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626()                                                                         성령강림후6 하늘뜻펴기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들

(열왕기하 2:1~2/6~14, 시편 77:1~2/12,

갈라디아서 5:16~18/22~25, 루가복음 9:51~62)

                                                                                                                        고상균 목사

 

[우울한 날씨, 우울한 소식]

 

막 시작된 장마로 지난주는 하늘이 우중충했던 것 같습니다. 한 주간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지키셨습니까? 이 질문에 개개인의 지난 삶에 따라 다양한 대답을 하실 수 있겠습니다마는, 세계는 지난 23, 영국 발 뉴스 한건으로 시끌벅적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Brexit)’라고 명명되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국민투표 소식이 바로 그것인데요, 그 결과로 영국 내부에서는 캐머런총리가 사임을 발표했고,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독립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습니다. 또 국제적으로는 유럽연합의 붕괴로 인해 세계적 경제 침체가 더욱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주요국가의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습니다.

날씨도 우울한데, 들려오는 이야기도 그렇고 해서 뭐 기분 좋아지는 소식은 없을까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검색해보았습니다. ‘원전 증설, 세계 6위 수준’, 1위 좋아하는 한국에서 이것도 세계1할 때까지 진행하려드는 것일까요?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 검찰조사’, 기사화 된지 두 달 만에야, 그것도 시민사회단체의 고발이후에야 시작된 수사가 오죽하겠습니까? ‘잇따르는 여성대상 범죄에도 대책 없어’, 강남역 살인사건, 여교사 성폭행사건 등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데, 수사기관은 피해자에 대한 기본적인 성별구분 집계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니, 아직 대책이 세워지기엔 너무 적은 여성들이 희생되었나 봅니다. ‘한기장 사회복지재단 운영 남원 평화의집에서 장애인 폭행 및 가혹행위 확인 후 한 달이 지났지만, 조치 전무’, 폭력을 행사한 교사가 버젓이 근무하고 있고, 샤워실에는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재료가 가득 쌓여있는데, 이에 대해 불과 얼마 전 현장조사를 나왔던 남원시청 공무원은 몰랐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럼 누가 알아야 하는 것일까요? ‘문재인 전 대표, 현 정권의 방산비리 비판’, 잠수하지 못하는 잠수함, 관통되는 방탄조끼, 레이더 능력이 없는 차세대 레이더, 돈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어 중지된 병영생활관 현대화 사업.......그런데도 법원은 방산비리 관련 장성들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했고, 급기야 장남이 주주로 있는 회사를 통해 77 원을 받은 정옥근 전 해군총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본인이 받은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무죄취지로 고등법원에 돌려보냈습니다. 그럼 차 트렁크에 돈을 실어놓으면 차가 뇌물을 받은 것이겠군요? ‘세월호에 강정해군기지 건설자재 400톤 실려’, 그런데 이 기사가 발표된 직후 박유천 사건과 홍상수-김민희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참 신기하죠? 이런 기사도 있네요. ‘주말 서울 도심 대규모 집회,,,경찰 불법행위 엄정대처’, 불법 폭력 진압으로 인해 오늘로 226일 동안 농민 한 분을 누워있게 한 자들이 불법을 말하다니요? ! 윤병세 외교부 장관께서 아주 희망적인 발언을 하셨네요. 영국과의 교역량이 적어 브렉시트와 우리는 큰 상관이 없다. 영국과도 FTA를 추진하면 되고, 필요하면 채권발행, 즉 빚을 내서 추경예산을 편성 하겠다’, 대책이 빚이랍니다. 이번에는 진짜 유익한 건강정보 하나 알려드리겠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미세먼지를 마신다고 암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얼마 전 한반도 미세먼지의 주범이 고등어구이라고 주장했다가 왕창 욕먹은 후 환경부가 내놓은 추가 자료입니다. 여러분 모두 미세먼지를 가득마시고도 아무 문제없는 건강인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이거야 원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돌아온 느낌입니다. 이쯤 되면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은 둘째 치고 나라가 돌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 아닙니까? 황당한 일이 당당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뉴스가 실종되고, 해프닝과 스캔들만 떠다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요?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1: 엘리사]

 

