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세상 - 새 인간

43:1-7; 29; 8:14-17; 3:15-17; 21-22

 

[수소폭탄과 진실]

 

말은 새해라고 하지만, 이주 전에 터져 나온 종군위안부한일졸속협약으로 인한 충격과 혼란에 이어 지난주에는 북조선의 전격적인 수소폭탄 실험이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남한은 대북 확성기방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동안 훈련받은 전쟁위기공포 면역력으로 인해 우리의 일상생활은 조금도 변함이 없고, 언론은 무슨 천지가 뒤집어 뒤기라도 하듯이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이것도 잠시 조금 지나면 흐지부지 과거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어차피 죽을 것 너 죽고 나 죽자는 막가파식의 미치광이가 아니고서는 결코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굳이 핵이 아니라 하더라도 230킬로라는 좁은 거리 안에 100만이 넘는 군인과 각종 현대식 무기가 서로 대치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이기 때문입니다.

 

4차 핵실험 이후 또 다시 제재를 말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60년 이상 진행된 대북제재는 효과를 발휘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외부로부터의 압박으로 인해 북의 정권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이점에서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북에서 듣기에는 거북한 이름이지만, 매우 타당한 외교정책이었습니다. 북이 수소폭탄 개발을 했다고 해서 북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북은 지금까지 미국을 향해 정전협정을 폐지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요구를 계속하여 왔고,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 핵무기를 더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해왔고, 이미 수소탄 개발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언급을 한바 있습니다. 다만 여기에 미국이나 남한 정부가 북에서 하는 얘기를 허풍으로 간주해온 잘못이 있는 거지요. 왜 자기가 말하면 진실이고 남이 말하면 거짓이나 허풍으로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남한 당국은 그게 수소핵폭탄이 아닌 증폭핵폭탄일 것이라고 그 성과를 낮춰 말하고 있지만, 그게 수소탄이든 중폭핵탄이든 아니면 재래식 핵폭탄이든 한두 방만 서울에 떨어지면 서울 시민 대부분이 사망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권력을 잡은 자들은 본질을 흐리는 말장난을 계속하고 있고 어리석은 백성들은 거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핵탄두를 장착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느냐는 질문들을 많이 하는데, 이미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북조선이 장거리 미사일이 없겠습니까? 미국이나 남한 군사전문가들은 사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자존심 때문에 북조선의 과학기술력을 낮추어 말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북조선이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을 때 남한 정부는 거짓이라고 말했습니다. 2년 전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의료 관계로 북을 자주 드나드는 한 외국인의 말에 의하면 자신의 핸드폰에 북에서 파는 심카드를 갈아 끼우면 남한을 제외하곤 세계 어느 나라와도 통화가 가능하고 심지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촌 구석에서도 핸드폰이 다 터진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지상의 기지국을 사용하지 않고 인공위성을 이용한 자체 통신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3번째 산유국인 적도기니는 세계의 모든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년 북조선과 30억 달러의 자국 통신망 설립을 위한 계약을 맺었습니다.

 

[민주와 경제의 정비례 법칙]

 

지금 이명박정권 이래 박근혜정권이 정말 실수하는 것 하나 있는데, 그건 경제를 최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맞지만, 북과의 군사적 긴장을 계속 유지하는 한, 현재와 같은 외자 의존도가 높은 남한에서의 경제는 언제나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자주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대북확성기 방송이 시작되었고, 북이 만약 이미 예고한대로 이를 조준 사격한다면 남 또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국지전이 일어날 수가 있을 것이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한국의 주식은 폭락을 할 것이고 무역은 거의 중단 상태에 이를 것입니다. 메르스 사태 한번에도 남한 경제는 휘청하는 외세 의존경제입니다.

