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21()                                                                          성령강림후14 하늘뜻펴기

그럼에도... 말해야한다!

(예레미야 1:4~10, 시편 71:1~4, 히브리서 12:18~25, 루가복음 12:8~12)

                                                                                                                    고상균 목사

   

[교인 여러분과 지구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날이 아직도 무척 덥습니다. 주중 전화를 드려보았더니 더위로 인해 교회출석이 어려우셨다는 교우 여러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무슨 통계나 학술논문이 아니더라도 매 해 갱신되어가는 기상청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온도는 분명, 우리 모두의 잘못으로 인해 지구가 심각하게 병들어 가고 있음임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 신앙의 선배님들을 포함하여 향린공동체 여러분 모두에게 건강이 가득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겸하여 승용차 덜 움직이고,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실천에서부터 시작하여, 원전을 완전 정지시키는까지 이르러서 지구도 건강해지기를 진심으로 염원합니다.

 

[리우올림픽과 연예인 스캔들의 공통점]

 

리우올림픽이 내일까지 열리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개최된 최초의 올림픽이라는 상징성과 함께 화려한 볼거리와 수많은 이야기들이 탄생되고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대회의 특성상, 우리 시각으로는 주로 새벽에 중계방송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열대야와 함께 여러 경기들을 시청하느라 잠이 부족했던 교우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버지께서 중학시설 9인조 배구선수이셨음으로 인해 생전 참 생생하게 설명해주셨던 덕분으로 좋아하게 된 배구경기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보기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와 신문지상에는 온통 올림픽 이야기만 가득하고, 메달획득이 기대되었던 종목이 예선탈락을 하게 되면 마치 국민이 애도해야 할 사건이 발생한 것 마냥 호들갑을 떠는 것은 영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순간, 미국과 한국정부에 의해 밀어붙여지고 있는 사드배치문제와 이에 저항하는 상주군민 908명의 삭발소식은 참 절묘하게 묻혀 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일방적 행위나 실책이 드러나려는 순간, 다른 사건이 터지는 모습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이전에는 그 단골손님이 북한이 심상치 않다였었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색깔론이 더 이상 먹혀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한 권력과 자본은 올해 들어 부쩍 자주 다른 카드를 꺼내들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것은 연예인 스캔들입니다. 세월호에 400톤이나 되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자재가 불법적으로 선적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마자, ‘김민희-홍상수 스캔들이 모든 언론에 도배되기 시작했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시한 연장의 당위성이 강하게 대두되려는 순간, 많은 남성 연예인들의 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전 세계인들의 축제라는 올림픽은 참 절묘하게도 사드논란과 함께 전기, 가스 민영화,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등 친 정권 인사들의 비리, 그리고 지원중단으로 인해 프린터 토너가 없어 회의 자료조차 만들기 어렵다는 세월호특조위의 상황 등을 가리우고 있습니다. ! 정부와 여당이 함께 모여 전기세 폭탄 등 서민의 민생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한다는 자리에 등장한 반생명적 황제밥상 사건과 안중근 의사를 난데없이 하얼빈에서 돌아가게 하신 대통령의 8.15 연설 등은 설현과 지코의 열애설이 막아주고 있겠군요. 이런 점에서 적어도 힘센 이들에게 있어 올림픽과 연예인 스캔들은 우매한 , 돼지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참 요긴하게 사용되는 수단 정도로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올림픽과 연예인 스캔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 더 있는데요, 그것은 성에 대한 관음적인 시선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스캔들 릴레이가 연예인에 대한 대중의 관음적 욕구를 각종의 권력들이 담합하여 이용한 사례라면, 올림픽에서는 선수들, 특히 여성 선수들의 외모와 몸에 대한 관음적인 시선이 중계방송발언 등을 통해 매우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겠습니다. 예를 들어 몽골 여자 유도선수에 대해 저 선수는 살결이 야들야들하다는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 비치발리볼 경기에서는 남자선수 경기는 박진감으로 보고, 여자선수는 다른 것으로 본 다’, “해변엔 미녀가, 바닷가엔 비키니등의 어처구니없는 표현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대로 공중파를 탔습니다. 이밖에도 여성선수의 외모에 대한 발언은 거의 모든 종목에서 남성 앵커와 해설자들에 의해 행해졌습니다. 여성비하발언도 쏟아졌는데, 매우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었던 싱크로다이빙 중국선수에 대해 한 해설자가 칭찬이랍시고 여자선수 같지 않게 기술력이 좋다 말했고, 자기 장비를 점검 중인 여성펜싱선수에 대해서는 여자가 철로 된 장비를 다루는 것으로 보니 인상적이네요.”라는 평한 아나운서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좁게 볼 때 발언 당사자의 성차별적 인식이 문제겠으나, 넓게는 이와 같은 발언에 아무 문제의식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성평등 감수성이 아직도 저급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지 까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구랑 누가 사귄다. 혹은 누가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지도 모른다라는 내용들만이 어떤 존재들에 의해 선별 및 부각됨으로 인해, 정작 알아야 할 진실과 짚고 넘어가야 할 사건들이 유야무야되려하는 것은 정말이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힘 있는 자들이 조악한 대중성의 왜곡된 욕망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감추려하는 일은 오늘의 본문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말해야한다!]

