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19()                                                     성령강림6/민족화해주일 하늘뜻펴기

 

먹고, 일어나고, 걸어가기

(열왕기상 19:1~8, 시편 42:1/3/5, 갈라디아서 3:23~29, 루가복음 8:26~39)

 

[먹기: 갈 길이 고되니 일어나 먹어라!]

 

                                                                                                                                 김자영 집사

 

안녕하세요, 희년청년회의 김자영 집사입니다. 저는 2007년부터 향린에 출석하기 시작했는데요, 이제 햇수로 만 10년째가 되어가는 때에 이렇게 큰 도전이 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두렵고도 설레는 시간입니다.

사실 저는 2주 전에도 청소년부에서 진로 특강을 했습니다. 한 달에 두 번이나, 향린의 교우들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축복이자 큰 숙제가 주어진 거죠. 제 직업은 TV 방송을 만드는 PD입니다. 학생들 앞에서 이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몇 차례 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처음엔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눈이 초롱초롱한 향린의 푸른이들 앞에서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하고 나서, 저는 큰 자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진로 특강의 중간에, 제 이야기가 심각하게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여러분께 잠시 들려드릴까 합니다.

제가 헤매기 시작했던 건, 이 질문에 대답을 할 때였습니다. “방송을 만들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는 그 보람에 관해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공영방송’ KBS입니다.(이제 이렇게 따옴표를 붙여야 합니다만.......) 혹시 교우 여러분들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곳에서는 8전까지 <시사투나잇>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습니다. 저는 PD가 된 2005년에 이 프로그램을 처음으로 맡았습니다. 방송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치기를 갖고 싸움터에 나선 초짜 PD에게, 2005년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말도 참 많았던 해였습니다. 취재 거리를 찾던 중에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청계천에 전태일 거리를 만들려는 기념사업이, 몇 년 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 향린의 교우들이 전태일 추모 주일마다 찾는 전태일 다리와 평화시장 인근이죠. 어려움을 겪는 원인은 서울시의 냉랭한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청계천 복원 공사를 하면서,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장소 동판마저 뜯어버렸으니까요. 대학시절에도 그 문제를 접했던 터라, 시청률 걱정을 하는 팀장을 몇날며칠 졸라서 방송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취재를 하다가, 서울 시청에서 담당 공무원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기자들과 화기애애하게 담소 중이던 당시 서울 시장과 마주치게 되었는데요, , 지금은 전직 대통령이 된 그 사람입니다. 방송사 카메라를 본 시장이 상당히 의식적으로 싱긋 웃으면서 무슨 취재 왔습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저도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청계천의 전태일 기념사업이 서울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내용입니다당시 서울 시장의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로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물론, 원래 호감 가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말입니다.

서울시를 비판하는 방송이 나가고 이틀 뒤, 그 서울 시장이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노동운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태일을 기념하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좋겠다.” 몇 년을 끌어온 전태일 거리 조성 사업은 서울시로부터 승인이 떨어졌습니다. 물론, 그때까지 피와 눈물로 애쓰신 분들의 노력과, 방송이 타이밍이 잘 맞았던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스물여섯 살 초짜 PD는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뻤습니다. <시사투나잇>에서 나간 제 방송이 아주 작은 영향이라도 미쳤다면, 우리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이야기가 정말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제게 더없이 벅찬, PD로서 가장 보람된 그 순간을 푸른이들에게 이야기하다가, 왜 길을 잃었을까요. , 제게 그런 희열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2005년 여름으로 말입니다. 그 이후.. 제가 만났던 그 서울 시장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시사투나잇>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교우 여러분께서도 더 잘 아실 겁니다. 저와 동료들이 다룰 수 없는 이야기, 출연시킬 수 없는 사람, 만들어놓고도 내보낼 수 없는 방송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상식적인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정말 비상식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 일들이 허다해졌습니다. 대통령이 한 번 더 바뀐 지금까지, 저와 동료들은 세 번의 파업과 몇 차례의 제작 거부를 했습니다. 마지막 파업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재작년 봄이었는데요. 수백 명의 희생을 두고 방송이 권력과 흥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5월의 밤에, 아이들의 부모님들께서 분향소에 있던 영정을 들고 KBS 앞으로 찾아오셨습니다. 지금도 그 길었던 밤이 잊어지지 않습니다. 동료 PD와 기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울었습니다. 파업의 끝에, 사장이 쫓겨났습니다. 저희는 처음으로, 이겼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두 정권 아래에서 처참하게 망가진 곳은 쉽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KBS이름은, 여기 몸담은 사람들에게 언제부턴가 아주, 창피한 낙인이 됐습니다. 서서히 지쳐갑니다.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던 몇몇 동료들은 여기를 떠나 진짜 언론사로 갔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저는 점점 할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일이지만, 저는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 청계천으로 가지고 나왔던 그것,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깊은 허기가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대신에,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과, 하루하루 해나가야 하는 많은 일들, 오랜 피로감, 내가 가진 걸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뱃속을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이 창피하고 너덜너덜한 변명을, 눈이 초롱초롱한 향린 푸른이들의 진로 특강에서, 어떻게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PD가 얼마나 보람되고 의미 있는 직업인지를 자랑해야 하는 데 말입니다.

