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의 힘: 천국문을 여는 열쇠

(시편 82:1-4; 아모 7:1-17; 골로 1:1-6; 루가 4:31-37; 도마 70)

정현경 교수

 

[문을 열며]

 

친애하는 향린 교회 교우 여러분! 제 젊은 시절 혼돈과 방황 속에서 안병무 선생님의 성서 강의를 들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던 이곳에서 오늘 여러분과 예배 드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왜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께서 내가 사는 세상 속에 이렇게 많은 악과 부정의를 가능하게하시냐는 간절한 질문 때문에 저는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긴 신학의 여정 속에 안병무 선생님의 민중신학적 가르침, 홍근수, 조헌정 목사님의 통일과 인권 운동, 임보라 목사님의 성소수자와 함께하는 목회 활동들이 제게 큰 격려와 영감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과 제 신학적 여정 속에 중요했던 예수의 "다른 권위" 른 힘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묵상해보고 싶습니다.

 

[예수의 권위, 예수의 다른 힘은 어떤 것이었을까?]

 

성서는 예수의 힘이 그 당시 세력자들의 힘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신학자인 바리새인, 종교지도자인 사두개인과 다르고 로마 식민지 제국의 지배자들이나 그들의 하수인인 유대의 왕과도 달랐던 그의 힘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의 힘은 사람과 귀신들을 무장해제시키는 힘, 사람의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그들을 가장 사람답게 회복시키는 힘, 생업을 포기하고 그를 따라 하나님 왕국의 비전을 따라 무조건 따라가게 하는 힘,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 든 자를 자유케하고 소외된 자를 받아주고 죽은 자를 살려내는 묘한 힘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그 예수의 묘한 힘을 "연약함의 힘" 이라고 이름 지어 보려합니다.

 

[연약함의 힘: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

 

오늘 성서 본문은 귀신들이 예수를 먼저 알아보고 그를 두려워하며 귀신 든 자의 몸을 나가는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갈릴리에서 일어납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곳은 "암하아래츠" 땅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이 사는 소외된 지역이었습니다. 그 곳은 "갈릴리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냐?" 할 정도로 무시당하던 "흙수저" 들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예수의 존재가 뿜어내는 힘에 의해 기적이 일어납니다. 땅의 사람들은 예수가 일으키는 치유와 회복의 기적을 보며 자신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면서 예수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믿고 따르게 됩니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평등한 자들의 축제"였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사용되는 지배와 복종에 근거한 힘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생명의 떨림을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인식하게하고 뒤틀리고 상처투성이인 이 세상의 존재들을 자유와 사랑, 창조성으로 가득한 하느님의 자녀로 초대하는 힘이었습니다. 그것은 산 사람만 초대하는 힘이 아니라 죽은 자도, 이용당하고 착취당하는 자연도 해방과 온전함으로 초대하는 힘이었습니다. 저는 그 생명의 가장 섬세하고 부드러운 떨림을 일으키는 힘을 연약함의 힘이라고 이름하고 싶습니다.

 

[연약함의 힘: 구원의 힘]

 

오늘의 또 다른 성서 본문인 도마복음서에서 예수는 구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당신 안에 있는 그것을 꺼내면 당신 안에 있는 그것이 당신을 구원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당신 안의 그것을 꺼내지 못하면 당신 안의 그것이 당신 안의 그것을 파괴시켜 버리고 말 것이오."

 

우리에게 구원을 가능케 하는 예수가 말하는 "당신 안의 그것" 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동양적으로 말하면 신성의 불꽃, 진아(true self)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 신학적으로 말하면 "하느님의 형상" 이마고 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힘은 하느님이 허락하신 가장 나다운 나, 자기다움에 근거한 생명의 힘이기에 어떤 억압도 박해도 궁극적으로는 뺏어갈 수 없는 존재의 거룩한 힘입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쓴 빅터 프랭클은 홀로코스트의 극도의 악마적 상황에서도 어떻게 인간이 자신의 존엄을 지켜 가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존재의 핵심에 닿아있는 힘이라 지배자가 우리를 죽일 수는 있어도 우리에게서 뺏어갈 수 없는 힘입니다.

 

[연약함의 힘: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broken heart" 의 힘]

 

저는 지난 4 년간 독일에서 Holotropic Breath Work- Transpersonal Psychology 라는 가장 깊은 무의식의 트라우마를 찾아가 그것을 직면하고 꺼내어 빛과 만나게 하는 심리치유법을 공부하여 심리치유사가 되었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우리 모두는 "분단 귀신" 이 든 정신 이상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저를 이 공부로 인도했습니다. 우리 안의 분단심을 온전히 통합시킬 때 우리 민족이 다시 온전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저를 이 공부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여름 저를 가르쳐주신 독일과 미국의 이 분야의 스승들을 한국에 모시고 와서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약 40여명의 사람들과 이 치유법을 실험해보았습니다. 6일간의 힐링 캠프에서 제가 독일이나 미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한국적 특수 상황에서 일어난 현상인 것 같습니다. 모이신 거의 모든 분들이 심리 치유사들이였는데 "10살에 의료 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아이, 4.3사태 때 학살당한 영, 6.25, 광주, 세월호에서 죽은 영들이 가장 깊은 상태에 들어간 참석자들에게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코피를 흘리며 온몸을 뒹굴며 통곡했습니다. 저희 지도자들은 그들을 품에 꼭 안고 그들의 한과 아픔, 억울함을 들어주며 그들을 다독이며 같이 애도하고 통곡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예수시대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 영들의 방문을 보며 지금 우리 땅에 예수님이 계셨다면 귀신들을 예수의 시대처럼 호통을 쳐서 내 쫒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무당들처럼 그들의 한을 다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서 그들을 평화로운 곳으로 인도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신약 성서학자 크로상은 예수는 농부 혁명가 신비주의자 샤먼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샤먼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그들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아픈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살아나 생명의 빛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트라우마의 죽음을 이겨내고 부활한 사람들이지요. 찢어진 가슴, 인생의 총에 맞아 가슴에 구멍이 숭숭 뚫린 사람들이 찢어져서 구멍나서 더 커진 가슴에 들어오는 빛으로 다른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들을 알아보고 치유해주는 힐러들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부서져 구멍이 뚫린 가슴으로 들어오는 빛의 힘으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연약함의 힘은 절대 연약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연약함의 힘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연약함의 힘은 힘센 자 앞에서 쫄지 않고 힘없는 자 앞에서 우쭐대지 않고 진정한 자기 자신의 핵심에서 나오는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저는 이러한 힘이 예수가 말하신 나를 구원하는 우리가 꼭 끌어내야하는 내 안의 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가지고 있는 진실의 힘, 진정성의 힘은 폭력과 지배가 아닌 감동과 공감의 힘으로 나를 이웃을 그리고 세상을 바꿔갑니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의 여성들이 수천 년 삶을 지켜온 살림의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힘은 우리를 감동시켜 따라가게 하는 매력의 힘입니다. 폭력과 지배로 바꾼 것은 다른 전쟁과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감동과 매력과 마음을 열게 해서 바꾼 것들은 진정한 변화, 지속 가능한 변화를 가능케 합니다. 이러한 연약함의 힘은 우리 모두 안에 있습니다. 그 힘들이 모여 큰 힘으로 모아질 때 안병무 선생님이 말씀하신 콜렉티브 민중으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향린, 향기로운 이웃......]

 

여러분들 안에 있는 그 연약함의 힘을 꺼내셔서 그 힘의 향기로 자신과 세상을 구원하는 향기로운 이웃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