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828()                                                                           교회교육주일 하늘뜻펴기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였는가?

(예레미야 2:4~13, 시편 81:1,10-16 ,루가복음 14:1, 7~14, 히브리서 13:1~8, 15~16)

 

[유아-유치부 하늘뜻펴기: 신나고 즐거운 하느님나라]

   

                                                                                                  김은아 목사

 

(이야기 1)

여름하면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요?(질문) 올 여름은 특히 더웠는데...

뭐니 뭐니 해도 시원한 게 생각날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시원한 이야기로 시작할까 해요. 둥글둥글하고 초록색에 검은 줄무늬 옷을 주로 입고 다니고요, 여름에 저를 많이 찾아요. 뭘까요? 그래요. 수박이에요. 그럼, 여름에 친구들이랑 가족들이랑 함께 가면 참 신나고 시원한 곳이 있어요. 바로 수영장이에요. 오늘은 바로 수박이랑 수영장 이야기를 할까 해요.

 

(이야기 2: 수박 수영장)

해마다 여름 햇살이 가장 뜨거울 때 수박 수영장이 열립니다. 엄청나게 큰 수박이 하고 반으로 갈라집니다. (그림3) 그러면 한 할아버지가 수박 수영장을 영차영차 올라가 씨를 휙 뽑고 수박 물이 고인 자리에 앉습니다. “~ 시원하다

이제 수박 수영장이 열린 것을 알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씩 모여 수박 수영장에 들어가 놉니다. 밭일을 하던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빨래를 널던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그리고 고무줄놀이를 하던 아이들도 수박 수영장을 찾습니다. 모두 함께 철퍽철퍽 뛸 때 마다 시원하고 맑은 수박 물이 고입니다. (그림5)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시원한 수박 속에 들어가 즐기며 시원하게 보냅니다. (그림6) 개구쟁이 아이들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수박껍질을 잘라 미끄럼틀을 만들고 신나게 놉니다. 어른들도 줄을 서고 신나게 미끄러집니다. 빨갛고 시원한 수박 물, 아이들의 웃음소리, 어른들의 흐뭇한 미소. 그렇게 수박 수영장은 나이가 적던 많던, 여자든 남자든, 구별 없이 모두가 모여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이랍니다. 서로 차이를 잊고 모두 함께 뛰어 놀 수 있는 수박 수영장! (그림7)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모두 함께 놀다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저녁노을을 바라봅니다.

 

(이야기 3: 골로사이서 311-14)

하느님은 이 세상을 수박 수영장처럼 만드셨어요. 모든 사람들이 들어와 신나게 놀고 한바탕 함께 어우러지며 사는 세상을 만드셨어요. 그 곳에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힘이 센 사람, 힘이 조금 약한 사람,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 곳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이니까요. 그 곳에서 우리는 서로 신나고 재미있게 놀면 되요. 염려할 필요도 없어요. 서로 다르다고 싸울 필요도 없어요. 내일이 오면 어떡하지? 라고 걱정할 필요도 없어요. 왜냐하면 수박 수영장은 내년에도 또 열리 듯 하느님은 우리에게 함께 놀 수 있는 터전을 주시니까요.

그런데 수박 수영장에서 잘 놀기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해요. ‘서로 양보하기’, ‘서로 놀이기구 빌려주기’. ‘수영장에서 쉬하면 안 돼요.’ 등등....... 우리도 하느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에서 재미있게 놀기 위해서는 서로가 더 잘 놀 수 있는 약속이 필요해요.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 중에 있어요. 함께 큰 목소리로 그 약속을 읽어볼까요. 13에서 14절 말씀입니다.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따뜻한 마음, 친절한 마음, 겸손하고 온유하고 참을 줄 아는 마음, 서로 도와주기, 투덜대지 않고 서로 용서해 주기, 그래서 서로 사랑하며 재미있고 건강하게 놀기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아름다운 세상에서 누구나 함께 더 잘 놀기 위해 약속을 지키며 놀다보면 어느새 이 세상은 사랑으로 서로 어깨동무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요. 오늘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김새도, 생각도 조금씩 다르지만 수박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린이-청소년부 하늘뜻펴기: 행복의 초대]

      

                                                                                                  차민호 전도사

 

예수께서 당신을 초대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 사람들을 부르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도 그들의 초대를 받아서 네가 베풀어준 것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그러면 너는 행복하다. 그들은 갚지 못할 터이지만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느님께서 대신 갚아주실 것이다. (루가 14,12-14)

