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와 여우

15:12-16; 27:1-6; 3:17-4:1; 13:31-35

 

오늘 2월의 셋째 주일이지만, 설날이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아 오랜만에 만나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복 많이 받으세요혹은 복 많이 짓고 나누세요라는 새해 덕담을 나누는 연초입니다만, 복은커녕 혹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불안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북에서 수소핵폭탄 시험과 이어 인공위성 광명성 4호 발사를 하자 남은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 개성공단을 폐쇄시키고 북의 미사일 공격에는 무용지물로 이미 3년 전 국방부에서 결론이 나있는 사드(THAAD) 도입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남한, 북조선, 미국의 역학관계]

 

다른 나라의 인공위성 발사를 문제 삼는 것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남쪽이 실패한 인공위성 발사를 북쪽이 연속하여 성공을 하자 자존심이 상한 박근혜 정부가 이를 로켓미사일로 변질을 시켜 계속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우주과학계 심지어는 미국에서조차 이를 합법적인 인공위성으로 인정을 하고 있는데 반해 남한 정부는 이를 계속 로켓미사일발사로 호도하고 언론 또한 이에 맞장구를 치고 있는데, 이것만 보더라도 남한의 언론탄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핵폭탄 시험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우리 기독인의 입장에서는 북이 자제하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요구가 계속 무시당하고 김정은참수작전이 명시되어 있는 한미군사 작전계획이 새롭게 공개되고 있는 마당에 강경 노선 외에 북조선 정부가 취할 방식은 없어 보입니다.

 

35년간의 일본의 악랄한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미국의 제안에 따라 국토가 분단되고 미국의 농간에 의해 우리는 형제간의 전쟁을 하여 인구의 10분지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죽거나 중상을 당했으며 살아남은 사람의 5분지 1은 살아 있어도 만날 수가 없는 이산가족이 되는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 이후 60년 이상을 전쟁을 끝내지 않는 준전시상태로 혈육을 향해 총구를 겨누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이는 세계 전쟁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게다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을 이룸으로 세계 모든 민족들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미국에 의해 한쪽은 반드시 섬멸해야 할 적국이 되었고, 다른 한쪽은 군작전통제권을 내주는 속국이 되어 있는 비극적 상황입니다. 세계에 이보다 더 비극적이고 참혹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민족이 그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70년 이상의 경제봉쇄정책을 당하고 있는 북으로서는 미국에 무릎을 꿇고 항복할 것인가 아니면 죽더라고 끝까지 저항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항복할 것이 아니라면 북은 당연히 수소핵폭탄 그 이상 그 어떤 무기라도 개발하고 시험을 계속 해나갈 것은 생존을 위한 당연한 결론입니다. 물론 미국의 핵폭탄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남쪽에 사는 우리는 미국에 저항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니 빨리 항복을 하는 것이 보다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북쪽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면 우리는 어떻게 답을 해야 할는지는 고민이 되는 부분입니다.

 

35년 동안 우리 조선인들은 일본 제국의 식민지 지배에 반대하며 목숨을 내놓고 조선독립만세를 불렀고 만주벌판에서 맨손으로 독립투쟁을 했는데, 이 또한 무모한 일이지 않았느냐? 안중근의사를 비롯한 저들의 투쟁을 우리가 숭고하다고 얘기하는 것은 죽을 줄 알지만 대의를 위해 희생했기 때문이 아닌가? 당신들이 그들을 무모한 투쟁이었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가? 친일을 했던 사람들이 부귀를 누리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일을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남한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강자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말하고 북조선 사람들은 이는 민족 자주와 주체성을 상실하는 비겁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들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해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 민중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북의 독재 권력을 비판하였겠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에게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한반도에서 베트남에서 이라크에서 아프카니스탄에서 코소보에서 시리아에서 크고 작은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온 전쟁국가 미국을 지지하셨을까요? 세계 군사무기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이를 수출하여 먹고사는 미국을 예수께서는 분명히 악마의 나라라고 비난하셨을 것입니다.