첫 번째 모시는 하늘말씀에는 참으로 애틋한 사제지간이 등장합니다. 먼 길떠나려는 스승 엘리야와 한사코 따르려는 제자 엘리사....... 옛날 옛날 한 옛날에 같은 느낌의 이야기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의 절대적 권위를 엘리야가 계승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 중 엘리사가 히브리 율법에서 장자의 분량인 두 몫을 스승에게 요청하는 것이나, 불가(佛家)에서 수제자에게 의발즉 옷과 밥그릇이 전해지는 것과 같이 제자가 승천하는 스승의 겉옷을 취하는 것은 모두 엘리야의 신적 권위 승계를 드러내기 위한 수사적 장치라 하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이 장엄한 이야기를 집필했던 사람들의 삶의 자리입니다. 당시는 북 왕국 멸망 이후, 남 유다는 앗시리아에 의해 예루살렘과 약간의 주변 지역 이외에는 초토화되었거나 직접통치를 받아야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종교계와 정치권은 친 앗시리아파, 혹은 친 이집트파 등으로 나뉜 채 일신의 안녕만을 꾀했고, 여기에 전란을 피해 대거 유입된 북 왕국 유민들로 인한 인구팽창에 이은 대규모 도시 빈민 발생 등 유다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 중 구한말의 상황과 유사하달까요? 황실은 더 이상 국가를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폭정과 민란, 그리고 인근 패권 국가들의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유민(流民)들이 발생했으며, 이 와중에 정치권은 친청, 친러, 친미, 혹은 친일로 나뉘었던 말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 속에서 어떤 이들은 세상을 등진 채 은둔해 버렸고, 또 어떤 자들은 적극적으로 나라를 팔아먹는데 앞장선 대가로 개인의 삐뚤어진 욕망을 채워나갔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위기 너머에 시선을 두고는 지금의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 중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무장독립투쟁과 함께 역사인식의 변혁을 통한 투쟁의식 고취를 위해 한반도 고대사를 재조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국권 피탈 후 발표했던,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는 모두 역사재해석을 통해 지금의 암흑을 돌파하는 힘을 끌어올리고자 했던 단재의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열왕기하를 포함한 역사서 역시 같은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금은 비록 침탈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니 반드시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다. 힘을 내자!라는 내용으로 작성된 역사서는 한반도와 만주 등에서 시작된 고대국가가 중원의 패자로 군림했었다는 조선상고사의 과장 섞인 해석과 같이, 가나안을 진멸하고, 솔로몬 치세에서 남으로는 시나이반도, 북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가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는 등의 과도한이야기를 통해 두려움과 우울함에 빠져있었을 유다 전체 구성원들에게 힘을 북돋으려했었던 것입니다.

이 역사서의 큰 네 번째 단락, 열왕기하의 서두에서 모압과의 전쟁기사가 등장한 후, 엘리야의 신적기사가 등장하고, 이를 간절히 전해 받고자했던 엘리사가 계승한다는 내용이 이어지는 것은 앞서 설명 드렸던 역사정황, 즉 이어지는 전쟁 상황 속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의 희망을 염원했던 이들의 삶의 자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기다림의 끝에서 제자 엘리사는 나라를 지켜주는 군사적 이미지 스승을 부릅니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왕하 2:12)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2: 바울로]

 

우리 향린교회를 포함해서 신앙과 사회적 관점에서 진보성을 추구하는 신앙인들에게 있어 바울로는 일종의 닭갈비와 같습니다. ‘버리기는 뭐한데 내 것이다 하고 취하기에는 ! 그런 존재말입니다. 이는 복음서 속 예수이야기의 중심주제와 바울로의 서신서 간의 상이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겠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그리고 점령국 로마 등 지배자들과 한판싸움을 벌이다 끝내 십자가에 이르는 예수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정의가 바로서길 염원하는 향린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마음을 언제나 뜨겁게 하는 반면, 믿기만 하면 구원에 이른다거나, ‘지배자에게 복종하라는 등의 서신서는 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로에 어떤 입장을 가지고 계시던지 간에 그의 서신서 속 내용을 바로 알기위해서는 역시 그가 걸었던 여정과 삶의 자리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그는 예수 공동체 내부의 지도자들 중에서 후발 주자입니다. 그는 탁월한 능력으로 신규공동체를 세워나갈 수는 있었지만, 예수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듣지 못했다는 점으로 인해 예수가족과 제자 모임으로부터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받아야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초반에 등장하는 외국인과의 식사자리를 피해간 베드로를 질책했다는 내용은 바울로와 직계제자모임간의 긴장관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지요. 그래서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바울로의 선교활동은 많은 경우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점검을 넘어 감시를 받아야했고, 그 내용도 이방인에게 행하는 선교가 정당한가?’, 할례를 받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등의 보수적, 유대교 율법적 평가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비()유대교권 선교활동 경험을 통해 이미 과거와는 분명하게 다른 신앙적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바울로는 갈라디아서 도처에서 볼 수 있듯, ‘예수의 가르침은 율법의 완성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등의 차별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을 그의 선교현장에서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바울로가 예수 공동체 내외부에서 모두 상당한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던 것은 무척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로 인해 그의 친서에는 공동체의 존속, 선교활동의 유지를 염원하는 한편, 자신의 생존에 대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울로는 조직이 다듬어지지 못한 공동체를 향해 요한묵시록과 같이 전면적인 투쟁을 전개하라는 식의 주문보다는 안내하시고, 다음을 봅시다. 주님의 때가 올 것입니다.’와 같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지혜, 즉 기다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신칭의즉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그의 가르침은 말로만 믿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된 이의 성스런 행동, 즉 성화를 동반하는 보다 근본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고, 지배자에게 복종하라는 로마서 13장의 말미에서는 곧 시작될 투쟁을 준비할 것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밤이 거의 새어 낮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13:12)

