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주일

 

한 몸이니

(시편 80:14-19; 에제 37:15-19; 요한 17:21-23; 마르 14:36)

한상렬 목사

 

 

향린교회 가족여러분 그동안에도 주님모시고 안녕하셨습니까? 실로 모처럼만에 여러분을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가슴이 떨리고 온몸이 설레는군요. 과연 산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만남이 신비입니다. 이토록 숨 쉬며 살아있는 기적과 첫 만남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송과 감사를 올립니다. 교회의 기초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국교회의 핵심은 향린교회라고 생각합니다. 피와 땀과 눈물과 기도로 위대한 향린의 역사를 일구어 오신 모든 님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모처럼만에 제가 존경하는 은사 황성규 교수님 내외를 뵙게 되어 기쁘고 감사합니다. 한 분 한 분 한 인연들 귀한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홍근수 목사님이 그립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평소에 제가 존경하는 박성준 선생님, 촛불교회의 최헌국 목사님 가족도 함께 하셨습니다. 기쁘고 고맙습니다.

 

오늘 이 거룩한 예배, 귀한 예배에서 무슨 기쁨을 드리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작은 체험, 분단의 아픔과 통일의 꿈의 이야기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특히나 6년 전 20106.15를 맞이했습니다.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10일간의 광주 5.18묘역 성지에서의 단식철야기도에 이어서 70일간의 국력순례행진, 이어서 3년간의 옥중 수도원 생활에서 보여주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총의 경험을 신앙 간증하고도 싶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상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넉넉하게 허심탄회하게 함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는 몸부림 속에서 과연 혼자서 어떤 태도 어떤 정신으로 임해야할 것인가 고민했던 바를 작은 경험이나마 잠깐 나누고 싶습니다.

 

다시 8.15입니다. 8.15를 누가 광복절이라고 합니까? 광복절면서 광실절이고 해방절임과 동시에 분단절입니다. 71년의 이 어묵한 분단의 세월, 피토하는 역사아픔, 통일평화염원 300정신과 일심기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몸 의식입니다. 엄마가 아기를 낳았는데 머리는 둘이고 몸은 하나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아이는 한삼일까요? 두삼일까요? 여러분이 많이 들어본 수수께끼 일 것입니다. 머리가 둘 달렸으니 둘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몸둥이가 하나이니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 사람인가 두 사람인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하죠. 한 쪽을 세게 때려봅니다. 아플 것입니다. 아파서 울고 있는데 함께 아파하고 있다면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함께 아파하느냐 이게 문제입니다. 과연 아내의 아픔이 남편의 아픔이고 남편의 아픔이 아내의 아픔인가? 부모의 아픔이 자녀의 아픔이고 자녀의 아픔이 부모의 아픔인가? 친구 간에도 교회 가족 간에도 특히 남녘의 아픔이 북녘의 아픔이고 북녘의 아픔이 남녘의 아픔인가? 탈무드에 나오는 이 수수께끼, 2의 해답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995815일 분단 50년을 넘기지 말자고 희년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넘어가는 이 날 괴로웠습니다. 잠을 못 이뤘습니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를 다시 생각해보니 또 하나의 해답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 한쪽을 때려봅니다. 다른 한쪽이 아프다면 하나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한쪽을 때리는데 아픈데 웃고 있다면 둘입니까? 한 몸입니다. 한쪽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고 있다면 곧 자기도 한쪽 머리도 곧 죽는 것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1의 해답은 같아야 한 몸이라고 하는 것, 2의 해답은 달라도 한 몸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바닷가의 섬이 세 개가 보입니다. 이 섬이 몇 개냐고 하면 세 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말해보면 물이 쏙 빠지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 몸이야 말로 우주의 원리요 실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 되자고 합니다. 그런데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이러면서 하나 되자, 혹은 아니면 말고? 아니, 원래 하나이니 한 몸으로 한 몸 되자. 이런 한 몸 의식으로 만난다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인류의 오랜 습으로, 특히 분단이 오래되고 보니까 분열색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툭하면 무엇이 얼마나 다르다고 분열합니까? 분열의식을 청산하고 한 몸 의식으로 함께 나아갈 때 통일도 앞당겨 지는 것이고 자기 자신과 함께 자연과의 관계 이웃사랑과의 관계, 하느님 관계도 회복 되리라고 믿습니다.

 

한 몸 의식은 저로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원천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고백가운데 이 한 몸 의식이 발현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통일평화염원 3대 정신 중에 또 하나는 한 몸 결단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2003815일 평양 대동강 공원에서 남녘대표 300여명 해외대표 200여명, 수천 명이 모여 815 기념행사를 했지요. 그때 저는 남쪽 통일운동의 대표 중 한사람으로서 15분간 연설을 했습니다. 다음날 김영남 위원장을 연행했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목사님 어제 연설 잘 들었습니다. 온 인민이 감동하고 있습니다.”, “아니 김위원장님이 어제 나오시지 않았잖습니까?”. 알고 보니 TV로 다 방영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 뒤에 제가 북녘땅을 98년부터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40여 차례 방문을 했습니다. 2003년부터는 저 지역에 있는 동포들도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어떤 분이 이 한 구절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엇이냐 하면 제가 그 이야기 속에 민족대단결하자고 하는데 단결의 기초가 무엇입니까? 단결의 첫걸음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질문하면서 단결을 거꾸로 해보십시오. ‘단결결단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외우기도 쉬웠던 모양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맞으면, 이해관계가 있으면 단결하고, 아니면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분열하고 그게 무슨 단결입니까? 저 놈이 제 마음에 안들지만, 저 놈이 나랑 다르지만 그래도 단결해야겠다고 결단하고 단결하라고 할 때 그런 전의지를 발현할 때 단결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고 우리 모든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한 몸 결단을 생각해 본 것입니다.