 

안녕하세요. 오늘 교회교육주일 어린이들과 푸른이들의 하늘 뜻 펴기를 맡게 된 어린이부 차민호 전도사입니다. 이제 8월말, 여러분들은 이제 대부분 방학이 끝났을 거예요. 개학해서 좋은가요? 좋은 점도 있고, 안 좋은 점도 있겠지요. 얼마 전 여러분들은 대부분 부모님 휴가를 맞이해 바다로, 계곡으로, 수영장으로, 놀이공원으로, 혹은 해외로 다녀왔을 거예요. 휴가는 왜 가지요? 쉬려고 가지요. 사람은 계속 일만 할 수 없으니까요. 이렇게 바다로, 계곡으로, 수영장으로 휴가를 떠나는 건 언제 생겼을까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가 아는 바로는 1936, 프랑스에서 생긴 것 같아요. 당시 프랑스에 공장도 많아지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엄청나게 많아졌지요. 그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뭉치니 힘이 강력해졌어요. 이 사람들이 1936년에 우리도 좀 쉬게 해줘라!” 외치며 공장 문을 다 닫았어요. 일하는 사람들이 요구한 건 일주일에 40시간만 일하게 해줄 것월급을 깎지 않고 일 년에 휴가를 15일 줄 것이었어요.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싸워서 이겼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자전거나 기차, 자동차를 타고 휴가를 떠나기 시작했어요. 책도 읽고, 공연도 보고, 그림 전시도 보고, 어려운 말로 문화생활이란 게 생겼어요. 그 전에는 휴가 가는 거, 문화생활 하는 건 부자들만 하는 거였는데, 이제는 모두가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 쉴 수 있는 세상이 되니 모두가 훨씬 행복해졌지요. 그리고 심지어 더 잘 살게 되었어요. 사람은 쉴 때 힘도 나지만, 지혜도 생기거든요. 자연스럽게 세상이 조금씩 좋아졌지요.

지금은 어떨까? 그 때는 15일만 휴가였는데, 지금은 35일이래요. 더 많이 쉴 수 있게 되었지요. 8월이면 빵집도, 식당도 대부분 닫고, TV도 재방송만 나온대요. 대부분의 사람이 쉬어요. 어린이와 푸른이들도 쉴까요? 당연하지요. 숙제 없이, 학원 없이 신나게 또는 지루하게쉬어요. 심지어 고3.......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공부를 더 잘 하게 되었어요. 정말 그래요.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거든요. 세계에서 학생들이 가장 공부 잘하는 나라가 어디지요? 핀란드래요. 왜 그럴까요? 숙제와 평가가 없어서, 수업이 적어서, 등수가 없어서 그래요. 경쟁이 없어요. 좋은 성적을 받고, 1등을 하고, 좋은 학교를 가려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는 걸 배우는 게 재미있으니까 공부를 해요. 학생인 게, 공부를 하는 게 행복해서 공부를 잘하게 된 거지요. 공부가 놀이가 된 거예요. 즐기는 거죠.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은 못 이겨요. 그래서 그 친구들이 공부를 잘 하는 거예요. 그리고 쉴 시간이 많아요. 신나게, 지루하게. 멍한 시간이 많지요. 멍하다는 건, 지루하다는 건 좋은 거예요. 힘과 지혜가 생기고 영혼이 자라는 시간이지요. 이렇게 모든 학생들이 충분히 쉴 수 있는 세상이 되니 모든 학생들이 행복해졌어요.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이유가 있어요.

잠깐 좀 전에 읽은 성서본문을 설명해줄게요. 예수님이 바리사이 지도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셨어요. 바리사이 지도자가 초대를 했으니 비슷한 사람들이 손님으로 왔겠지요. 손님들이 오는 데 다들 윗자리만 골라 앉아요. 윗자리에 앉는다는 건 자기가 높은 사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은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초대한 바리사이 지도자에게 말씀했어요. “식사 초대를 할 때는 친구나 형제, 부자이웃을 부르지 마세요. 그들은 나중에 또 당신을 불러서 신세진 걸 값을 겁니다. 앞으로 잔치를 베풀 때는 오히려 친구나 형제, 부자들 말고 가난한 사람, 다리를 저는 장애인,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은 부르세요.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세를 갚지는 못하겠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이 부활할 때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겁니다.” 알쏭달쏭하지요? 여러분들은 자주 들어서 예수님이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근데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웃사랑에 대한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항상 이웃사랑을 강조하셨지요. “사랑에 대한 생각은 별 차이가 없었는데, “이웃에 대한 생각이 그 사람들과 완전히 다르셨어요. 아까 예수님은 바리사이 지도자에게 친구나 형제, 부자들을 초대하지 말라 하셨지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에게는 친구나 형제, 부자들이 이웃이었어요. 가까이 지내는, 그리고 가까이 지내야 할 이웃이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 하셨지요. 그리고 식사초대보다 화려한, 신나는 잔치에는 누구를 초대하라고 하셨지요? 가난한 사람, 다리를 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장애인들을 초대하라고 하셨지요.

