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

(에페 2:14)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

 

 

우리는 지금 국방부와 전쟁기념관 앞에서 평화의 길을 묻고 있습니다. 6.25 전쟁은 남북한 합해서 300만명 이상이 희생된 무서운 범죄의 살인극이었습니다. 서로 미쳐 날뛰며 300만명을 도륙한 일에 무슨 신앙적 정당성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모든 조항을 한꺼번에 범한 무서운 죄에 대해서 한국교회는 진정 하나님 앞에 반성하고 사죄하였습니까? 아니면 뉘우치기는 커녕 아직까지 광란의 분심을 뿜어대며 또 다른 전쟁과 살해의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는 데 가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고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은 도대체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가지고 한국교회에 묻습니다. 믿음의 진정성을 가지고 한국교회는 이 일에 신앙으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라고 하면서 유대사람과 이방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된 것을 없애시고, 십자가로 소멸시키셨다고 합니다(2:14 이하). 이것은 십자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입니다.

 

십자가는 식민지 백성이 로마에 대항할 때 내려지는 형벌입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계속 그와 같은 십자가를 요구할 수는 없기에 십자가에 대해서 다양한 의미가 부여 되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주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대속론적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기 에배소서는 십자가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막히고 담을 쌓고 적대하며 원수된 것을 화해시키고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자유인과 종,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적대하는 행위는 당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드러냅니다. 여기서 예수의 십자가는 당대에 처한 모순을 허물고 화해시키고 하나되게 하는 역할로 소개됩니다.

 

우리는 흔히 평화라고 할 때, 좋은 게 좋다며 문제시 삼지 않는 것으로 알거나 대립되는 양쪽을 적당히 중재하고 양보시켜 중간치기를 만드는 것으로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브루그만(Brueggemann) 이라는 구약학자는 성서의 샬롬(평화)의 기능에 대해서 피조물의 일부분이나 공동체의 일부분, 형제 자매의 일부분을 희생시켜서 눈속임으로 얻어내는 안전과 번영, 그것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가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눈속임뿐인 겉보기의 안전과 번영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 것과 싸워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평화를 위해서 이기심의 구조적인 차원에 대항해서 싸워야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파괴하는 세력과 지혜로운 싸움을 해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롭다. 평화롭다하는 판단은 가난한자와 약자들이 갖는 판단입니다. 그 체제가 정의롭다는 것은 약자들이 내리는 판단이지 강자들이 판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배자들은 항상 자기의 배가 부르고 자기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면 남을 등쳐먹든지, 대량해고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든지, 줄줄이 목숨을 끊든지, 그들은 항상 괜찮다, 괜찮다” “평화롭다. 평화롭다고 합니다. 이에대해 예레미야는 평화롭기는 뭐가 평화로우냐?”고 반문합니다. 예레미야는 정의를 행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22:13이하)라고 했습니다.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난지 70년이 지났지만 전체적인 무장해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류가 대량생산 체제를 만들고 많은 상품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게 되자 잉여된 생산물을 소비할 시장이 필요했습니다. 앞뒤 안보고 계속 생산해대는 기계들을 돌리기 위해서 자국의 산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소비시장인 식민지를 확보해야 했고 이 식민지 확장을 위한 충돌이 세계 1,2차 대전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사천만명 이상의 사람이 살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에도 세계도처에서 국지적인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에 일어난 전쟁의 96%이상은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 사용된 무기들은 소위 선진 국가로 불리우는 나라들에서 생산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세워놓은 군수산업, 이 산업체들이 계속 돌아가고 그들의 경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자기들 아닌 제3세계 국가 어느 곳에선가는 계속해서 전쟁을 조장하고 사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소위 선진국가 들의 안전과 평화라고 불리우는 것들은 개발도상 국가의 국민들의 희생을 통해서 보장받은 것이었습니다.

 

전쟁무기로 장사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악보다도 가장 나쁜 악입니다. 비유하면 내 논을 제외하고 김제 평야의 모든 논을 포크레인으로 갈아 없고, 나중에 1020배로 내 논에서 난 쌀을 판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을 하고 무기를 사들이는 나라는 사실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하고 전쟁에 투자할 만한 상황이 안 되는 나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단 전쟁에 휩싸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빵 보다도 무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니 그야 말로 좋은 시장이지요. 남은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우선 복구해야 합니다. 게다가 힘으로 굴복 당했으니, 전쟁책임 운운하며 그들의 원수였던 정복자들이 제공하는 모든 물자를 빚을 내서 사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나라들은 내심 전쟁을 즐기며, 전쟁보다 더 좋은 시장 개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악마적인 일들을 하면서 여전히 신앙인의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놀라우며 그에 대해 세상일은 난몰라요하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교회들은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들은 계속 무기를 팔아먹기 위해 증오도 함께 생산해 판매합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적대적인 상황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증오를 심고 대립하게 만듭니다.