 

[봉수교회 교인들의 본문 이해]

 

저는 오늘 성서의 본문 말씀을 봉수교회 교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창세기 본문은 하느님의 말씀 하나만을 의지하여 살던 고향을 떠나 가나안에 온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미래의 세계를 보여준 다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똑똑히 알아두어라. 네 자손이 남의 나라에 가서 그들의 노예가 되어 사백년동안 압제를 받으면 살 것이다.” 아니 이건 무슨 의미인가요? 하느님이 오늘 밤 여러분에게 나타나서 난 너에게 미래에 큰 축복을 베풀겠다. 그런데 그 전에 너는 남의 노예가 되어 압제를 받으며 수십 년을 살아야 한다.” 이때 아멘! 저는 주의 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라고 답을 하실 분이 계실까요? 그러나 봉수교회 교인들은 이 말씀을 지금은 미국의 압제를 받아 어렵게 살아가지만 아브라함처럼 하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시편 27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야훼께서 내 생명의 피난처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악한 무리들 휘청거리고 쓰러지리라. 그들은 나의 원수, 나의 반대자들, 그 군대 진을 치고 에워쌀지라도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아니하리라.’ 만약 봉수교회 교인들이 이 구절을 읽으면 어떻게 이해할까요? 미국과 남한의 경제봉쇄와 군사훈련 압박에 굴복하지 말고 오직 야훼 하느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느님께서 저들을 물리쳐 주실 것이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27편 마지막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야훼여, 당신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원수들이 지키고 있사오니 안전한 길로 인도하소서. 원수들이 독기를 뿜으며 거짓 증언하러 일어났습니다. 이 몸을 그들의 밥이 되지 않게 하소서.” 이를 봉수교회 교인들의 입장에서 독기를 품고 거짓 증언하러 일어난 원수가 누가 되겠습니까? 분명한 중거 자료도 없으면서 개성공단에 주는 노동자 월급이 핵무기 개발비로 들어갔다고 우기고, 인공위성을 로켓미사일로 우기고, 그레그 미국전대사조차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천안함 북 잠수함 어뢰 침몰설을 우기고, 장마 빗물에 실려 떠내려 온 남쪽 지뢰도 북쪽 군인들이 대낮에 내려와서 몰래 매설한 것이라고 우기는 등, 도대체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를 핏대를 세워 탁자를 치며 주장하는 이 모든 것들이 남쪽 정부가 북쪽 정부를 헐뜯기 위한 거짓 증언들이 아닌가요?

 

[청와대 1인 시위와 테러]

 

지난 주 수요일 제가 공동대표로 있는 <전쟁반대평화실현>이라는 단체에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위해 갔는데, 들어갈 때부터 신고를 하라는 등,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일을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분수대까지 들어가긴 했는데,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배치 반대와 평화협정 촉구가 적힌 피켓을 갖고 들어오던 활동가가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이유인즉 이미 사드배치 반대 1인 시위가 이미 있으니 같은 내용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제목을 가진 1인 시위가 같은 장소에 있어서도 안 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이지만, 그러면 사드배치는 지우겠다고 했는데도 안 된다고 해서 결국은 30분이나 기다리다가 제가 청운동 동사무소 앞으로 가서 1인 시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전에 이미 여러 차례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바 있는데, 이번처럼 심한 불쾌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백 명이 넘는 시골 할배들의 청와대 방문객과 중국 관광객들이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분수대 앞에서 피켓을 기다리며 서 있었는데, 처음에는 검은 선글라스에 검은 잠바를 입은 떡대같은 사복 경찰 두 명이 나를 감시하며 이것저것 묻더니 조금 있다가 한명이 더 붙어 3명이 제가 움직이는 대로 뒤를 따라다니더니 급기야는 조금 나이가 든 상관까지 네 명의 사복 경찰이 이 늙은 목사 한 명을 쫓아다니면서 테러 공포감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결국은 제가 참다못해 화를 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가 평화를 위해 하는 일인시위도 막느냐고. 내가 무슨 테러리스트냐고. 30분이나 나를 감시하며 쫓아다니느냐고. 겸해 여기서는 옮길 수 없는 욕도 한마디 했습니다. 바로 전날 국회에서 박근혜씨가 테러방지법 통과를 강조했는데, 결국 저와 같은 평화적 1인 시위까지도 테러범으로 몰아가는 근거를 갖자고 하는 것이 그 법이 노리는 숨은 목적으로 보입니다.

 

[헤롯과 예수의 대결]

 

루가복음서 본문은 복음서 말씀 중 매우 특이한 말씀입니다.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예수를 죽이겠다는 공개적인 선언을 한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이겠다는 것입니까? 그 답은 본문 첫 단어에 있습니다. ‘바로 그때죽이겠다고 선언한 바로 그때는 어떤 때인지 알면 되는데, 본문 바로 앞 절의 내용이 살해 이유입니다. ‘지금의 꼴찌가 첫째가 되고 지금의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고 했다면 헤롯이 흥분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오히려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을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통치하고 있는 이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고 말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첫째와 꼴찌가 뒤바뀌는 일은 꼴찌들의 혁명(革命)을 통해서만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헤롯은 테러리스트 예수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고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경고 차원에서 이를 알려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이러한 공개적인 살해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마친다고 일러주어라.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예수가 권력에 의해 공개적으로 희생당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는 장면입니다. 늑대도 있고 표범도 있는데 왜 여우라고 부를까요?

