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51() 어린이주일 하늘뜻펴기

 

도무지 알 수 없음대하여

(사도행전 16:9~15, 시편 67:1~3, 요한묵시록 21:22~22:5, 요한복음 14:27~31)

 

고상균

 

저에게 지난 한 주는 한 마디로 참 이상했습니다. 우선 무척 화창하기는 한데 누런 황사 때문에 밖으로 나가기가 겁났던 날씨가 참 이상했고, 어린이 주일이기는 한데 영 상관없어 보이는 오늘의 성서본문이 또한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고백을 하나드리자면 이 절기와 상관없어 보이는 본문 때문에 조 목사님께서 저에게 오늘 하늘뜻펴기를 맡으라고 하셨나하고 약 10초간 의심도 했었습니다(조 목사님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지난주가 저에게 주었던 이상함의 끝은 아직도 그 특유의 웃음소리가 선명하게 귓가에 남아있는 교우 한 분이 거짓말 같이 하늘 길에 오르셨던 일이었습니다.

그 분은 왜 그리 갑작스레 가셨을까? 일반적인 기독교교리 속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획 하신다는데, 그럼 이건 무슨 계획이고 어떤 뜻인가? 이렇게 참 이상한 느낌으로 시작했던 한 주는 이렇게 도무지 알 수 없는 느낌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알 수 없음의 마음으로 들여다 본 오늘의 성서본문에는 또 그만큼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바울로의 무모한 도전]

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사도행전 169b)

오늘 함께 모신 하늘말씀의 사도행전은 바울로의 유럽선교활동, 그 처음을 그리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포함한 사도행전의 전체내용 속에서 바울로는 프리기아와 갈라디아 등 지금의 터키 중부 내륙 일대를 다니며 예수신앙공동체 조직을 도모했던 직후였고, 이후에는 비티니아, 즉 남부 흑해연안 지역으로 북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와 같은 선교여정은 소아시아 일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이 일대의 패권 국가였던 로마의 주도(州都) 등 각 지역의 주요도시들을 연결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해당지역에 견실하게 형성되어 있던 유대교 디아스포라와 회당을 예수신앙공동체 전파의 교두보로 삼고자 했었던 바울로의 의지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막 첫걸음을 딛기 시작했던 예수신앙공동체의 특성상 그()들의 연원이 되는 유대교와 경전 및 과 신앙생활 등에서 차이보다는 유사점이 많았을 것으로 볼 때, 바울로에게 있어 소아시아 지역 주요도시마다 건설되어 있었던 유대교 공동체는 소중한 선교기반으로 인식되었을 것입니다. 또 바울로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성장한 유다인이며, 무엇보다 가말리엘이라는 유력한 랍비의 문하생이었던 점도 이와 같은 결정의 주요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가 돌연 행로를 안정적인 소아시아지역에서 바다건너 유럽으로 변경한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유럽은 페르시아 통치 시기부터 유대교 디아스포라가 확고하게 형성되었던 이집트 등 아프리카와 앞서 설명 드린 소아시아 지역 등과는 달리 유다인들의 진출이 아직 많지 않았고, 당시 지중해 일대에 있어 가장 앞선 문명이라 자임했던 그리스-로마의 종교와 사상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동방의 신()종교, 그것도 신앙의 대상이 참 찌질하게도 고난 받고 죽었다는 내용을 가진 교리를 포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의 회심사건으로 대표되듯 바울로에 대해 매우 확고했던 생각을 급격하게 방향수정하는 인물로 묘사하고 있는 루가복음-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바울로의 선교여정의 급격한 변경에 대해서도 아시아로 가는 것에 대해 예수의 영에 의해 막혔고, 이후 유럽으로 와서 도와달라는 신비체험이 이유였던 것으로 적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역사적 바울 연구단위에서는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었던 그리스어 활용에 의한 필연성과 예수의 직계 제자를 자임하는 사도들의 권위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선택이었을 가능성 등을 제기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가 어떠하였든지간에, 안정적인 활동기반을 버리고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공간으로의 도전은 바울로에게 있어 분명 큰 위기였을 것이고, 이에 따라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사도행전의 유럽선교 초반 이야기 속에서 필립비에서는 투옥되고, 아테네에서는 아레오파고스 언덕 위 즉결심판에 회부되는 등 아시아 지역에서의 승승장구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이와 같이 녹록치 않았던 초기 유럽선교 상황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해 할 수 없는 바울로의 유럽선교는 그대로 실패하고 말았을까요? 그곳에서 바울로는 어떤 상황을 만나게 되었을까요?