 

오늘 함께 모시는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을 따르는 삶을 9가지 열매로 표현하는 가운데, 그 중 인내와 절제 등 기다림에 해당하는 단어가 두개나 등장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율법주의자들에 의해 예수공동체의 소중한 가치가 위협받는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다음을 보고 나아가자는 바울로의 기다림이 반영되어 있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기다리는 이3: 예수공동체]

 

끝으로 살펴볼 루가복음에는 의아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예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 중 함께 하자는 제안에, ‘장례일정 때문에, 작별인사를 해야 되기 때문에등의 이유로 실행을 미루는 이들을 만났는가 하면, 사마리아 지역에서는 냉대를 받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2성서의 네 복음서 중 외국인과 사마리아인에게 가장 우호적인 복음서는 루가복음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루가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 즉 유대인의 시조로부터 시작하는 마태복음과 달리, 예수로부터 전 인류의 시조가 되는 아담에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예수의 첫 공생애 활동이 기록되어 있는 4장에서 예수는 구원이 외국인, 즉 사렙다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만 베풀어졌다는 말로 회당 내 유대인들을 격분하게 합니다. 이런 예수와 그의 공동체가 도착했는데, 이들을 냉랭하게 대하는 사마리아인들이라니요! 이 이야기의 중점은 환대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낮선 존재들에 대해 어색해하는 사마리아인들을 향해 거침없이 분노를 드러내는 예수의 제자들, 즉 유대인들입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루가 9:54)

 

자신들을 환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죽여 버리겠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유대인들, 이야기 속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원색적인 인종차별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와 같은 내용은 예루살렘 이외 지역에서, 그리고 팔레스타인 지리에 무지할 정도인 비()팔레스타인계 인물 혹은 공동체에 의해 작성되었던 루가복음의 배경을 생각하면 아주 쉽게 이해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루가 공동체는 사마리아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욕설을 퍼부어대던 제자들을 꾸짖고 다른 길로 돌아가는 수고를 기꺼이 감당하셨던 예수를 신앙 고백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야기 속 그들이 현실의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공동체의 이방적특징은 아직 유대교와 분리되지 않았던 초기 예수 공동체에서는 분명 쉽지 않은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약자들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기다리는 가운데, 당당히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들과 같은 이들을 사랑하셨음을 신앙 고백했고, 이방인, 들판에서 양치는 사람들을 주목했으며, 메시야가 우리에게 오신다는 대망을 엘리사벳과 마리아 등의 여성들이 담지하고 있다는 혁명적 발상전환을 이뤄냈습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신앙은 오늘 본문인 9장에 이어지는 10장에서 저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그 정점을 찍게 되는 것입니다.

 

[함께, 그리고 진심으로 기다립시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이 우중충한 소식 가득한 요즘, 여러분은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개인적으로 저는 내년 31일이 속히 오기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만.......(농담입니다) 오늘 함께 모셨던 하늘말씀은 일관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다면.......기다리세요. 그리고 그 기다림은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해석을 통해 공동체에 힘을 주려했던 사람들이나, 지금 너머의 희망을 이뤄가기 위해 지금의 공동체를 보살피던 이, 그리고 모두가 남으로 대할 때 나를 친구로 대해주신 예수를 신앙고백하며 평등한 세상을 열망했던 공동체와 같이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말하는 기다림은 가만히 있음이 아니라 분명한 결단과 행동에 입각한 기도일 것입니다. 부족한 하늘뜻펴기의 마지막은 어제 저녁부터 또다시 노숙농성을 시작하신 세월호 유가족을 대표해 예은 아빠 유경근님의 어젯밤 발언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패배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살겠습니다. 살고 싶지 않지만 살아내겠습니다. 우리 함께 살아서, 백 번을 지더라도 마지막 한 번을 이깁시다. 오늘은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팔백 두 번째로 찾아온 우울한 날이 아니라 안전한 세상을 맞이하는데, 팔백이일만큼 가까워진 날입니다. 우리 살아서 기다립시다!’

여러분은 무언가를 진심으로 기다리고 계십니까? 잠시 침묵하겠습니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다운 를 만나기 원한다면.......

그런 자신을 믿어주며 기다리세요.

더 이상 아픈 사람들이 없기를 바란다면.......

그만 아파해!라고 윽박지르지 말고 기다리세요.

세상에 하느님의 정의가 편만하게 펼쳐지기를 바란다면.......

다른 이의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구호를 외치는 것 보다는.......기다리세요.

 

그 믿음이 참 에게 힘을 줄 것입니다.

윽박지르지 않고 기다려주는 사랑이 아픈 이의 마음을 치료할 것입니다.

다른 이의 숨소리를 듣는 귀가 세미한 음성으로 오시는 하느님의 정의를

발견케 할 것입니다.

 

기다리세요.

그러나 그 기다림은 멈춰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 달음박질하려는 나를 기다려, 우리 함께 나아갑시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