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생명력과 혁명성

시편 148; 11:1-18; 21:1-6; 13:31-35

 

[사상의 합류로서의 기독교]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는 철학의 출발 물음이고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는 신학의 출발 물음입니다. 철학과 신학은 동양에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오늘 우리는 서구 기독교를 중심으로 이 주제를 다루기에 철학을 논함에 있어서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고 신학을 논함에 있어서는 제1성서에 기초한 유대교 신학을 의미합니다. 이 두개의 사고(思考) 형태는 각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으로 일컬어지는 서구 사상사의 두 줄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습니다.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오늘날의 대 철학적 주제에 비추어 본다면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으로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변방의 유대교가 오늘날 세계 역사의 중심 세력인 기독교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바로 유대의 헤브라이즘이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정치권력의 틀 안에서 그리스의 헬레니즘을 만나는 사상적 합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합류에 지대한 공헌을 끼친 이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로부터 시작한 갈릴리의 작은 신앙개혁운동이 로마 제국 안에서 어떻게 지역과 민족을 넘어 새로운 신앙공동체로 성장하였는지를 예수를 기억하는 제자들 곧 사도들의 활동을 따라 기술하고 있습니다. 로마 관직에 있는 데오빌로님에게 보내는 두 번째 책이라는 인사말에 이어 부활하신 예수께서 40일동안 제자들과 머물다가 하늘나라로 승천하시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40일동안 무슨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서 루가는 침묵합니다. 다만 하나의 말씀만을 전하는데, 그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의 세례를 기다렸다가 성령이 임하면 땅 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구는 제자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공중으로 날아올라 구름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약간은 허무맹랑한 얘기로 시작하는 사도행전에 대해 대부분의 교회 역사가들이나 신학자들은 여기에 기술된 이야기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초대교회 유일의 기록이니 그 역사적 진정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다만 다른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건 사도행전의 저자가 루가복음을 쓴 같은 사람이기에 루가복음이 다른 세 복음서에 비해서 얼마나 사실적인가 하는 연구 결과를 통해 우회적으로 추론할 수는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서학자들은 4복음서 가운데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진정성을 놓고 얘기할 때, 루가복음을 가장 정확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루가가 다른 복음서 저자와는 달리 데오빌로 각하라는 로마의 관원에게 보내는 보고문 형식으로 시작하면서, 자신은 지금 예수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수집하여 객관적 사실에 따라 편집하였으니 다른 사람의 글보다는 자기 글이 더 정확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루가는 그 직업이 의사이니 더 더욱 객관적으로 기술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의사가 다른 직업군의 사람보다 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어떤 근거에서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상당수의 성서신학자들은 그런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간 이런 주장들을 거의 비판 없이 받아들여 왔는데,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지 44년이 지난 오늘 저의 신학적 결론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입니다.

 

사실 성서의 비신화화를 주창한 20세기의 거목 신학자 불트만이 주장한대로 복음서는 후기 제자들의 신앙고백서이지 사실을 그려내고자 하는 역사 기록물이 아니기에 복음서의 역사성에 대한 질문은 그리 타당한 질문은 아닙니다만, 사도행전의 역사성을 알아보기 위해 네 개의 복음서를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세미나와 복음서의 역사성]

 