 

오늘 함께 모신 하늘말씀 중 1성서는 예레미야의 서두입니다. 이야기 속 야훼는 예언자로 설 것을 두려워하는 예레미야를 가혹하게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말도 잘 못한다는 예레미야를 향해 그저 해야만 해! 무서워 하지마!’와 같은 말만 되풀이하고 있지요. 지금부터 자연스럽기로 해!’라고 한다 해서 갑자기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지 않는 것처럼, 무서워하지 말라고 갑자기 공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예레미야에겐 정말 낼 수 있는 힘이 없는데, 자꾸 힘내라고 하는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상황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 야훼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인간의 고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분이기 때문일까요? 왜 이렇게 이야기 속 신은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일까요?

주전 609, 쇠락하던 앗시리아는 이집트에게 원군을 요청하면서 팔레스타인 일대의 지배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이후 신바빌로니아에게 빼앗기게 될 때까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의 지배자였던 이집트는 자신들의 지배권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이 일대의 군소 국가들에게 봉신관계를 강요하는 한편, 이집트계로의 정권교체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유다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야하즈 2세를 불과 3개월 만에 폐위시켜버린 이집트는 여호야킴이라는 허수아비 왕과 함께 어용정권을 수립하게 됩니다. 이 친 이집트계 세력들은 앗시리아를 멸망시킨 신바빌로니아가 시시각각 다가서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와 백성들의 안위보다는 자신들의 영달에만 관심을 집중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걱정하지 마라! 야훼가 지켜주신다. 이집트가 뒤에 있다. 하느님께서 신바빌로니아를 꺾어주신다고 했다.’는 등의 신탁을 유포시켰습니다. 임박한 위기와 자신들의 어용성을 백성들이 바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은닉시키려했던 것이지요. 올림픽 애국이데올로기 및 연예인 스캔들 유포를 통해 국민들이 직시해야 할 일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한국의 총 권력들과 같이 말입니다.

요시야의 등거리외교정책을 지지했던 역사적 예레미야의 고뇌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분명 이집트에 기울어져 국제정세를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유다는 망하고 말텐데, 이 점을 알릴 방법도, 국가라는 거대 권력을 혼자 상대할 수 있는 힘도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 시대를 살고계신 향린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답답함과 유사한 주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말 못하겠다던 예레미야의 이후 삶은 어떠했을까요? 이어지는 본문에서 드러나고 있는 그의 행적은 어용정권과 이에 편승하는 종교지도자들의 주장이 지닌 문제점을 폭로하는 한편, 지금이라도 균형 있는 외교 전략을 수행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경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혈혈단신으로 국가와 그 뒤에 버티고 있는 강대국의 비행을 폭로하고 나서는 길의 시작이 어디 평범한 결심으로 가능했겠습니까? 오늘 함께 모시는 예레미야 본문은 이어지는 험로를 암시하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을 가진 이는 그 말을 외쳐야만 한다는 소명을 신의 이름으로,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교의 전설에 의하면 이후 예레미야는 친 이집트계 지배층들이 신바빌로니아를 피해 이집트로 망명할 때, 그들에 의해 피랍되었다가 끝내 살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록 삶이 온통 가시밭길이었지만, 예레미야는 그 성과와 가능성을 따지기 전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결단을 실천에 옮겼던 우리 신앙의 귀한 선배인 것입니다.

 

[하늘의 말씀을 뿌리치지 말라!]

 

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있고~”(12:22)

마치 무릉도원과도 같이, 속세를 떠나 어떤 선경(仙境)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가득한 두 번째 본문은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는 바울로라는 2성서의 간판스타와 그의 서신에 가려져 최근까지 그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해왔습니다. 그러나 비평학적 연구의 발전 결과, 최근에는 바울로, 서신서의 저자 요한과 함께 ‘2성서의 3신학자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이토록 주목받게 된 데에는 본문의 역사적 맥락이 중요했는데요, 한 마디로 그것은 히브리서 공동체가 직면해야했던 고난이었습니다. 주후 64년 로마시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당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던 황제 네로가 개인저택 확장을 위해 불을 질렀다거나, 어머니도 죽인 황제이니 우리들의 어머니인 로마도 죽이려했을 것이다등의 소문이 널리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자신을 대신할 희생양이 필요했던 네로는 신흥종교로 교세가 극히 미약하고, 대중들에게 큰 인지도가 없었던 소수 종교를 지목하고는 악의적인 흑색선전을 유포시키게 됩니다. 대화재의 주범이라는 죄명으로 주후 68년까지 예수공동체가 박해를 받게 되었던 것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사자에게 찢기거나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등, 초기 공동체가 당했던 박해하면 떠올리게 되는 모습 대부분은 이 시기에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예수 공동체를 탄압하는 대신 정책적으로 존중되었던 유대교로부터 이단으로 배척되기 시작했던 것도 이러한 시기 이후의 일입니다. 교부 오리게네스의 말을 빌리자면 하느님만 아시는 익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히브리서는 이와 같은 고난의 상황에 처한 로마의 예수공동체를 향해 보내진 격려문으로 보입니다. 저자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고난이 임박한 로마에 대해 오히려 하느님의 도성이라 칭하는 역설적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그곳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뜻을 외면하지 말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해 주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12:25)

