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향

(이사야 43:16-21; 시편 126:1-6; 필립비 3:7-14; 요한 12:1-8)

조 은 화

 

[인간의 시대 VS 로봇의 시대]

 

지난 한주 인공지능 바둑 컴퓨터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격돌 소식을 계속 접했습니다. 어제 알파고가 세 번의 승리를 거두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3국에서 승리했습니다. 이로서 이제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교계에 있어서도 우스게 소리지만 설교하는 로봇이 등장하는 거 아니냐, 로봇에 그 교회 수준과 교인성향 등 주제 키워드를 맞게 찾아 넣으면 정말 고컬리티의 설교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 이제 목사들이 설자리도 없어지겠다.” 그런데 예상하기로는 그 로봇의 가격이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에 아마도 대형교회에서 먼저 선취할 것으로 보아 대형교회 목사들이 먼저 교회를 나가게 될 것이라 보입니다. 교회담당목회자로 청빙이 되는데 있어 로봇목사와 인간 목사를 두고 설교 대전을 벌이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이는 우스게 소리이기는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예상치 못한 범위까지 인공지능 영역이 확대되면 예를 들어 무인승용차가 보급된다고 했을 때 택시기자, 대중교통운전자들, 대리기사 등 많은 부분에서 사람의 일자리를 로봇에게 넘겨주어야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고 부와 빈의 격차는 더 커지고, 그래서 살기 더 어려운 시대를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단 포비아에 빠진 한국사회]

 

어려운 시대에 어렵게 사는 일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울산에 한 어린이집에서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놀리며 부르는 은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휴거!”라는 말입니다.임대아파트 브랜드 한신휴플러스거지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만들어낸 은어입니다.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한 엄마는 우리 아이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걱정이 된다. 임대아파트는 주로 엄마들이 직장 다니니까 보살핌이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이런 아이들에게 휩쓸려 안 좋은 것을 배울까 두렵다.

 

저는 청소년시절부터 임대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그 부유한 아파트 단지 엄마들의 시선에서는 부모의 보살핌을 못 받고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을 꼬셔서 이상한 일을 벌이는 두려운 대상이었다는 것인데 어디 정말 그런가요? 저는 지금 열심히 목회자로 일하면서 최선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가난하다고해서, 저소득층이라고 해서 대상을 두렵게 생각하고 분리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고 봅니다.

 

어디서부터 사람들이 불안을 느끼고 선입견과 공포, 두려움이 생긴 것일까요? 요즘 불안의 폭이 확대되어 가족 범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7살의 신원영(7)군이 무려 3개월 동안 욕실에 갇혀 계모와 친부로부터 끔찍한 학대로 죽음에 이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계모 김모(38)씨는 7살 원영이가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며 온몸에 락스를 퍼붓고 찬물을 끼얹은 뒤에도 그대로 방치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경기 부천에서 생후 2개월 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를 폭행하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20대 부부가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부부는 현재 무직으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숨진 아기의 아버지는 평소 롤게임에 빠져 부인과 자주 다퉜고, 그 화풀이를 젖먹이 아이에게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후에 확인된 2개월된 아기 시신은 어깨뼈와 우측 팔이 부러져 있었고 갖은 학대로 인해 그 어린 아기의 얼굴전체가 피멍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어떻게 부모가 그럴수 있는가 라며 분노하실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개인의 일이 아니라 사회가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가 아닐까요?

 

사회갈등에 대한 실태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상이한 집단 간에 존재하는 배타적 면모가 악화돼 서로를 혐오하는 상황으로 연결되는 특성을 보인다고 경고했습니다. 실제 사회의 분열정도가 충격적인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집단간의 분노가 고소고발등으로 이어지고, 보복과 단죄에 나서려는 성향이 강해져 분노조절 장애에 의한 강력범죄와 묻지마 우발 범죄가 증가하고 인터넷 막말과 마녀사냥이 확대되면서 분노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되기에 그래서 더 악밖에 남지 않는 세상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이제 교육도 더 이상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대학에 가기 어렵고 혹여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더라도 더 나은 삶의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이런 분열양상은 정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중단과 테러방지법으로 우리에게 자꾸 응징과 복수, 갈등의 극대화를 시켜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응하는 사람들의 수가 만만치 않습니다. 독재정치로의 회귀입니다. 이제 사이버테러방지법까지 통과된다면 정말 우리는 손과 발 입과 생각이 갇힌 채, 민주주의는 끝나는 듯 싶습니다.

