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년 주 일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시편 63:1-4; 이사 55:1-9; 고전 10:1-13; 루가 13:1-9)

 

한세욱 목사 / 홍푸름 교우

 

[홍푸름 교우]

안녕하세요. 저는 홍성조, 권명옥 집사의 아들 홍푸름입니다. 군대에서 전역한지 얼마 안 된 시기에 부모님과 친구들이 교회에서 평화기행으로 베트남을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 기행에 참여하게 되었고 모두를 대표하여 하늘뜻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베트남 평화기행은 여행이라는 아주 친숙하지만 나를 낯설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서 다녀왔습니다. 베트남에 존재하는 전쟁의 상흔과 그들의 삶을 통해 우리안의 부끄러운 역사와 만나고, 평화와 통일의 길을 함께 그려보는 것을 목표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1) 토요일 밤에 도착한 우리는 다음날 아침 현지교회방문으로 평화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베트남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현지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계시는 최병관 선교사님과 만나 베트남의 문화, 정치, 사회적 분위기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교회가 겪는 어려움들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베트남을 침략했던 미국의 종교라는 인식 때문에 교회는 늘 감시와 억압, 그리고 소외된 상태였습니다.

 

(2) 전쟁박물관 (호치민시)

 

박물관 이름을 직역하면 전쟁증거박물관으로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의 죄악과 만행의 증거, 그리고 흔적을 기록하고 있는 곳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학살, 고엽제피해 등 전쟁의 참상이 사진과 유물들로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있으며 미군의 편에 가담해 그 전쟁에 참가했던 한국군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군에서 뿌린 고엽제로 인해 기아로 태어난 2세들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인들이 전쟁의 아픔을 지대로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우리 새청인 모두가 감정을 누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구찌땅굴 체험 (호치민시)

 

구찌땅꿀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을 공격하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이었습니다. 깊이는 3~8m 정도가 되며 전체길이는 무려 250km에 이릅니다. 베트남 터널 내부에는 회의실 무기저장실 식당 침실 주방 수술실까지 있었습니다. 그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고 그 처절함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연합군을 잡기위한 무시무시한 여러 가지 덫들이 있었는데, 가이드는 이 덫이 얼마나 강한지 자랑하듯이 설명을 했지만 사람들이 그 덫에 죽어갔던 것을 상상하니 마냥 신기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4) 남부 여성박물관

 

1990년 호치민시에 건립된 여성박물관은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남성과 함께 총을 들고 싸웠던 베트남 남부 지역의 여성들이 전쟁 이후 역사 속에 남성만 기록되고 여성은 사라지는 기억의 차별에 대항하여 직접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고 모금을 하여 건립된 곳이었습니다.

 

[평화기행을 다녀오며]

 

전쟁박물관에는 참전했던 다른 나라 군대의 배치도가 걸려있었는데 한국 맹호부대, 백마부대의 마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군복무했던 청룡부대의 마크도 있었습니다. 군복무시절 해병대에서 우리는 베트남전의 영웅이였다는 교육만을 받으며 해병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저로서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고 그렇게 자랑스럽고 멋져보였던 해병대 마크가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도 부끄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행을 통해서 단순하게 한국군은 정말 나빴다.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반성하자.’만을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르고 참혹한 학살을 한 것은 사실이고 비판받아 마땅한 부끄러운 우리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우리 한국군을 극악무도한 군인들이라고 단정 짓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그리고 자신들의 아들 딸 가족들을 위해 조국을 떠나 베트남이라는 타지에 사람을 죽이러갔던 우리군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더운 베트남에서 온갖 벌레를 이겨내고 자신과 같은 사람을 쏘아댔던 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너무나도 잔인한 인간 덫에 걸린 동료, 미군의 무자비한 고엽제살포에 고통 받는 동료를 옆에서 바라보는 그들의 심정은 도대체 어땠을까?

 

우리 군이 비이성적이고 미친 학살을 하기까지 겪었던 전쟁의 폭력성 참혹성에 대해서는 과연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감히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이 전쟁의 피해자는 누구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처참하게 학살당한 베트남인들, 타지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던 한국군들, 전쟁이란 재앙 앞에선 모두가 피해자고 생각합니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우리가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 평화를 실천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평화기행중 도임방주 간사님의 꾸지람을 듣고 정신을 바짝 차린 일이 생각났습니다.