 

[요한 공동체의 무모한 도전]

 

이제 그 도성에는 밤이 없어서 등불이나 햇빛이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 (요한묵시록 225)

 

두 번째 만나는 본문은 요한묵시록의 종결구 초입입니다. 여기에서는 신앙과 정의를 지킨 이들에게 가해졌던 환란이 끝나고 마침내 만나게 된 새 하늘 새 땅의 모습을 감격스레 기술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땅, 완전한 세상.......하지만 무언가를 바라고 염원한다는 것은 갈망하는 그것의 결핍에서부터 온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영원한 빛이 비춰주는 도성, 풍성한 생명의 강과 생명나무 우거진 거리는 그 찬란한 이미지와는 달리 무언가 어둡고 불안합니다. 또한 이는 요한묵시록의 작성 시기, 즉 주후 81년 등극했던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재위 후반부, 내분에 빠져가는 제국을 통일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제국종교를 강요했던 상황을 유추해볼 때 더욱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이 시기 황제숭배가 애국의 이름으로 유포되었고, 응하지 않는 이들을 반역자로 낙인찍고는 제국 전역에서 처단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황제숭배와 침략전쟁에 동원되는 군대 징집에 반대했던 당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박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와 같은 박해는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아버지였던 베스파시아누스가 자신을 주님, 혹은 구원자로 부를 것을 전 국민들에게 강요했던 것을 계승 및 확대시켰던 것으로, 피해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대를 이은 황제에 의해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명박을 지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과 같다고 할까요? 아무튼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악화되는 상황, 그런데 오늘의 본문과 같이 요한묵시록은 난데없이 희망 넘치는 새 하늘 새 땅의 대망을 선언하고 나섭니다. 그 속내를 모두지 알 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박해 끝에 현실을 직시할 수 없을 만큼 이성이 마비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일까요? 당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주어진 상황과 동떨어졌다 싶을 만큼 느껴지는 이 알 수 없는 희망은 요한복음의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제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로 헤어짐을 암시하고 있는 본문에서 난데없이 평화라니요! 게다가 세상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그 평화를 통해 기껏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정도라니요! 권력자에 의해 공동체를 이끌어 주시던 스승이 살해될 상황에서 선언되는 평화라는 단어 자체가 어울리지도 않지만, 무서워하지 않는 정도라는 것이 너무 연약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요? 정말이지 도통 알 수 없습니다. 성서 속 이분들은 정말 왜들 이러시는 것일까요?

여러분들께서 익히 알고 계시듯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과 달리 기도와 같은 일반적인 종교용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또 여타의 복음서에는 없거나 비중이 없는 존재, 주님의 사랑하시는 제자가 매우 비중 있게 등장하고 있는 점도 특이합니다. 다른 복음서 모두가 기술하고 있는 주님의 만찬장면이 삭제되어 있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요한복음이 2성서에 포함된 복음서 중 가장 후대에 기록되었음을 생각해 볼 때 이는 명백히 의도적 삭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때로부터 약 80여년 이후, 그리고 바울로의 사후 약 40여년이 지난 지중해 일대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지역별로 자립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데 성공한 경우도 있었고, 성찬 등 기본적인 종교의례가 정립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외적성장의 이면에는 권력과 자본에서 우위를 점한 이들에 의해 예수 신앙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거나 권위를 소유한 이들로 인해 종교의례가 독점되고 이에 따라 공동체 내부의 계급화, 권위주의화가 이루어져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또 유다의 대()로마 독립전쟁이 패배한 이후, 디아스포라 별로 생존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던 유대교 공동체는 같은 하느님을 신앙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해 자기 밥그릇을 빼앗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을 가졌고, 이는 곧 자신의 공동체 내에서 나자렛 을 찾아 축출하거나, 지역 집정관에게 송사를 제기하는 등의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요한신앙모임은 변질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 및 대립하는 유대교 디아스포라 모두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유대교 절기 중 유월절 식사 제의에서 출발하며, 종교 권력자들에 의해 독점되어갔을 성찬의식은 의도적으로 삭제되었고, 그 자리를 대신해 예수의 세족 이야기가 기록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극적인 소수공동체의 진로가 순탄할 수 없었을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겠지요. 요한공동체가 안팎으로 직면했었을 상황은 오늘의 본문에서 읽혀지는 결연함에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스승을 시해하려는 권력자가 임박한 시점, 그 앞에서 두려워하거나 떨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는 본문은 그 이야기의 말미에서 마치 출정식의 선언과도 같이 외칩니다. ‘! 일어나 가자!’ 요한복음 본문에서 말하는 평화는 이처럼 세상과 동떨어져 유유자적하는 평정이거나, 어려움에 대한 진공상태에서 찾아오는 편안함이 아니라, 임박한 고난을 회피하지 않으려는 의지이고, 극복하는 행동가운데 찾아내는 희망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의 무모한 도전은 성공했을까요?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공동체 내·외부 모두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소수공동체의 복음서와 글들이 요한복음, 요한1,2,3, 요한묵시록 등 다수의 요한계 문헌으로 남아 2성서에 대거 포함되었다는 점인데요, 이는 요한공동체가 어려움 속에서도 멈춤 없이 자신의 활동을 이어갔던 결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는 당시의 요한들권력자들의 압박 속에서도 쫄지 않을 만큼의 평화를 가졌던 결과일 것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처음에 살펴보았던 바울로의 이해 할 수 없는 유럽선교는 앞서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숱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그 다음의 희망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을 때, 위대한 여성 동역자, 필립비의 리디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민 중장년 남성들만이 사람으로 인식되던 당대의 정황 속에서 채색된 옷감사업이라는 사회적 활동과 함께 자신의 신앙결단을 통해 주도적 활동을 이어갔던 리디아는 별도의 전기를 써야할 만큼 중요한 인물입니다.(정교회에서는 성인으로 추대되어 있습니다) 결국 표류할 수밖에 없었을 바울로의 무모한 도전은 리디아와의 만남을 통해 큰 힘을 얻게 되고 마침내 그리스 지역의 공동체 설립이라는 성과를 얻게 됩니다.

