람들, 아무도 그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더욱이 밤에 일을 하여야 했다면 삯을 받고 일하는 고용인이다.

 

현재 24시간 편의점 저녁 알바 직장보다 더 못한 직업은 없다. 목자란 곧 오늘의 알바생이며 삶의 뿌리 뽑힌 흙수저의 사람들로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오래전 기억에서 사라진 군상들을 대표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천사로부터 얘기를 듣고 이 땅의 구세주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리게 될 아기 예수를 처음 목격하고 경배한 사람들은 바로 저들이었다. 이 얘기는 오늘 우리가 어떻게 성탄절을 보내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다.

 

기독교사상 12월호는 오늘의 베들레헴에서 살아가고 있는 세 명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한국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세 편의 편지 글을 실고 있다. 그중 한 분의 글을 읽어드리는 것으로 성탄절의 메시지를 대신하고자 한다.

 

[내 이름은 디알라 아부줄로프이다. 18세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이다. 나는 바잇 사홀울에서 태어났다. 베들레헴 옆 동네로 목자의 도시라고 불린다. 나는 이곳에 살면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고 유럽에도 가본 적이 있다. 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나의 생활방식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람들은 묻는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다닐 수 있는 삶, 내 집으로 갈 때 거대한 장벽과 검문소를 거치지 않고 허가증없이도 다닐 수 있는 삶을 상상하고 또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출생이라는 팻말을 달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물을 공급받지 못할 때에 그들도 물을 공급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하고 나서 나는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괴물 같은 이스라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체포를 당했다. 팔레스타인 국기를 집 높이보다 더 높게 달았다는 것이 체포의 이유였단다. 그때 아버지는 불과 17세였고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이었다. 결국 아버지는 졸업도 하지 못한 채 3년간의 감옥살이를 해야만 했고, 고문과 구타로 인해 건강을 상해 지금도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기독교인이던 아버지는 당시 너무 힘들어 하느님께 구해달라는 기도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하찮은 동물로 취급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이천년 전의 일이다. 지금 팔레스타인들은 로마로부터 예수가 겪었던 고통을 이스라엘로부터 또 다시 겪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세계는 우리들의 고통에 관심조차 기우리지 않고 심지어는 우리를 테러리스트라 부른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매년 총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있으나 유대인들에 의해 장악된 세계 언론은 침묵뿐이다.

이곳 팔레스타인은 자유의 땅이며 예수와 성인들의 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자유를 위해 희생당하신 것을 믿고 있다. 예수의 사랑이 그치지 않는 한 나는 끝까지 이곳의 평화를 지킬 것이다. 예수께서 죽을 때까지 평화를 위해 투쟁한 것처럼 나 또한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이다. 내 목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예수를 향한 나의 믿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지만, 나는 사랑 믿음 평화를 향한 열망을 갖고 자유의 태양을 볼 수 있는 그날까지 투쟁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들고 있는 올리브 나뭇가지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본다. 나는 전쟁에서 이기려고 싸우지 않는다. 내 손안에 있는 평화의 상징인 올리브 나뭇가지를 들고 싸운다. 올리브 나뭇가지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부이며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의 전부이다. 유명한 팔레스타인 시인 라피프 지아다의 싯구와 함께 이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읽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 팔레스타인들은 세상에 생명을 전하기 위해 매일 잠에서 깨어난다.]

 

이천년 전 한 밤중 베들레헴 성 밖에 있던 목자들에게 들려졌던 천사들의 노래가 이제 성가대에 의해 울려 퍼질 것입니다.

 

이 노래가 지금 옥중에 있는 수많은 양심수들 특히 국가보안법으로 부당하게 억류되어 있는 김성윤목사님과 이병진교수님에게 그리고 이제 법적 투쟁을 벌이게 될 이 자리에 함께 하신 김상일교수님에게,

 

얼마 전 조계사에서 끌려간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을 비롯한 투쟁 중인 모든 노동자들 특히 시청 건너편 광고탑 칼바람이 부는 철판 위에서 자일을 목에 걸고 200일 넘게 투쟁 중인 최정명 한규협노동자에게

 

경찰의 물대포로 인해 40일째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는 백남기 농민 어르신에게

 

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진실규명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304명의 유가족들에게

 

70년간의 경제봉쇄와 전쟁위협 속에서도 당차게 살아가고 있는 북녘 땅 동포들에게,

 

하루하루 미사일과 포탄의 연기 속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가는 이웃들을 바라보며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시리아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와 팔레스타인들에게 그리고 서유럽의 도시 경계 밖 어느 난민촌 아니면 동유럽의 어느 도시 뒷골목 경찰들의 눈을 피해가며 방황하고 있을 피난민들에게... 작은 희망으로... 팔랑거리나 그러나 결코 꺼지지 않는 초의 심지로 들려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