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에 맞서기

(왕상 17:17-24; 갈라 1:11-24; 시편146:6-10; 루가 7:11-17)

 

김진모 교우/조은화 목사

 

 

오늘은 담임목사님 안식년기간 생활목회자 하늘뜻펴기가 시작되는 처음 시간입니다. 본래는 오늘의 생활목회자 하늘뜻펴기는 청년신도회 회장이신 김진모 교우께서 하기로 되어있었으나 김진모 교우가 지난 금요일 밤 경기도에서 진행되었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집회에서 연행된 이들을 위한 석방 촉구 기도회에서 연행되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현재 수원서부경찰서에 구속된 상황입니다. 조금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뜻하지 않은 어려운 상황으로 하늘뜻펴기자가 참여하지 못했음을 이해해주시기를 바라며 양해를 구합니다.

 

김진모 교우께서 준비하신 하늘뜻펴기는 청년신도회의 청빙위원이신 이민규 교우께서 대신하여 전해드리겠습니다. 급작스런 연행으로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김진모 교우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어려운 중에 대독으로 전해드리는 생활목회자 하늘뜻펴기에 귀 기울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진모 교우]

 

안녕하십니까. 저는 김진모 교우를 대신하여 생활 목회자 하늘뜻펴기를 대독하게 된 이민규입니다. 김진모 교우는 학내 민주적 갈등의 문제로 경찰조사를 받게 되어 불가피하게 제가 대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김진모 교우의 하늘뜻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요즘 저에게 학교상황은 어떠냐고 질문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한신대학교는 조선신학교로부터 한국신학대학을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신앙과 진보적 신학 전통을 탄탄하게 쌓아 올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에도 불구하고 요즘 학교 내의 상황은 학내구성원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인물을 총장으로 선임하려는 이사회의 태도로 인하여 학내구성원간의 갈등이 발생하였고, 이는 거의 두 달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사회는 결국 뜻이 다른 학생 24명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물론 김진모 교우 본인도 지난 주 13시간 정도 조사를 받았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총장선임 과정에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 임원의 개입의혹이 불거지게 되면서 학교는 더욱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왜 한신대에 왔나하는 후회도 생깁니다.

 

사실 저는 원래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중국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3년 정도 공부하다가 무작정 귀국하여 군 입대를 했는데, 이 때 제 머릿속은 딱 한 가지 생각,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질문은 생계보다는 삶의 가치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군 생활 동안에 저는 성당에 출석하기도 했었구요, 원래 개신교 성결교단의 모태신앙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공동체와 멀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중국에 있을 때는 완전히 무신론자로 살아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정확한 핵심과 본질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본인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답을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과정 중 전역 후에는 수도회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도 했었고,가톨릭교회의 위계질서와 보수적 일면에 회의감을 느끼고 나서 민중 신학을 만났습니다. 물론, 자연스럽게 한신 신학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 제가 신학을 선택하였을 때 저는 목회자가 될 생각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한신의 신학이라면 대답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처음 입학했을 때, 그리고 학내와 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장 많이들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아버지는 누구시니?"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우리는 아직도 아버지의 직업을 물을까요? 이러한 질문은 너희 아버지가 기장 목사님이거나 목회자이거나 장로님은 아니냐는 질문입니다. 한마디로 너는 어디 라인이냐? 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말 그대로 흙수저입니다. 부모님은 교회 집사님이시고 기장 소속도 아니시고, 친인척 중에 한신대와 관련된 사람도 없습니다. 저는 단순히 그곳에서는 민중 신학을 배우려고 또 선배들이 말 그대로 신학을 살아내셨다라는 것을 배우고 싶었고, 다소 늦은 나이에 학부에 진학하였습니다.

 

최근 기장-한신도 굉장히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차라리 규모가 커서 파벌이 다양하였으면 나았을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오래전 부터 "진모야, 너도 알겠지만 기장이 좁아."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는 종종 이러한 이야기에 위축이 되곤 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지난 5월 너무 역정을 내시며 학교에 전화를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처장은 이사회의 의견에 반대하면 징계나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편지를 발송하였고, 아버지께서도 학교의 무자비한 폭력성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셨습니다.학생에게 경고장을 발송하는 이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또한 최근 어떤 후배 중 한 명이 "지금 이렇게 한신, 기장 욕해서 이미지 다 깎아 먹고 책임질꺼냐!" 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굴러 들어온 돌이 왜 난리를 피우는지, 아무것도 없는 제가 감히 한신을 비판하냐는 것이지요.

 

오늘의 하늘뜻을 준비하면서 저는 바울로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의 도입부에 주목하였습니다. 바울로 자신은 사람을 통해서 사도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받았다라고 고백하였고 스스로 논쟁에 자리에 섰습니다.

