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사랑의 유산

16:16-34; 97: 22:12-14,16-17,20-21; 17:20-26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버이주일이자 동시에 58일은 우리 정부가 정한 어버이날입니다. ‘어버이연합으로 인해 어버이라는 세 글자 단어가 혐오의 공작정치와 2만원 일당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를 결합한 이 순수 우리 말 어버이라는 말은 500년 전의 송강 정철의 시에도 등장하는 옛 말입니다.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것은 이뿐인가 하노라

 

[어머니날 제정의 이유]

 

우리나라의 58일 어버이날은 어머니날을 변경시킨 것인데, 현재 어머니날을 지키는 나라가 169개국이라고 합니다. 반 이상의 나라가 미국을 쫓아 5월 둘째주일에 지키고 있습니다. 어머니날의 시작은 미국 남북전쟁이 끝난 지 3년째인 1868년 앤 자비스라는 여성이 전쟁으로 인해 자식이 다쳤거나 죽은 어머니들끼리 위로하는 모임으로 어머니들의 우정의 날을 시작한 것이 동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자비스의 딸 애나가 190559일 어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웨스트버지니아의 교회에서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임을 만들었고, 이것이 각지로 퍼져나가자 1914년 윌슨대통령이 전사한 자식을 둔 어머니들을 기리는 날을 정한 것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냥 어머니를 기억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자식이 다치거나 죽은 어머니를 기억하는 곧 다시는 이와 같은 어머니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고 하는, 곧 전쟁을 하지 말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순되는 것은 그렇게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처음 어머니날을 제정한 미국이 지금은 세계 대부분의 전쟁에 직간접으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해가 세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한 해라는 사실입니다.

 

[어버이날 제정 이유]

 

그런데 어머니의 날을 지키는 나라 중 상당수가 아버지의 날을 따로 지키지 우리와 같이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합쳐 지키는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인 1956년에 58일을 어머니날이 처음 시작하였는데, 1973년 박정희가 이를 어버이날로 바꾸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 생각이 되지는 않습니다. 박정희의 아버지 박성빈씨는 조선 후기 몰락한 양반 무장 출신으로 작은 벼슬자리를 거부하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했다 체포를 당했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후 일본의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다 죽습니다. 추측컨대 나라에 대한 충정심이 깊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박정희가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일제의 철저한 앞잡이가 된 것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박정희의 가족 얘기나 과거사는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박정희가 일본 육사 출신으로 천황에게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독립군과 전투를 벌이는 더러운 과거 그리고 셋째형 박상희가 열렬한 공산주의자였고 그를 무척 따랐던 박정희 또한 공산주의자로서 여순사건이 일어났을 때에 주동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자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동료들을 팔아넘겼던 어두웠던 과거사로 인해 그때나 지금이나 박정희의 과거나 가족 얘기가 언론에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뀌는 1973년은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꿈꾸고 유신헌법을 공포한지 몇 개월이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결국 이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국민교육헌장과 더불어 자신을 국부(國父)로 만들기 위한 일종의 국민노예화 의식작업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뀌게 된 이런 역사적 배경을 알고 나면 기분이 그리 썩 좋지는 않습니다만, 오늘날 자식 사랑은 지나친 반면 부모님에 대한 효는 점점 식어져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필요한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날을 정해 무언가를 기념한다는 것은 그 정신이 식어지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이 폐지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랍니다.

 

어버이날에 부모님은 어떤 선물을 가장 반길까? 어떤 교육시민단체는 손편지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삐뚤삐뚤하지만 정성을 담아 꼭꼭 손으로 눌러쓴 편지가 감동의 선물로 제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5월 내내 부모님께 손편지 쓰기행사를 2년 전부터 진행하여 왔는데, 첫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첫 행사 때는 1700여명이 참여했지만 지난해 중고생을 대상으로 하니 29명으로 급감했다고 하는데, 이는 손편지 대신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 여러분 아직 손편지를 못 보내신 자녀들은 지금이라도 문자메시지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건 자녀들 입장에서 하는 얘기이고 부모님들이 가장 바라는 선물은 다른 것이라고 합니다. 한 생명보험회사가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현금이 56%로 단연 1위였고, 손편지는 18%였습니다. 이어 효도관광, 가전제품, 공연 영화 순이었는데, 카네이션을 택한 응답자는 1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성서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얘기할 때,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을 자주 언급합니다. 애굽 땅에서 총리가 된 요셉의 인도로 가나안에 살고 있던 그의 아버지 야곱과 70명의 가족들은 기근을 피해 애굽의 고센땅에 정착하게 되지만, 400년의 세월이 흘러 이 야곱의 후예들은 애굽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여기에 모세가 태어나게 되는데, 때는 애굽왕 파라오가 히브리족의 남아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던 때였습니다. 어머니 요게벳은 이때 지혜를 발휘하여 파라오의 딸이 나일강에 목욕을 나온 시기에 맞춰 아기 모세를 바구니에 담아 물에 띄워 공주의 눈에 들게 만들고 여차저차하여 그의 유모가 되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성서에는 그려져 있습니다.