 

심리용어중에 포비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공포의 감정이 강박적으로 특정대상에 결부되어 행동을 저해하는 이상반응입니다. 자신의 불안을 특정대상에게 투사해서 그 대상을 볼 때마다 공포를 느낍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상에게 덧씌운 불안과 공포가 그렇게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잠시나마 투사한 그 대상을 혐오하고 있을 땐 내 안에 불안이 아니라 저것 때문이라고 하는 책임 회피, 합리화, 핑계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내면의 불안이 극대화되면 될수록 해결되지 않은 현상이 더 깊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 이런 증상이 더 심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가 살아온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유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과거, 수탈과 폭력에 식민지시대를 살았고 해방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승만과 박정희로 연결되는 독재정권에 의한 인권유린, 폭력의 고통을 그대로 담은채, 그저 눌러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이어지면서 겉모양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실상 우리의 내면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은 체 서로가 살피지 못하여 마음의 병을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어제 향린교우들 6분과 평통사 회원들이 한미 연합상륙작전 반대를 위해 토요일 새벽 4시에 포항으로 내려가서 전쟁연습 중단을 외치며 행진을 하고 밤 10시가 넘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고생이 참 많으셨지요. 한미연합 키리졸브 독수리연습이 지난 7일 시작되었습니다. 역대최강이라 불리는 이 훈련은 한미연합군과 북한군이 서로 선제공격을 공언하는 극한적인 대결 구도가 되고 있습니다. 키리졸브/독수리연습에 따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의 고조는 다시금 우리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내면의 불안이 증폭되어 나타난 집단포비아 현상은 어디 이뿐일까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여성혐오, 그 뿌리 깊은 혐오는 계속해서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최근 sns상에 올라온 기사입니다. 총신대 여성총동문회 송년회에서 대표기도를 맡은 A교수가 여성안수를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총장은 그 기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준비해온 설교를 대체하겠다고 밝힌 다음 여성안수는 안될 말이라고 못 박았다고 하지요. 그리고 이후 A교수는 자신의 수업이 폐강되었음을 통보받았습니다. 예장합동 교단이 행한 보복성 조치였습니다. 총신대는 2014년 여학생들의 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입학을 불허했다가 반발을 샀고 결국 철회하는 일을 빗기도 했습니다. 계속되는 총신대의 사태는 여성에 대한 혐오의 결과물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억압을 자행하는 종교의 어둔 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귀 향]

 

귀향영화를 최근 보신 분들이 많으시지요. 물론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꼭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는 제작비 절반 이상인 12억 원을 75천 여 명의 후원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아서 14년에 걸쳐 만든 영화입니다. 지난 224일 개봉한 이래로 이제 곧 3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습니다. 전쟁범죄, 성범죄, 인권유린처럼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를 다뤘고 이 영화에는 유명감독이나 배우가 제작에 참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과히 귀향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이 영화의 힘은 지나갔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고통의 역사를 오늘 다시 마주하게 해주었습니다. 감성으로 위안부의 일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상처를 남겼다는 것을 다시 알게 해주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며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과 분노의 마음을 함께 느끼셨을 겁니다.

 

[여성 혐오와 성노예]

 

세계각지에서 계속되고 있는 전쟁에서 여성들은 고문 강간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성노예제!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마치 전쟁의 무기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기계 병사들에게 유흥과 연료를 제공하기 위해 여성들 특히 나이어린 소녀들을 사용하여 전쟁도구로 존재하게 합니다. 전쟁 후 생존자를 계속 따라다니는 것은 고통스러운 성 노예전력입니다. 강간사실은 스스로에게도 지우고 싶은 기억입니다. 여성들이 처음 입을 여는데 40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약물의 주입과 성병, 잦은 유산으로 여성은 임신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리고, 평범한 여성들처럼 살기는 어렵습니다. IS 폭력으로부터 생존한 여성들 중 수많은 경우 자신이 아닌 제3자의 이야기라며 폭행사실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폭행사실은 숨기려 합니다. 그만큼 공개했을 경우 고통스러운 현실을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향년과 호로자식]

 

이런 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야 이 환향년아!”, “이 호로자식아!”

환향년은 환향녀에서 시작한 말입니다. 조선 시대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성노예로 팔려갔다가 정절을 잃은 후 고향으로 돌아온 여성을 이르던 말입니다. 조선 여인들 15만 명을 오랑캐에게 바쳐야 했던 아픈 과거입니다. 끌려갔다가 다시 고향을 찾아왔지만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버림받거나 시달림을 당하해야 했습니다. 당시의 정서상 그런 여인들을 천박하게 여겼기에 이들을 환향년이라 불렀습니다. 혹여 성폭행으로 어쩔수 없이 오랑캐의 아이를 임신하여 돌아와 아이를 낳은 경우 그 아이를 호로자식이란 말을 들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이후 환향녀들은 가문에서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자결했으며, 살아있다 하더라도 남편이 첩을 들이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일본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살아온 여성들에게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환향년이라 말을 들으며 죄인 취급을 당했습니다. 남성들의 죄로 인해 능욕을 당한 것인데 오히려 적반하장이라 하겠습니다.

 

환향년과 호로자식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고통의 단어임이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암울한 현실에 과연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나가는 것이 좋을까요?