왜 이 사람들일까? 예수님에게는 이 사람들이 이웃이고 친구였거든요. 이 사람들은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지요. 누가 자기를 도와주더라도 그 신세를 값을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에요.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이웃이고 친구라고 가르치셨지요.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끼리 서로 식사나 잔치에 부르고 하는 건 누구나 해요. 예수님은 밖에서 굶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는 한, 그건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하셨지요. 잔치가 뭘까? 잔치엔 누가 올까? 친한 사람들이 오지요. 가깝게 지내는, 초대하는 사람과 비슷한 사람들이 와요. 친구들이 모여 한 마음으로, 같은 걸 먹고, 같은 걸 마시고, 함께 기뻐하는 게 잔치에요. 이웃이 되고, 이웃인 걸 확인하는 게 잔치에요. 친구가 되고, 친구인 걸 확인하는 게 잔치에요. 그런데 이런 잔치에 가난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부르래요. 그 말은 그들에게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라는 말씀이지요. 연말에 하는 불우이웃돕기 같은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의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어 함께 기쁨을 나누라는 말씀이에요. 잔치에서 그 사람들은 더 이상 가난한 사람도, 장애인도 아니지요. 이웃이고, 친구가 되는 거예요. 같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게 잔치지요.

예수님은 말씀 끝에 그렇게 하면 행복할 거라고 하셨어요. 또 그 사람들은 당신에게 신세를 갚지 못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들이 부활하는 날 하느님이 갚아주실 거라고 하셨지요. 어려워 보이지만, 이해하지 못할 말은 아니에요. 이미 어린이 여러분들은 잘 아는 내용이거든요. 사람은 무언가를 주고받을 때행복한 건 아니에요. “나눌 때 행복하지요. 내 것을 나누어우리 것으로 만들 때, 또 마음을 나눌 때행복해요. 혼자가 아닌, “함께있다는 걸 확인할 때 행복하지요.

하느님이 어떻게 갚아주실까요? 하느님이 하시는 일로 갚아주시겠지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시지? 사랑이시지요. 그건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하느님의 일은 구원하는 일이에요. 하느님이 갚아주신다는 건 구원해주신다는 뜻이지요. 하느님 나라에 초대하신다는 거예요. 하느님은, 부활한 예수님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몸이 불편해 살기가 힘든, 슬픈 사람들과 함께 계신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어요. 우리가 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 함께 울고 웃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또 부활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요. 그게 바로 사람의 길, 사랑의 길, 그래서 구원의 길이지요. 그리고 하느님 나라로 걸어가는 길이고요. 하느님 나라는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잔치에 많이 비유하셨어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건 하느님 잔치에 초대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하느님 나라는 이미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여러분이 필요하지요. 여러분이 살면서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사랑할 때 조금씩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리고 우선 우리가 사는 이 땅에 만들어 가는 거예요.

부자들만 가던 휴가를 1936, 모든 일하는 사람이 갈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 가는 거예요. 앞으로는 가난한 모든 사람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함께 휴가도 가고, 잔치도 하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또 만들어 가야 하는 거지요. 이것이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그리고 우리가 읽는 복음서를 적은 사람들의 마음이었어요. 오늘 어린이들의 찬양처럼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함께 행복해야 하니까요. 어린이, 푸른이 하늘 뜻 펴기를 마치겠습니다.


[전체 하늘뜻펴기: 그렇다면... 무엇을 말하였는가?]

 

                                                                                                 박세라 전도사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드립니다.)