 

만약 남북 사이에 국지전이라도 일어나면 남한 경제는 일어서기 힘든 경제핵폭탄을 맞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경제를 살리려면 먼저 북과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오죽하면 보수단체인 전경련에서 남북경제협력을 강조하고 나서겠습니까? 대북강경대책은 군인들의 자리 유지와 정치권력 유지에는 다소 도움이 되겠지만, 경제개발을 한방에 먼지로 날려 보내는 것이 전쟁입니다. 그러기에 평화정착이 경제개발보다 앞서야 합니다만, 무기 장사꾼 미국이 배후에서 계속 장난을 치고 있어 군사주권은커녕 외교주권도 없는 이 나라의 운명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속셈]

 

한겨레 한승동기자는 최근 출간한 <일한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이라는 1965년의 일본어판 한일비밀협정 보고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책 서평에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당시 베트남 전에 본격 개입했던 미국에게 있어 후방 기지에 해당하는 한일 양 국가의 협력은 긴급했고 동시에 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에겐 미국의 지지가 긴요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조건하에 한일협정이 이루어졌고 당시 3억 달라라는 일본이 지불하는 금액도 미국이 제시한 금액이었고, 이 금액의 명칭도 우리는 배상금 혹은 식민지배에 대한 청구자금이라고 부르지만, 협정문에는 그런 단어는 하나도 나오지 않고 독립축하금 내지는 경제협력자금으로 불리었던 것인데, 그 이유 또한 미국과 일본은 1945년 조선은 일본에서 해방(liberation)된 나라가 아닌 일본제국이 패전으로 인해 빼앗긴 땅 곧 분리(separation)된 나라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지금까지 겉으로는 어떠하든 속심에 있어서는 조선반도는 일본이 되었든 미국이 되었든 식민지로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지배인식입니다.

 

그래서 1945815일 일본의 패망과 더불어 총독부에 걸려 있던 일장기가 내려가고 태극기가 올라갔지만, 그 다음날 태극기는 다시금 내려가고 성조기가 대신 올라간 사실과도 일치가 되는 것이고 남한군통제권을 여전히 주한미군 사령관이 쥐고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많은 나라들은 결코 우리 남한을 진정한 독립국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애완견 혹은 똘만이로 여기고 있습니다. 물론 노무현대통령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군사주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근혜씨가 이를 시한도 정하지 않은 채 뒤로 미루어 버렸습니다. 그건 미국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고 특히 박근혜씨가 여기에 쉽게 동의한 이유는 20대에 양부모님이 총격에 의해 살해당한 이후 무의식의 죽음 공포 속에서 살아왔고 또한 혹 있을지 모를 군사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미군에게 군통제권을 넘겨버린 것입니다. 집권 2년이 넘었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기자회견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청와대 안에 꽁꽁 숨어 국무회의만 주재하고 있거나 아니면 외국으로만 돌아다닙니다. 사회주의 국가라는 북조선의 김정은위원장은 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작년에만도 현장지도를 백번도 넘게 했다고 하는데, 자유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뭐가 무서운지 남한의 대통령은 국민들의 삶의 현장에 나와 함께 손을 맞잡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트라우마와 권력의 함수 관계]

 

외국에서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슬픔을 당한 백성들을 찾아가 위로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물론이요 본인 입으로 위안부할머니들이 동의하지 않는 한 어떠한 협상도 있을 수 없다고 말해놓고는 할머님들과는 일체의 대화도 없이 비밀리 일을 진행하고서는 이를 무조건 받으라고 하는 폭력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위안부협상 무효주장하면 손 놓겠다.’ 이게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손 놓겠다는 뜻은 또 무슨 뜻인지 헷갈립니다. 위안부문제를 손 떼겠다는 것인지? 대통령직을 그만 두겠다는 것인지? 마치 애들 손곱 장난하다가,‘너희들 내가 한 것 맘에 안 들어? 그럼 나 안 해!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봐!’ 놀던 장난감 확 집어 던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철부지 없는 어린이의 모습을 엿보게 됩니다. 이런 얘기 외국 언론에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여당 원내대표를 자기 말 듣지 않는다고 쫓아내고 국민들이 반대하는 노동5대 악법 통과시키라고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아버지 박정희의 독재통치 스타일을 뺨치게 따라가고 있으며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습니다. 나라의 경제발전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과 정비례한다는 것은 역사의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평화 없는 경제발전은 모래위에 성 쌓기에 불과한 것이고 평화는 정의와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이 나라를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만들어놓고 경제활성화, 통일대박 운운한다고 하는 것은 적반하장입니다. 짐의 말이 곧 법이라고 하는 16세기 여왕 일인 체제에서나 가능한 사고방식입니다.