 

[역사의 연속선상에서의 새 일]

 

이사야서는 바벨론의 포로로 살고 있던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구원의 소식은 무엇인가라고 할 때, 바로 바벨론으로부터의 탈출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에게 위협을 준 페르시아 제국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일약 루디아 왕국을 점령하고 신흥 바벨론제국을 무력화시켰던 그때! 이사야는 야훼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를 통해 억압받는 이스라엘 포로민을 해방시켰다고 고백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역사는 우연이거나 불확실한 것의 연속이 아니라 그 안에 뜻을 갖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 뜻은 그것은 야훼 하느님의 구원 의지가 담긴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과거를 자꾸 돌아보며 후회하고 예전의 출애굽 전승에 매여 살아가지 말고 이제 새 역사를 열어주시는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는 그 일 새로운 엑소더스의 길에서 더 이상 포로로 살면서 찌질하고 병약했던 삶을 정리하자는 것이고 다시 돌아가지 않도록 앞을 보며 가자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들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들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고 있다.”

 

야훼의 구원행위는 결코 과거에서 마감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일 사이에 연결을 통해 지금 구원의 역사가 연속되고 있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보게 됩니다.

 

오늘 필립비서 또한 미래지향적 의지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만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고 한 것도 아니며 그저 달려갈 뿐이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앞에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그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길에 동참하여 그저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바로!]

 

요한복음 본문도 역시 미래를 보는 힘을 이야기합니다.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바르는 이 이야기는 다소 변형된 형태이긴 하지만 네 복음서에 모두 등장합니다. 요한복음서는 마리아라는 여성의 이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데 특히 마리아가 집회 도중 예수에게 와서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 다른 복음서의 증언과 다른 점은 세 복음서는 비싼 향유를 깬 낭비성에 대해 지적 합니다만 요한복음서는 다른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면서까지 행한 마리아의 행위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예수에 죽음을 예견했을 법한 마음을 가지고 감행한 마리아의 행동은 이제 곧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예수의 길에 그 결과가 어찌되었든 자신이 지금 믿는 그 예수를 향해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미래에 대한 가치를 투자하는 것이었습니다.

 

[끝나지 않은 싸움- 과거로부터 미래로]

제가 교회에서 자주 듣는 말은 우리 교회가 예전에는 이랬다. 청년들이 백명이 넘게 모여서 힘을 냈던 교회다. 그리고 대단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에는 현재가 없을때가 많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가는 것일 텐데 그저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오늘 새 일을 함에 있어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역사의 흐름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새일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오늘 하늘뜻펴기의 제목은 귀향입니다. 모든 고통과 어려움과 죽음의 과정을 거치고 힘겹게 돌아온 구원과도 같은 돌아옴의 자리!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그곳에서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귀향이란 몸만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서 끝나는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상처받고 고통 받은 마음을 함께 달래주고 위로하고 그리곤 현재를 다시 과거의 아픈 기억처럼 살지 않게끔 더 단단히 바로 잡을 때 그곳에서 우리는 새 일을 열 수 있습니다.

 

영화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귀신 신자를 써서 해외에서 위안부로 끌려가 죽은 20만 명의 가엾은 소녀들의 넋이라도 고향에 돌아오게 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씻김굿을 잊을 수 없습니다.억울하게 죽은 혼을 불러 고향에서 함께 만나 위로하며 떠나보내는 장면은 우리가 지금 새 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안내해줍니다.

 

지난과거가 과거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미래까지 연결되어 있는 지금,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현실의 투쟁과 지금도 우리의 발목을 잡고 계속되고 있는 역사의 아픔은 함께 위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지금이 문제에 직면하여 갈 때 그 삶을 이어 이어 살아온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죽을 똥을 싸며 잘 버티셨습니다.”

 

계속해서 형태를 달리하며 일어나고 있는 여성의 성노예문제, 우리의 아이들이 학대로 죽어가며 유린당하는 세상을 미래에도 계속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힘을 내어 새 일을 행하시는 주님의 뜻에 함께 합시다. 함께 모여 새 일을 해나갑시다.

 

이 사순절 기간에 주님의 고난을 함께 한다는 것은 옛날 옛적 예수의 고난을 기억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 이곳저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그 고난을 기억하고 함께 연대해서 새 일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과거를 통해 미래지향적 가치를 일으키는 것, 오늘 주어진 우리의 과제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작업을 열심히 하는 일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파송사

 

[나비되어 날아라!- 권천학]

 

딸아! , 사람의 딸아!

얼마나 춥고 외로웠느냐!

뼈골 수시는 검은 역사의 밤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느냐!

 

오래 걸려 날은 밝았으나

아직도 먼동

어느 한 귀퉁이 그늘 드리워진 새벽이다

그러나 기어코 봄은 왔다

 

무쇠바퀴 달리던 침목 아래 틈서리에서

갸날피 솟아오르는 실뿌리 한 올

그 대궁이에 노란 민들레꽃

피워 올리는구나

 

나물 뜯던 봄 언덕에 나풀나풀

냉이 꽃 피던 보리밭 이랑에 남실남실

바람결 스치기만 해도 볼 붉어지던

딸아!

 

찢어진 치마폭, 가슴의 멍울

어찌 잊을까만, 이제는

피눈물로 여몄던 치마폭 다시 펼쳐

햇살 가득 품어 안으렴

 

그 따스함으로 피멍울 풀어내고

이 봄날

나비되어 화사하게 날아 오르렴

 

딸아!

 

우리 누이야!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과거부터 지금까지 억압받아온 우리의 이웃을 위로하고 연대하며 새 역사를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