 

어딜가나 남들을 의식하지 않고 떵떵거리며 웃고, 조금이라도 가격을 깎으려 흥정을 하고 떠들었고 그런 우리의 무례한 태도는 호텔의 작은 로비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도임방주님 간사님이 호텔로비직원들이 우리 한국인들의 무례한 태도를 보고, 수군거린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된 태도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행객으로서, 그곳의 값싼 물가, 우리가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우월감과 외모적으로 봤을 때도 하얗고 키가 더 큰 우리의 모습에 우리는 어느새 베트남인들을 아랫사람이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적해 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고 우리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평화기행을 떠난 우리가 오히려 그들에게 어쩌면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했던 폭력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항상 평화, 평화를 외치며 정작 우리의 사소한 삶에서 약자에게 폭력적이고 평화적이지 못한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평화란 것이 아주 작은 태도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단순히 전쟁이나 사회적 폭력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의 평화에도 집중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평소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배려한다던지, 우리보다 낮은 이들에게도 따뜻한 나눔의 정을 베푸는 일들 말입니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테러를 방지한다는 이름으로 국민의 인권을 짖밟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다던지, 평화의 섬 제주에 전쟁의 위한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이 합당한지와 같이 일상속의 평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시간이었던 평화기행을 다녀올 수 있게 도와주신 교우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평화기행을 통해 향린의 젊은이들이 역사를 바로 볼 수 있는 기회와 평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기회가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세욱 목사]

 

[사죄, 용서, 화해]

 

지난 20151228, 한일외교장관 회담 합의결과를 보며 우리는 참담한 마을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루어진 이번 합의는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기에 그랬고, 국제법과 국제관행에 따라 재협상을 통한 조약의 수정과 폐기가 언제든 가능한 것인데도, 합의의 불가역성을 합의한것이 그러합니다. 양국 정부가 사용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라는 표현은 양국 정부 스스로도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자, 야합에 의한 결과물임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합의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 인권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고, 피해자의 권리도 무시한 채, 합의를 이룬 것은 피해자들에게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한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가해국과 피해국간의 합의를 통해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인권은 또 다시 유린된 명백한 국가폭력의 다름아닙니다.

 

잊혀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우리가 기억해야할 진실이 있다면, 계속 말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끊임없이 회귀하고 거기 머물고 있는 할머니들과 연대하며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슬픔을 나눌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기억투쟁을 통해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해 함께 나갈 것을 다짐합시다.

 

[베트남 피에타]

 

이 작품의 작가는 김서경(51), 김운성(52)씨입니다. 혹시 이 두 분을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이 두 작가는 평화의 소녀상을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분들로 유명한 분들입니다.

 

두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베트남을 방문해 학살된 수많은 무명의 아가들을 보았고 이들이 가시가 되어 눈을 찔렀다사죄와 반성의 의미를 담아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이들을 기록하고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 피에타는 대지의 여신 위에서 학살된 아가를 품는 어머니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와 무명아가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베트남어 제목은 마지막 자장가라고 합니다. 베트남전(통일전쟁,항미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을 사과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상징물이 베트남과 국내에 설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기억은 싸운다.]

 

기억은 싸웁니다. 기억은 이미지를 갖게 되어 하나의 상징이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상징은 힘을 가지게 되고, 바로 그 상징은 사람을 움직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 작동합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주한일본대사관 앞 좁은 골목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20111214일 소녀상이 세워짐으로써 주한일본대사관 앞은 새로운 힘을 갖는 공간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운동은 강력한 무기를 얻었고, 자석처럼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았습니다. 지난 1228일 협상에서 일본 정부가 내내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한 것도 불과 4년만의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 작은 상징물이 키워온 힘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문제에 대한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지 못했습니다. 또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정확히 사죄하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베트남과 국내에 설치될 이 작은 상징물이 우리의 잔잔한 일상 한 복판으로 들어와 우리의 잘못을 고발하고 용서를 구하며, 사람들을 치열한 기억투쟁의 장으로 이끌어내고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되어, 화해의 세상을 열어나가게 되길 소망합니다.

 

[그 때에]

 

향린에서의 주일예배 하늘뜻펴기는 정말 부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처럼 가끔 강단에 오르는 사람은 더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교우들중에 한 번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하실 것입니다.

 

우리교회와 같이 성서일과에 따라 하늘뜻펴기를 이어간다는 것은 설교자 입맛에 맞는 성서구절을 골라 하늘뜻펴기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러시안룰렛을 하는 사람의 심정이 그것과 같을까요? 한 주 한 주, 이번주는 어떤 본문일까?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시쳇말로 피 말리는 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담임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목사님은 하늘뜻펴기 준비라는 짜릿한 기쁨을 잠시 뒤로하시게 되겠구나.