 

이제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새해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부끄러운 오늘입니다. 아니 더 큰 사고 저지르지 말고 바라기는 임기 마칠 때까지 그냥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청와대에서 조용히 살다 나왔으면 제일 좋겠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박근혜씨는 아버지 밑에서 충성하던 사람들이 이후 정권 하에서 아부하며 처신하는 배반을 보고 13년동안 뼈를 깎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지금 자기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배신자라고 보고 철저하게 응징하는 것이다. 주위의 정치인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일반 백성까지도 그렇게 하고 있어 권력에 비판하는 1인 시위는 물론 거리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경찰 조사에 임하라고 하는 겁박을 하고 있습니다. 집회와 거리시위는 합법적인 일이자 국민의 권리입니다.

 

우리가 주위에서도 쉽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이 따뜻하여 이웃의 아픔에 함께 아파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하루하루를 감사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주위에는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만, 원망과 불만 그리고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는 가시형 인간에게는 무얼 해도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후자형이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말하기를 이런 독재형 통치자들은 권력을 놓으면 자신이 죽는다고 생각하기에 권력을 결코 놓지 않으려한다고 말합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승만이나 박정희가 헌법을 고쳐서라도 영구 집권을 꾀한 것도 그 이유이고 전두환이나 이명박이가 자신이 저지른 부정부패를 철저하게 보호하기 위해 자기편 사람을 어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후계자로 앉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4월로 다가온 총선보다 2년도 남지 않은 임기 말에 큰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팍스 로마나의 진실]

 

제가 새해를 맞아 우리 사회에 대한 낙관과 희망의 얘기를 하여야 함이 마땅하지만, 선지가 예레미야가 그랬듯이 선지자 아모스와 요엘이 그랬듯이 제 눈앞에는 민족의 위기감이 엄습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외친 시대가 또한 그러했습니다. 시저의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정적 안토니우스를 물리치고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는 뜻의 아우구스투스로 개명을 하고 ‘Pax Romana! 로마제국의 평화는 영원하리라!’고 외쳤지만, 그건 로마 원로원 안에서의 권력투쟁이 끝났다는 얘기였지, 백성들에게 진정한 평화가 온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로마의 평화는 일반백성들에게 있어서는 황제신의 등극을 축하하는 새로운 도시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팔레스타인 지방은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인 파르티아 제국과의 경계선에서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남정네는 징용으로 여인네는 위안부라는 전쟁의 소모품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죽음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독립운동을 벌였던 것이고 그때마다 로마는 도시 전체를 불태우고 심지어는 2천여명의 어린이와 여인을 포함한 도시 전체를 십자가에 못 박는 학살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의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은 아부와 뇌물을 퉁해 자기 자리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때 광야의 한 소리 세례요한이라는 하느님의 종이 등장합니다. 그는 약대털옷을 입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를 외칩니다. 그리고 회개의 증표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보며 이는 하늘로 불수레를 타고 올라갔던 위대한 야훼의 종 엘리야가 다시 나타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기는 단지 뒤에 오시는 분을 위해 길을 닦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가 와서 요단강에 오시더니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습니다.

 

[요단강 세례의 정치적 함의]

 

당시 예루살렘 유대교 성전과 모세의 율법에 의한 죄의 용서는 오직 성전 제사장만이 희생제물을 하늘에 드림으로써 이루어지는 일이었지, 저 요단강에 가서 물에 한번 들어갔다 나온다고 해서 죄의 용서가 이루어진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있어 이런 행위는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는 이단의 행동이었고 체제를 위협하는 반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식상한 민중들은 이미 성전에 등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희망하며 요한에게로 나아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또한 성전 대신에 요단강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요단강은 애굽의 노예로부터 해방된 조상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 건넜던 강입니다. 새 역사의 상징이며 기존의 체제에 대한 혁명입니다. 세상 노예로부터의 해방을 상징합니다.