지난주 고상균 부목사의 하늘뜻 펴기 제1성서는 예레미야였습니다. 혹시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그럼에도말해야한다입니다. 본문 속 예레미야는 저는 말을 잘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너무나 어립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 답변에서 두렵고, 떨리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그 심정이지금! ! 제 마음과 같습니다. 교회교육주일 제게 맡겨진 어른 하늘뜻 펴기그 무게와 부담감으로 하늘뜻펴기를 준비하는 몇 주 동안 원고를 썼다 지웠다를 몇 차례 반복하였습니다. 예레미야처럼 주님~ 저는 아직 신학적 깊이도 약하고, 이 사회를 바라보는 예언자적 시선도 그리 날카롭지 못한데, 무얼 이야기 하라고 하십니까?”하고 되묻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하늘뜻펴기 제목이 그럼에도말해야 한다!”라니, 지난주와 더불어 이번 주 역시 제1 · 2성서가 동일한 예레미야, 히브리서, 루가복음 이다 보니, 더더욱 그럼에도말해야 하는구나!”, “피할 수 없는 거구나하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내 다시, 성서를 펴고 책상에 앉아 제목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말해야 한다의 두 번째 이야기! “그렇다면무엇을 말하였는가?

 

 

(기억하라, 광야에서의 야훼를)

오늘 제1성서 예레미야 2장에는 유다 백성들을 향한 예레미야의 첫 외침이 나타납니다. 당시 유다 왕국은 사실상의 주권을 잃고 앗시리아와 이집트의 속국이 되어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강대국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국종교가 무비판적으로 유입되었고, 지배층은 이를 자랑스럽게 모방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역사를 송두리째 망각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를 통한 야훼의 메시지는 광야였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따랐다던 그 이야기를 통해 히브리들의 후손인 유다 역시 강대국의 사상과 종교에서 돌이켜 히브리와 함께 하시는 야훼를 기억해야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왕국 말기부터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신명기 6장을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시는 야훼! 너희 하느님을 기억하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 쏟아, 야훼를 사랑하고, 이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자손들에게 거듭 들려주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문설주와 대문에 써 붙여 놓으라고까지 이야기 합니다. 만일 야훼에게서 벗어난 삶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임박한 재앙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도 이와 같은 예레미야의 외침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는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느님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만들어 섬기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우상이란 이웃종교나 형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지위나 구조, 혹은 사상 따위를 절대시 하는 경우 등이 해당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향린 공동체가 교회교육주일로 함께하고 있으니 교육과 관련하여 우리가 만든 우상의 실체를 파악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향린에서 청소년부를 맡고 있고, 평소에는 학원에서 중·고등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교육과 관련된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분노하게 만든 이의 발언을 접하면서, 이 시대가 만들어 놓은 교육의 우상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신분제를 옹호하고 99% 계층을 개돼지로 비하한 망언을 듣고 너무 기가 차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는데, 그 보다 더 소름끼치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가 바로 교육부 정책 기획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입시제도와 교육제도 개편방향이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입학기준이나 선발절차가 불투명해지는 등 계속해서 부유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개편되고 있는 걸 보면, 이 사람의 깊은 무의식에 자리한 망언의 가치관이 교육 분야로 투영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 부모 세대와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스팩을 쌓으려 발버둥 치는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좋은 학교 · 좋은 직장을 가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자 최고의 가치로서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을 이 곳에 자리한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갖고자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아무렇지 않게 발판으로 삼고 일어서려고 하는 것!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성취해서 남들이 어찌 살던, 나는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것을 인생 최고의 가치라고 여기도록 우리가 교육하고 있는 것어쩌면 이것이 하느님을 잊게 만드는 우리 안의 우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루가 14:1)

 

오늘 제2성서 루가복음 본문에는 신분제를 옹호하고 민중을 개 · 돼지로 보는 또 다른 인물이 나옵니다. 유대 사회 속에서 최 상층부라 할 수 있는 바리사이파의 지도자가 바로 그인데, 어느 안식일에 그가 예수를 초대합니다. 사람을 사귈 때에 가난한 이들, 죄인들이라 칭해진 이들과는 상종하지 않으며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종교·사회적 특권층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는 초대된 식사 현장에서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는 풍경을 보셨습니다.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주로 초대한 이의 사회적 신분을 고급지게 올려줄 수 있는 특권층 인사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초대된 이들이 서로 가장 높은 자리를 골라잡아 앉으려는 모습은 그 시대에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이 흔히 일어나는 광경이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은 집주인 바리사이파 지도자는 물론이고 잔치에 초대된 모든 사람들이 듣도록 말씀하십니다. “너는 초대를 받거든 오히려 맨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너는 점심이나 저녁을 차려놓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에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잘사는 이웃사람들을 부르지 말라.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오히려 가난한 사람, 불구자, 절름발이, 소경 같은 사람들을 불러라.”