 

4복음서는 유대인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로마군단이 와서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초토화 시켜버립니다. 성전은 물론 쥐 한 마리 살아갈 수 없도록 모든 집들을 모조리 불질러버립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살해당했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모두 딴 곳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이때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의 복음을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대안적인 희망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건 예수도 유대인이었고, 더구나 로마가 자신들의 지배를 거부하며 저항하는 사람들, 곧 압제를 당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운동가이지만, 지배자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테러리스트들에게만 시행하던 십자가 처형을 당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가 종북 불온문서로 낙인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조심스럽게 기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들의 전통인 사도신조에는 예수가 빌라도 총독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으로 고백하지만, 4복음서는 하나같이 빌라도는 예수 죽음에 책임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고 오히려 예수를 살려주고자 애를 쓰기도 하고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이러한 당시의 억압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을 헤는 밤을 자연을 노래하는 시로 읽지 않고, 저항의 시로 읽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오늘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준다는 얘기도 문자로 읽으면 안 되는 것이고, 사흘이라는 단어도 문자로 읽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와 병의 실체가 무엇인지 사흘이 뜻하는 신앙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복음서 전체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우의 상징성]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는 것도 그냥 헤롯의 별명이 여우였구나라고 단순히 읽어서는 안 됩니다. 헤롯의 혈통은 유대인이 아닙니다. 할아버지 때에 유대교로 개종한 이두메인(에돔)입니다. 할아버지 헤롯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둘째가 후에 헤롯대왕으로 불린 사람으로 40년 이상을 통치하며 헤롯왕가의 정치력을 확고히 다진 사람입니다. 당시의 로마 권력자들인 시저와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토스 사이에서 정치적 줄다리기를 매우 영악스럽게 하였고,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많은 로마형 도시를 세웠고 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크게 개축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권력유지를 위해 자기 아내와 장모와 자식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악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네 번째 부인의 세 아들들에게 권력을 이양했는데, 그중의 한 아들이 오늘 본문에서 예수로부터 여우라고 불리는 헤롯 안티파스라는 로마의 분봉왕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헤롯대왕과 같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생 헤롯 필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강제로 빼앗아 결혼을 했던 인물로 이 때문에 세례요한으로부터 비난을 받자 세례요한을 참수했던 인물입니다. 여우는 표독을 속에 감추고 겉으로는 웃음을 띠는 간교함의 상징입니다.

 

요즘 TV 화면이나 신문 1면에 자주 나오는 여인이 한사람 있습니다. 간혹 사람들이 하는 말이 웃을 때 입술이 한쪽으로 일그러져 있고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다고 말합니다. 절치부심(切齒腐心)이라는 사장성어가 있는데, 이는 어떤 사람이 복수에 불타 이를 갈고 그 미움으로 인해 심장이 썩어간다는 말입니다. 자신의 부모님이 어린 시절 모두 총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누군가에 대해 끊임없는 복수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빨을 갈기에 자연히 입술이 일그러지게 마련입니다.

 

미국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의 이론에 자기애적 분노’(narcissistic rage)’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자신의 위대함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데서 오는 피해망각 분노증세입니다. 자기에게 상처를 준 이들을 끝까지 쫓아가 복수를 하는 형입니다. 우리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경우라든가 대중심리학자로 유명한 황모 연세대교수가 최근 뚜렷한 이유 없이 해직을 당했는데, 세간에서는 그 이유를 그가 박근혜후보 시절 TV 공개 토론에서 그를 성적으로 비난한바 있는데 그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개성공단 폐쇄에 이르는 과정을 한번 보십시다. 공단폐쇄가 자국의 120개 넘는 기업가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되어 있는 5천여개의 소기업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정신적 영향은 전연 고려하지 않은 채, 김정은에 대한 복수만을 생각하고 폐쇄를 결정한 것인데, 수많은 전문가들은 북이 당하는 손해보다 남이 당하는 손해가 몇 십 배 크다고 말합니다. 결국 개성공단 폐쇄는 일종의 자해행위인데 복수심에 불타 있는 사람은 자기 피해가 보이지 않습니다.