 

교회의 세례는 요한으로부터 받은 예수의 세례를 따라 하는 예식이지만, 그 신학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요한의 세례는 민중을 억압하고 있었던 기성종교에 대한 거부로서 체제 밖의 민중들과 함께 하는 위험한 신앙고백운동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받는 세례는 교회 밖에 있던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구원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아 이 땅에서의 축복과 영생의 삶을 보장받는 안전추구의 한 예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예수가 받았던 세례는 체제 밖의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위험한 고백이었다면, 지금의 세례는 체제 안으로 들어오는 안전한 고백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례와 성찬식을 라틴어로 Sacraments(성례전)라 부르는데, 본래 이 단어는 로마군인의 충성 맹세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세례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른다면 하느님의 자녀로 인치심을 받는 거룩한 예식으로서 불의한 세상을 향해서는 예수의 군인이 되어 죽음을 각오한 충성맹세와 같은 것입니다. 성서는 세례 받을 때의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임했다고 말합니다. 당시 비둘기는 군대의 전령 역할을 했습니다. 곧 하늘의 명령이 예수에게 임했다는 것이고 이 안에는 이미 십자가의 죽음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뜻입니다. 지난 주 우리가 십자가달기 예식을 통해 고백한 신앙문을 만약 우리가 문자 그대로 행한다면 이 시대에 있어 우리는 핍박과 박해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지난 주 매년 가져온 ᄆᆞᆷ비우기 영성단식 훈련을 했습니다. 15명이 참가를 했는데, 그중 절반은 처음 해보는 분들이었습니다. 매일 저녁 2시간정도 찬양과 말씀, 각자의 삶을 나누고 40배 혹은 100배의 절기도를 하였습니다. 마지막 나눔 시간을 통해 모두가 새로운 신앙의 도전을 받고 결단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중 가장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조은화목사님이었습니다.

 

단식은 처음 한다고 하면서 끼니를 굶으면 죽을까봐 걱정이 많았는데 5일이 지나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서 오히려 불량식품들을 먹지 않아 피부가 더 고와지고 머릿결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면서 봄가을 두 번에 걸쳐 계속하면 좋겠다고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환호소리가 나오고 3명의 참가자가 이미 나왔습니다. 저는 이번 훈련을 시작하면서 후임 목사님이 이를 이어가지 않으면 이제 영성단식은 없을 것이고 이어간다 하더라도 내년에는 없을 것으로 예견을 했는데, 하느님께서는 오히려 일 년에 한번이 아닌 두 번 세 번 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셨습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일의 결과를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다라는 잠언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언제나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새 세상, 성령- 새 인간]

 

단식이나 세례나 그 의미에 있어서는 일치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새로운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2주 후에 향린 청년 17명이 베트남 평화역사기행을 가는 목적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용병이 되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었던 베트남의 선량한 백성들에게 행한 군사 폭력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성찰 안에는 고자이 마을의 380여명의 노인과 여성과 어린아이들을 모조리 불살라 태워버린 한국군의 만행도 포함되어 있고, 요즘 우리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하는 종군위안부와 같은 베트남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자기는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자기 뒤에 오는 예수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불은 단지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는 뜨거운 불이 아닙니다. 불은 거짓의 옛 세상을 태우는 역할을 하고 성령은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 냅니다. 곧 불과 성령이란 세상의 체제와는 전연 다른 하느님 나라라는 새 세상을 향한 새 일꾼을 만드시는 과정을 상징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령에 의한 세례를 받은 초대교인들은 로마제국을 넘어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오늘 세례주일을 맞아 우리 모두 예수의 성령으로 거듭난 새로운 존재임을 깨닫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힘차게 나아가십시다. 우리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사람이다. 네가 강을 건널 때에 강물이 너를 휩쓸어가지 못할 것이고 네가 불 속을 걸어가더라도 그 불길에 그을리지도 않을 것이다. 나 야훼의 말이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새로운 인간]

 

진정한 혁명은 인간 내부에 있다

이웃에게 탐욕을 부리는 늑대같은 인간은 혁명가가 될 수 없다

진정한 혁명가는

사랑이라는 위대한 감정을 존중하고

그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는

새로운 인간의 시대다

도덕적인 동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끊임없는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리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질 때까지

자신의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인간이다.

(체 게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