 

이 기간 동안 로마시에 거주했던 예수 신앙인들은 체포되어 죽거나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부터 영구히 추방당해야 했습니다. 국가의 무한폭력 앞에서 한없이 나약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과 그들의 공동체는 결국 무너졌거나 변절하고 말았을까요? 성서에는 그 이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추론 할 수밖에는 없지만, 바로 그 도시에 계속해서 예수 공동체의 명맥이 이어졌고, 종국에는 가톨릭의 본산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 땅에서 고난을 온 몸으로 돌파해야 했던 이들이 하늘의 말씀을 뿌리치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매도되고 호도되었을지언정 그들이 감추려했던 진실은 초대교회 공동체의 선배들에 의해 계승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일러주는 바대로 말해라!]

 

존경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십여 년 전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매트릭스를 기억하십니까?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이 실상은 기계에 의해 통제되는 매트릭스라는 사실이 극적 긴장감을 더해 주었던 영화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역시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잘 짜인 매트릭스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듯합니다. 그 매트릭스는 우리가 보고 알아야 할 것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그들이 주입하려하는 것들만을 알도록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매트릭스의 폭력성과 억압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외면합니다. 간혹 일상 이면의 매트릭스를 발견한 이들 역시 그 거대함과 힘 앞에 한없이 무기력해지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때에.......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두 본문의 외침과 같이 해야 할 말해야 합니다. 이 증언에 대한 신앙적 촉구는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이라고 시작하고 있는 루가복음에서 역시 무언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 외쳐야 함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루가 공동체가 회당, 즉 유대교 지도자, 지역 통치자나 권력자 등 매우 두렵고 버거운 상대들 앞에 서서 심문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유대인이 아님으로 인해 예수 신앙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유대교 디아스포라들로부터 배척받았고, 신흥종교 공동체에 대해 가해지는 의심어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공동체의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자신들이 믿는 이가 로마제국의 법정에서 정치범으로 낙인찍혀 죽었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들의 활동을 순탄치 못하게 했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모신 루가복음의 본문은 이와 같이 앞날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앞에서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할 말을 당당하게 하라는 가르침을 예수 그리스도의 입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말아라.”(루가 12:11)

 

복음서 속 예수가 안내하는 길은 결코 순탄하거나 확실한 가능성을 가진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권력자들에게 끌려 나가는 길이었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해야 할 말을 항변하는 길이었습니다. 이 길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신앙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리기도 했을 것이고, 유대교로 입문하여 그만 과거로 회귀해 버리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엄혹하고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순간에 공동체는 다시금 자신들의 결단을 확인하고는 말해야 하는 자리로 나섰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그 순간 그 이들의 신앙은 한 마디로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성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 주실 것이다!(루가 12:12)”그러니 그 자리로 가서 말하자!

 

사랑하는 향린공동체 여러분!

삶의 자리의변화는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꾸는 낮꿈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현실의 자리는 비록 평화를 염원하는 스포츠 축제마저 매트릭스 유지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만, 그 권력기계들의 폭력성과 속성을 직시하는 우리들이라면, 말해야 합니다. 그것이 비록 때를 얻든지, 그렇지 못하든지 말입니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저는 리우올림픽에 단 두 명의 선수가 출전한데다가 그마저도 모두 예선에서 탈락한 나라, 무리한 인광석 채취로 인해 황폐해져버린 섬나라 나우루공화국의 환경파괴는 우리 모두의 탐욕이 빚어낸 참극임과 그 땅의 회복을 위해 함께 해야 한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저는 여자육상 5천 미터 예선에서 동반 꼴찌 한 2명의 선수,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서 자신까지 쓰러뜨렸던 이를 일으켜 세워주고는 십자인대파열로 주저앉아버린 미국대표 다고스티노와 그 이를 다시 일으켜 세워 결승점에 함께 들어온 뉴질랜드의 햄블린의 포옹은 그 어떤 메달보다 감동적이었다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남과 북이 대결국면으로 치달아가는 지금 다정한 셀카 사진한 장으로 이 땅의 분단은 위정자들만의 것일 뿐, 민은 결코 헤어진 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기계체조대표, 북의 홍은정 남의 이은주 선수가 자랑스럽다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은폐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과 특조위원들, 그리고 거리의 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의 몸짓에서 권력의 매트릭스를 끝장내는 파열음은 시작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말함에 기도와 실천으로 함께 하실 것을 요청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침묵 가운데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침묵기도 드리겠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야합니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설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모아 일어나야 합니다.

한 걸음을 딛고 나갈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모아 걸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하는 이들을 믿고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내 마음의 소리에 응답해야 하고,

이를 통해 어떤 이들의 소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세미한 음성일지언정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해 나가도록 합시다.

마침내 그 세미한 음성은 소란스러움이 되고, 천둥소리가 되어서는

끝내 천지를 개벽해 낼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축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가 우리가운데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