 

150불 그러니까 월 20만원, 5만 명의 북쪽 노동자에게 주는 돈이 핵개발에 사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12년동안 6천억이 갔고 이중 70%가 핵개발에 사용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매년 약 350억원이 핵개발에 사용되었다고 말하는 것인데, 350억원으로 핵개발이 가능한가요? 그렇다면 웬만한 마피아조직들도 다 핵개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건 그렇다 치고 북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갔다는 나머지 30%를 분석해 보십시다. 이 말은 북쪽 4인 가족이 20만원의 30% 매월 6만원 곧 하루 2천원으로 살아갔다는 말인데, 북쪽 물가가 아무리 싸기로서니 하루 오백원으로 한사람이 살아갔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요? 백보 양보하여 식비는 대충 굶어가며 이 돈으로 해결했다고 그럽시다. 그 외 다른 주거비나 의료비 교육비는 어디서 나오나요? 하늘에서 떨어지나요? 아니면 다른 노동자들이 광산에서 석탄 캐어 수출하여 판돈으로 해결했습니까? 그게 그 돈 아닌가요? 상식 이하의 논리이고 주장입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대통령이 북쪽 노동자 월급으로 200불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김정일위원장이 우리가 돈 몇 푼 벌자고 군대를 뒤로 물리고 공단을 허락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남북평화의 상징으로 하는 것이니 50불로 하자. 그래서 50불로 시작을 해서 현재 150불이 된 것입니다. 지금 중국 러시아 몽골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유럽 곳곳에 최소 이십만 명 이상의 북쪽 노동자들이 나가 외화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지금 150불 받고 일합니까? 이보다 열배 이상은 더 받고 있는데, 그러면 그 돈도 모두 핵개발비로 사용되고 있다고 주장해야 합니다. 개성공단 월급만 핵개발로 들어가고 다른 나라에서 버는 월급은 안 들어갔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요?

 

제게는 마치 이런 주장으로 들립니다. 어떤 교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 우리 교회 조목사는 내가 내는 헌금으로 월급을 받아먹고 살지.’ 전연 틀린 말은 아니지요. 제가 받는 월급의 일부 그분이 내는 헌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헌금을 안 하면 제가 월급을 못 받나요? 그러면 말이 됩니다. 개성공단이 닫히면 북쪽 핵개발 중지가 될까요? 그러면 말이 됩니다. 도대체가 상식 이하의 발언을 대통령 총리 장관이라는 자들이 하고 있고 국회의원이란 자들은 거기에 박수를 치고 있고 어리석은 국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있습니다. 복수에 사로잡힌 이념의 노예들입니다.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의 동상이 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그걸 넘어뜨리기 위해 밤에 몰래 가서 땅을 팝니다. 그게 어느 쪽으로 넘어지겠습니까?

 

지금 중국 정부의 분명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배치를 밀어붙이려는 공격성은 북쪽 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자기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있는 시지핑 주석에 대한 섭섭함을 넘어선 일종의 복수심에 기인합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사드배치를 항우의 조카 항장이 칼춤을 추는 의도는 유방을 죽이려는데 있다고 말함으로 박근혜정부의 속셈은 중국을 겨냥하는 미국에 있음을 폭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속 강행하면 남한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대국자들에 따라 여기저기 놓이는 바둑돌 신세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바둑돌 신세]

 

우리가 무슨 바둑돌이냐고 핏대로 높여가며 외치고 싶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분단을 외세에 의해 당했으니 이미 바둑돌입니다. 게다가 남한은 유엔 회원국 중 유일하게 군사작전통제권을 다른 나라 군사령관에게 맡겼으니 명백한 바둑돌입니다. 미국의 원하는 무기를 사주어야 하니 바둑돌이 아니면 뭡니까? 경제는 어떠한가요? 현재 중국과의 교역은 미국과 일본을 합친 양보다 많습니다. 중국의 국내채권 보유액은 미국과 거의 동일한 18조원에 달합니다.

 

중국경제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작게나마 이미 마늘파동을 통해 배운바 있습니다. 지난 2000년 마늘값이 폭등을 하자 중국산이 대량 수입되었습니다. 그러자 마늘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산 마늘 관세율을 10배로 올렸습니다. 그러자 중국은 곧바로 우리나라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결국 곧바로 손들고 항복한 것은 남쪽정부였습니다. 메르시 사태로 중국관광객이 급감했을 때, 심각한 경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작년 11월 중국계 자금의 국내시장 주식이탈 금액이 172억이었는데, 12월과 1월에는 이보다 30배가 넘는 5천억이 빠져나갔습니다. 최근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습니다. 경고가 시작된 셈입니다. 지금 우리 경제인들은 중국의 경제 보복에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게 처신하면 강대국들을 움직일 수 있는 균형추 혹은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북조선은 미국의 경제봉쇄 속에서도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통해 자기 살길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남한은 외교의 ABC를 무시하고 권력자 한 사람의 명령에 따라 모든 국가 기관이 맹종하고 있습니다. 뭐 입술이 부르튼 장관도 있으니까 맹종은 아니겠지만, 사리에 맞지 않는 일을 이랬다저랬다 말을 바꿔가며 따라가고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맹종입니다.