루가복음의 예수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으로, 향린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말하고 서로가 가르치고 배워야 할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초대 받은 잔치 자리에 떡 하니 가장 높은 상석에 앉아, 그 누구도 당신 내려와 앉으시오라는 말을 못하게 할 정도의 힘을 가져라! 하고 교육 했던 가치관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내가 값비싼 재료로 차려 놓은 식탁에 초대한 이들이 나를 언젠가 똑같이 화려하고 좋은 식탁에 초대해 주겠지?” 라고 기대하며 일명 같은 수준들끼리만 어울리는 식탁을 추구하게 만들었던 교육은 멈춰야 할 것입니다.

 

(기억하고, 다시 만나야할 야훼)

 

형제들을 꾸준히 사랑하십시오. 나그네 대접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천사를 대접한 사람도 있었습니다.”(13:1~2)

 

향린의 교회교육주일로 함께 예배드리는 오늘, 예레미야가 기억하라고 외쳤던 야훼를 만나고 기억하는 자리는 제2성서 히브리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나그네 된 이를 대접하는 그 곳이 바로 하느님을 기억하고 만나는 자리입니다. 이제, 독일의 화가이자 신부인 지거 쾨더가 그린 그림의 의미를 함께 나누며 우리의 교육에서 무엇을 말하고, 가르치며 함께 배워야 할지에 대한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그림에는 여러 가지 형태의 고통을 당하는 나그네들과 그들을 감싸며 돌보는 사람들이 함께 등장합니다. 먼저 그림 중앙의 문이 열려 있고 파란 옷을 입은 여인이 길 가던 나그네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이가 나그네라는 것은 두꺼운 옷과 오른손에 들린 보따리로 알 수 있지요. 노을 진 하늘은 날이 저물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문간에 서 있는 나그네는 긴 여행에 지친 듯 피곤한 모습이고, 한 여인은 그 나그네를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처럼 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한 것임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터 같은 검은 그림의 한쪽에는 독일어로 '3세계를 위한 옷'이라고 쓰여 있는데요, 3세계란 경제적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포스터 아래에는 기운 없이 눈을 감은 채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가 보입니다. 높게 달린 작은 쇠창살 사이로 한 줄기 빛이 들어오지만 줄무늬 옷을 입고, 손목이 묶여 있는 사람이 빛에서 살짝 비껴나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향린의 교회교육이 빈곤한 국가들에게 기꺼이 우리의 것을 나눠주며, 밝고 환한 생명의 기운을 나누어 주듯 아픈 이들을 돌보고, 작은 감방에서 홀로 고독과 싸우는 이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식이 필요하여 두 손을 손을 벌리고 있는 장면도 보입니다. 자세히 보니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의 못 자국 같은 것이 있습니다. 화가는 양식이 필요한 이에게 빵을 베푸는 것이 그리스도에게 하는 것임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갈증에 지친 남자가 두 손으로 작은 컵을 쥐고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 보이는데요, 맞은편에 물병을 들고 있는 여인. 그리고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붉은 색의 옷으로 표현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향린의 교회교육이 배고픈 이에게 빵을 쪼개어 나누는 손이 되고, 상대방이 들고 있는 작은 물잔 보다 더 큰 물병을 준비하여 그가 갈증이 해소 될 때까지 따라 줄 수 있는 삶을 살도록 이끄는 교회교육이 되길 희망합니다.

하늘 뜻을 준비하며, 저에게 던진 질문이자, 교회교육을 함께 이끌어가는 향린 교우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던 질문은, “교회교육,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혹은 여러분 스스로를 야훼의 가치와는 다른 우상을 신봉하도록, 더 높은 곳에 올라앉으라고 몰아붙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루가복음과 히브리서를 통해 우리 아이들이 낮은 곳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이끄는 교회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작은 한 폭의 그림에 다 담을 수 없어, 그림 저편에서 예수의 식탁에 초대되길 기다리는 이들을 기억하고, 맞이하는 교회교육이 되길 희망하며, 잠시 침묵하시겠습니다.