 

미국은 세계 제 2의 부가 집중된 동남아지역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시아에 중점을 두고 군사력을 아시아에 집중시키는 전략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아시에 먹을 것이 많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일대일의 관계를 맺으며 이들을 조정해 왔습니다. 한미동맹, 미일동맹, 미중조약 등등 일대일의 관계는 맺지만 이들이 집단으로 아세안 국가들이 연합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미국과 개별적 관계의 지렛대를 이용해 왔는데 최근 미국의 경제가 좋아지자 아시아에 다시 냉전체제를 만들고 항구적인 무기 소비시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미일 삼각동맹, 대만 필리핀, 인도차이나 국가들과 관계를 맺는데 힘을 쓰고 있습니다. 동맹이니 연합이니 하는 좋은 말을 쓰고 있지만 그 속내는 대중국 적대 동맹, 북에 대한 핵무기 선제공격을 위한 동맹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중국도 막대해진 경제력을 토대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합니다.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AIIB를 주창하고 국제적 지도자로서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합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에 엎드러지면 한쪽의 속지가 될 뿐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초기에는 비교적 이런 균형을 잘 유지해 왔습니다. 이에 미국이 노무현 정부를 압박했듯이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한꺼번에 그 균형감각이 무너져 내려 개성공단을 폐쇠하는 등 해서는 안될 일을 마구 남발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말도 않되는 협약을 일본과 맺고, 한일 군사 협력, 한미일 삼각동맹, 사드 배치등 마치 약점으로 덜미가 잡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항복 선언하듯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국익에 반하는 쪽으로 내 던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이 자기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있어서 한반도는 필수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떳떳하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양쪽을 대할 수 있다면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이들을 평화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한반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갖게 됩니다.

 

이 균형을 깨는 하나가 미국이 요구하는 사드 배치입니다. 지금 사드 배치가 임박했다고 하면서 그 부지로 대구, 부산, 군산, 평택, 원주, 천안 등이 거론됩니다. 사드에 대해서 향린공동체는 이미 잘 알고 계실테니 제가 두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 사드를 배치하는 곳은 핵무기의 목표물, 종착역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드(THAAD)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의 앞글자를 딴 것입니다. 보통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 옮기지만 정확히 하면 종말단계(또는 하강단계) 고고도 미사일방어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이 말은 사드를 그 지역에 들여놓게 되면 그곳이 바로 상대의 핵미사일의 종착역이 된다는 뜻입니다. 안전을 위해 들여논 사드가 사실 가장 위험을 불러들이는 선택이 됩니다. 그것이 아니면 위에 후보지로 거론된 곳들이 핵미사일의 목표가 될 이유가 없습니다.

 

사드는 마지막 핵전쟁 때에나 쓸 무기니 그 무기를 쓸 상황이 일어나지 않아야하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더 무서운 것은 사드에 필수적인 엑스밴드 레이더입니다. 이것은 삼천 킬로미터를 안방 보듯 볼 수 있는 것으로 중국은 물론 러시아까지도 그대로 노출됩니다. 이것을 들여 놓는 순간 우리는 중국과 러시아와 적대적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근에 러시아가 최근 신형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이것은 미사일 방어망을 갖춘 곳이 목표점이 될 것을 공언했습니다.

 

둘째, 사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로 인해 배치되는 인근 주민은 거대한 전자레인지를 옆에 끼고 사는 꼴이 됩니다.

 

전자렌지의 원리는 음식 밖에서 열을 가하는 것이 아니고 전자파를 쏘면 음식 속에 있는 물 분자가 1초에 25억번 되는 빠른 진동을 통해서 분자와 분자가 부딪혀서 엄청난 열이 물체 내에서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핸드폰도 오래 통화하면 귀 옆 볼이 뜨겁게 되는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사드는 엄청난 크기의 오픈된 전자렌지를 공중으로 쏘는 것과 같습니다. 사드 기지는 반경 5,5킬로미터에 대해서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고 3.6킬로미터는 엄격히 통제합니다. 사드에서 굉음을 내는 대규모 전자파가 방출되는데 2-3천 킬로미터를 안방 보듯하는 레이더니 엄청난 고주파의 전자파를 쏘아서 탐색하는 것입니다.