 

치열한 선교 여행으로 유명한 바울로가 소위 제2차 선교 여행길에 갈라디아 지방을 거쳐 갔고, 교회들이 처음으로 생겨났는데 그중 하나가 갈라디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율법을 지켜야만 하느님과 만날 수 있다며 차별을 조장하는 유대주의자들과는 달리 바울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내려지는 하느님의 변혁의 영을 선포했습니다.

 

성서에서 흔히 이방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접붙인 가지로 비유되는 그들에게 주목 합니다. 저희 집은 삼대째 목사 집안도 아니며, 그렇다고 기장 교회에 수 십 년을 다닌 사람도 아니지만, 저도 하느님을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하느님께 계속 질문합니다. '하느님 어떠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세요? 또한 분명히 믿는 것은 제가 성서에서 읽은 하느님은 결코 계보를 중요하게 여기시거나 전통 있는 집안을 통해 뻔한 이야기를 펼치시는 분이 아니라, 누구보다, 즉 가난하고 억눌리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구원과 개혁의 시작이 되도록 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안타깝지만 오늘날 한신대가 이러한 위기에 처하게 된 원인은 자유로운 학문과 신앙양심을 지키기 위해 70년 전의 하느님의 축복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국가의 법과 자본의 논리에 기반하여 단순히 노동시장의 상품 찍어내는데 익숙하며 자본을 기준으로 재편하는 모습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의 사회가 무너지지 않도록 대학과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은 시대의 지성으로, 교회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궁극적인 이상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에 충실할 때, 대학과 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맡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한신대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이유입니다. 바울로가 기득권 차별에 맞서 갈라디아 교회를 변혁의 공동체로 나아가게 했던 것이 성서의 본문입니다. 이 시간 성령의 폭풍같은 역사가 한신공동체와 기장공동체 위에 임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합니다.

 

 

[조은화 목사]

 

어제는 김진모 교우의 연행소식에 복잡한 생각을 한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연행 소식에도 놀랐지만 수원서부경찰서가 교회 교우들조차 접견하지 못하게 한다는 소식에 분개하며, 갑자스럽게 하늘뜻펴기자가 부재하게 된 상황에서 오늘 이 자리의 하늘뜻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 다행히도 어려운 중에 다급한 연락을 받고 김진모 교우를 대신하여 하늘뜻펴기 대독을 해주신 이민규 교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강남역 여성살해 소식으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고통스런 소식으로 한 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로 지난 528일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문제로 홀로 작업하던 19세의 젊은 용역정비기사의 죽음 소식입니다. 수리 중 스크린도어와 달려오는 전동차사이에 끼여 죽게 된 이 소식은 가슴 아프게도 우리의 처절한 노동현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4년 사이 벌써 세 번째 벌어진 스크린도어 수리 기사의 죽음입니다. 김모군의 사고당시 메트로 설비 차장이 고인의 어머니를 찾아와 김모군은 자신의 과실로 죽은 것이니 회사는 책임 질 것이 없다며 모든 책임을 고인에게 전가한 소식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고인의 어머니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실을 밝히고자 했고, 도움자들의 힘이 모아져 용역회사의 잘못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고의 용역업체인 은성PSD 임직원 143명 중 58명이 서울메트로 출신이었습니다. 이들이 김모 군의 월급 144만원보다 3배 많은 평균 400만원을 받아왔습니다. "정비공 전체 월 임금이 1억원도 채 되지 않는 반면, 서울메트로 출신 사무직과 역무직들에게는 월 6억원이 지급되고 있었다는 기막힌 자본의 차별 현장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게 맞는 차별 앞에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차별과 맞서다1]

 

바울로가 50년경에 쓴 그의 서신을 보면 그의 전향의 첫 순간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깨닫고, 평생토록 이방선교에 투신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서신들 중 투쟁의 성격이 가장 생생하게 기술되어 있는 문서가 갈라디아서입니다. 대부분의 서신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밝힌 적이 별로 없지만 이례적으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로는 소명사건 이후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계속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간 시기, 가서 만난 사도들의 이름을 거론함으로 자신의 논쟁의 초점이 예루살렘 교회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바울로의 투쟁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요? 바울로가 적대자들로부터 폭로하고 싶었던 것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라는 기준을 가지고 차별하려는 바로 그것의 속내였습니다. 이 할례는 여성과 남성을 가르고 신체적 성장애인을 열등하게 가르고 이방인과의 차별을 지게 합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더라도 2등급 유대인으로 취급했던 당시상황을 볼 때 할례준수라는 기준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하여, 유대인이 우월하다는 것을 고수하려고 했습니다.

 

바울로가 이야기하는 적대자들의 다른 복음이란 사회적 강자에게 유익한 법, 그들을 대변하고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법이었습니다. 바울로는 이렇게 자신들이 우월하기 위해 벌이는 할례준수 같은 구조적 차별에 대해 가차 없이 규탄합니다.