 

통일평화를 염원하는 삼대정신 중의 또 하나는 한 몸 낙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지난 2010년도 북녘 땅을 70여 일간 있는 동안에 열흘간은 백두산 일대에 있었습니다. 백두산에 많은 북녘동포들이 순례를 하고 저 밑에서부터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오는 청년들을 봤습니다. 참 수고하신다고 하였더니 일 없음네다”. 라며 괜찮다고 하면서 구호를 이야기했습니다. 고난 행군 시기부터 나왔던 유명한 북의 구호인데요 바로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입니다. 이 구호가 북녘에서는 아주 유명한 구호입니다. 북녘청년이 참 든든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러다보니까 20058.15가 생각이 났습니다. 20058.15는 북녘에서 와서 같이 인사를 했습니다. 행사 중에 백두산의 성화와 한라산의 성화를 채취해서 함께 합하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남쪽의 한라산의 30여명과 함께 올랐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서 행사를 해야 하니까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가는 청년을 보았습니다. 급경사에 어렵게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참 수고한다고 하니 이 청년이 이런 말을 하는 겁니다. “목사님! 경사로니 경사입니다.”하며 올라갔습니다. 씩씩한 남녘청년을 보니 딱 떠오르는 성서구절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5장에 나오는 말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였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현실을 참으로 비관스럽고 패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의 희망, 낙관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우리는 희망하고 또 희망하고 짓밟히더라도 또 일어나 가는 한 몸 낙관입니다. 그리하여 통일평화를 진정으로 염원한다면 한 몸 의식과 한 몸 결단과 한 몸 낙관으로 전진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가? 거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복음서 십자가 지시기 전날 밤 기도 속에서 찾아보고 있습니다. 마태오, 마르코, 루가가 증거한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쓰디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지요. 그런데 결국은 내 원대로 마시고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 내 뜻대로 말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아버지의 뜻이 어디에 있나요? 또 하나의 기도전승 요한복음 17장 기도의 핵심이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안에 아버지께서 있는 것 같이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1절 말씀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불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담을 허물어버리시고, 라는 에베소서 2장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분열의 장벽, 하느님과 인간관계, 인관과 인간관계, 인간과 자연관계, 자기 자신관계, 이 분열을 해소하고 하나가 되는 새 길을 십자가로 여셨다고 믿습니다. 화해와 평화통일의 십자가,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부활길을 함께 따라가고 예수님과 한 몸으로 새 역사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할 뿐입니다.

 

제가 옥중에서 울었습니다. ‘날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 세계지도 허가 품목은 아닙니다만 제가 옥살이 할 때마다 이것을 넣어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목사이니 기도해야겠다고 하고 세계지도를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세계지도를 보면 곳곳마다 아픕니다. 기아와 전쟁과 분쟁으로 눈물이 절로 납니다. 우리나라 현실은 어떻습니까? 날마다 울다 보니까 어느 날 하늘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웃고 울고 하는 상대적인 모습이 아니라 원천적인 웃음. 태초에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태초의 하느님의 웃음으로 구상하시면서 보인 것이었습니다. 창세기에 좋다라고 7번이나 나오는 좋다. 좋아’. 원래 좋다라고 하는 웃음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분단 속에서 이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원천적인 이 웃음을 찾아야 혁명적인 낙관으로 나아간다고 할 때 기도가 요청됩니다.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인 줄을 믿습니다. 오래 전에 새벽기도를 하다 비나이다. 비나이다를 하다보니 속에 기도의 기본 자세와 정신이 있구나를 알았습니다. ‘비움, 나눔, 이음, 다함.’ 아 그렇구나. 자기를 비우는 것이 기도의 시작이구나. 정성을 다하여 실천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통일을 염원한다면 비나이다. 비나이다.’ 일심으로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향린교회 가족 여러분! 이미 저는 말씀 드렸습니다. 이 교회야 말로 한국교회의 모범이요 선각자요 핵심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향린교회가 그저 단결하고 있는 것만 하더라도 좋습니다. 우리 주님의 기도대로 서로 하나 되게 하소서. 하나 될 때 하느님의 공동체인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향린교회 안에 보물이 있습니다. 이 안에 길이 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 안에 향린교회가 더욱 진보진화하기를 바라고 이 손에서 하나 됨이 아니 막대기를 연합해라. 무슨 뜻이냐? 남녘이 하나 되는 뜻입니다. 둘이 하나 되게 하는 역사는 하느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 역사를 따라서 성령님의 감동감화로 함께 전진할 뿐입니다. 기도하면서 나갈 뿐입니다.

오늘 평화통일주일로 드리는 우리 모두와 향린 가족 여러분!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싶습니다. 지금 향린교회 가족이 한 몸 평화, 통일평화 한 몸 되게 하소서.

 

다함께 침묵으로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