30년 전 미국에 예수세미나라 불리는 역사적 예수를 탐구하는 수십 명의 학자들이 모여 약 5년간의 토론 과정을 거쳐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의 말씀을 역사사실의 진정성에 따라 4가지 색깔로 구분한 복음서를 펴내어 논란의 중심에 섰던 적이 있었습니다. 빨강색은 예수가 실제 말을 했거나 또는 아주 비슷한 말을 했다고 보는 것이고 분홍색은 아마도 예수가 이와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회색은 예수가 직접 한 말은 아니겠지만, 예수의 생각을 담고 있다고 보는 것이고 검정색은 예수의 말이 아닌 후대에 첨가된 말씀으로 간주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의 말과 행적의 82%가 검정색으로 분류되었으며 오직 1.6%만이 빨강색 곧 진정한 예수의 말로 간주되었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은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 주고, 누가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주어라 하는 원수 사랑의 말씀과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는 말씀 등등입니다. 결론으로 역사적 진정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 빨간색과 분홍색은 18%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몇몇의 학자들은 진리의 말씀을 이렇게 확률과 통계로 분류하는 일은 마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정도를 도표로 정리하여 누구의 사랑이 더 진실되다고 말하는 것처럼 역사적 실증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일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보면 과학적 사고를 하는 현대의 신앙인들이 성서를 읽다가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가셨다든가 혹은 갑자기 눈부신 모습으로 변모가 되시어 공중부양하여 구름 속에 떠 있는 상태에서 제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읽게 되면 이게 정말 사실인가 하는 질문은 피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기적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사실로 믿으라고 강요를 하면 그들은 교회를 비이성적인 무식한 집단으로 단정을 하고 교회를 떠나는 일이 생깁니다. 전체를 못 믿겠거든 부분이라도 믿게끔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전체를 믿지 못하는 믿음을 잘못된 믿음으로 비난함으로 교회를 등질뿐더러 적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를 떠나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에 대한 믿음은 있지만, 갈 교회가 없어 출석을 하지 못하는 가나안(=안 나가) 성도가 백만 명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분들이 교회 외곽을 돌 수밖에 없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 획일화되고 교조화 되어 자신들의 신앙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호와 교회의 책임]

 

모태 신앙인 세월호 유가족들 가운데, 교회를 떠난 분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그건 일부 목사들의 비상식적인 발언도 문제가 있었지만,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동영상에 배가 급속도로 기울어져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정작 필요한 기도는 무릎 꿇고 손 모으고 입으로 간구하는 기도가 아닌, 왜 배가 자꾸만 기울고 밖은 소란스러운데, ‘가만있으라고 방송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문밖으로 나가 확인하는 행동의 기도가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그들은 교회를 다니면서 그런 행동의 기도를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위태할 때는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느님이 응답하신다고 배워온 것입니다. ‘구하라 구할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는 이 말씀은 전연 그 맥락이 다른 말씀인데, 이렇게 배운 것입니다. 목사가 가르치는 대로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것이 참 믿음이라고 배워온 것입니다.

 

서로 다른 이성의 기준에 따라 판단의 다름이 허용되는 다양성의 믿음을 배워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교회에서 가르친 믿음이 그들을 배와 함께 수장시킨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전히 개인의 자유로운 토론에 기초한 교육이 아닌 명령과 지시의 획일화된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사회는 어떠한가요? 일단 튀면 안 됩니다. 튀면 회사에서 왕따 당합니다. 정부지침에 이의를 제기하면 빨갱이로 몰립니다. 가끔 식당에서 한 이십여명 되는 회사원들이 일제히 술잔을 들고 상당히 긴 구호를 일사분란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면 저건 군인들이지 회사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데, 외국인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모습입니다. 그만큼 우리 의식과 사회가 획일화/병영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어제 한겨레신문 1면에는 기독자유당 대표 목사들이 개표에 앞서 손을 들고 통성기도하는 사진을 실고 거기에 제목을 혐오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붙였습니다. ‘동성애차별금지법 반대와 간통죄 부활과 이슬람 반대를 정당 구호로 내세워 2.7%, 또 다른 기독당의 표를 더하면 3%가 넘은 표를 얻은 것입니다. 이번에 국회에 진출한 4개 정당을 뺀 나머지 당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환경과 노동 그리고 남북화해를 구호로 낸 진보정당의 표보다 예수 이름으로 배제와 차별을 구호로 내건 기독교정당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는 것은 오늘 남한의 기독교가 얼마나 교조화 되어가고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일부 교인들끼리는 점점 단단해지는 길이 되겠지만, 크게 보면 모르지만, 몰락으로 가는 첩경입니다.