 

그런 안타까운 생각도 잠시, 저는 오늘 본문을 받아보고는 마치 이번판은 총알이 비켜간듯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어떠한 추가적인 해석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명백한 이야기라 그런 것인데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늘말씀은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통적으로 악을 일삼는 것들을 경계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야훼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차례대로 다른 번역본들을 묵상하며 처음에 들었던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먼저 주목하게된 것은 이사야 본문에서 사용된 돌아오다라고 쓰인 히브리어 슈브입니다. 1성서에서 슈브는 천 번 이상 사용됩니다. 지금 향하고 있는 어떤 방향으로부터 다시 본래의 자리 또는 방향으로 돌아서다’, ‘돌이키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슈브가 사용된 맥락은 이러합니다. 잘 듣고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대해 내린 심판도, 하느님이 이스라엘에게 내린 은혜와 은총을 돌이킨것이 슈브이고, 만약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슈브이고, 하느님 또한 당신의 뜻을 돌이키는 것이 슈브이고, 그들에게서 되돌렸던 은혜의 구원을 다시 베푸는 것이 슈브인 것입니다. 막 헷갈립니다. 다시 한 번 설명하면, 이스라엘의 범죄가 슈브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슈브이며, 이스라엘의 회개와 참회가 또한 슈브이며 그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 역시 슈브라는 말입니다. 이 모두가 동일한 단어의 쓰임입니다.

 

슈브라는 단어는 그 빈도수처럼 신학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회개한다는 말이 자리 또는 방향의 전환을 이야기한다는 아주 일차원적인 가르침뿐만 아니라, 12예언서를 한 권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하며, ‘하느님의 후회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이 부분은 워낙 방대한 것이라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한 부분은 루가복음 13장의 시작인 바로 그 때입니다.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한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어 크게 이상한 부분은 아니지만,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성서일과표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어떤 초월적인 계시 같은 것을 느끼며,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는 잠시 뒤에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 주목한 부분은 루가복음의 회개를 촉구하는 본문 앞에 굳이 빌라도의 학살이야기와 실로암의 탑이 무너진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없어도 충분한데 말이죠. 루가 기자의 무슨 숨겨진 의도가 있지는 않을까? 머리가 지끈 거리게 되었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지방에서 학살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갈리리 지방이 가진 그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로암의 탑이 무너졌고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 실마리는 사람들이라고 번역된 헬라어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안트로포스이고 탑에 깔려 죽은 사람은 페이레타이라는 단어입니다. 똑같이 사람들이란 표현을 이렇게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페이레타이는 일차적으로 빚진 것이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 수탈과 착취를 당한 민중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저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빌라도가 민중봉기가 빈번히 벌어지던 갈릴리 지방에서 체제 유지를 위해 저항세력들을 학살했다는 사실을, 수탈과 착취를 견디지 못하고 끝끝내 실로암에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그 가운데 탑에 깔려 죽은 억울한 민중들의 한 맺힌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이렇게 엄혹한 시대에서 매우 절박한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정의를 세우고, 하느님의 공의로운 세상을 향해 뛰어들라고 촉구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말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사람들에게 부르짖는 순간이 바로 그 때”, 제가 앞서 소름 돋게 주목했던 바로 그 대목입니다. “바로 그 때”, 헬라어로 카이로스입니다.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고,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지 않는 결단의 시간이며,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는 바로 그 시간, “바로 그 때라는 것입니다. 부활의 한 날이 영원한 새 날을 낳듯이, 예수의 무리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하느님 나라 사건, 그 찰나의 시간을 루가 기자는 이런 독특한 문학적 표현으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

 

원래는 3월 둘째주일이 기장총회가 정한 청년주일이지만, 향린의 목회 계획에 의해 오늘을 청년주일로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교회력으로 사순절의 한 가운데를 보내고 있고 3.1절 기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 분의 가르침과 고난의 길을 생각하며 신앙의 훈련을 해야 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늘뜻펴기 제목, “너희는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고린도후서 3:3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녀온 베트남 평화기행의 주제문구 이기도 합니다. 3:3의 말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새번역)

 

상황에 따라 썼다 지웠다 할 수 있도록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는 어떤 유명한 가수의 노래말도 있지만, 마치 예수님은 우리들의 그런 마음을 미리 알아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이다.”

 

향린의 아름다운 청년들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슴 판에 하느님의 당부를 적어 세상에 보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3:6).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이기에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노력 중에 하나가 97년 전 서울과 평양 등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 “자유와 평등 만세등의 구호를 외치며 길거리로 모든 민중들을 뛰어 나오게 했던 3.1독립운동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지난 35년간을 살았지만 죽은 삶, 목숨만 붙어있는 식민지 백성의 삶을 살았습니다.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길 것 같은 그 능욕의 시간을 살았습니다. 삼천만 동포가 하나 된 3.1 독립운동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바로 독립없이는 참다운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흔 일곱 번째 맞는 3.1, 우리는 진정 주체적이고도 참된 삶이 무엇인지, 그런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좋은 소식을 전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십니다(4:18). 그래서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자본의 수탈에 허덕이는 이들에게 해방을, 생명을 풍성케 하는 길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보게 함을, 억압받고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자유를 전파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면, 고통 가운데서도 파멸당하지 않은 삶을 살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갑시다. 하느님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