 

[방정환의 무모한 도전]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지난 선거결과가 위협받는 민주주의로 인해 찌푸려진 여러분의 미간에 약간의 미소를 주었다고는 하지만, 녹색당과 노동당 등 의미 있는 소수정당들이 위기론과 사표심리 앞에서 저평가되었고, 선거 이후에 제1야당은 소위 선거승리(?)에 대한 논공행상이 내분상황으로까지 비쳐지고 있으며, 2야당은 자신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 여당이 국회의장직을 가져가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등 빼앗긴 들에 아직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겨울을 넘긴 기아자동차 고공농성장 두 동지의 웅크린 잠은 삼백일 밤을 훌쩍 넘어갔고, 대한민국 곳곳의 노동현장은 용역의 침탈위협에 시달렸으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분이 계실 세월호는 인양도 되지 못한 채 원형 훼손의 위험성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어둡고 불안한 시대에 어찌 보면 어린이라는 존재자체가 알 수 없음의 역설이라 여겨집니다. 늘상 어른들이 말하는 어린이란 꿈을 직한 존재이고 희망을 품고 있는 이들일 것인데, 이토록 작은이들의 꿈이 자본과 권력에 의해 짓밟히고, 오늘보다는 조금 더 밝은 내일에 대한 희망 역시 정치꾼들의 주사위놀음에 위협받는 상황 앞에서, 그럼에도 꿈과 희망을 간직한 인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대에 미숙한 노동력정도로 치부되던 당시, 그 존재들이 미숙한 어른이 아니라 크게 자라날 어림’, 혹은 새롭게 큰 것을 지어낼 어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의미의 어린이라 선언했던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도전은 앞서 언급해왔던 본문 속 도무지 알 수 없을 만큼의 무모한 도전들과 닿아있다 여겨집니다. 공교롭게도 올해 어린이주일은 노동절과 같은 날인데요, 따지고 보면 최초의 어린이날도 51이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척 자연스러웠던 어린이 노동의 현실을 고발하고 이들에게 쉼이 주어지는 것이 곧 어린이인권의 출발이라는 것을 천명했던 소파선생의 의지였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을 그의 도무지 알 수 없는 행동은 언제가 끝일지 알 수 없는 식민지배 체제 속에서 희망을 향해 멈춤 없이 내딛은 한 걸음이었고, 이는 오늘의 본문에서 살펴보았던 여러 사람들의 희망 품기와 만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고산 지대에서 산소의 소중함을 알게 되듯, 따뜻한 위로와 진정한 평화는 지극한 슬픔의 자리와 정말 평화롭지 못한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희망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황으로 인한 안타까움과 슬픔, 속상함과 염려가 자리하고 있다면,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이야말로 진실한 위로를 가슴 시리게 느끼고, 희망을 품을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또 여러분들이 살고 계신 삶의 자리와 세상에 대해 속상함과 절망감을 느끼신다면,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아파하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함께 희망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박경희 교우와 잠시 이별했습니다. 이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우리는 2년이 다 되지 못했던 그 이의 교회활동이 각종의 소모임, 여러 성서배움마당, 신도회, 생명선교위원회, 봉사부, 교육부 들살이 식사도움 등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는 것에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어쩌면 그 이는 그와 같은 활동을 통해 이 공동체 안에서 희망과 만나게 되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은 역설적으로 박 교우님의 부재 속에서 그 분과 함께 했던 소중함과 우리 자신들이 이 공동체 함께 속해있음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 것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것은 어떤 인과관계 속에서 생긴 결과도 아니며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그것은 홀연히 우리에게 찾아온 손님입니다. 이제 그 손님을 잘 직면하고 보내는 일이 우리들 모두에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알 수 없음이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제 안타까움 너머의 희망과 존재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있는 어린이들을 생각하며 주보 목회마당에 적혀있는 어린이주일 공동기도문을 읽겠습니다.

 

침묵기도 드리겠습니다.

 

 

 

마음이 아프신가요?

무척 상심하셨나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나 싶으신가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직면하는 성찰가운데 애도된 그 손님은 떠나갈 것입니다.

도무지 알 수 없음 너머의 희망을 향해

그 희망을 염원하는 이들과 더불어 나아갑시다.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이제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가

우리 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