 

[복음의 다양성과 역사성]

 

저는 초대교부들이 제2성서의 정경화를 논의할 때, 단 하나의 복음서가 아닌 4개의 복음서를 선택했다는 사실에 상당한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4개의 다양한 관점을 다 옳은 것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하나가 아닌 다양성을 인정한 것이고 예수의 믿음을 어느 것 하나로 절대화 시킬 수 없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물론 그 이후 삼위일체교리에 있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이단으로 처단한 것은 신앙의 진리 때문이 아니라, 로마의 국가권력과 한통속이 된 교회 권력 투쟁으로 인한 결과였습니다.

 

네 개의 복음서의 사실성에 대한 저의 답은 마르코 마태 루가 요한의 순입니다. 요한복음은 한 구절도 빨간색과 분홍색을 얻지 못했으니 등수 밖이고 마르코는 가장 먼저 씌어졌으니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마태나 루가가 마르코를 주요 텍스트로 놓고 기술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비교는 마태오와 루가입니다. 둘 다 같은 자료인 마르코복음서와 예수의 어록자료인 Q 복음서 그리고 자신들이 수집한 특수자료를 갖고 자신들의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마태오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루가는 비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각각 자신만의 복음서를 기술하였습니다. 여기서 Q 복음서가 뭔지 혹은 특수자료가 무슨 말인지 모르는 분들은 다음 학기 성서배움반에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루가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는 반면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덧붙인 것을 보아 루가가 마태보다 더 사실성이 짙다고 말합니다만, 저는 전체적으로 보면 마태가 루가보다는 더 사실적이라고 봅니다. 둘 다 자신의 신학에 따라 예수 이야기를 재편성한 것 맞지만, 루가가 마태보다는 이야기 각색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라든가 돌아온 탕자의 얘기를 보면 그가 상당한 이야기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루가는 바울이 부활 예수를 만나 변화되는 다마스쿠스 도상의 경험 이야기를 세 번이나 기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는 상반된 사실들이 있습니다. 경험이 하나이면 그 경험 이야기 또한 하나여야 하는데, 세 개가 조금씩 다른 것은 상황에 따라 사실을 달리 설명하는 이야기꾼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신학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루가는 우선 어머니 마리아의 시선을 담고 있는 예수의 어린 시절의 얘기라든가 마르타와 마리아의 자매 얘기 등등 다른 복음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여성적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른 세 복음서가 예수운동의 근거지를 갈릴리로 보는데 반해 루가는 예루살렘을 고집합니다. 결국 루가는 자신의 복음 서두에서 밝힌 대로 사실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실은 자신의 이야기 신학에 더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역사 객관성에 대한 결정적인 약점은 사도바울 한 개인에게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베드로와 스데반 등등의 다른 사도들의 얘기가 나오다가 중반을 넘어서면 다른 사도들은 모두 역사에서 사라지고 홀로 바울만 남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보면 자기 외에 아볼로와 브리스길라를 비롯한 수많은 복음 활동가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사도행전을 초대교회의 역사 기록물로 보기 보다는 교회의 근본에 대한 신학적 서술로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구절과 단어 하나하나에 매달려 어떤 분석을 하기 보다는 이야기 전체를 그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통섭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혁명성]

 

그는 교회의 출발을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승천 이후 50일째 되는 날 예수의 제자 120명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말하는 통역의 은사를 받게 됩니다. 이는 곧 바벨탑 심판 사건 이래 언어의 혼잡으로 나뉘어 불통하였던 세계 모든 민족들이 예수 안에서 서로 소통하고 하나로 통합된다는 탈민족 탈국가의 선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곤 그들은 거리에 나와 외칩니다. 너희들이 하느님이 보낸 아들갈릴리 예수를 죽였지만, 그분은 부활하셨다. 바로 우리가 그분의 삶을 재현하는 그분 안에 거하는 부활의 존재들이라고 외칩니다. 국가권력이 입 닥치라고 계속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매질하고, 감옥에 가두어도 계속 외칩니다. 그리곤 그들은 가진 것을 내어 놓고 함께 소비하는 공동체로 나아갑니다. 결국 권력에 대한 저항, 소유와 경쟁의 사회체제에 대한 반동으로 예수 공동체가 시작하고 있음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국가권력과 유대교 기득권자들은 저들을 이단으로 박해합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로 다마스쿠스로 안디옥으로 번져 나갑니다.