 

푸른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요즘 가장 공정한 방송이 뭐라고 생각해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종편에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요라는 대답들이 들려왔습니다.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요. ‘공영방송KBS, 한때 날카로운 시사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MBC도 아닌 종편이라니요. 그런데, 그 솔직한 채찍이 사실은 참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푸른이들에게 부탁을 하나 했는데요, 여기 계신 교우 여러분께도 같은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혹시 이 시대에 바르고 정의로운 이야기를 용기 있게 전하는 방송이 있다면, 종편이든 지상파든 케이블이든, 가능한 많이 보시고, 적극적인 관심을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KBS의 뉴스보다, ‘종편에서 하는 손석희의 뉴스가 시청률이 더 높아지고 많은 관심을 받는다면, 여러분이 외면하는 국영방송을 바꾸는 채찍이자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 저희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야 하니까요. 향린 교우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멘붕의 진로 특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하늘 뜻 펴기를 준비하면서, 오늘 주어진 성서 말씀인 열왕기상 본문을 다시 묵상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는 사백 오십 명의 바알사제들에 홀로 맞서 크게 이깁니다. 하지만 19장에서 왕비 이세벨로부터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고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황무지의 싸리나무 아래서 다 포기하고 죽기를 기다리죠.

그때에,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엘리야에게 따뜻하게 구운 빵과 물을 내려주셨습니다. 천사가 와서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며 이야기합니다.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어라." 결국 엘리야는 이 양식을 먹고 힘을 내서 사십일을 걸어 호렙산에 이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여정에서 후계자가 되는 엘리사를 만났습니다.

 

처음 향린에 발을 들인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은 제게 엘리야의 싸리나무 덤불 같은 곳이었습니다. 첫 마음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거나 패배감과 낙심으로 지쳐서 헛배를 채우고 잠들 때마다, 일주일에 한번 씩, 저를 흔들어 깨워주었거든요. 그리고 저도 모르게 길을 잃어가던 시간을 맑은 눈과 솔직한 말로 돌아보게 했던 향린의 푸른이들, 또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는 이 자리를 통해서 진짜 허기를 느끼고 속을 채울 든든한 양식을 얻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부탁을 더 드립니다. 혹시나, 길을 잃은 공영방송에서 아주 가끔이라도 제대로 된방송을 보게 되신다면 따뜻한 빵과 물 같은 응원의 한마디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갈 길이 고될 터이니 일어나서 먹어라

 

주님께서 지금 이 시간 들려주시는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길고 고된 싸움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갈 충만한 기운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어나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고상균 목사

 

앞서 김자영 집사는 먹기로 상징되는 에 대하여 하늘 뜻을 펼쳐주었습니다. 이전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살기가 참 팍팍한 요즘, 이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언젠가부터 힐링이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자칫 쉼은 지극히 개인적이거나 일상을 초월해야만 얻을 수 있는 어떤 것쯤으로 여겨지기 십상인데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쉼이란 김 집사님의 말씀처럼 개인적이면서 공동체적이고, 정적인 동시에 동적이며, 멈춤과 함께 역사의 한 중간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여정 속에서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웃고 있는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음을 느낄 때, 무언가에 설레여 보았던 때가 언제였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그리고 의미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부담되는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을 때에는....... 쉬세요. 이미 충분하게 열심히 살아오셨을 테니까요. 괜찮습니다. 다만, 언제고 일어설 마음이 생길 때에는 주저하지 말고 그 마음의 소리를 따를 것이라는 자기믿음을 함께 담고 계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 쉼의 자리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위로를 마음 가득히 발견하실 수 있기를 기원 드립니다.