 

비평적 입장에서 읽어보면 태양신의 딸인 공주가 일반 백성들과 어울려 나일강에 목욕을 하러 나온다는 얘기는 물론, 어떻게 처녀인 공주가 아이를 입양하고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 아버지가 죽이라고 명령한 히브리 노예 남아를 입양할 수 있었다는 것인지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많은 질문이 생깁니다. 이는 노예 출신인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띄우기 위한 설화자의 뜻이 반영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오랜 세월동안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회자되면서 유대인들의 민족의식 형성에 핵심 이야기로 자리잡아갔는데, 여기에 이 얘기가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은 단군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질문은 아닙니다.

 

이 설화가 말하자고 하는 것은 모세는 위기 속에서 하느님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그리고 애굽 궁정에서 교육을 받아 파라오와 맞먹는 사람이고 그러나 유모 역할을 하는 요게벳 어머니를 통해 야훼 신앙과 비록 지금은 노예이지만, 본래는 자유를 찾아 나선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히브리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서는 모세 배후에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름은 족보에는 나오지만, 이야기 속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들의 배후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 어머니는 매우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건 성서가 그러하듯이 유대 가정은 남성/아버지 위주입니다. 아버지가 집안의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디아스포라 시대가 시작된 이후 유대인들이 비유대인과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자주 생겨납니다. 이때 자녀가 유대인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이 생기는데, 이때 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동으로 유대인으로 간주되지만, 어머니가 비유대인인 경우에는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쳐 유대인이 됩니다. 이는 그만큼 신앙교육에 있어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얘기입니다.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의 신앙을 얘기할 때에도 할아버지 아버지 얘기는 없습니다.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의 믿음의 영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아버지들이 나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구나 하고 생각하신다면 이는 큰 오산입니다.

 

[믿음의 유산]

 

미국의 개척사에 보면 18세기 초 두 명의 영국 젊은이가 청운의 꿈을 안고 신대륙이라 불리는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마르크 슐츠와 에드워즈 조나단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슐츠라는 사람은 부자가 되기 위해 왔고, 조나단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왔습니다. 그래 실제 슐츠는 뉴욕에 술집을 차려 당대의 유명한 부자가 되었으며 에드워즈는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어 당대 유명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150년이 지나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는 이 두 집안의 5대 자손들의 일생을 한번 추적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부자가 되어 많은 재산을 남겨준 슐츠는 5대에 걸쳐 1062명의 자손을 두었는데, 교도소에서 5년 이상의 형을 산 사람이 96, 창녀가 된 사람이 65, 정신이상, 알코올 중독자가 58, 자신의 이름도 쓸 줄 모르는 문맹자가 460, 정부의 보조를 받아서 살아가는 극빈자가 286명이나 되었습니다.

 

반면 조나단은 프린스턴 대학을 당대에 설립하고 5대를 내려가면서 1394명의 자손이 나왔는데, 이중 예일 대학교 총장을 비롯한 교수, 교사가 56, 선교사 목사가 116, 군인이 76, 정부관리가 80, 문학가가 75, 실업가가 73, 발명가가 21, 부통령이 한사람, 상하의원 주지사가 나왔고, 장로 집사가 286명이었습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가 자식에게 남겨주는 최고의 유산은 믿음의 유산이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이 고생하지 않도록 재산을 남겨주려는 것은 대다수의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산이 내 자손들에게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슐츠의 경우마냥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아 우리 부모님들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보야 할 주제입니다. 모두가 자식들에게 뭔가를 남겨주기 위해 애를 쓰는데, 정작 주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서독에서 동독으로 넘어간 목사 딸]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1954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기 전 270만 명의 동독인들이 자유를 찾아 서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때 반대 방향으로 서독에서 동쪽으로 떠나가는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호르스트 카스너’(Horst Kasner)라는 루터교회 목사의 가족이었습니다. 동독의 많은 목사들이 공산주의 박해를 피해 서독으로 이주함으로 동독에 목사가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한 것입니다. 당시 그에게는 함부르크에서 낳은 겨우 6주가 된 유아가 있었습니다. 이 갓 태어난 아기를 데리고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동독으로 간다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동독으로 갔던 딸이 지금 통일 독일을 이끌고 있는 3선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입니다.

 