 

오늘 본문은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정통을 따르는 예수따르미 주류파가 베드로를 비난하는 얘기로 시작합니다. 왜 율법을 어기고 할례도 받지 않은 로마의 군대 백부장인 고넬리오의 집에 가서 그와 그의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함께 식탁을 나누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 베드로는 기도 속에 보았던 환상에 대해 말합니다. 이 환상 얘기는 매우 자세하게 이미 10장 전체에 걸쳐 길게 얘기해 놓고 또 다시 11장에서 반복합니다. 그건 이 얘기가 사도행전 아니 초대교회의 출발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베드로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바구니 속에 들어있는 동물들을 먹으라고 얘기하고 베드로는 모세 율법이 정한 부정한 동물들이니 먹을 수 없다고 답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됩니다. 이는 구원은 아브라함의 피를 이어받은 자손들에게만 해당된다는 모세 율법의 구원의 틀에서 해방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곤 베드로는 고넬리오 집안에 모인 그의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곧 로마 시민 수십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러자 마가의 다락방에 내렸던 같은 성령이 그들에게도 내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 또한 하늘의 화해의 언어를 말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이고 이는 곧 탈민족 탈국가의 모든 민족의 근원은 하나임을 선포하는 새 역사 주인공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던 장소는 가이사리아 로마의 군단이 거하는 곧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핵심도시였습니다. 유대인이 생각하는 세계와 역사 중심인 예루살렘 그리고 로마인이 생각하는 역사 중심인 가이사리아에서 성령 방언사건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동시에 일어난 것입니다. 중심에서부터 예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것이 루가가 말하는 초대교회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초기 교회 공동체가 행했던 일들은 단순한 교회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재산의 공동소유와 필요에 따른 소비의 사랑나눔 공동체, 핏줄과 민족에 따른 구별과 차별을 거부하고 모두가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이 선언은 제국내의 백성들을 귀족과 시민, 평민과 노예 등으로 구분하는 차별의 질서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던 로마제국의 통치체제를 근본에서부터 뒤집어엎는 혁명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국가 기득권의 체제를 바꿔나가는 혁명 안에 교회의 생명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교회는 국가권력과 한 배에 탔고, 이후 서구 기독교는 양적으로는 급성장을 했지만, 예수 정신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는 계속 후퇴를 했습니다. 그래 우리는 그 시기를 암흑기라고 부릅니다. 교회 권력이 국가 권력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까지 짓누르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루터와 칼뱅 이래 이런 저항과 혁명의 정신이 조금씩 회복되기는 했지만, 워낙 오랜 세월동안 지배권력과 함께 해온 교회이기에 한계가 역력했고, 지금도 서구 기독교는 이 점에서 정체상태입니다. 이후 제3세계에서 해방신학 민중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 등의 외침을 통해 예수의 갈릴리 저항 정신을 회복해가고는 있지만, 초대교회의 그 혁명 정신을 회복하기까지는 아직도 요원합니다.

 

루가가 그리는 새 역사의 출발 곧 예수공동체로부터 시작하는 역사 변혁의 생명력은 그 숫자의 많음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차별 없이 모인 소수자에게 임한 성령의 역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루가는 단순히 초대교회 역사를 기술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역사 주체 의식을 지닌 소수자의 저항을 통해 탈유대민족 탈로마제국의 혁명이 실현되어가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 것입니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도 하느님이 함께 하실 때에 그건 바위가 아닌 하나의 계란에 불과함을 선언한 것입니다. 저는 이 루가가 그리고 있는 이 역사변혁이 오늘 이 남한 사회에서 이제 곧 창립 63주년을 맞이하는 향린교회를 통해 계속 성취되어 가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혼자 꾸는 꿈은 그냥 꿈으로 끝나지만, 함께 꾸는 꿈은 역사가 된다는 말씀을 기억하며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