 

쉼이 있었다면, 슬슬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지요? 두 번째 본문인 갈라디아서는 위기에 처한 공동체를 향해 일어설 것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는 바울로의 서신입니다.

3주전 하늘뜻펴기에서 말씀드렸듯, 갈라디아공동체의 위기는 예수 신앙정신의 후퇴, 즉 죄에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들로부터 자유케 되는 해방의 복음이라는 가치에서 영향력강한 공동체 내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유대교 전통으로 회귀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내 율법주의자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려면 출신 즉 유대인이거나, 전통 즉 유대교적이거나, 관습 즉 할례정도는 받아야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주장으로 비유대인, 새로 참여한 이들, 관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공동체 구성원들을 몰아쳤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로는 갈라디아 교회 구성원들을 향해 구습에 매여 주저앉아 있지 말고 다시금 하느님 나라의 꿈을 향해 일어설 것을 호소합니다. 그리고 그 꿈은 단순히 회귀를 막는 정도가 아니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세상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3:26~28)

 

저는 지난 주 토요일 시청 앞 광장에서 진행되었던 퀴어 축제에서 개막축하 합창단 공연에 참여했습니다. ‘괴상한이라는 뜻의 'Queer'를 기꺼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칭하는 사람들, 그리고 괴상한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축제.......그런데 축제에 대해 해마다 격렬하게 반대행동을 벌이는 이들이 있는데, 바로 주류 개신교 단위입니다. 이들은 동성애자들은 지옥 간다!’ ‘남자 며느리가 웬 말이냐?’등의 구호를 외치는 가운데, 재작년에는 퍼레이드 행렬을 막고 길바닥에 드러누워 통성기도와 애국가를 제창했고, 지난해에는 시청 앞 광장 주변에서 부채춤으로 추고 발레공연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그 부채춤 공연단은 니퍼트 주한미대사가 김기종씨에 의해 상해를 입었을 때 개최된 쾌유기원 기도회에서 처음 선을 보인 팀이었는데, 그들의 기도 덕인지 무척 일찍 업무에 복귀했던 대사의 첫 번째 민간 행사 참여가 바로 그들이 반대하던 퀴어 축제였습니다. 또 발레는 차이코프스키의 곡에 맞춰 진행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는 대표적인 게이 예술인입니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가 직격탄을 맞고 있어서인지 예년만 못하기는 했지만, 올해도 변함없이 이들은 기도회라는 이름어로 혐오집회를 벌였었는데요, 이 가운데 이수 쪽에 있는 뭔 신학대학교에서는 축제에 참여한 자기학교 소속 학생들을 밝혀 처벌하겠다며, 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형태는 다양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같은 신앙고백문을 공유하는 신앙공동체 구성원입니다만, ‘내가 생각하는 하느님은?’ 등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여기계신 분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닌 바, 자신의 경험과 느낌에 따라 같은 신앙 안에서도 각기 다른 무언가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혐오가 신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실증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최근 십 여 년 동안 개신교는 신뢰도 추락, 목회자 범죄, 지속적 교인 감소 등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건강한 조직은 위기 앞에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성숙의 시간을 만들어 가겠지요. 그러나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조직은 외부에 왕따 만들고는 내적으로 결집을 시도할 것입니다. 주류개신교 단위에서 조직적으로 시도되고 있는 성소수자 혐오 행동은 한국개신교라는 아픈 공룡이 멸종의 길에 접어들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때에 하느님 나라의 기운을 간직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해 일어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바울로가 2016한국교회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스도교인이나 이웃종교인이나, 한국인인이나 외국인 노동자나, 자본가나 각종 형태의 노동자나, 생물학적 여성이나 남성이나, 레즈비언이나 게이나 양성애자이거나 트렌스젠더이거나 무성애자이거나 간성이거나, 혹은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 이든지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걸어가기: 군대야 물러가라!]