공산주의 치하의 시골 교회에서 자란 소녀가 현재 통일 독일의 최고 지도자가 되어 유럽의 경제 위기 극복과 세계 정치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중동의 난민들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건 시대를 역행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믿음 유산입니다. 시대의 가치나 풍조에 역행하는 일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역경이 개인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하느님의 뜻 실현을 위한 일일 때, 거기에서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나방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네 번의 허물을 벗는 힘겨운 과정이 있고, 뽕나무 잎을 먹고 만든 자신의 집인 단단한 고치를 뚫고 나오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한 곤충학자가 고치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핀으로 구멍을 넓혀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나방이 쉽게 나오긴 했는데, 날지를 못하고 그만 땅에서 허덕이다 곧 죽더라는 겁니다. 작은 구멍을 헤집고 나오는 극기의 과정 속에서 어께죽지에 힘을 기르게 되고 그래서 하늘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온실에 자란 식물이 밖으로 온실 밖으로 쉬이 시들듯이, 너무 편한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물론 지금의 헬조선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젊은이가 꿈을 펼쳐나가기에는 엄청난 벽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여 이기는 세상 가치를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부조리한 세상 변혁을 위한 삶을 펼쳐 보겠다는 생각을 갖고 도전한다면 얼마든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다. 지금 금수저를 타고난 아이들이 조기교육과 엄청난 자금의 교육투자를 통해 그래서 올라간 최종 자리가 어디입니까?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료, 법관 아니면 1류 기업의 중역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단 성공했습니다. 명예도 지위도 부도 권력도 어느 정도 얻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 결국 무엇입니까? 독재 국가권력에 한패가 되어 자유를 외치는 백성들을 억압하거나 외세에 아부함으로 민족정기를 흐리거나 아니면 재벌 기업의 중역이 되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는커녕 그것이 계속 기울어지도록 협조하고 있습니다. 약자의 아픔을 덜어주기는커녕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여러분들이 자식들에게 바라는 성공적인 삶인가요? 성공이란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진리를 위해 나의 최대치를 얼마만큼 발휘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요? 이는 세상에서 배울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어버이를 통해 가정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인류는 하나]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신앙을 깨달은 이후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차별과 무력에 기초한 억압의 문화를 평등과 사랑에 기초한 해방의 문화를 만드는 일에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이천년 전 이렇게 외쳤습니다. “유대인과 로마인이 하나입니다. 주인도 노예도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도 하나입니다.” 로마의 정치적 기초는 로마시민으로 구성된 원로원입니다. 경제적 기초는 노예들입니다. 그리고 사회적 기초는 가부장문화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를 통해 이것들이 인간의 죄에 기초한 잘못된 것들임을 선포했는데, 이는 로마제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이야기가 이를 말합니다. 앞날에 일어날 일을 알아맞힘으로 돈벌이를 하여주던 여종을 고쳐줍니다. 그러자 그 주인들이 바울을 로마의 풍속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전파하는 사회를 소란케 하는 자들이라고 법정에 고발합니다. 이들이 로마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풍속이란 곧 노예와 주인의 구분이 없어지는 신분이 사라지는 차별 없는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래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혔는데,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자 바닥이 흔들리고 옥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이에 자다 일어난 간수가 옥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을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결을 하려 하자, 바울이 모두가 그대로 머물러 있으니 염려 말라 하며 그를 말립니다. 그러자 간수는 놀라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라고 묻고 이어 그와 그 가족들이 그날 밤으로 모두 세례를 받고 예수를 영접한다는 얘기로 끝됩니다.

 

이 얘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로마인 간수나 유대인 죄수나, 노예인 여종 모두가 예수 안에서 차별 없는 한 가족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 속담에 하느님은 어디에나 가 계실 수가 없어 대신 어머니를 보내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왔습니다. 모든 어머니의 어머니는 하느님이십니다. 곧 모든 인류는 하나입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버이시여,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 어버이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어버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사람들도 우리들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어버이날의 시작은 어머니날에 있고 어머니날의 시작은 전쟁과 국가폭력으로 인해 죽은 자식들을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하고 기억함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이렇게 희생된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제의 침략으로 인한 희생 특히 일본군 성노예였던 위안부 할머님들, 저들은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남성들의 폭력으로 어머니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였고, 돌아와서도 수치로 인해 당신들의 어머니 앞에 나서지도 못했습니다. 한국전쟁, 제주 43민중항쟁, 광주 518민중항쟁으로 인한 희생자들의 어머니 그리고 전태일, 이한열열사를 비롯한 민주열사들의 어머니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자녀를 잃고 슬퍼하는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들의 육신의 어머니들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이렇게 전쟁과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된 어머니들을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전쟁의 시작은 차별과 미움입니다. 차별 없는 사회, 미움 없는 사회 곧 세계 평화와 인류의 하나 됨.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꿈꾸는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처음과 마지막이며 시작과 끝이다. 이 고백이 오늘 어버이날을 맞는 우리 모두의 살아있는 고백이기를 바라면서 다 함께 침묵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어머니]

류시화

 

시가 될 첫 음절, 첫 단어를

당신에게서 배웠다

 

감자의 아린 맛과

무의 밑동에서 묻은 몽고반점의 위치와

탱자나무 가시로 다슬기를 뽑아 먹는 기술을

그리고 갓난아기일 때부터

울음을 멈추기 위해 미소 짓는 법을

내 한 손이 다른 한 손을 맞잡으면

기도가 된다는 것을

 

당신은 내게 봄 날씨처럼 변덕 많은 육체와

찔레꽃의 예민한 신경을 주었지만

강낭콩처럼 가난을 견디는 법과

서리를 녹이는 말들

질경이의 숙명을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생략)

 

(어머니) 당신은 (내개) 날개를 준 것만이 아니라

채색된 날개를 주었다.

더 아름답게 날 수 있도록

...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