 

갈라디아서 111-12절은 바울로의 투쟁의 주제와도 같습니다. 그리스도공동체 안에서 차별받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권리를 찾아주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평등과 자유의 삶을 누리도록 회복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바울로가 차별에 맞선 결단이었습니다.

[차별과 맞서다2]

 

차별받는 이들의 삶은 어떻게 할 때 극복할 수 있을까요? 1성서의 열왕기상 17장은 엘리야 선지자와 관련한 민담들을 집약해 놓았습니다. 그 중 오늘 본문은 사르밧 과부와 관련한 민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르밧은 시돈에서 남쪽으로 약 7마일 거리에 있는 페니키아 영역으로 이방 지역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서의 내용에 이방인 그것도 여성 중에서도 가장 하위계열에 속하는 약자 과부의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었을까요?

 

당시 생계수단이나 남성 후원자를 갖지 못한 과부 고아의 위치는 지극히 위험하고 불안정했습니다. 죽은 남편의 형제가 대신 남편이 되는 결혼제도는 본래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상속자에게 죽은 남편의 이름과 재산을 물려주기 위해 고안된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자식 없는 과부는 가문의 책임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었지만 사렙다의 과부처럼 자식이 있는 경우 그러한 보호를 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타인의 자선에 삶을 맡겨야 했습니다. 그러니 엘리야가 자식을 둔 과부로부터 떡을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하고 파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본문이 어찌보면 선지자 엘리야를 주인공으로 그의 업적이 담긴 민담이라고 여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민담의 주인공은 오히려 변방의 약자중의 약자 차별을 당하며 살아온 사르밧 과부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됩니다.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마지막 남은 밀 한줌과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는 과부에게 엘리야는 찾아와 그 마지막 떡을 자신에게 주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생명과도 같은 그 떡을 엘리야에게 아낌없이 내어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이러한 결단과 헌신은 엘리야를 살렸고 과부는 이후 그녀의 아들이 뜻 모를 죽음을 맞이했으나 다시 살아남의 신비를 맛보게 됩니다.

 

이 민담의 저변에는 차별받는 대상으로 약자이지만 과부 스스로가 사람을 살리고자 내린 헌신과 결단의 힘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여 당시 사람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엘리야 민담으로 들어오게 되었을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차별받는 대상이지만 사르밧 과부가 행한 삶의 헌신과 투쟁을 보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뜻을 발견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지라도 그 삶안에 안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타인을 위해 자신의 것을 과감히 내어주는 생명살림의 결단은 결국 복되다는 것입니다.

 

[차별에 맞서다3]

 

약자와 강자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복음서 본문 역시 루가의 특수 자료로 루가가 관심하는 약자들 특히나 이방인,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되고 있습니다. 예수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이야기는 앞서 백부장의 종을 살리신 이야기와 세례요한의 질문 사이에 배치한 신학적 의도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본문의 성격을 알게 됩니다.

 

예수는 어떤 이였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방인 백부장을 비롯하여 여성 과부에게까지 연결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치유이야기를 들어 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약자를 들어 죽음의 현실을 깨고 부활의 삶, 해방의 삶으로 인도하는 이였다는 것입니다. 예수에게는 차별받는 약자를 일으켜 차별에 맞설 수 있는 변혁의 주체자가 되도록 하는 눈이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 구의역 용역정비기사를 비롯한 수많은 차별로 고통 받고 죽어가는 일들을 보며 우리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가? 혹여 차별을 양산하는 곳에서 내가 차별을 규정짓는 자리에 있고자 애쓰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차별받는 자리에서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지내며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가치판단과 결단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사람의 평등과 자유를 해하는 차별에 맞서는 신앙으로!! 차별하는 이들에 맞서 평등한 믿음의 세상이 존재하도록 우리가 애쓸 때 세상은 변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아 보이는 힘이 모아져 또 다른 노동자의 죽음을 막고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지난날 민주주의를 위해 힘을 다했던 6.10민중항쟁 기념주일로 지키는 이유도, 환경주일을 지정하여 인간이 환경에 대하여 차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내려놓기를 고백하는 것도 우리가 세상의 차별에 맞서 가는 길인 것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보냄의 말]

 

구의역에 왔다.

채 스무 해를 살지도 못한 서러운 생이 처참하게 스러진 곳.

열리지 않는 정직원의 문을 열기 위해

열리지 않는 스크린 도어에 매달려 안간힘을 썼을 청년은

몇 개의 공구와 뜯지도 못한 컵라면으로 남았다.

그 처참한 죽음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고

먼 길 홀로 외로이 보내지 않겠다며

추모객들이 남긴 하직인사 곁으로

무심한 일상이 빠르게 내달리고 있다.

청년이여, 잘 가라.

다음 생에는 노동이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거라.

(길목편지 중 정선영 집사)

 

평안히 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우리를 죽음으로 내모는 차별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십시오. 차별에 맞서는 신앙은 복됩니다. 우리의 결단의 행동으로 세상의 모든 차별의 벽을 허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