 

외교부가 북조선을 유엔에서 내쫓으려고 시도하는데, 이는 씨도 먹히지 않는 제 얼굴에 침 뱉기요 비웃음만 살 일입니다. 미국이 끝까지 우리 편이 되어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국방예산 삭감으로 사장(死藏) 위기에 처한 F35 전투기를 설계 도면만 보고 40대를 구입해 줌으로 군수공장 돌아가게 만들어 주고, 수명이 다한 공중급유기 사주고, 비싼 사드를 구입해 주는 등 미국 무기 알뜰 고객으로 남아 있는 한 우리 편이 되어줄 것입니다. 2014년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남한이었고 90%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했습니다.

 

엄청난 무기 구입으로 인한 우리가 당하는 피해는 어떤가요? 남한의 경제규모는 세계12위인데, 복지는 OECD 최하위 36위입니다. 36위는 단지 수치로 본 복지지수에 따른 순위이고 국민 각자가 실제 느끼는 행복지수 순위는 어떻게 될까요? 11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인데 작년 이날 국제여론조사기관이 세계 143개국의 사람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남쪽 국민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100점 만점에 59, 세계 평균은 71, 남한의 순위는 143개 나라 중 118. 아무리 경제규모가 커도 그게 재벌 소수 부자들에게로 쏠려 있으면 이는 오히려 빈부격차로 인한 불만지수만 높아갈 따름입니다. 파이가 크면 나눠 먹는 조각도 크다는 건 부자세가 존재하고 부정부패가 없는 정상적인 사회에서 가능한 얘기이고 물이 넘치면 모두가 나눠먹을 수 있다는 누수경제 이론도 물동이의 크기가 제한되어 있을 때 하는 말이지 물동이를 제 마음대로 늘려버릴 수 있는 남한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결국 이런 부조리로 인해 남한은 삶의 희망을 잃고 목숨을 끊는 자살자들이 지난 10년 동안 세계 최고이고 앞으로도 분단이 지속되는 한 이 순위는 영구불변할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 문제가 되어 있는 노인수당, 대학생반값등록금, 영유아누리교육비, 급식비, 청년 일자리 등등 사드 구입비 하나만으로도 너끈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본래 박근혜씨가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모두 약속했던 것들입니다. 국민들 앞에 자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킨다고 맹세까지 하고서는 복지공약은 하나도 지키지 않고 비싼 무기구입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이는 그가 군인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과 같이 부모가 총탄에 의해 모두 살해당한 이후 죽음의 공포 속에 갇혀 군인들에 둘러 싸여 핵과 인공위성이라는 말만 들어도 공포에 질려 상식 이하의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재벌 조중동의 언론 조작에서, 종편의 노예훈련에서, 권력자의 반북증오의 공포와 테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는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하였지만, 사랑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으로, 형제를 형제로, 자매를 자매로, 볼 줄 아는 제대로 된 눈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운영하는 개성공단을 단 몇 푼의 돈으로 환산하는 사람들은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는 수치스러운 자들입니다. 평화는 결코 돈이나 무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전쟁의 참화를 피해갈 수 없었듯이, 수십만이 모이는 여의도의 교회도 향린교회도 피해 갈수는 않습니다. 성전에서 기도를 열심히 한다고 해서 전쟁의 참화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입술로 드리는 기도가 아닌 발로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할 때입니다. 민족공멸의 위기 앞에서 무엇이 진정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으로 해야 할 일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은 사순절 둘째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을 따라 광야 40일의 금식 기도 생활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멀쩡한 집을 놔두고 왜 광야에 나갑니까? 그건 우리가 삶에서 시시각각 당하는 유혹으로부터 이겨나기 위함이요 참다운 길을 찾기 위함입니다. 광야(‘므드바르’)는 히브리어로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라는 말씀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을 다시 읽어드립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서울아! 서울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고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의 예언의 말씀에 귀를 기우립시다. 이제 베푸는 하늘 잔치를 통해 주시는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우립시다.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 되어 영악한 권력의 여우들을 이기기 위해 당신의 거룩한 살을 떼어 주십니다. 혼자서 꾸다 사라지는 꿈을 여럿이 함께 꾸어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의 고귀한 피를 흘려주십니다. 성찬의 예식 가운데 하늘의 거룩한 영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