 

그들은 갈릴래아 호수 건너편에 있는 게르게사 지방에 다다랐다.”(루가 8:26)

 

이어지는 복음서에는 갈릴래아를 떠나 건너편 게르게사로 걸어갔던 예수일행이 등장합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을 암시하는 듯, 본문의 앞에는 풍랑 기사가 배치되어 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게르게사에서 이전과는 스케일이 다른 환자를 만나게 됩니다. 나신(裸身)으로 무덤을 헤집고 다니는 광인, 다가 그는 스스로를 레기온6천명의 중장보병과 그에 상응하는 숫자의 기병, 투석병, 공병 등의 전투지원부대로 구성된 로마군의 기본전술단위가 곧 자신이라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서에서는 수많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신적 기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조금만 비일상적인 일들은 모두 신적사건으로 이해했던, 소위 신화적 시대의 기록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본문에 대해 비평적 접근을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우선 게르게사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일대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게 점령된 후, 그리스계통의 지배자들에 의해 조성된 데카폴리스, 즉 열 개의 식민도시 중 하나입니다. 마케도니아의 후예들이 로마에게 패배한 이후 이 지역은 제국에서 파견한 시리아 총독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이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그리고 로마까지 이어지는 내내 자신의 고향이지만, 지배자에 의해 빼앗긴 되어야만 했던 데카폴리스, 그 가운데 게르게사는 군사적 요충지로 로마의 점령군, 즉 레기온이 장기주둔 했던 도시였습니다. 점령군의 부대가 들어찬 도시에서 살아야했던 피지배계층 광인.......자신을 주둔군이라 말하며, 주검이 쌓여있는 무덤을 헤매는 이야기 속 그의 광기는 단순히 종교적 범주, 혹은 개인적 치유나 힐링을 넘어서는 무엇, 다시 말해 전쟁의 악마성이 개인과 사회를 파괴해 버린 현장에 대한 고발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복음서 속 예수와 그의 일행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이었던 갈릴래아를 떠나, 지배자의 폭력이 난무하는 땅으로 자진하여 걸어 들어갔던 것이고, 그곳에서 레기온에 눌려있는 사람을 만나 그 레기온을 꾸짖은 후, 마침내 레기온 돼지떼를 수장시켰다는 민담은 기꺼이 걸어 들어간 그 땅에서 폭력에 신음하는 이들과 연대하고, 그 폭력과 직면하는 투쟁을 전개했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예수와 공동체의 꿈은 이와 같이 행동을 통해 구체화되어갔던 것입니다.

 

[먹고, 일어나고, 걸어가기]

 

삶의 자리를 바라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 이어지는 한반도의 긴장감,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강요받고도 늘 시달려야하는 고용불안, 사고가 나면 죽을 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죄가 되어 콘크리트더미에 파묻힌 노동자들, 수 백 명이 수장된 후 2년도 더 지나서야 400톤의 해군기지 건설자재가 비밀리에 운반되고 있었고, 그 막대한 하중이 선체의 회복력 손실을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밝혀지는 현실, 사회의 총 권력이 물에 잠겨가는 생명을 외면할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뛰어들었던 이의 죽음을 그저 바라봐야하는 상황, 345원의 구상금과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있는 강정, 그리고 이 모든 그 상황을 바라보며 무언가 해보아야겠는데 또한 힘들고 바쁜 일상 앞에서 무기력해지기만 하는 자신....... 그런 우리에게 오늘 펼쳐진 하늘말씀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는 듯합니다. ‘맛있게 먹고 쉬세요. 더 이상 강인한 척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어나세요. 힘이 차오를 땐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말이지요. 그리고 걸어가세요. 그 여정을 통해 나와 모두의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그곳이 어느 곳, 어느 때이든 여러분의 쉼, 일어남, 그리고 걸어감을 응원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도 함께하실 것입니다.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쉬어야 할 때를 아는 것은 소중한 성찰입니다.

그 마음의 소리에 움직이는 것은 참으로 귀한 실천이지요.

일어서야 할 때를 아는 것은 값진 성찰입니다.

그 팔다리의 외침에 움직이는 것은 세상과 만나는 실천이지요.

그리하여 마침내 걸어가야 할 길에 들어서는 것은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발자국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순간이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느꼈을 땐

행정대집행을 앞둔 이 순간 강정 마을 중덕 삼거리에 걸린 글귀처럼.......

우리.......뭐라도 해 봅시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