 

국방부는 아무런 인체에 해가 없다며 전자파는 직선으로 나가기에 공중으로 5도 기울여 발사하면 100미터 만 떨어지면 100미터의 탄젠드 5도하면 약 8미터의 높이로 지나가게 되니 아무 문제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꼭 직선으로 만 가지는 않습니다. 건물 뒤에서 핸드폰을 쓰면 방해는 받지만 역시 터집니다. 산란하는 전자파도 상당수 있습니다. 설상 머리위로 고주파의 전자파가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아래에서 안전하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은 말입니다. 이것은 한전에서 아무리 고압선이 지나가도 그 아래가 안전하다고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사드기지는 사막이나 괌의 해안가 미군부대 안에 있고 일본에는 엑스밴드 레이더만 있는데 역시 해안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본래 사드가 대 중국, 대 러시아 용이므로 평택과 군산 해변가에 설치하고 싶겠지만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대북한용이라고 하면서 서해안에 배치하기는 속보이니 내륙으로 끌어내어 천안이나 원주 정도나 그동안 새누리당에 무조건 우호적인 지역 대구, 부산을 후보지로 거론합니다. 거기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새누리당에 죽도록 충성한 댓가로 정부는 사드를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는 내륙지방이고 주변에 엄청난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서 이런 곳에서 사드가 배치 운용된 예가 없기에 여기서 무슨 이상이 생길지, 어떤 돌연변이들이 튀어 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날아가는 새들이 통닭이 되어 떨어질지도 모릅니다.

 

한국은 6.25를 통해 북쪽에 의해 통일 될 뻔했고 또 한번은 남쪽에 의해 통일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였고 또 다시 중간 지점으로 휴전선을 긋고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세계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무력에 의한 통일은 불가능하다"는 역사적 교훈을 남긴 것입니다. 이것은 양 진영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한쪽이 강해서 밀고 가더라도 그대로 놔둘 수 없는 지역입니다. 남쪽이 압록강까지 밀고가 통일한다고 합시다. 중국과 러시아가 문간을 완전히 점령당하는 꼴이 되어 참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북쪽이 한라산까지 내려와 통일했다고 합시다. 한반도 옆에 누워있는 일본의 안방 깊숙한 곳까지 위협 당하는 꼴이 되어 일본과 미국이 참아내지 못합니다. 어느 쪽이 무력이 월등하게 강해도 점령할 수 없는 이해관계에 있다는 것을 세계는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반도는 냉전시대의 최대 희생물이었습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말해서 그만큼 한반도가 양 진영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세에 이끌려 다시 그 냉전 체제를 불러들이면 안됩니다. 냉전 체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됩니다. 다른 나라의 상비군은 항상 서로에게 끊임없는 위협이 되며 서로 가상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니 밑도 끝도 없는 무한의 군비경쟁을 부추기게 됩니다. 이런 상상의 무기들, 미사일방어 체계, 사드 등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그러다보면 결국 군비 과잉지출을 견디다 못해서 차라리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보다는 단기간의 전쟁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화해와 협력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때에 한반도는 아시아와 유럽 시베리아를 여는 문호와 길목이 될 것입니다. 한반도를 통해 대륙의 자원이 일본으로 건너가고, 한일간의 해저터널이 건설되고, 서양의 문화가 시베리아 깊숙히 육로로 연결되게 됩니다. 아시아국가간의 다자간 안보체제가 형성되면 그 중심점은 당연히 한국일 수밖에 없습니다. 냉전의 최대 피해국이기도 하기에 가장 평화의 시대를 갈망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한중일 중에 어디가 중심일 될까요? 일본이 중심이 되겠습니까? 과거 전력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신뢰하지 못합니다. 독일은 철저하게 전범들을 추적하여 청산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쳤지만 일본은 아직 그 전범들이 중심세력을 차지하고 있고 수시로 망언을 하더니 이제 대놓고 주변국을 침략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본이 중심이 되는 것은 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국이 중심이 됩니까? 그렇지 않아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과시해 가는 중국에게 미국이나 일본이 긴장하고 견제할 것이고, 아시아 국가들도 긴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이 자연스럽게 중심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면 필수적인 것이 한반도의 통일입니다. 한반도가 그 중심으로 새로운 평화의 전당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남북간에 서로 성숙된 평화의 시대를 자주적으로 열어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반도는 대립하고 분열하면 양쪽으로 찢기고 착취당하는 위치에 있는 것이요, 화합, 평화의 시대로 가면 세계의 중심에 설수 있는 위치가 한반도입니다. 통일된 한반도는 서구, 해양 세력의 문화가 한반도를 통해서 대륙으로 가는 신 실크로드의 중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의 큰 꿈을 꾸고 크게 품는 훈련을 해가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사랑의 종교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대접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우리들이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이 시대에 여러 곳에서 대립하는 모순들, 서로 적대하며 죽음을 양산하고 있는 관계를 뚫고 생명의 관계로 복원하는 일이 우리들의 사명이며 오늘, 우리들이 죽기까지 이루어야 할 우리들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이 거대한 우주적 하나됨과 평화를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차별주의, 계급주의, 군사주의, 민족주의, 전쟁, 독점, 카르텔, 왕권, 폭력 이런 것들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분열하고 찢기우는 것들은 이제 그 근거를 잃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하나로 만드시는 화해와 평화이십니다. 모든 것 안에서 모두를 상생하게 만드시며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하시는 힘이십니다. 누구든지 이 조화를 깨고 돌출해 나오는 자는 그리스도와 적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화와 화해의 신학이고 십자가를 평화로 이해하는 사상의 모체입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